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9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99화
199화. 구출 작전 (3)
구진광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장후성을 바라봤다.
항상 믿음직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자신의 처지와 비교되어 짜증이 난 구진광은 괜히 땅을 발로 툭툭 찼다.
“고민 있어?”
마치 그의 내심을 읽은 것처럼 장후성이 물어 왔다.
고민은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곤륜이 곧 위기를 맞을 것이란 정보가 가장 큰 고민이다.
지금 용봉대는 사천으로 이동하고 있고 사천에는 곤륜이 있다. 무림맹의 정예인 용봉대가 곤륜으로 가 준다면 사문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하면 가능하긴 할 테지만 이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혼자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 곤륜으로 가야 하나? 그런 개죽음은 싫었다.
“내가 고민할 게 뭐 있나? 아, 있지. 요즘 검법 수련이 시원찮아서.”
구진광은 검을 손으로 쓱쓱 만지면서 대답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뚫리는 게 무공이더라. 앞을 막던 장벽이 무너지고 무공이 급증하지.”
최근에 사실상 정파 최고의 고수로 등극한 장후성이기에 꺼낼 수 있는 말이다. 구진광은 내심 툴툴댔다. 그건 장후성처럼 무림맹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놈이나 가능한 거라고.
“흐음, 그렇군. 그럼 넌 고민 없겠네.”
구진광은 겉으로는 친한 척 말을 받았다.
장후성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너도 고민 있어?”
“남궁이화와 백단영이 걱정되어서. 아무래도 그들이 마교를 목표로 움직이는 것 같거든. 그 둘이 왜 그러는지…… 하아!”
“제갈수에게 물어보지?”
“제갈수는 만박노사에게 언질을 받아서 뭔가 알고 있음이 분명한데 딱히 말해 주진 않더라고. 답답하게.”
장후성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예전이라면 장후성은 저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책략은 제갈수에게 맡겨 두고 몸과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행동했으니까. 구진광은 그 내심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너, 백단영을 좋아하는구나?”
구진광의 돌직구에 장후성의 안면이 뻣뻣하게 굳었다.
최근 들어 장후성의 이런 심정은 행동으로 자주 드러났다. 장후성에게는 이미 약혼녀인 모용예가 있어 모두가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장후성이 모용예와 백단영 사이를 오가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 오는 것이 여러 차례 목격되었으니까.
그런 백단영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장후성이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것이 당연했다.
당황한 장후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구진광이 달랬다.
“뭐, 어떠냐? 삼처사첩을 거느리는 게 영웅이라는데. 남자라면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 법이지.”
장후성을 스쳐 지나가며 구진광은 내심 투덜거렸다.
백단영이든 모용예든 남궁이화든 자신에게는 왜 기회가 오지 않는지 짜증이 났다. 심지어 백단영을 어떻게 해 보려고 수차례나 계략을 짰었건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녀가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운이 나쁜 건지.
그는 자신이 장후성 만큼만 대우받았어도 인생이 이렇게 꼬일 일이 없었다고 원망했다.
장후성 만큼 무공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여인들의 관심을 받았었다면 무림맹을 배신해서 마교의 앞잡이로 살아가지 않았으리라고 한탄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사마극에게 굴복하여 첩자가 된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날 지하미로 속에서 백단영을 겁탈하려던 그 자리에 사마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단영이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았거나, 백단영이 순순히 그를 따랐다면 사마극을 만날 일도 없지 않았을까.
구진광은 자신의 어긋나버린 인생이 모두 남 탓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
은옥상이 감금된 전각 앞에 두 사람이 등장했다.
귀령신과 옥소마희. 무려 서열 삼 위와 칠 위에 해당하는 초강고수다. 특히 옥소마희는 최근 실종되었다는 소문마저 돌았기에 타인의 눈을 끌 조합이었다.
마치 귀신처럼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트리며 온몸에서 귀기를 발산하는 귀령신의 위압감은 전각을 들어서면서부터 주위를 압도했다. 하얀 옷을 입은 옥소마희는 한 손에는 독문병기인 옥소를 들고 굳은 표정으로 귀령신을 따르고 있었다.
