무림 속의 엑스트라 21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5화
215화. 복수 (1)
전각 내로 들어선 풍은 주변을 쭉 훑어봤다. 은옥상과 그 옆을 지키는 남혼에 옥소마희까지. 난세마동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비웃음을 머금으면서 풍이 서찰을 내밀었다.
“저희 교주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이제 대놓고 교주라 하는군.”
은옥상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서찰을 넘겨받았다.
서찰 내용은 예상하던 것과 그리 차이가 없었다. 길게 끌지 말고 교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천마궁 앞에서 결판내자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제안해올 정도라면 뭔가 속임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용봉대가 코앞에 들이닥친 현재 상황과 마교의 정통성을 운운했으나, 그것 또한 사마극 본인에게 유리하니 이런 제안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대로라면 피해야 할 제안이었으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이 싸움의 핵심은 사마극과 음천마령이다. 이 둘을 제거한다면 자신의 승리지만 설마 사마극의 수족을 모두 자른다 해도 이 둘이 살아있다면 자신의 패배다.
더구나 음천마령은 사마극과 연결되어 있으니 결론은 사마극 한 명일 뿐이다.
“받아들이겠다.”
은옥상이 대답하는 순간 옥소마희의 뾰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소교주님!”
은옥상은 가벼운 손짓으로 그녀의 반발을 무마한 다음 풍에게 다시 대답했다.
“오늘 중으로 천마궁으로 가도록 하지.”
전각 내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 가운데 풍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는 양손을 앞으로 맞잡고 정중하게 공수의 예를 취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싶은 순간 풍이 사라졌다. 듣던 대로 절정의 경신법이었다.
북령을 비롯한 모두가 은옥상을 둘러싸고 법석을 떨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은옥상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끌수록 나는 마교의 죄인이 될 뿐이다.”
용봉대가 들이닥친 것이 그녀에게 이로울 수도 있으나 마교 전체로 본다면 전혀 달갑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용봉대 또한 그녀가 끌어들인 것이니.
사마극과 결판내야 한다면 빠를수록 더 낫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사마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음천마령이 문제이긴 한데, 무흔은 다른 두 절대마령을 어떻게 처리한 것일까. 무흔이 음천마령만 붙잡아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그런데 무흔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시간에도 홀로 마교 본산 내부를 숨어다니고 있을 무흔을 생각하니 새삼 걱정됐다.
그때 은옥상의 귀에 다시 무흔의 환청이 들려왔다.
“한빙소 동굴 앞에 있어. 상황이 변하면 움직인다.”
환청은 수차례 반복되었고 내용은 간단했다.
한때는 이 환청이 자신의 바람 때문에 발생한 거짓이라는 생각도 있었으나, 이제는 믿기로 했다. 이런저런 각종 무공을 만들어내는 무흔이라면 멀리 떨어진 곳까지 목소리를 전달하는 무공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고.
“북령?”
“네, 소교주님.”
“넌 지금 한빙소로 가봐라. 그곳에서 무흔을 만나 내 생각을 전해라.”
“그곳에 공자님이 있데요?”
북령이 불안한 듯 눈을 깜박였다. 무흔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빙소 앞이라니.
은옥상이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얼른 가봐. 다만 조심해라. 이젠 아무도 믿어서는 안 돼. 적들이 널 잡으려 할지도 모르니까.”
북령의 은신술과 보법이라면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소교주님, 지금 소교주님 곁에는 제가 꼭 필요합니다.”
결전을 앞둔 은옥상에게 호위 한 사람의 비중은 매우 크다. 북령이 빠진다면 남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냐, 넌 무흔을 호위하도록.”
은옥상은 길게 말하지 않고 북령을 내보냈다.
혼자 있을 무흔에게 줄 가장 큰 도움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북령을 옆에 붙여주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비록 자신에게는 약간 손해가 될지언정 무흔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기에 그녀는 이런 결정을 내렸다.
솔직히 사마극과 자신의 싸움에서 북령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씁쓸했지만 대충이나마 그녀의 내심을 읽은 북령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오지 않아도 좋다. 그쪽에서 역할을 한다면.”
은옥상이 빙그레 웃었다. 어차피 북령이 돌아올 장소도 없을 테니.
순식간에 북령의 신형이 사라졌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옥상이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도 준비해보자.”
***
비록 천마산 산비탈에 숨어 있었지만, 무흔은 돌아가는 상황을 나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남는 시간 동안 마교 본산을 이곳저곳 누비며 얻어낸 정보에 과거 소설에서 보았던 각종 전투 상황과 현재의 전력을 대비하여 추론한 덕분이다.
물론 과거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무흔 자신이 마교의 중간 서열 마두 숫자를 확 줄여놓았고, 절대마령 둘이 사라진 데다 은옥상의 능력이 급증했으니까. 과거에는 오로지 사마극의 독무대였었다.
비탈에 앉아 한가롭게 풀을 씹고 있자니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달려왔다.
두 사람은 용봉대의 움직임을 탐색하고 온 상황. 무흔은 용봉대의 움직임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용봉대 소속이라 관심이 없을 수 없다.
“용봉대가 전면전을 펼치고 있어. 다행히 마교가 제대로 진용을 갖추지 못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백단영의 짧은 소감 전달에 남궁이화가 말을 얹었다.
“내가 뛰어들어 돕고 싶었는데…… 주먹이 운다.”
“검이 우는 건 아니고?”
“검이나 주먹이나 아무거나 울면 되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무흔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냐?”
무흔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마교의 정예는 사마극과 은옥상이 장악하고 보내지 않고 있어. 둘 다 결전을 앞두고 있어서 한가롭게 용봉대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니까. 덕분에 용봉대는 무혈입성하고 있달까.”
