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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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59화
159화. 다정루 (2)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백단영이 그녀의 수련 모습을 지켜보며 뒤쪽에 서 있었다.
“방금 펼친 무공…… 정말 위력이 엄청난데?”
“그렇지?”
남궁이화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엄청난 무공이었기에 그녀는 백단영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 역시 없잖아 있었다.
머뭇거리던 백단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에게 배웠어? 남궁세가 무공이야?”
“아니.”
단번에 아니라고 하는 남궁이화의 답변이 의외였던 듯 백단영이 고민에 잠겼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물어봐도 돼?”
“무극서생.”
“응? 네가 존경한다던 그 무극서생?”
남궁이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백단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 가능하구나.”
같은 사문이 아님에도 무공을 배운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백단영은 천상신모의 절기를 이어받아 절정 무공을 익히고자 하는 욕심이 줄어들었지만, 그녀 또한 한때 절정 무공을 얻기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명문 출신이 아니어서 사문의 절기를 얻을 수 없는 자신의 환경이 서러웠으니까.
그때만 하더라도 남궁세가 출신인 남궁이화가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 또한 자신과 크게 다른 바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좌절했던 남궁이화가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 축하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공 괜찮아?”
“엄청나!”
“하긴 네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무공이니 당연하겠지.”
만족해하는 남궁이화의 표정에 백단영도 기분이 좋았다.
남궁이화가 그동안 종종 무극서생을 입에 올리며 침을 튀겨 감탄하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무림인이라 했던가. 그런 사람의 진전을 잇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축하해줄 일은 없을 것이다.
재차 축하하며 백단영은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무극서생 그 사람도 진짜 대단하네. 무공을 막 알려주고. 그 사람이 보상으로 요구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
백단영의 물음에 남궁이화는 그날 동굴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무극서생에게 아무것도 준 것이 없었다.
“내가 주려고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어.”
다소 의미심장한 말에 백단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주고 싶은데?”
“내 마음.”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백단영은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남궁이화니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얼마나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는데……. 그가 거부해서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데……. 다음에는 절대 거부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남궁이화가 결심한 듯 주먹을 꾹 쥐었다.
백단영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정말인지 귀를 의심했다. 천하의 남궁이화를 저렇게 만든 것을 보면 그 무극서생이란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멋있기는 했어.’
백단영도 예전에 보았던 무극서생을 떠올렸다. 그녀가 생각하는 무극서생은 무공은 고강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사람이기도 했다.
***
밤이 깊어지자 무흔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은은한 달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어슴푸레 빛이 들어오는 방안은 고즈넉한 멋이 풍겼다. 기루의 방치고는 매우 아담하고 정갈한 분위기였다.
그가 누웠던 이부자리 옆에는 낮에 술을 마셨던 설화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물론 옆에서 자고 있다 하여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녀가 이 방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무흔이 수혈을 짚어 깊게 재워버렸으니까.
“조용히 자고 있거라.”
무흔은 잠자는 설화를 다시 확인하고는 죽립을 뒤집어썼다. 옷 또한 야행에 편하도록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비치는 밤이라 완벽하게 숨어들기 어려운 밤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무려 만변귀공을 12성으로 익힌 몸이 아니던가.
만변귀공에는 역용술도 있지만 소매치기나 은신술도 적혀 있었다. 무흔의 은신술은 강호 최강은 아닐지라도 웬만한 자객이나 살수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무흔의 신형이 자연스럽게 한쪽에 배치된 건물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정루의 침소는 기루 전각 뒤편의 낮은 건물에 있었다. 호숫가로 배치된 방이 수십 개가 늘어서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 셋만 확인하면 되겠지.”
무흔은 어둠 속에서 침소의 배치를 확인했다.
이미 설화에게서 신흥방에서 중요시하고 있다는 세 녀석의 숙소를 들었기에 생각보다 빨리 찾아냈다.
다행히 숙소 부근에는 경계를 서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기녀의 침소가 많고 은밀히 머무는 손님도 많아 경비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인 듯했다. 대신에 다정루 본관 부근에는 야간에도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그렇게 보면 낮에 미리 내부로 들어온 그의 작전이 잘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무흔은 여러 침소 가운데 상당히 경관이 좋은 곳에 있는 침소로 잠입했다.
“여기 셋째, 넷째, 다섯째 방이라고 했던가?”
무흔은 설화가 일러준 내용을 다시 되새기며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봤다.
첫째 방에는 두 남녀가 잠이 들어있었다. 얼핏 눈에 띈 남자는 사십 대의 중년인으로 보였고 옆의 기녀는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젊은 여자였다.
그는 이번엔 옆방을 들여다봤다.
“젠장!”
옆방으로 눈을 돌렸다가 곧바로 물러선 무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이 몇 시인데. 그 방에서는 두 남녀가 뒤엉켜 야릇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굳이 그런 장면을 구경하는 취미는 없기에 그는 셋째 방으로 옮겨갔다.
여기부터는 신흥방에서 특별 취급하는 녀석들이라 했던가.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시선을 돌린 무흔에게 내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잠이 든 남자는 얼굴이 홀쭉한 노인이었다. 안면은 주름이 상당히 많아 꽤 나이가 들어 보였으나 드러난 팔과 가슴을 보니 근육이 탄탄했다.