귀령신은 바로 무흔이 만변귀공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은옥상을 구하려는 작전이 난세마동의 방에서 열렸었다.
이 자리에서 무흔은 자신과 옥소마희 두 사람이 구출하겠다고 주장했다. 가장 확률이 높고 믿을 만한 방법은 무흔이 귀령신으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옥소마희에 남혼북령까지 대동하면 더 확실하겠지만, 자칫 상대의 의심을 살 우려가 있어 그들 둘만 이곳으로 오게 됐다.
무엇보다 사마극이 현재 이곳에 없다는 정보를 믿기로 했다.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온 복수의 정보에 따르면 사마극은 정예부대를 이끌고 곤륜파를 치러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것도 절대마령을 대동하고서. 이른바 절대마령의 첫 대외 출정인 셈이다.
‘사마극이 급했군.’
교주로 등극하기 위해 민심 수습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선 의미 있는 승리가 요구됐다. 무흔이 꿰뚫어 본 사마극의 속셈이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마교를 비운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귀령신으로 분한 무흔이 접근하자 전각을 지키던 무인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원래 귀령신의 성정이 이런 식이었기에 누구도 가로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각 내부 은옥상의 방 앞에 이르렀을 때야 앞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바로 오대 호법의 일인인 화마였다.
“멈추시오.”
무혼은 눈을 부라리며 상대를 압박했다. 오대 호법과 귀령신은 애초에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그들 사이에선 서열 또한 무의미했다. 오대 호법은 오로지 교주만을 따르는 자들이었으니까.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무흔에게 화마가 경고했다.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소. 사마극 교주의 명이오.”
“내가 사마극 교주의 명을 받고 왔거늘.”
무흔의 대답에 화마가 흠칫 놀랐다.
“난 누구든 통과시키라는 명을 받은 적이 없소.”
“그럼 확인해 보든가.”
오대 호법 또한 귀령신이 혁무휘에게서 사마극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듣긴 했다. 게다가 이자의 평소 성격이 대단히 거칠다는 것도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마극이 외부에 있어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사마극의 수족이라 할 마극삼비 또한 따라가고 없으니 확인 자체가 어렵다.
“특히 옥소마희는 절대 불가요.”
화마가 슬그머니 옥소마희를 걸고넘어졌다.
무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네, 남혼북령과 옥소마희를 사로잡아 은 소교주를 회유하라는 명령 듣지 못했나?”
벼락같은 호통에 화마가 움찔했다. 생각해 보니 한때 그런 계략이 논의된 적이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옆에 있는 옥소마희가 그런 용도였나?
화마가 눈동자를 굴려 옥소마희를 살폈다. 무덤덤한 표정의 옥소마희에게서는 아무것도 알아내기 어려웠다.
“오늘 옥소마희가 은 소교주의 회유를 시도할 걸세.”
귀령신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자 화마는 더 거절하기 힘들어졌다.
화마는 물러서며 대답했다.
“좋소. 하지만 독대는 불가요.”
믿을 수 없으니 감시자가 붙겠다는 말이었다.
듣는 둥 마는 둥 무흔은 귀기스러운 비웃음을 날리며 방문 앞에 섰다.
그와 옥소마희의 뒤로 네 사람이 추가로 나타났다. 숨어서 지켜보던 오대 호법이 모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크크, 오히려 숨어 있는 것보다 잘 됐어. 한 방에 쓸어버린다.’
무흔은 방문을 두드렸다.
내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방 창가에 놓인 의자에 은옥상이 앉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던 그녀는 갑자기 들어온 귀령신을 보고는 안면을 찡그렸다가 옥소마희를 보고는 반색했다.
하지만 곧 상황을 파악한 듯 다시금 안색이 어두워졌다. 옥소마희가 귀령신에게 잡혔다고 생각한 듯했다.
방 내부 창가에는 은옥상이, 중간에는 귀령신과 옥소마희가 그녀를 보고 서 있고 입구에는 오대 호법이 늘어선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현가빈이 먼저 머리를 숙였다. 은옥상은 귀령신과 그 뒤쪽에 위압적인 자세로 늘어선 오대 호법을 향해 살짝 적의를 드러냈다.
