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1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1화
181화. 발각된 정체 (1)
백사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백단영을 발견했을 때, 무흔은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그녀가 무사했다니! 벅찬 감동이 순식간에 긴장감을 누그러트렸다.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백사장에서 막 물로 뛰어드는 놈이 보였다. 백단영을 죽이려던 자가 저놈일 것이다.
역시 백단영이 놈을 가리키며 일갈했다.
“잡아요!”
순간 남해수신의 신형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수공을 익힌 놈이 확실했다.
물 위를 비상하며 달려오던 무흔의 몸 역시 갑자기 물속으로 처박혔다. 녀석을 잡으려면 물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니까.
무흔은 최근에 수공을 익힌 적이 있다. 만박노사의 방에서 가져온 비급 가운데 수공이 있지 않았던가. 물론 그의 숙련도는 5성에 불과했다.
사실 수공은 매우 단순한 무공이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물속에서의 호흡법이다. 나머지는 물속에서 동작을 더 원활하게 하는 정도다.
무흔이 쫓아오는 것을 안 남해수신은 물속 깊이 들어갔다. 그를 따돌리기 위한 술책이다.
무흔은 겁내지 않았다.
‘수공에는 수공이지.’
한참 물 밑으로 내려가던 남해수신이 몸을 틀고 그를 노려봤다. 물속에서는 이긴다는 자신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남해수신이 먼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속이라 특별한 공격이 있을 리 없다. 단지 그보다 조금 더 빠를 뿐이다.
무흔은 날카롭게 들어오는 상대의 공세를 몸을 움직여 가볍게 흘리고는 한차례 손을 휘저었다. 남해수신의 주위로 물이 요동치며 소용돌이가 강하게 일어났다.
“헉!”
남해수신이 깜짝 놀라 발버둥을 쳤으나 주위에서 밀려든 소용돌이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무흔이 휘젓던 손을 위로 쳐들자 남해수신의 몸이 마치 잡힌 물고기처럼 떠올랐다.
수공이든 무엇이든 대항해 봐야 엄청난 내공을 이용해서 무식하게 처리하면 방법이 없다. 남해수신은 제대로 손을 써 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수공의 문제가 아니라 압도적인 내력 차이였으니까.
휘리릭-
쿠당!
물과 범벅이 된 채 허공으로 솟구친 남해수신은 그대로 백사장에 내팽개쳐졌다.
“크윽!”
모래에 안면을 처박히는 굴욕을 당한 남해수신은 상대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의 허탈한 비명은 이어지지 못했다. 눈앞에 살기를 풀풀 날리는 백단영이 둥장했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백사장으로 강제로 끌어올려져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백단영이 달려들었다.
푹!
그녀의 움직임은 간결했다. 하얀 수강이 이번에는 정확히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가슴이 뻥 뚫린 남해수신의 입에서 물거품과 피가 동시에 쏟아졌다.
“크으으윽!”
허공을 향해 절망적으로 손을 휘젓던 남해수신이 점차 움직임을 멈추었다. 모래사장에 시뻘건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백단영은 자신의 손을 힐끔 바라보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힘들었건만 적을 죽이고 나면 공허감이 밀려온다.
잠시 남해수신의 시신을 쳐다보던 그녀는 다가오는 인기척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무극서생으로 변장한 무흔이 그녀의 인사를 기분 좋게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백사도에 있습니다.”
무흔은 간략히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백단영은 멀리 상류 쪽에 보이는 백사도를 바라봤다. 주위에 배가 없으니 동료들을 도우러 가고 싶어도 갈 방법이 없었다.
“당장은 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네요.”
고개를 젓는 그녀를 보며 무흔 또한 골치 아픈 생각에 빠졌다. 그녀를 내버려 두고 가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녀 옆에 계속 있자니 정체가 발각될 것 같아 두려웠다.
포기한 백단영이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항상 죽립을 쓰고 다니죠?”
“습관이오.”
무흔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잠시 얼굴을 보여 주실 수 있나요?”
그녀의 요구에 무흔이 멈칫했다.
실수했다고 생각한 그녀가 이내 말을 덧붙였다.
“어려우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머뭇거리던 무흔이 죽립을 벗었다. 어차피 변신한 모습이라 얼굴을 본다고 하여 그녀가 알아챌 리 만무했다.
무극서생의 중후한 얼굴이 드러났다. 사십 대 중반의 다소 마른, 강직한 얼굴이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던 듯 백단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멀리 백사도를 바라보면서 백단영은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서 있었다.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던 백단영은 옆의 무극서생을 의식하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무극서생 역시 백사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무극서생의 옆모습을 훑어 내리던 그녀의 눈에 무극서생이 차고 있는 검이 들어왔다. 평범한 검이었지만 어째 익숙했다.
‘무흔의 검이랑 똑같네.’
무심코 무흔을 떠올린 그녀의 눈이 검병에 매달린 수실에 고정됐다.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병에 매달린 청색 수실은 분명히 그녀가 무흔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것도 그녀의 검에 매달았던 수실과 한 쌍으로 마련했던.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다시 무극서생의 얼굴을 바라봤다. 낯선 중년인의 얼굴이었으나 그 기질만은 놀랍게도 익숙했다.
그리고 떠오른 무극서생의 무공, 이미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던 그의 무공은 신기하게도 무흔과 유사했다. 이런저런 정황은 모두 무극서생과 무흔이 동일인이란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옆에 앉으실래요?”
그녀의 요구에 머뭇거리던 무흔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에 앉았다. 백사도를 향해 나란히 모래사장에 앉은 연인이 그려졌다.
