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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16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68화

168화. 죽서루 (5)

 

 

 

죽서루를 나온 백단영은 호반을 따라 걸었다.

기루를 인수하겠다는 무흔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자신이 간섭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는 기분이 들어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백단영이 생각에 잠겨 걸어가고 있을 때 앞쪽에서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낭인 하나가 나타났다. 호반에 늘어진 풀숲에서 교묘하게 몸을 반쯤 가린 채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묘한 기시감이랄까. 백단영은 걸음을 멈추고 상대를 기다렸다.

상대가 가까워지자 어깨에 멘 검병이 눈에 들어왔다. 닳고 닳은 검병이 꽤 오랫동안 검법을 연마한 녀석이란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에게서 풍겨오는 느낌이 보통의 무인과는 달랐다.

멈추어 선 그녀를 예리한 눈길로 훑으며 스쳐 지나가던 낭인이 갑자기 검을 꺼냈다.

휙-

순식간에 그녀의 어깨로 검격이 날아왔다.

상대의 공격은 제법이었으나, 이런 정도에 당할 백단영이 아니었다. 그녀는 번개처럼 검을 뽑으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긴 머리카락 일부가 날카로운 검에 잘려나가 허공에 뿌려졌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낭인의 한쪽 눈에 아쉬움이 스쳤다.

백단영은 검을 들고 상대를 겨눴다.

“누구냐?”

비릿한 미소를 띠며 낭인이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그 순간.

작은 우모침이 백단영의 뒤에서 쏘아졌다. 앞에서 검을 든 낭인만 견제하던 백단영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기습이었다.

우모침이 목덜미에 두두둑 꽂히면서 백단영은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안면이 일그러지는 순간 앞에 선 낭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흐흐흐, 네년이 맞은 침에는 강력한 마비산이 발라져 있다. 앞으로 열을 세기 전에 움직이기 힘들걸?”

백단영이 놀란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는 순간 뒤쪽에서 낭인 둘이 작은 침통을 품에 집어넣으며 등장했다.

“흐흐, 대성공이야!”

순식간에 낭인 셋이 백단영을 둘러쌌다.

호반이라 주위에 다른 사람도 없는 데다 주변에 잡풀이 우거져 적절하게 그들을 가려주었다.

백단영은 나타난 낭인을 훑어보며 그 정체를 대충 짐작했다.

암영삼살.

하남 지역 최고의 살수로 이름이 높은 자들이었다.

주로 최고고수의 살해 청부를 받아온 그들은 청부금액이 어마어마한 만큼 실패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몸이 마비된 듯 백단영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둘러쌌던 암영삼살이 그녀를 붙잡으며 서로에게 눈치를 보냈다.

“죽이진 말라고 했었지?”

백단영이 분노의 일성을 발했다.

“누가 사주한 거냐?”

“흐흐, 청부자를 알려주는 살수는 없다.”

딱 말을 자르던, 안대를 쓴 낭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실 때가 됐는데…….”

“올 때까지 재미나 좀 보자고.”

다른 한 낭인이 뻣뻣하게 굳은 백단영의 몸을 슬쩍 만져왔다.

안대를 쓴 낭인이 바로 그 손을 막았다.

“잠깐, 건드리지 말고 고이 데려오라고 했다.”

“낄낄, 만져봤는지 알게 뭐야?”

낭인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백단영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는 순간이었다.

“커흠!”

저편에서 요란한 기침 소리를 내며 한 노인이 나타났다.

백단영은 새롭게 등장한 노인의 정체를 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예전에 무림다루 개점 때 훼방을 놓던 노인이었다. 죽서루의 주인 허 노인이라 했던가.

그제야 그녀는 이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다. 무흔에게 죽서루를 뺏긴 허담평이 그녀를 잡으려고 청부를 넣은 것이다.

