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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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04화
204화. 반란의 날 (2)
혁무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혈천마종이 갑자기 죽은 것도 사마극의 흉계란 사실이 빤히 보였다. 그날 이후 사마극이 어떻게 교를 장악해 들어가는지도.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천마광과 천마섬의 연공이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천마광 하나만 연성할 때는 절대 이를 수 없던 12성 단계가 천마섬을 덤으로 연성하면서부터 그 끝이 보였다.
그리고 최근에야 무공 연마를 끝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사마극이 대부분의 실권과 지지자를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귀령신이 사마극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뛰어들 수 없었다. 뼈아픈 순간이었다.
그 무렵 저절로 기회가 왔다. 공을 탐낸 사마극이 부하를 대거 이끌고 본산을 비운 것이다.
본산에 남은 사마극의 지지자는 많지 않았다. 만일 그가 본산을 장악한다면 그에게로 돌아설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혁무휘는 서열 일 위인 갈무량을 찾았다. 그리고 바람직한 답변을 얻어냈다. 그다음부터는 계획대로 움직였다.
첫 순위 제거 대상은 은옥상의 지지 세력. 그런데…….
“크억!”
혁무휘는 신음을 토한 다음 휘청거리면서 물러났다.
그의 앞에는 분노에 찬 은옥상이 있었다.
천마광과 천마섬을 완벽하게 연성하면서 이제는 적수가 없다고 자신 있게 외쳤었다. 사마극은 당연히 넘어섰고, 설사 전대 교주인 혈천마종이라 할지라도 이길지 모른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연마한 천마광과 천마섬으로도 은옥상을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과거 천마류를 익힌 은옥상은 이렇지 않았다. 그때의 은옥상이라면 그의 십초지적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은옥상의 신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어마어마한 압력과 함께 옆구리의 사혈을 공격해왔다.
혁무휘는 천마광을 이용해 상대의 공세를 무력화시키려 했다.
콰앙-
강한 반탄력에 균형을 잃고 주르륵 밀려난 혁무휘는 상대의 공력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은옥상의 내력이 언제 이렇게 강해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상 내력이 정점에 이르러 이제는 어떤 영약을 쓰더라도 쉽게 내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의 변신은 진정 놀라웠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비틀거리는 몸의 균형을 간신히 바로잡은 혁무휘가 은옥상을 노려보았다.
“천마합이란 무공을 익혔다니까.”
은옥상은 싸늘하게 내뱉으며 다시 내력을 끌어올렸다. 한빙소를 다녀온 뒤로 내력이 급증한 것을 느꼈지만, 이렇게 혁무휘를 압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어릴 적부터 무공에만 매달린 혁무휘의 실력은 사실상 사마극에 못지않았으니까.
혁무휘와 수십 초를 교환하며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혁무휘가 데려온 부하들이 개입하기 전에 빨리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제 슬슬 끝내볼까?”
은옥상은 혁무휘를 향해 양팔을 쭉 뻗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쌍장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천마합이 극성으로 운용된 공격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빛무리가 혁무휘의 전면을 뒤덮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에 혁무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 당할 수 없기에 그 역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반격을 개시했다.
다시 천마합과 천마섬이 허공에서 엉켰다. 눈을 멀게 하는 강렬한 빛무리가 두 사람을 삼킨 가운데 은옥상에게서 발해진 빛무리가 혁무휘의 심장을 관통했다. 천마합의 공능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혁무휘는 눈을 크게 뜬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둘째 소교주로서 차기 교주의 자리를 노리고 무공을 연성해왔던 그가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옆에서 관전하던 암영이군과 혈풍쌍검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승리를 확신한 은옥상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혁무휘는 사라졌다. 그대들은 누구를 따를 건가?”
암영이군 등은 망연자실한 상태에 사로잡혀 있다가 은옥상의 포효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 이게…… 사실인가…….”
여전히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들을 남혼북령을 비롯한 옥소마희가 포위했다.
은옥상은 들끓는 내력을 진정시키면서 혁무휘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혁무휘를 처리하느라 내공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약간의 내상 징후가 일었다. 하지만 하루 정도의 휴식이라면 충분히 해결될 문제이기에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혁무휘 쪽 부하들을 압박하려 할 때였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무리가 나타났다.
마치 인간이 아니듯 미끄러지며 다가온 사람이 은옥상을 향해 정중히 입을 열었다.
“은 소교주, 그 정도로 하시지요.”
갑자기 나타난 그는 일대종사의 위엄을 내뿜으며 은옥상을 노려봤다.
무려 십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한빙소에서 무흔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은옥상의 권유로 한빙소에 몸을 담그면서도 무흔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예상했었다. 오히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열담의 기운과 엉켜 손해 볼 수 있다는 생각마저 했었으니까. 실제로 내공 분야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한빙소에 몸을 담그고 귀혼마령대법을 펼치는 순간 상황이 변했다. 그의 몸이 미친 듯이 한빙소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랍게도 한빙소의 기운은 열담의 기운과 서로 반목하지 않고 서로 융합됐다. 서로 성질이 다름에도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무흔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열담에서 한차례 향상된 무흔의 내공이 이곳 한빙소에서 다시 한차례 폭증했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한빙소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그는 귀혼마령대법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열담에서 얻은 내공으로는 사실상 성질이 다른 귀혼마령대법을 펼치기 어려웠다. 저절로 연마한 5성이라는 수치는 단지 이론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한빙소의 기운을 받아들인 이후 제대로 된 귀혼마령대법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귀혼마령대법은 절대마령을 만들어 낸 핵심이다.
