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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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6화
186화. 황하사신 (1)
은옥상은 북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만겁무정이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만겁무정은 서열 이십 위에 속하는 고위 마두였다. 그는 혁무휘를 열렬히 지지했고, 최근에는 교주인 혈천마종 앞에서 사마극의 반대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사인은?”
“특별한 사인은 없었습니다. 최고위층에서는 그냥 돌연사로 덮을 모양입니다.”
북령의 목소리에 우려가 담겼다.
교주 혈천마종이 죽고 사마극이 실권을 잡은 이후, 마교 내부는 정중동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세 명의 소교주가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애초부터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던 사마극이 단연 앞서서 실권을 장악했다.
겉으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한 세력포섭이라고 일컬어졌으나, 그 실상은 조금 달랐다.
절대마령이라는 절대무력을 소유한 것부터 차이가 큰 데다 최근에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은 은옥상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오늘 죽었다고 전해진 서열 이십 위인 만겁무정은 혁무휘 소속이었다. 그것도 열렬한 지지자여서 사실상 회유가 되지 않는 그런 자였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시체로 발견됐다. 그녀는 그 원흉이 사마극이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중원으로 파견 나갔던 수라조옹 역시 죽음을 맞이했다고 알려졌다. 수라조옹을 죽인 자는 무극서생으로 알려졌지만, 그 실상은 다소 복잡했다.
수라조옹 역시 혁무휘의 지지자다. 사실상 경쟁자의 세력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수라조옹과 함께 갔던 귀수탈혼 역시 혁무휘의 지지자였는데, 현재 생사가 불분명했고 무사하다고 알려진 낙혼혈부는 사마극 쪽 인물이었다.
물론 사마극 휘하라서 살아온 것은 아니겠지만, 혁무휘나 그녀의 세력에 있는 사람들이 유달리 많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건 사마극 소교주님의 짓이 분명합니다. 상대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노골적인 공작이지요.”
북령의 단언에 은옥상 역시 동의했다.
“이대로 계속되면 점점 세력이 약화될 겁니다. 최근에 살해된 저희 쪽 사람도…….”
은옥상 쪽 지지자도 몇 사람이 사라졌다. 아직은 대부분 서열에서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오래지 않아 위 서열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녀의 아랫사람 가운데 지지를 바꾸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회유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뭔가 방법을 세워야 합니다.”
북령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뒤로 물러났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실권이 사마극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에 의해 마교 내부가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마극은 교주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이대로는 위험해.”
방법을 고민하던 은옥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 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다.
***
마교 서열 일 위인 혼천마도 갈무량.
마교 교주와 소교주를 비롯하여 원로 가신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마교의 일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 서열 일 위이기에 그 영향력은 예상보다 컸다.
그는 지금까지 소교주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고 교주 사망 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움직이면 마교 내 세력 분포가 확연하게 바뀔 것이 분명하기에 모두가 눈치 보는 자이기도 했다.
그 갈무량이 머무는 곳을 은옥상이 방문했다.
진한 남색 옷을 입은 중년인 갈무량은 평소처럼 운기조식을 하다가 눈을 떴다.
“은 소교주께서 어쩐 일이시오?”
“오랜만에 인사드리러 왔어요.”
은옥상과 갈무량의 친분은 깊진 않지만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어릴 적 은옥상이 갈무량에게 무공의 기초를 배웠기 때문이다.
“안색이 좋아지셨구려.”
당연히 일상적인 이야기다.
신변잡기로 말을 돌리던 은옥상은 자신을 유심히 살피는 갈무량의 시선에 막혀 곧바로 온 목적을 꺼냈다.
“혼천마도께선 언제까지 가만히 계실 건가요?”
이미 그녀의 질문을 예상했었던 듯 갈무량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소인은 계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즉, 누구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계속 물러나 계실 겁니까?”