무흔은 숨을 죽이고서 방안을 빠르게 훑었다. 탁자에 놓인 검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고가품으로 보이는 검과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검병을 통해 상대가 검객이라 추정했다. 다른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옆방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도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이번에는 홀쭉하다기보다 다소 뚱뚱한 몸매였다. 앞방과 달리 기녀와는 서로 떨어져 누워있었다. 벽에는 쇠사슬과 철퇴가 걸려 있었다. 특이한 무기를 쓰는 녀석이다.
방 내부를 뒤지던 그의 눈에 탁자 위에 놓인 서찰이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살짝 열고 방안으로 기운을 흘려보냈다.
서찰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두둥실 떠올라 천천히 창문으로 날아왔다.
‘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있네.’
무흔은 가볍게 서찰을 잡았다.
그리고 달빛을 이용해 서찰을 읽었다.
「특수부대에 문제가 생겨 작전에 차질이 발생. 원래대로 밀고 나갈지는 알아서 판단할 것.」
내용은 짧았다. 전서구를 통해 보낸 급전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전후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수부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자들은 신흥방이나 사마련 사람이 아니라 마교의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는 다른 서찰을 확인했다.
신흥방에서 보낸 서찰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남궁세가와 신흥방의 전력을 비교해 놓은 분석표였다.
사마련의 지원을 받은 신흥방이 전력 면에서 남궁세가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였다.
거기에 덧붙인 첨언이 눈에 띄었다.
현재 남궁세가에는 초절정고수가 없어 지금까지 지원받은 세 마교인 만으로도 충분히 남궁세가를 초토화할 수 있다는 예상이 적혀 있었다.
물론 무흔은 남궁세가의 전력을 알지 못하기에 그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남궁세가에서 사실상 이인자라 할 남궁이화와 남궁천기가 이곳에 없으니 사실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가주인 남궁벽은?’
지금 남궁벽은 건강이 매우 나쁜 상황이었으나 현재 무흔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싸움에서는 초강고수 한둘로 결판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교에서 서열권 내의 인물이 도움을 준다면 남궁세가를 초토화하려는 그들의 음모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무흔은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서찰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보냈다.
무흔은 마지막 방을 들여다봤다.
침상에 한 인물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앞의 두 인물에 비해 그나마 얼굴에 주름이 적었으나 그래도 예순이 넘어 보였다. 몸은 가장 건장했다. 얼핏 느끼기에 셋 가운데 가장 고수처럼 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사내의 피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이 실로 귀기스럽게 느껴졌다.
잠시 사내의 무공 수준을 가늠하던 무흔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곳과 달리 기녀가 옆에 없었다.
“어?”
이상한 기분에 기감을 끌어올리는 순간, 그는 이쪽으로 접근하는 인기척을 느꼈다. 저쪽에서 기녀 하나가 잠옷을 입은 채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던 것이다.
밤에 뒷간이라도 다녀오는 것일까.
무흔은 재빨리 무흔천상보를 발휘해 기녀의 뒤쪽에 내려섰다.
기녀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돌아보려는 순간, 무흔은 기녀의 입을 막고 머리를 붙잡은 채 목에 검을 댔다.
놀란 기녀는 몸을 꿈틀거리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조용하면 죽이진 않겠다.”
달빛에 반사된 서늘한 칼날에 기녀가 기겁하며 몸부림을 멈췄다.
무흔은 묵직한 음성으로 경고했다.
“묻는 말에 질문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나와 만났던 사실 자체가 비밀에 부쳐질 것이다. 하지만 네가 떠들거나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다른 자에게 알리면 네 목숨은 없다.”
기녀가 부들부들 떨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서, 서아.”
“저 방에 있는 자는 누구냐?”
“모, 몰라요.”
“같이 다니는 자의 이름은?”
“모, 몰라요.”
어째 아는 것이 없다. 녀석들이 철저하게 비밀로 지키는 것이거나 아니면 이 여자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이거나.
서아가 버둥거리며 뒤를 돌아보려 했다.
무흔은 강하게 여인의 머리를 고정해서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했다. 여인이 그를 보지 않는 것이 그녀의 안전에도 유리하다.
질문을 바꾸어 그녀가 알만한 내용으로 전환했다.
“저들이 언제 왔느냐?”
“보, 보름가량 되었어요.”
예상보다 마교인 셋이 이곳에 머문 지 꽤 오래됐다. 보름이면 용봉대가 떠나던 시점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너희가 맡았나?”
기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있기로 한 거냐?”
“사, 사흘 후까지요.”
사흘이라, 그때까지 뭔가 결정이 날 모양이었다.
남궁세가를 도모하는 작전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날 남궁세가를 해치우겠다는 의도이거나.
뜻하지 않게 그들의 예정 작전 날짜를 알아낸 무흔은 마지막 질문을 했다.
“저들이 머무는 비용은 신흥방에서 내기로 했다던데 사실이냐?”
“그, 그렇습니다.”
“저들과 신흥방과의 관계는?”
“신흥방을 뒤에서 봐주는 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녀가 아는 내용의 한계였다.
더는 알아낼 것이 없는 무흔은 기녀에게 다시 강하게 경고한 다음 사라졌다.
무흔천상보의 위력이었다.
서아가 누구인지 확인하고자 고개를 돌렸을 때는 마치 귀신이었던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맥이 풀린 서아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