그녀의 앞까지 다가와 아래위로 쓱 훑어본 허담평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잘 했네. 이년을 약속한 장소까지 끌고 가주면 잔금을 주겠네.”

“당신이 왜 나를?”

백단영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허담평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흐흐, 무흔 그놈 때문이야. 그놈이 내 죽서루를 금전 오만 냥에 빼앗아갔거든. 그 보복으로 나는 네년을 기루에 팔아넘길 작정이다. 물론 그놈도 조만간 명을 다하겠지만.”

“오만 냥!”

백단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터트렸다. 어째 액수가 듣던 거랑 조금 달랐다. 그녀에게 온 지분 절반이 오만 냥이었으니 십만 냥에 산 것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사주한 놈과 이유까지 모두 알았으니 더 캐낼 것은 없었다.

번쩍!

백단영의 검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새하얀 빛의 선이 가로로 세상을 갈랐다.

“크헉!”

암영삼살의 가슴에 쭉 그어진 긴 자상에서 피가 쏟아졌다.

안대를 한 낭인이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네, 네년이 어떻게? 마비산에 분명히 중독되었는데…….”

그 말에 백단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난 만독불침이거든.”

사실 암영삼살의 우모침 기습은 훌륭했다. 백단영이 손을 쓸 틈도 없이 그대로 맞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고 그 방식은 더 잘못 선택했다.

어떤 독도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백단영은 마치 중독된 것처럼 연기하며 배후를 알아낸 것이다.

서걱-

재차 그녀의 연검이 허공을 가르며 암영삼살을 도륙했다. 그나마 숨이 붙어 있던 그들은 몸이 두 동강 나며 생을 마감했다.

“으으으.”

암영삼살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본 허담평이 정신없이 도망쳤다.

이를 본 백단영이 한차례 몸을 흔들자 그녀는 순식간에 허담평 앞에 나타났다.

“어딜 가려 하시나?”

“으으으.”

신음을 터트리며 허담평이 손을 내저었다.

그 위로 싸늘한 경고의 말이 쏟아졌다.

“남을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자신의 목숨 역시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지.”

“사, 살려줘.”

사색이 된 허담평이 손을 내젓는 것도 잠시 연검이 하얀빛을 뿌렸다.

가슴에 검상이 쭉 그려지며 허담평의 신형이 무너졌다.

백단영은 상대를 본체만체 하고선 입술을 잘근 씹으며 돌아섰다.

“무흔! 이게 오만 냥이나 사기 쳤어!”

왔던 길을 쳐다보니 저 멀리 죽서루가 보였다.

“너! 오늘 죽었어!”

그녀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

 

무림맹 운경각에서 무흔은 달걀로 얼굴을 찜질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곳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옷에 가려 있다지만 가슴을 포함한 곳곳이 시퍼렇게 변했다.

모두 백단영 때문이다.

“하아, 뭔 여인의 손이 그렇게 매워.”

달걀로 부은 부분을 문지르며 씩씩대던 무흔은 이내 체념했다.

“내가 오만 냥에 구한 건 어떻게 알아서는……,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그래도 백단영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그를 팰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아가씨한테 대들 수도 없고.

백단영이 무려 무림맹 용봉대 연무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그를 쥐 잡듯 팼으니 그 쪽팔림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껏 오만 냥 속였다고 이럴 게 뭐야. 오만 냥이라 해봐야 솔직히 아가씨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액수 아냐? 있는 사람이 더하다니까. ……맞을 짓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일로 백단영에게 살인 청부가 들어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자신 때문에 그녀가 위험해진 것은 그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대사건이었으니까.

“어휴.”

한숨을 내쉬며 무흔은 서적을 펼쳤다.

이런 날이라도 무공 연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는 가장 최근에 보았던 화산파의 자하신공을 떠올렸다. 그 비급을 보면서 불현듯 깨달았던 계열 간 무공 체계를 고민했다. 동시에 만박노사가 그에게 권했던 정사파 무공 융합도 무거운 의미로 다가왔다.

