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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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69화
169화. 절대마령 (1)
매화곡에서 만난 은옥상은 과거와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자의궁장의 강렬한 빛깔이 예전처럼 그의 눈을 반겼다.
교주 자리를 놓쳐서 침울해할 것으로 생각했던 무흔으로서는 다소 뜻밖이었다.
“처음부터 기대가 크지 않았으니 심리적 타격은 덜해. 다만 아무리 강자를 선호하는 교의 분위기 탓이라지만, 교주를 죽인 사람을 차기 교주로 추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은옥상이 덤덤하게 말했다.
“사마극이 교주를 살해한 것이 확실해?”
“아니, 공식적으로는 절대마령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졌어.”
무흔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혈천마종 역시 절대마령을 제어할 수 있었으니까.
“그 부분을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긴 하지만 증거가 너무 명확해. 절대마령의 손이 교주의 상체를 꿰뚫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교주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혈천마종을 조종해보려다가 화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어.”
“흐음.”
“거기에다 마침 사마극이 절대마령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보고를 했다는 증언도 있어서…….”
절대마령에 관해 익숙하지 않은 점을 이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럼 공식적으로 사마극이 교주 자리에 오른 건가?”
“아직은 아니지. 교주가 죽은 지 며칠 지났다고.”
현재 마교의 교주 자리는 공석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첫째 소교주인 사마극이 뒤를 이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사마극에 반기를 드는 자들도 사라졌다. 이전보다 사마극의 세력은 더욱 커졌다.
무흔은 은옥상을 위로했다.
“힘들겠군.”
“꼭 그렇지는 않아.”
의외로 은옥상은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은옥상은 사마극이 어떤 식으로든 중원을 침공할 것으로 봤다. 얼마 전 흑살대와 적살대가 타격을 입은 전공으로는 명예로운 교주 등극이 어려우니까.
“전공을 세운 후 모두의 추대를 받아 교주 자리에 오르겠지.”
“교주가 되면 넌 어떻게 되지?”
무흔은 고대왕조에서 벌어졌던 황자의 난을 떠올렸다.
잠재적으로 황제의 위에 오를 수 있는 위험인물은 확실하게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소교주인 혁무휘와 은옥상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난…… 둘 중 하나일 거야. 사마극과 결혼하거나 아니면 제거당하거나.”
마치 본인의 일이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내뱉는 은옥상을 보며 무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혁무휘보다는 유리해.”
혁무휘는 사마극이 교주 자리에 오르는 순간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비록 사마극이 직접 처리하지 않겠지만, 중원으로 원정을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을 쓸 확률이 높다.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은옥상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몇 번 얼굴을 봤던 때문일까. 무흔은 문득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천하의 마교 소교주를 측은하게 여기는 자가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냐만.
은옥상이 그를 부른 이유가 분명해졌다.
사마극의 절대 무공인 천마패를 파훼할 방법을 찾으란 것이다.
“내가 익힌 천마류로는 천마패에 간신히 대항하지만 능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은옥상의 판단은 정확했다.
무흔은 이미 사마극의 천마패를 깨기 위해 자신의 천마류로 목숨을 걸고 대결해봤었다. 천마류의 숙련도 또한 극에 이른 12성이었다.
비록 그 당시 내력이 거의 바닥나서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설사 완벽한 몸 상태였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한번 시도해주었으면 해.”
은옥상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부탁했다.
그녀의 부탁 때문이 아니라 백단영을 살리기 위해서도 천마패의 파훼 방법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럼 마교 서고에 다시 들어갈 수 있어?”
“그래야지.”
“이번에도 사마극으로 분장해야 하나?”
은옥상이 고개를 저었다.
“사마극은 이제 교주 신분이라 위험해. 사마극 주위에는 마극삼비 외에 혈천마종을 호위하던 다섯 호법마저 붙어 있으니까.”
산 넘어 산이었다.
