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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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0화
210화. 천애령 (3)
사마극은 음천마령과 함께 본산의 천마궁에 도착했다.
애초에 자신의 전각으로 먼저 갈 예정이었으나, 모든 사태를 파악하려면 교주가 머무는 천마궁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전대 교주이던 혈천마종의 사망 이후 천마궁은 비어 있었다.
사마극은 도착하자마자 최측근을 불렀다. 그의 옆에는 함께 온 음천마령이 시퍼런 빛을 눈에서 빛내며 말없이 위압감을 자랑했다.
불과 차 한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초로에 접어든 거구의 노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농염한 미부였다.
서열 이 위인 적월마왕과 서열 구 위인 섭혼귀령.
혼천마도가 서열 일 위에 등극한 이후 계속 이인자 자리를 유지했던 적월마왕은 사마극 휘하에서 최강고수로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서열 일 위였던 혼천마도가 사라졌다면 사실상 최강의 자리에 등극해야 할 마두였다. 그는 핏빛의 적월도를 주로 사용하여 별호 또한 적월마왕이 됐다.
섭혼귀령은 섭혼술의 대가로 서역 배교에서 그 진전을 이어받은 특이한 여인이었다. 사이한 무공을 주로 사용했기에 마교 내에서도 배척되는 여인이었으나, 사마극을 지지하면서 그 지위를 유지해왔다.
“교주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적월마왕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마극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예의를 표했다. 바로 옆에서 섭혼귀령 역시 한껏 머리를 숙였다.
사마극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동안의 일을 보고해보라.”
적월마왕은 사마극이 없는 동안 외부로 나대지 않고 물밑에 잠수해있었다. 사마극이 없으면 혁무휘를 비롯한 강자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사마극의 전략 때문이었다. 적월마왕은 물밑에서 그 흐름을 파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은옥상 소교주가 오대호법을 제압하고 탈출한 것과 혁무휘 소교주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 사실상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적월마왕이 그간의 일을 짧게 보고했다.
전체 사건을 듣던 사마극이 인상을 찌푸렸다.
“은옥상은 오대호법을 제거할 실력이 안 될 텐데?”
“소신이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그날 옥소마희가 작전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옥소마희로도 힘들지.”
“귀령신이 함께 있었으니까요.”
“흐음, 귀령신이…….”
귀령신 이야기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사마극은 귀령신이 그에게서 은옥상으로 돌아섰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부터 믿을 생각이 없었다.
“귀령신이 배신할 이유가 없잖나?”
“한번 배신한 자는 또 배신하는 법입니다.”
사마극은 미간을 찌푸렸다.
적월마왕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혁무휘와 혼천마도를 제거할 능력을 지닌 최강의 인물. 은옥상과 접점이 있는 강자. 거기에 갑자기 마교로 진입해온 용봉대원.
“역시 예상대로였나.”
사마극이 떠올렸던 자는 무흔이었다. 처음에 마심노야에게서 보고를 받았을 때도 무흔을 의심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무흔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산동성에서 만났던 무흔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흔에 대해 새로 재정립했다. 오대호법을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고 혁무휘와 혼천마도까지 제거할 수 있는 무공. 적어도 자신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무공의 소유자라면 그 모든 것이 설명됐다. 거기에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역용술의 대가라면.
“그럼 상황이 만만찮군.”
사마극은 실마리가 풀리자 적의 세력을 다시 점검했다.
“은옥상 소교주라면 우리가 무조건 이깁니다.”
적월마왕이 아부 반 진담 반 선언했다.
사마극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옳다. 무흔이라는 괴물이 옆에 붙어 있지 않다면. 또 용봉대 정예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니, 용봉대는 절대마령이 막는 상황이니 변수에 넣을 필요가 없으려나.
“지금 은옥상 옆에 고수가 한 명 있어. 귀령신의 역할을 하고, 귀령신이 아니면서도 귀령신과 구분할 수 없으며, 그 능력은 귀령신보다 우위에 있는.”
“설마…….”