자연스럽게 무흔 역시 절대마령의 비밀을 꿰뚫어 보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가 절대마령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절대마령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마화령을 이용하여 절대마령의 혼에 낙인을 찍어야만 하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무흔은 열담과 한빙소의 기운을 완전히 융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끝나자 그의 내력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렇다고 하여 절대마령을 능히 상대할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내력은 지금까지 그 어떤 무림인도 닿지 않았던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내공에서만 혜택을 본 것은 아니었다. 한빙소에 몸을 담그고 있는 동안 그는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몇 가지 무공을 다시 검토해볼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마지막 일주천을 끝낸 무흔이 한빙소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상보다 꽤 시간이 흐른 듯했다.
그는 급히 옆에 개어둔 옷을 찾았다.
그는 재빨리 옷을 입으며 문득 백단영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설마 그를 찾아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지는 않겠지?
***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대호와 양이설을 데리고 협로를 되돌아갔다.
절대마령이 협로를 막고 있는 한 뚫을 방법이 없었기에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서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천애령의 중간에서 노숙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깨끗하게 포기하고 천애령 입구로 이동했다.
“어떻게 할 거야?”
남궁이화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남궁이화는 절대마령과의 전투에서 거의 내력을 소진했음에도 여전히 후퇴하는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모두 무흔을 염려한 탓이다.
백단영은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라 온화하게 대답했다.
“내일 다시 도전해야지. 지금 계속은 무리야.”
당연히 백단영은 이 시점에서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흔이 마교 본산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어떻게든 그곳에 갈 생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마극과 절대마령이 이곳에 있으니 정작 마교에 있을 무흔은 덜 위험하리란 점이었다.
힘을 얻은 듯 남궁이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내일은 반드시 길을 뚫어보자. 무흔을 구해야지!”
백단영은 의욕을 발산하는 남궁이화를 보며 격려해주었다. 오늘 소모한 내공을 다시 충전하고 밤새 절대마령을 깰 연구를 하다 보면 뭔가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그런 세세한 연구는 남궁이화가 아닌 그녀의 몫이긴 하지만.
협로를 따라 돌아가면서 겉으로는 의욕을 보였으나 백단영의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다.
천애령을 내려와 입구에 들어섰을 때 백단영은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새로운 인물을 만났다. 모두 두 사람이었다.
절대마령을 만나 한바탕 곤욕을 치렀기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처럼 내외상이 가득한 상황에서 적을 만나면 쉽지 않아지니까.
“백 소저?”
놀랍게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장후성과 현공임을 확인했다. 어두운 밤에 낯선 곳에서 지인을 만난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실감했다.
“장 소협?”
백단영을 확인한 장후성이 다급하게 뛰어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많이 했습니다.”
어색해진 백단영이 슬그머니 손을 뺐다. 옆에 있던 남궁이화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너희 둘이 사라진 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 마교로 갔음이 확실해지자 풍사검객께서 용봉대 전체 동원령을 내렸고.”
“근데 어째 너희 둘만?”
“전부 오고 있어. 우리가 선발대로 하루 먼저 온 것일 뿐.”
장후성이 대략적인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용봉대 본진이 이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하루는 더 있어야 했다. 장후성과 현공은 백단영이 염려되어 선발대로 떠나 다른 용봉대원보다 빨리 이곳에 도착했다.
그들이 며칠 더 먼저 떠났던 백단영과 이렇게 만난 이유는 백단영이 매화곡에 들렀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어떻게 된 겁니까?”
현공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어떻게 되긴, 보다시피 마교로 진격하다가 여기에서 막힌 거지.”
퉁명스러운 남궁이화의 대답에 장후성이 재차 물었다.
“마교는 왜?”
“그야 우리 백 소저께서 무흔을 찾아…….”
“무흔?”
“무흔이 매화곡의 은 소저와 마교로 들어갔나 보더라고.”
남궁이화가 적당히 말을 만들어 설명했다.
절대마령이라는 불가사의한 괴물이 앞에서 가로막고 있다는 말에 장후성과 현공의 안색 역시 어두워졌다.
한동안 떠들썩하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던 그들은 천애령 아래쪽 마을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늦은 밤이라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으나, 마침 빈 가옥 하나를 발견했다.
양이설과 대호까지 포함하여 모두 여섯 사람이 충분히 머무를 수 있는 장소였다.
백단영은 이곳까지 찾아온 동료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한편으로는 의문점도 없지 않았다.
그녀와 남궁이화 두 사람 때문에 자칫 마교와 전면전이 벌어질 선택을 지휘부에서 했다는 의문이었다. 한두 사람이 마교에 침입하는 것과 용봉대가 습격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다면 풍사검객은 지금이 승부수라고 판단했다는 건데…….’
물론 백단영은 최근에 급변한 강호 정세를 알지 못했다. 곤륜파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과 용봉대 뒤쪽에서 무림맹의 현무대, 주작대가 마교의 혈사대, 암사대와 대치 국면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지금 그녀는 마교에 있다고 예상되는 무흔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
문득 옆에서 잠자리를 만들고 있는 장후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장후성은 왜 먼저 이렇게 뛰어온 걸까.
그녀는 금방 생각을 멈추었다. 지금은 절대마령을 어떻게 뚫고 지나갈 것인지 그것만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