“지금 싸우고 있는데?”
“그건 칼받이들. 무림 공적으로 급조한 부대일 뿐 마교인은 아냐.”
여전히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굳이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은옥상과의 인연 때문에 무흔은 마교과 용봉대 양쪽 모두의 피해를 원하지 않았다.
무흔은 일어서면서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자, 그럼 가자.”
“어디를?”
“따라오면 돼.”
옆에서 남궁이화가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리 주인 아가씨 성질 많이 죽었네.”
백단영은 남궁이화를 보고는 발을 쿵쿵 구르며 무흔을 따라갔다. 평소 남궁이화의 걸음걸이를 흉내 낸 것이다.
무흔은 산비탈을 내려가며 생각에 잠겼다.
은옥상에게 천리전음을 보냈으니 분명히 반응이 있을 것이다. 처음 한두 차례는 환청이라고 무시했겠지만 지금 그녀의 상황이라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누군가를 이곳으로 보내는 것이 다음 수순. 아마도 그와 안면이 있는 북령이거나 아니면 옥소마희가 오고 있을 것이다.
무흔은 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마교 건물을 살폈다. 은옥상의 전각이건 옥소마희의 전각이건 그곳에서 이쪽으로 오는 길은 뻔했다. 사마극 측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 아마 중간에서 싸움이 벌어지리란 예감이 왔다.
그게 무흔이 움직이는 이유다.
역시 무흔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비탈을 거의 내려왔을 때쯤 싸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 이들의 싸움은 특이했다. 누구인지 알아본 무흔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남일녀. 여인은 은옥상 측의 북령이었다. 무흔과는 이미 인연이 많은 여인이다. 남자는 사마극 측의 뇌와 우. 바로 마극삼비 둘이었다.
세 사람 모두 극강의 경공과 보법에 능숙하다 보니 싸움이 뜬구름 잡기와 비슷했다. 두 사람을 뚫고 지나가려는 북령과 이를 차단하며 제압하려는 뇌와 우가 극강의 보법을 발휘하며 서로 얽혀 환상적인 전투 장면을 자아냈다.
무흔천상보라는 절정 보법을 익힌 백단영과 남궁이화도 깜짝 놀랄 장면이었다.
덕분에 마교가 자랑하는 마마환영비라는 보법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당연히 상황은 북령이 불리했다. 비슷한 무공을 쓰는 데다 상대가 둘이어서다. 오로지 이들을 뿌리칠 기회만 엿보았기에 북령이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무흔!”
무흔을 발견한 북령이 다급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를 저지하려던 뇌와 우가 무흔을 발견하고는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 멈췄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됐다.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두 사람을 포위했다. 뇌와 우는 모두 네 사람에게 포위된 상황이 됐다.
“그동안 달라졌군.”
무흔을 가늠해 본 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산동성에서 마극삼비는 무흔과 백단영을 합공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흔이 성장했음을 알아본 것이다.
이미 상대가 되지 않음을 간파한 뇌와 우는 빠져나갈 틈을 노렸다. 무흔 쪽은 도무지 틈이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백단영과 남궁이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 둘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공격 후 틈을 노려 도망치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특히 그들의 보법을 절대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
작전을 가다듬으며 눈빛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뇌와 우는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죽어!”
우가 백단영을 향해 극강의 살초를 펼쳤다. 뇌 역시 남궁이화를 향해 자신의 최고 초식을 뿌렸다.
물론 이 공격은 상대를 죽이려는 공격이 아니었다. 상대가 물러서는 순간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는 의도의 허초였다.
역시 예상대로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맞서지 않고 한발 옆으로 피했다.
타탁-
우와 뇌의 신형이 비조처럼 앞으로 질주했다.
물론 무흔은 이 상황을 이미 읽고 있었다.
번쩍!
언제 검집에서 묵천신검이 뽑혔는지 알 수 없었다. 묵천신검에서 나온 하얀 검광이 직선으로 날아갔다.
“끄윽!”
남궁이화를 뚫고 도망치던 뇌의 등에 화려한 검광의 폭죽이 피어났다. 뇌는 몇 걸음 더 달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실로 놀라운 검초였다.
백단영을 제친 우는 동료의 죽음을 도외시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목표는 하나. 이곳을 벗어나는 것뿐이다.
번쩍!
하지만 놀랍게도 우의 전면에서 하얀 검기가 폭죽처럼 터지며 압박했다.
“이건 또 뭐야?”
그는 검기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상대가 그를 따라붙었다. 마마환영비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놀라운 보법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허억!”
상대를 확인한 그는 더욱 경악했다. 언제 따라붙었는지 백단영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그녀의 연검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그의 허리를 베어오고 있었다.
놀란 우의 발이 잠시나마 흐트러졌다. 이것이 치명적인 허점을 불러왔다.
“크윽!”
재차 날아온 검기가 우의 허벅지에 긴 상흔을 만들었다. 보법의 생명은 다리다. 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장점을 완전히 잃은 우는 백단영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곧바로 긴 단말마의 비명이 이어졌다.
우의 가슴과 허리, 배 모든 곳에 백상검법의 검흔이 새겨졌다.
당연한 결과였으나 정작 북령은 무흔과 백단영의 압도적인 무위에 경악했다.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용봉대 소속이란 사실은 이미 알지만 마극삼비를 단칼에 해치울 실력일 줄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은 소교주는 어디에 있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북령은 그제야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교주가 머무는 천마궁으로 가셨어요. 사마극과 대결하겠다네요.”
예상보다 상황이 급하게 흐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지하 미로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무흔이 고려했던 전개였다.
“천마궁이라…… 사마극이 무덤을 파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