“그럼?”
“혁무휘.”
다행히 그는 혁무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렇기에 만변귀공을 이용해서 혁무휘로 분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녀의 생각이 타당하다고 본 무흔은 서둘렀다.
“그럼 얼른 마교로 이동하도록 하지.”
“알았어. 아참!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나와 혁무휘는 사이가 좋지 않아. 거의 서로 얼굴마저 마주치지 않으니까.”
지난번에 서고에 들어갈 때 그는 은옥상과 함께 들어갔었다. 이번에 혁무휘로 변신하게 되면 은옥상과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혼자 서고를 누비는 것이 월등히 편하다.
“상관없어. 혼자 들어가도 되니까.”
“그건 내가 불안해. 네가 아직 마교 지리나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자칫 실수할 우려가 있으니까.”
은옥상의 걱정이 현실적이라 무흔은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교내에서는 옥소마희와 함께 움직여줘.”
옥소마희는 지난번에 왔을 때 무흔이 거두었던 부하다.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 무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흔은 무극서생으로 변신하여 천마산에 세워진 마교 본산으로 이동했다.
여행 내내 은옥상이 옆에서 함께 했고, 두 사람은 강호 정세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통해 무흔은 마교의 실정과 핵심 무공에 대한 기초 지식을 넓혔다.
본산에 도착해서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무흔의 앞에 옥소마희 현가빈이 나타났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현가빈은 그를 향해 예전처럼 주군으로 섬기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인사에 답례를 보내면서 무흔은 내심 만족했다. 솔직히 그녀의 무공은 자신과 대등하기에 설사 그녀가 반항하더라도 어떻게 응징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를 따르는 것을 보면 그녀도 참 특이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은옥상에게 보고를 받았던 듯 현가빈이 바로 질문했다.
“서고에는 언제 가시겠습니까?”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무흔은 가져온 짐만 내려놓고 바로 떠났다. 그는 뒤에 남은 은옥상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무혼은 걸어가면서 옥소마희의 푸른 옥소를 보고는 문득 죽서루의 청아가 떠올랐다.
청아가 칠현금을 연주한 반면 옥소마희는 푸른 옥소를 들고 있었다.
비록 살인 병기인 옥소이지만 옥소 또한 악기이기에 옥소마희 또한 음악에 조예가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흔은 언젠가 옥소마희에게 음공이 아닌 연주를 시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천마궁으로 들어간 무흔은 이 층 복도를 지나 서고로 이동했다.
“사마극은 어디에 있지?”
“알려진 바로는 외부로 잠시 출타 중이라 합니다.”
“혁무휘는?”
“둘째 소교주님은 최근에 전각에서 두문불출이십니다.”
사마극이 실권을 잡은 후 혁무휘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예전부터 혁무휘는 무공을 익히느라 대외적으로 얼굴을 거의 내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뜻이다.
혁무휘의 소재 파악은 매우 중요했다. 그가 바로 혁무휘로 분장할 것이므로.
서고 앞에서 무흔은 예전처럼 옆에 난 작은 석실로 들어갔다.
옥소마희가 그에게 혁무휘의 복장을 넘겼다.
그녀가 뒤돌아서 있는 동안 무흔은 옷을 갈아입고 혁무휘로 변신했다.
“어떤가?”
옥소마희가 찬찬히 모습을 살폈다.
“감쪽같습니다. 다만 기질에서 차이가 조금 있네요.”
혁무휘는 무흔보다 훨씬 패도적이다. 부드러운 느낌의 무흔과는 차이가 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으니. 그럼 난 들어가 보마.”
무흔은 옥소마희를 돌려보내고 서고로 들어갔다.
서고 관리인으로 보이는 백발노인이 그에게 인사했다. 예전에도 봤던 사람이다.
