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11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1화
211화. 염탐 (1)
콰앙-
난세마동의 전각 문짝이 통째로 날아갔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 틈으로 내부 광경이 드러났다. 난세마동, 옥소마희, 남혼북령에 은옥상까지.
거칠게 난입한 자는 사마극이었다. 사마극 뒤로는 적월마왕과 섭혼귀령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
정작 은옥상의 눈길을 끈 것은 그 뒤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인물. 바로 음천마령이었다.
해가 뜨는 순간 찾아온 이들 넷 덕분에 은옥상 일행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 눈을 붙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이 아침에 쳐들어 왔나 생각하기도 했으나, 적에게 불만을 터트릴 수도 없으니.
“어딘가에 마극삼비도 숨어 있겠지.”
그녀는 마극삼비가 숨어 있을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다면 적은 모두 일곱이다. 서열 이 위인 적월마왕도 부담스럽지만 정작 더 위험한 상대는 가장 뒤쪽에 있는 음천마령이다.
음천마령 하나만으로도 감당할 무력을 벗어난다. 음천마령이 없더라도 상대가 우세한 전력이다.
물론 은옥상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정도로 당황할 거라면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니.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요?”
떠오르는 햇빛 아래에서 사마극이 가벼운 미소를 입술에 머금었다.
“그동안 엄청난 일을 저질렀더군.”
“감금한 곳을 탈출한 것이라면 당연한 행동 아닌가요?”
은옥상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라 사마극은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숨겨놓은 패라도 있으려나? 있어 봐야 절대마령으로 바로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귀령신은?”
귀령신이 있었다는 보고를 떠올린 사마극은 전각 내부의 인물을 다시 뒤졌다. 귀령신의 흔적은 없었다.
은옥상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귀령신은…… 이미 죽었어요. 그자 스스로 나를 제거하러 왔던데…….”
역시 예상대로였나? 머릿속을 정리한 사마극이 은옥상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신이 귀령신에게 은옥상이 움직이면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렸었으니, 지금 은옥상의 말은 애초에 생각했던 답변과 부합했다.
“그런데 귀령신이 여기저기 출몰했다던데…….”
재차 확인을 위한 사마극의 질문이 이어졌다.
은옥상이 요사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엄밀히 따지면 그자는 귀령신이 아니었어요. 아마 당신도 알겠죠? 누구인지.”
“무흔…….”
사마극은 입술 사이로 떠오르는 이름을 씹었다. 굳이 정정하지 않는 은옥상의 태도에 사마극은 자신의 짐작이 옳음을 확신했다. 무흔의 무공이라면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 일부 해명된다. 물론 무흔이 왜 은옥상을 그렇게 죽기 살기로 돕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긴 하지만.
“그자는 어디에 있나?”
“동료를 데리러 갔어요. 백단영이라던데.”
사마극은 백단영이라는 말에 내심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모용예가 백단영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 달라고 했던가.
백단영이 있는 용봉대는 지금 천애령 건너편에 있다. 천애령에는 절대마령이 대기하고 있고. 절대 천애령을 건너 이곳으로 올 수 없는 구조다.
“못 오겠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가 내뱉는 순간 뒤쪽에 한 인물이 나타났다.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을 한 그는 바로 신강혈검이었다. 놀랍게도 신강혈검의 허리춤에는 자신을 대변하는 붉은 검이 없었다.
“교, 교주님!”
신강혈검은 천애령을 지키는 부대의 우두머리다. 그런 자가 갑자기 왜 이곳에 나타났을까. 일말의 불안한 기분이 들었으나, 사마극은 가볍게 떨쳐버리고는 상대해주지 않았다.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한가하게 저따위 녀석에게 보고를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사마극은 다시 은옥상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심은 바로 깨졌다.
“용봉대가 건너왔습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을 흘러나왔다. 절대마령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무슨 말이냐?”
“무림맹 용봉대랍니다. 일남이녀였는데 그 무공이 실로 대단했습니다.”
“어떻게?”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저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재주가 있지 않다면 절대로 천애령을 건널 수 없을 테니까.
심각해진 사마극이 뒤로 돌았다. 그의 표정이 마치 악마처럼 잔인하게 변했다.
“교, 교주님? 크억!”
신강혈검이 자신의 목을 잡고 버둥거렸다. 사마극의 강력한 기운이 녀석의 목을 억누른 것이다.
“천애령을 지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면 죽어야지.”
잔인한 말을 내뱉은 사마극의 눈에서 살기가 감돌았다.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던 신강혈검이 입에 거품을 머금고는 쓰러졌다.
은옥상은 용봉대가 건너왔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무흔이 어떤 식으로든 절대마령을 해치웠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그녀가 가장 기다리던 희소식이었다. 절대마령만 없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으니까.
“곧 용봉대가 들이닥치겠군요.”
은옥상이 환하게 웃으며 사마극의 화를 긁었다.
“제길.”
사마극이 분노를 터트리며 그녀를 노려봤다.
용봉대 쯤이야 사실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마령의 행방은 무척이나 궁금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꼭 알아야 했다.
지금 바로 은옥상 측을 밀어버리고 싶지만……. 절대마령 덕분에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절대마령만 있다면 은옥상 정도는 언제든 처리할 수 있으니까.
“자중해라.”
사마극이 그녀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마교 내부의 일에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경고였다. 다시 은옥상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교주를 살해한 당신이 감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지금도 교주 자리를 놓고 싸움을 거는 자가 바로 당신이거늘.”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 한참 그녀를 노려보던 사마극이 이윽고 몸을 돌려 떠났다. 그의 뒤를 적월마왕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따라갔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는 신강혈마의 시신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천마산 중턱에 있는 동혈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무흔과 백단영, 남궁이화다.