정파와 사파의 무공을 융합하는 것이 가능할까.

극과 극의 성질을 가진 두 무공의 장점만을 가져와서 새로운 무공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무공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무흔은 정파와 사파의 무공이 어느 것도 더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역사상 뛰어난 자는 많다.

다만 그들은 정파와 사파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파인은 정파 무공이 우월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파 쪽도 마찬가지.

무흔처럼 각 계열의 무공을 다양하게 접했던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그는 정사지간의 무공에 주목했다.

그런데 의외로 정사지간의 무공 가운데는 제대로 된 무공이 드물었다.

“지금 당장의 목표는 사마극의 천마패와 혁무휘의 천마광을 제압할 무공이야.”

그는 다시 비급을 넘기며 마교의 무공을 떠올렸다.

마교 서고에서 보았던 수많은 무공을 되새기고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하지만 단 이틀 서고에 머물렀던 관계로 그 한계가 너무 뚜렷했다.

정작 마극삼비나 남혼북령이 사용하는 그 절정의 보법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 보법이 자신이 고안한 무흔천상보를 능가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교에 다시 들러봐야겠는데…….”

무흔이 이런저런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그의 앞에 흐릿한 그림자가 어렸다. 북령이었다.

웬일로 그녀가 경장을 걸치지 않고 품이 넓은 하얀 궁장을 입고 있었다. 예전에 무흔이 권했던 바로 그 옷이다.

“어? 여기는 무슨 일이냐? 그리고 그 옷차림은?”

무흔의 시큰둥한 표정에 북령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이런 차림을 원한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녀의 태도를 보니 은옥상이 부탁할 일이 있음이 분명했다.

“흠, 언제부터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었다고. 그럼 온 김에 내 부탁 하나 들어주라.”

당황해하는 북령에게 무흔이 달걀을 내밀었다.

무심코 달걀을 받아들던 북령이 무흔의 얼굴을 살피곤 놀라서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내가 무시무시한 마두…… 아니, 하여튼 엄청난 고수랑 싸우다가 쥐어 터져서 그래.”

“혹시 상대방은 뼈가 부러지거나 목을 내놓은 것 아닙니까?”

무흔은 백단영의 상태를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뼈가 부러지기는커녕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

무흔의 반응에 알만하다는 듯 북령이 속으로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흔이 얼굴을 내밀자 북령이 달걀로 무흔의 얼굴을 문질렀다.

“그래, 무슨 일이야? 은옥상이 날 보자고 하던?”

“네, 그렇습니다. 매화곡에 잠시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잖아도 마교의 무공을 더 살펴보고 싶던 차였다. 당연히 반갑게 수락할 생각이긴 했지만…….

“나 몸값 비싼데.”

“알고 있습니다.”

어째 순순하게 굽히고 들어오는 것을 보니 더 수상쩍었다.

“무슨 일인데?”

“마교에 변고가 발생했습니다.”

무흔은 북령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북령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교주 혈천마종이 승하하시고 사마극이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조만간 절대마령이 중원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엄청난 소식이었다.

깜짝 놀란 무흔이 정신을 수습할 틈도 없이 그에게 북령이 다그쳤다.

“지금 빨리 가주셨으면 합니다.”

사마극이 정변을 일으킨 것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절대마령의 등장은 문제였다. 과거 소설을 통해 절대마령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는 무흔이니 그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절대마령이 언젠가 중원으로 넘어오리라고 예상했었지만 지금은 시기가 빨랐다.

“좋아, 가도록 하지.”

무흔은 탁자 위를 챙기며 떠날 준비를 했다.

문득 이대로 떠나도 될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지금 사라지면 낮의 일 때문에 백단영이 오해 할 수도 있었다.

그는 한지 위에 간단하게 사유를 남겼다. 아마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백단영이 이곳에 들러 이 서찰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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