무흔은 가볍게 고개만 까딱거리고는 서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서고 안쪽 커다란 벽 아래 설치된 작은 문 앞에서 무흔은 손바닥을 문에 댔다. 은옥상이 알려준 대로 천마류를 운기하자 문의 한 부분이 파랗게 물들었다.
이 문을 여는 방법은 한 자로 이름 붙여진 마교의 무공을 운기하는 것이다. 한 자로 된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자는 교주와 이에 준하는 사람밖에 없기에 자연스럽게 이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특정될 수밖에 없다.
무흔은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확실히 와 봤던 곳이라 익숙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서고는 매우 반가웠다.
“하아, 역시 끝내주는군.”
그동안 무공 연구가 거듭되면서 마공에 대한 갈증이 꽤 컸음을 이 순간 느끼고 있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은 것처럼 무흔은 입맛을 다시며 비급을 훑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마환영비. 바로 북령이나 마극삼비가 자랑하는 환상적인 보법의 근간을 이루는 무공이다. 마교 내에서도 마마환영비를 익힌 자는 교주 일가와 그 호법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마마환영비의 뛰어남을 잘 알기에 무흔은 고민하지 않고 비급을 뽑아 들었다.
“대단하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면서 무흔은 순식간에 마마환영비의 정수를 깨우쳤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흔천상보의 약점을 확인했고 발전 방향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주어지면 그는 대폭 수정된 무흔천상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 무흔의 시선은 한 글자짜리 비급이 모인 곳으로 옮겨갔다. 지난번에 다 읽었던 것들이니 지금 다시 읽을 필요는 없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그 비급 주변에 꽂힌 다른 비급들이었다. 사마극이나 혁무휘가 무공을 하나만 익혔을 리는 없다. 그들이 익힌 상당수 무공이 이 주변에 꽂혀 있으리라 예상되기에 그는 시간을 투자해서 비급을 섭렵했다.
십여 권을 섭렵하는 와중에 그의 눈에 띈 두툼한 서적 하나가 있었다.
마중마공(魔中魔功).
비급을 손에 들고 무심코 한 장을 넘겼던 무흔은 미간을 모았다. 대충 보니 십여 개의 특이한 마공을 모아놓은 비급이었는데 그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 줄 읽는 순간 절로 머리가 찌근거리며 아파 왔다.
“하아,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뭔가 특별한 무공인 것 같긴 했으나 그렇다고 마공의 주류는 아니었다. 창안한 자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다. 마교의 교주였던 자도 있었고 아닌 자도 있었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책을 덮으려던 무흔의 눈에 절대마령이란 글자가 쓱 들어왔다.
“응? 이게 뭐지?”
그가 펼친 부분에 적힌 무공은 귀혼마령대법. 절대마령을 만들고 깨우며 제어하는 무공이었다.
마침 절대마령 문제를 염려하던 무흔이기에 이 무공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무흔은 탁자에 앉아 비급 마중마공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비급을 쓴 자를 패고 싶을 정도로 난해하고 서술도 제멋대로였으나 어쩔 수 있나. 무흔은 끈기 있게 책장을 넘겼다.
밤이 이슥해서야 그는 비급 정독을 끝냈다.
무흔은 다음에 다시 들리지 않아도 되도록 급한 비급을 모두 읽은 후에야 서고를 나섰다.
서고 밖에서 옥소마희가 늦은 밤임에도 그를 맞이했다.
“어, 아직 기다리고 있었네?”
“언제 나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가득했다. 예전에 옥소마희를 만났던 날에도 야밤이었으니 특별히 어색하진 않았다.
무흔은 자신의 뒤를 조용히 따라오는 옥소마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옥소마희가 안면을 붉히며 물었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무흔은 그녀에게 손짓해서 가까이 오게 했다. 멈칫하는 그녀의 귀에 대고 무흔이 속삭였다.
“절대마령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교주께서 승하하셨을 때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지금은 동혈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 한번 가봤으면 해.”
무흔의 요구에 옥소마희가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