무흔은 은옥상을 향해 전음을 넣었다. 어차피 그의 얼굴을 지금 오대 호법이 볼 수 없으니.
[옥상, 나 무흔이야.]
은옥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귀령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 귀령신을 살피던 그녀의 적의가 조금 옅어졌다. 무흔이 만변귀공으로 변신할 줄 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바로 상황을 인지했다.
[대답은 하지 말고…… 몸은 정상이야?]
은옥상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대 호법이 바라보고 있기에 전음을 하더라도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면 위험하다.
[이들 다섯을 단번에 해치울 거야.]
은옥상의 표정에 불편함이 드러났다. 오대 호법의 무공이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아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현가빈이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이제 결심하실 때가 되셨어요. 여기 귀령신도 뜻을 바꾸셨잖아요. 오대 호법도 마찬가지고요.”
“크흠.”
오대 호법이란 말이 나오자 심기가 불편해진 듯 오대 호법이 헛기침했다.
현가빈이 한 발짝 앞으로 들어가며 계속 입을 열었다.
“난세마동과 남혼북령이 대기하고 있어요. 이제 소교주님만 결심해 주시면 됩니다.”
사실 현가빈이 전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은옥상이 똑똑하다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것이다.
현가빈이 앞으로 나서자 무흔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그는 두 여인끼리 의견을 나누는 게 유리하다는 듯 오대 호법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오대 호법이 옥소마희와 은옥상을 슬쩍 보며 실소를 지을 때였다.
무흔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더니 투명한 수강이 빛이 되어 횡으로 폭사했다.
번쩍!
“크윽!”
가장 가까이 있던 둘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수강에 가슴이 그어졌다.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피에 둘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오대 호법의 무공도 상당했지만, 작심하고 근거리에서 기습한 무흔의 수강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남은 오대 호법이 놀랄 틈도 없이 무흔은 나머지 호법을 향해 천강십이수를 펼치며 공격을 개시했다.
사전에 손발을 맞추었던 현가빈이 바로 몸을 날리며 호법을 향해 옥소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무흔은 화마를, 현가빈은 목마를 공격하는 상황이 됐다. 아무리 무흔이라지만 태세를 갖춘 오대 호법을 방금처럼 한방에 해치울 수는 없다.
자연스럽게 공방이 벌어지고 전투가 길어졌다. 물론 무흔과 옥소마희는 압도적인 우세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남은 유일한 호법인 토마가 눈을 번뜩였다.
귀령신과 옥소마희를 상대로 오대 호법이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 그는 이 싸움을 단숨에 끝낼 묘수를 떠올렸다. 바로 은옥상. 중독되어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은옥상을 잡아 위협하면 저들을 제압할 수 있다.
토마가 신형을 날려 은옥상 앞에 내려섰다.
“흐흐! 끝났다!”
토마가 은옥상의 팔을 잡고 귀령신 등을 향해 소리치려는 순간 은옥상이 손가락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푸욱-
그것으로 끝이었다.
은옥상이 내공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토마는 예기치 않은 역습에 눈을 부릅떴다. 이미 그의 말대로 상황은 끝나 있었다. 토마는 심장에 충격을 받아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뜻하지 않은 사태 전개에 화마와 목마의 손이 멈칫했다. 그 틈을 놓칠 무흔과 현가빈이 아니었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화마와 목마 또한 고통스러운 비명을 발하며 주저앉았다. 이미 그들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쳐다보던 화마와 목마는 결국 한 대씩 더 얻어맞고 생을 끝냈다.
“역시 예상대로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군.”
무흔이 반갑게 말하자 은옥상이 웃으며 그에게 몸을 던져왔다.
“누가 선물로 준 만독불침인데.”
무흔이 급하게 말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해.”
현가빈이 먼저 방을 빠져나가며 망을 봤고, 뒤를 이어 무흔과 은옥상이 이동했다.
전각을 벗어난 이후부터는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감금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아무도 은옥상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난세마동의 거처로 스며들었다. 이곳에서 향후 작전을 세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