“굳이 답을 원하신다면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폐관 수련 중에 교주 혈천마종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폐관 중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설사 아니었어도 저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단호한 갈무량의 답변에 은옥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의 갈무량의 처신으로 보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원인 모를 살해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것은 사마극 소교주의 은밀한 공작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정녕 마교를 어지럽히는 이런 행위를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갈무량이 사마극의 반대편에 서준다면 무게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갈무량은 무슨 생각인지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사마극 소교주의 공작인지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저도 예의 주시 중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어느 쪽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부터 일관적으로 모든 소교주에게 했던 말을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은옥상은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바뀐다면 그때 다시 회유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알았어요. 다만 다음에는 마교를 위해 행동해 주시면 좋겠어요.”
은옥상이 물러서자 갈무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갈무량의 음성이 들려왔다.
“만겁무정의 죽음 때문에 염려되어 오신 거죠?”
갑자기 만겁무정이 나오자 은옥상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갈무량의 얼굴이 보였다. 멈칫거리는 그녀를 향해 갈무량이 한마디 툭 던졌다.
“저도 눈과 귀가 있어 가끔 뜬금없는 소문을 듣습니다만…… 이번에는 귀령신 차례란 소문이 있습니다.”
“귀령신?”
은옥상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귀령신은 무려 서열 삼 위에 속한 엄청난 능력자다. 사마극이라도 쉽게 제거하기 어려운 자다.
“삼 일 후 자정 무렵, 사마극 소교주가 절대마령을 이끌고 움직일 거란 정보가 있습니다.”
놀라운 정보에 은옥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갈무량을 바라봤다.
갈무량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결 깊어진 그의 눈빛은 내심을 확인하기 어렵게 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마지막 말을 들은 은옥상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거처로 돌아가는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서열 삼 위의 귀령신은 세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그는 혁무휘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었다. 사마극이 함부로 혁무위에게 손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귀령신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
갈무량이 그녀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 주는 이유가 뭘까. 아무런 사심이 없어서? 그녀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잘 구경하라고?
어쨌든 귀령신 문제는 사마극과 혁무휘 사이의 권력 다툼이다. 또는 혁무휘를 향한 사마극의 선전포고라 할 수도 있고.
은옥상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용하기에 따라 뭔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그녀는 무흔의 부탁을 생각해 냈다.
“그렇다면…….”
***
천상문에서 볼일을 끝낸 무흔 일행은 다시 개봉으로 이동했다.
입춘이 지나 봄기운이 완연한 상황에서 마냥 무림맹 복귀를 미룰 수 없었다. 무당산 전투 이후 사마련과의 대립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 있지만, 날이 풀리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시작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더구나 마교에서 변고가 발생했음을 아는 무흔은 마교가 어떤 식으로 상황을 전개할지 궁금했다. 사마극이 예전처럼 사마련을 이용해서 무림맹을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마교 내부의 실권을 잡으려고 당분간 대외 움직임을 자제할 것인지.
그들은 개봉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객잔에 들렀다.
이 객잔은 예전에 동방상단과 함께 이동하며 들렀던 곳이라 무흔과 백단영은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과 달라진 곳이 없는 객잔의 외양을 무심코 돌아보며 객잔에 들어가려던 그들의 눈에 특이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음.”
백단영이 묵직한 신음을 터트리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 있던 무흔과 남궁이화도 마찬가지.
객잔 입구 한쪽에 커다란 수레가 놓여 있었는데 그 수레 위에는 굶은 쇠창살로 만든 감옥이 보였다.
죄수호송 중이려나.
감옥 내부에는 목에 칼까지 두른 죄수 한 명이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옷가지는 여기저기 찢어졌으며 한두 달은 씻지 않은 듯 꾀죄죄한 초로의 노인이었다. 거기에다 날씨마저 추웠으니 죄수의 고통이 오죽할까. 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백단영이 중얼거렸다.
“조금 심한 것 같지 않아?”
아무리 죄수라 해도 마치 가축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장면 때문일 것이다.
“그렇긴 하네요.”
무흔도 동조하며 수레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관찰했다. 건장한 장한 한 명이 죄인을 감시하고 있었다. 도신이 넓고 투박한 도를 사용하는 자였다.