적월마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마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우위인가?”
“당연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객관적으로도 우세인 데다 그의 옆에는 절대무적인 음천마령까지 있다. 그렇더라도 하루빨리 제거하는 것이 좋다. 무림맹이 몰려오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으니까.
“자, 두 사람은 앞으로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제부터 은옥상 세력을 제거하기로 하지.”
사마극이 결심을 굳히고 일어섰다.
그는 자신이 손에 넣을 것을 다시 잃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예상보다 은옥상 세력이 강해졌지만 혁무휘와 갈무량을 제거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은옥상과 정면 승부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훨씬 이익이었다.
“명을 받듭니다.”
적월마왕과 섭혼귀령이 뒤를 따랐다.
섭혼귀령이 요사스러운 웃음을 내뱉으며 뒤에서 중얼거렸다.
“호호, 은옥상 소교주님이라면 제가 할 일은 별로 없겠네요. 차라리 멋진 혁무휘 소교주님이었다면 섭혼술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었을 텐데 말예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싸늘한 사마극의 음성이 섭혼귀령의 웃음을 잠재웠다.
***
천애령에서 마교 본산이 있는 천마산으로 향하면 협로가 끝나는 지점에 작은 가옥 서너 채가 밀집해 있었다.
이 가옥은 마교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천애령이 마교 본산으로 들어가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기에 이곳을 방어하고 있으면 외부에서의 침입은 어렵다.
물론 평소에는 순수한 경계병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지금은 약간 달라졌다. 사마극 휘하의 부하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마극이 절대마령으로 협로를 막고 있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무흔은 천애령으로 들어갈 때 이곳을 무흔천상보로 뚫었다. 적들은 무흔이 이곳을 지나가는지조차 몰랐다.
지금은…….
무흔은 백단영, 남궁이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가옥을 가리켰다.
“저기에 마교인들이 있어. 어떻게 할까?”
“없애야지.”
남궁이화가 곧바로 의욕을 불태우며 검을 어루만졌다.
무흔은 굳이 이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으나, 뒤따라올 용병대를 생각하면 없애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거기에 더해 절대마령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사마극에게 알려 그 반응을 보고 싶기도 했다. 여기 있는 녀석들 가운데 하나만 살려 보내면 되니.
역시나 그들이 가옥 부근에 접근했을 때 경계하던 한 녀석이 놀라서 검을 들고 튀어나왔다.
“누구냐?”
무흔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백단영 등과 눈빛을 교환했다.
녀석의 외침 소리를 들었는지 가옥 안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하나같이 눈빛이 흉흉했다.
“흐음, 제법인데.”
무흔은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평소와 달리 상대 대부분의 무위가 상당히 높았다. 대략 서열 오십 위권 정도의 인물들. 그런 자가 거의 스무 명 가까이 포진하고 있었으니 그대로 놓아두었다면 용봉대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이 뻔했다. 물론 장후성이 버티고 있으니 여기에서 막힐 일은 없었겠지만.
백단영과 남궁이화도 상대의 수준을 짐작한 듯 안면에 긴장한 빛이 피어올랐다. 물론 그녀들의 지금 수준을 생각하면 전혀 겁낼 필요가 없겠지만.
“누구냐?”
대장처럼 보이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이 검을 겨누고 앞으로 나왔다. 놀랍게도 녀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부분이 붉었다.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얼굴, 붉은 피부, 손에 쥔 검신까지 붉은빛을 띠었다.
“그러는 넌 누구지?”
무흔이 장난삼아 웃음을 머금고 되물었다.
붉은 머리 녀석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본좌는 신강혈검이라 한다. 검 하나로 신강을 제패했던 사람이 본좌다.”
“서열은?”
“서열 삼십구 위다. 넌 누구냐?”
신강혈검의 표정은 기세등등했다. 서열 삼십구 위라면 그럴만하다. 중원에 나가면 구파의 장문인이나 최강자 몇을 제외한다면 감히 맞설 자가 흔치 않을 테니까.