백단영과 나란히 앉으니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재빨리 가슴을 억누르며 무흔은 멀리 시선을 고정하고 잡념을 지웠다.
퍽!
그때 갑자기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왔다.
놀란 무흔이 옆에 앉은 백단영을 돌아봤다.
“야! 무흔! 너 자꾸 나를 놀릴래?”
무흔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이 여자가 어떻게 알았지?
“네놈이 뛰어야 벼룩이지. 변장해 봐야 내 눈에는 어림도 없어.”
백단영이 씩씩대며 다시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이씨, 왜 때려요?”
망한 건가? 무흔은 눈을 부라리며 항의했다. 영락없는 무흔의 버릇이다.
“너 운경각에서 역용에 관한 비급을 익혔구나? 맞지?”
계속 주먹을 날리며 정확하게 추측하는 그녀의 다그침에 어쩔 수 없이 무흔이 실토했다.
“저…… 무흔 맞는데요. 아아, 고만 때려요.”
무흔이 그녀의 손을 피하며 투덜댔다.
“으아아, 진짜 무흔이었네!”
백단영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옆에서 끌어안았다.
언젠가는 들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발각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무흔은 한숨만 내쉬었다.
백단영이 그의 머리를 마구 헝클리며 정겨움을 표현했다.
“으아, 아가씨, 머리 다 헝클어져요.”
“머리가 어때서?”
무흔이 씩씩댔으나 그녀의 흥분을 말릴 수 없었다.
“에이, 무극서생 꼴을 이렇게 만들면 어떡해요? 중후한 분위기가 완전히 망가져서…….”
“중후? 너 그렇게 해서 잘도 남궁 소저를 속였더라?”
“속이긴요. 다만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니까…….”
무흔의 하소연은 바로 무시당했고, 그의 행동은 오히려 매를 벌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백사도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걱정되네.”
“저도요.”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뒷마무리를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마교의 강자다.
백단영이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며 말했다.
“무흔, 우리도 가보자.”
“어떻게요?”
“방금 네가 여기로 올 때 펼친 무공 있잖아? 그거 나도 가르쳐 줘.”
“초상비요?”
무흔이 눈을 껌벅거리며 물었다.
“아, 그 무공 이름이 초상비였어? 그래 그거.”
“정확하게는 초상비(草上飛)가 아니고 수상비(水上飛)요.”
“그래, 수상비. 그거 알려 줘.”
무흔은 구결과 운기법에 기본적인 보법을 알려 주었다.
확실히 백단영의 무재는 뛰어났다. 몇 차례 연습하던 그녀는 금방 수상비를 익숙하게 전개했다.
“잘 하시네요. 그 상태에서 나는 깃털이라고 생각하고 펼치면…….”
“깃털? 난 깃털보다 몸통이 좋은데?”
“어휴, 그냥 몸이 가볍다는 이야기라니까요.”
“나도 알아.”
둘이서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상비 전수를 끝냈다.
이제는 실전 시간. 두 사람은 강물을 앞에 뒀다.
먼저 무흔이 시범을 보였다.
“자, 이렇게…….”
무흔은 완벽한 수상비를 가볍게 선보였다. 그의 발이 물 위를 둥둥 떠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의 시범을 보던 백단영은 용기를 냈다.
“좋아.”
주먹을 불끈 쥔 그녀는 기합과 함께 강으로 뛰어들었다.
“커윽!”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백단영이 물에 잠겼다. 잠시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그녀는 물을 잔뜩 먹은 채 허우적거리며 물 밖으로 나왔다.
“으…… 이게 뭐야?”
백단영이 도끼눈을 뜨고 무흔을 노려보았다.
“아, 그게 아니고요…….”
다시 설명해 주려고 그녀의 앞에 선 무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껏 말랐던 그녀의 옷이 다시 물에 젖으면서 피부에 착 달라붙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비쳤다. 더구나 햇살마저 심술궂게 그녀의 하얀 옷을 투명하게 만들었기에 그녀의 모습은 더 자극적이었다.
무흔이 당황해서 입을 다물자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을 눈치챈 백단영이 황급히 손으로 몸을 가리며 그를 노려봤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능청스러운 무흔의 말에 백단영이 무흔을 뒤통수를 세게 두들겼다.
“자, 잡생각은 그만두고요, 제 손을 잡아보세요.”
무흔은 백단영의 한 손을 잡은 다음 수상비를 시전하며 강으로 뛰어들었다. 백단영도 그를 따라 수상비를 펼쳤다.
무흔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문제없이 미끄러지듯 강물 위를 달릴 수 있었다.
“우와아! 된다!”
백단영이 환호성을 지르며 신이 나서 외쳤다.
다행히 주위에 배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혼비백산했을 것이다.
손을 잡고 신나게 질주하던 백단영이 외쳤다.
“무흔! 이제 나 혼자서 해 볼게.”
무흔은 백단영의 손을 놓아주었다.
“우와아…….”
소리를 지르던 백단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무흔은 의아함을 느끼고 뒤를 쳐다봤다. 그녀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커윽!”
비명과 함께 백단영의 얼굴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손을 놓자마자 바로 물에 빠진 것이다.
무흔은 재빨리 그녀를 건져 올렸다.
“너! 일부러 손 놓았지?”
“설마요.”
“나한테 억하심정 많잖아?”
“그럴 리가요.”
기어이 끌어당기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무흔 또한 강물에 빠졌다.
“자, 다시 해요. 이제 손 놓지 말고!”
무흔은 그녀를 이끌며 발을 박찼다. 두 사람의 신형이 허공으로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다시 펼쳐지는 수상비는 전보다 안정감을 자랑했다.
양팔을 펼치고 한 손을 잡은 채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물 위를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