그들은 곧바로 마교 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었으나,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천마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대낮부터 마교 중심부를 활보하기에는 그들이 아무리 고수라 해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마교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은옥상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해가 떨어진 후 본산으로 내려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한빙소가 자리한 동혈 입구에서 그들은 휴식을 취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무흔은 은옥상에게 천리전음을 보냈다. 천리전음이 실제로 된다는 점을 백단영에게 확인했으니 은옥상에게도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지금 그의 움직임을 그 누구보다도 기다리고 있을 은옥상이니까.
물론 은옥상이 알아들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한빙소 앞에 있고, 밤이 되면 움직일 거야.”
무흔은 입술을 움직이며 몇 차례 반복해서 같은 내용을 은옥상에게 보냈다.
운기하며 내공을 갈무리하던 백단영이 무흔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물었다.
“지금 뭐 해? 입술은 왜 움직여?”
“전음 보내는 거예요.”
“누구에게?”
멈칫하던 무흔이 대답했다.
“은옥상요.”
“아, 맞다. 너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알려줘.”
백단영은 정작 은옥상이란 대상을 흘려버리고 천리전음에 관심을 보였다.
“원래 전음이란 것이 타인이 듣지 못하게 한 사람에게만 집중에서 음파를 전달하는 것이잖아요?”
무흔이 설명을 시작하자 저쪽에 있던 남궁이화 또한 쪼르르 다가왔다. 그녀 또한 무공에 대단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니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다만 타인이 무공을 전수하는 장면을 함부로 볼 수 없어 머뭇거렸다.
“남궁 소저께서도 같이 들으세요.”
“은공! 감사해요!”
허락이 나자마자 남궁이화가 꾸벅 절을 하고는 무흔의 옆에 자리 잡았다.
“일반적인 전음과의 차이점은 음파가 퍼지지 않도록 더욱 좁혀서 멀리 보낸다는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간단한데 실제로는 차이가 좀 있어요. 저도 처음에 이 방법을 책에서 보았을 때는 구현하지 못했는데, 음공을 배우면서 제대로 숙달하게 되었죠.”
음공을 익히면 음파에 내력을 실을 수 있다. 전음에 내력을 실어 퍼지지 않도록 보내는 것이 바로 천리전음의 요체다. 무흔은 옥소마희에게 음공의 기본을 배운 후로 이를 응용해서 천리전음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천리전음이라 하여 실제로 천 리 떨어진 곳까지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림에서 신화처럼 떠도는 천리전음은 과장된 것일 뿐, 사실 일반 전음술과 큰 차이가 없다. 그 거리는 상대방이 보이는 백 장 정도의 거리가 한계다. 그런데 무흔은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
“천 리는 어렵더라도 백 리는 가능할 겁니다.”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제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어요.”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천리전음의 장점을 확실히 깨달았다. 실제로 지난밤에 천리전음을 이용해서 만날 수 있었으니 그녀들이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내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다면 어렵죠.”
전음도 제대로 펼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천리전음은 그보다 훨씬 심후한 내공이 있어야 펼칠 수 있다. 물론 백단영과 남궁이화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다.
천리전음을 배운 남궁이화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나, 장후성 소협에게 소식을 전해 볼래. 얼른 천애령을 넘어와서 마교를 공격하라고.”
아마도 그녀들이 갑자기 사라져서 용봉대에서는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 점이 신경 쓰였던 남궁이화는 재빨리 장후성에게 간략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장후성이 답을 하진 못할 테니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나중에 만나면 알게 될 일이다.
천리전음을 가르치고 난 후 건량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시간이 한참 남았다.
초조하게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 무공을 전수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무흔은 다른 무공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마교 내에서 틈이 나는 대로 새로 창안했던 무공이었다.
다른 무림인이라면 감히 생각지 못할 무공 전수를 전혀 거리낌 없이 무흔이 하는 이유는 그가 이곳 무림 세계로 넘어온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방파를 이루거나 계속 살아갈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백단영이 사마극을 죽일 때까지밖에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아낌없이 퍼주는 것이다. 무조건 백단영을 고수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 와중에 남궁이화가 배우는 것은 덤이다.
“예전에 검강을 위한 초식을 만들어보겠다고 한 것 있잖아.”
무흔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 무흔검법!”
백단영이 아는 척을 했다. 예전에 무흔이 천상문 열담에서 깨달았다며 새롭게 창안했던 검법이다. 그 이후 별로 사용하지 않던 것으로 봐서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던 듯하지만.
남궁이화 또한 바짝 옆에 붙어 호기심을 드러냈다.
“무흔검법을 가다듬다 보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어. 비천삼검과 무흔검법을 비교하고 거기에 천상비연검법의 오의를 합해보니…….”
뭔가 그럴듯한 결과가 나왔다는 말에 백단영은 더욱 관심을 보였다.
“검법의 끝을 어렴풋하게 느낀 것 같아. 흔히 만류귀종이라고…… 모든 것은 극에 이르면 한 곳으로 통한다던 그 막연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아.”
만류귀종(萬流歸宗). 불교에서 궁극의 경지를 이르는 용어가 아니던가.
긴 무림의 역사상에서 과연 몇이나 만류귀종의 경지에 이르렀을까. 비록 무흔은 모든 종류의 무공에서 그 끝을 본 것이 아니라 검법 한 분야에서일 뿐이라지만, 무공에서의 벽을 깨트렸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가 무공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 때는 바로 이곳 한빙소에서였다. 앞으로 무흔은 더욱 효율적으로 무공을 창안하거나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