대충 눈치를 보니 신강혈마가 지금 이곳에 모인 자들 가운데 제일 서열이 높아 보였다.
무흔은 옆에 있는 백단영을 가리켰다.
“여기는 일후인 천향무후, 이쪽은 일봉인 창궁일봉. 그리고 나는…….”
무흔은 자신을 소개하기 앞서 뜸을 들였다. 천향무후는 백단영의 별호이고 창궁일봉은 남궁이화의 별호다. 물론 그녀들은 무림에서 무림삼화로 더 유명했지만.
문제는 무흔 자신에게는 아직 별호랄 게 없다. 막상 소개하려니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으음, 무림맹 용봉대군. 그래서 넌 누구냐?”
백단영과 남궁이화의 정체를 눈치챈 신강혈검이 무흔을 노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난 우리 아가씨 호위무사다. 천향무후의 호위무사!”
“큭!”
그의 대답이 우스웠던지 좌중에 한바탕 비웃음이 터졌다.
중원에서는 최근에 이름을 날린 천향무후란 별호가 그나마 유명해졌지만, 변방인 이곳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호위무사라니.
비웃음을 보내던 그들 가운데 갑자기 생각난 듯 한 녀석이 외쳤다.
“용봉대가 어떻게 여기까지? 절대마령이 막고 있었을 텐데?”
그제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스무 명이나 되는 자들이 모두가 검을 들고 세 사람을 포위했다.
절대마령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그들에게 무흔 일행의 출현은 놀라운 일이었다.
무흔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절대마령이 뭐라고. 내가 저 세상으로 보냈다.”
“설마?”
그제야 심각한 표정이 모두에게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믿는 표정은 아니었다.
무흔이 빈정거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잘 생각해봐라. 협로를 절대마령이 막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는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무흔의 말을 믿어야 하건만 마교인들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절대마령이 어떤 존재인지 아니까.
신강혈검이 붉은 검을 가볍게 휙휙 저으며 무흔에게 덤벼들었다.
“헛소리 말아라! 절대마령은 무적이다!”
날아오는 검격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무흔은 무흔천상보를 펼쳐 녀석의 일검을 피해냈다.
신강일검의 검이 큰 반원을 그리며 그를 스쳐 지나간 순간 묵천신검이 빛을 뿌렸다.
쨍!
붉은 검이 허공으로 튀며 검로를 잃었다. 단 일 초 만에 생각지도 않은 난관에 봉착한 신강혈검이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묵천신검이 녀석의 목을 향했다.
“허억!”
위기를 감지한 녀석의 신형이 뻣뻣하게 굳었다. 신강일검은 꼼짝하지 못하고 목에 겨누어진 검만을 바라봤다.
“검을 버려라!”
무흔의 호통에 신강혈검이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동료가 위기에 몰렸음을 감지한 주위 마교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격해왔다.
채챙-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그들을 맞섰다. 곧바로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사실 싸움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녀들이 날뛰는 순간마다 적들이 하나씩 픽픽 쓰러졌다.
무흔은 신강혈검을 겨누었던 묵천신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신강혈검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를 쳐다보기도 잠시.
무흔은 크게 두 팔로 원을 그렸다.
순간 마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검이 손에서 벗어나 하늘로 쭉 치솟았다.
“허억!”
검을 놓친 마교인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둥댔다.
마치 물속을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처럼 수십 자루의 검들이 꼬리를 물고 그들의 머리 위를 누볐다.
시위하듯 한차례 장내를 휘몰아친 검의 떼가 옆에 있는 암벽에 차례로 박혔다.
두두두둑-
“허억! 살(殺)!”
수십 자루의 검이 암벽에 박혀 새긴 글씨는 예술이었다. 마교인들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한바탕 검으로 이룬 장엄한 광경에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긴박한 순간에도 무흔의 장난기가 보여서다.
신강혈검이 놀라서 도망치자 나머지도 기겁해서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로 무흔이 사자후를 터트렸다.
“사마극 말고 은옥상에게 붙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