마침 감옥 내에 있던 죄수가 무흔 일행을 봤다. 백단영과 남궁이화를 본 녀석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손으로 감옥 쇠창살을 탕탕 쳤다. 상당한 내공 고수인 듯 맨손임에도 쇳소리가 강하게 울렸다.
남궁이화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색마를 잡았나 본데?”
그녀의 일갈에 수레를 지키던 장한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하하,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자는 무림 공적입니다.”
장한이 호의를 보이며 그들에게 다가온 이유는 분명히 백단영과 남궁이화의 외모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누구죠?”
“황하색신이라는 자입니다. 황하사신의 첫째죠.”
황하사신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남궁이화와 백단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죄인을 자세히 살폈다. 반면 무흔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남궁이화가 재차 확인했다.
“황하색신이면…… 수십 명의 아녀자를 겁탈한 색마로 무림맹에서 현상금을 걸어 수배 중인 작자죠?”
“그렇습니다. 황하색신, 황하주신, 황하도신, 황하살신. 이렇게 넷이 의형제를 맺고 있죠. 넷의 무공이 고강해서 골치를 앓던 상황이었죠.”
무흔은 장한의 설명에 저 죄수가 누구인지 대충 감 잡았다.
“흠, 꽤 강한 작자인데 어떻게 잡았어요?”
“하하, 제가 누굽니까. 저희 하북삼절에 비하면 황하색신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아! 하북팽가의 유명인이셨군요.”
남궁이화가 반갑게 장한을 맞이했다.
우쭐해진 장한이 남궁이화에게 본인을 소개했다.
“소생은 하북팽가의 팽우문이라 합니다. 하북삼절의 막내지요.”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이화입니다.”
남궁이화가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같은 무림세가란 생각에 팽우문이 미소를 가득 지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 일봉 남궁이화 낭자이셨군요. 위명 많이 들었습니다.”
하북팽가의 자랑인 하북삼절은 모두 나이 서른 정도의 청년으로 최근 십여 년간 무림에서 협명을 떨치는 중견고수였다. 현재 하북팽가에서 가장 활발하게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합격술은 일파의 장문인도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그들의 나이가 조금만 어렸다면 용봉대원으로 활약했을 것이다. 그들은 현재 용봉대원으로 활약 중인 팽수아의 사형이기도 했다.
“옆에 계신 분은?”
팽우문의 시선이 백단영에게 옮겨졌다.
“백단영이에요.”
간단하게 이름만 밝힌 백단영에게 팽우문의 찬사가 쏟아졌다.
“아! 최근에 신성처럼 나타난 천향무후이시군요. 오늘 대단한 분을 뵙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차례는 무흔이 됐다.
남궁이화가 막 소개하려는 찰나 무흔이 냉큼 본인을 소개했다.
“전 백단영 아가씨의 호위무사입니다.”
팽우문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어렸으나 금방 사라졌다.
어차피 무흔은 하북삼절과 어울릴 생각이 없었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쿵- 쿵-
그때 옆에서 황하색신이 창살을 두들기며 난리를 폈다.
팽우문이 검집으로 황하색신을 쿡 찌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놈이 예쁜 여인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래서 지금도 난리네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식사하려고 오신 거죠?”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수 안으로 안내했다.
“저희 형님께서도 드시고 계십니다. 저는 저놈을 지키느라 나중에 먹을 생각이고요. 괜찮으시다면 합석하시지요.”
객잔 안에는 팽우문과 닮은 두 남자가 밥을 먹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흔 일행은 그들과 합석해서 인사를 나누었다. 두 남자는 하북삼절의 첫째와 둘째로 각각 팽덕문과 팽소문이라 했다. 팽덕문과 팽소문은 팽수아의 오빠로 직계 쪽이었고, 막내인 팽우문은 방계였다.
식사 도중에 황하색신의 처리에 관한 문제가 나왔다.
무림맹으로 호송 중인 황하색신을 구하려는 남은 세 황하사신의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