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48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48화
148화 새벽의 손님들(3)
***
투캉!
기다란 장창을 바닥에 던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날이 상할까 봐 살살 다뤄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어차피 마나만 주입하면 망가진 날이 복구되니까.
아무리 살펴봐도 모르겠다.
혹시나 싶어서 세인트가 준 갑옷과 무기에 마나를 주입해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설마…
헌납하듯 듀카스 대공에게 바쳤던 갑옷에 세인트가 말했던 ‘힘’이 들어 있는 것이었을까?
“…….’
아니다.
지금 아공간에 꺼내 놓은 갑옷과 하등 다를 바 없었던 물건이었다.
분명 명품인 것은 맞지만, 그 외에는 특이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인트가 만든 갑옷 중에서 가장 하급의 것을 빌려 주었다가 헌납한 거니까,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봐도 세인트가 말했던 ‘힘’이라는 걸 찾을 수가 없다.
크로노스?
도움이 된 것은 맞지만, 지금의 나에겐 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지난번엔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일 갑자의 내공을 담을 단전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화속성 기운이 오히려 방해되었다.
현재는 중단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나, 내공 회복에 빨라진다는 것 외에는 다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화경의 경지에 이른다면 잡스러운 문제가 모두 해결되긴 할 터다.
그러나,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 화경에 이르는 건 단순히 내공이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내 몸을 낱낱이 알아야 하고 무(武)에 관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사실 깨달음 문제는 이전의 무림 세계에서도 한차례 겪은 바가 있다.
깨달음이라는 건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형이상학적인 영역이다.
깨달음을 완성한다는 건, ‘나’를 완전히 파악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체의 완성이 필수.
아직은 나의 육체를 모두 파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몸에서 깨어난 게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지금의 상태로 무리하게 각성하려다간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지금보다 내가 더 강해져야 세인트 녀석이 힘의 정체를 알려 준다고 했다.
약간은 부담스럽지만, 미친 척 화경의 경지를 개척해볼까?
아니, 아니다.
충동적으로 시도했다가 사고 나면 최하가 반신불수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을 구태여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다.
가장 위협이 되었던 발루아 공작을 해치운 상태다.
프레하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이 전부 나만 노릴 것도 아닌 바에야 조금은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아, 몰라, 몰라!
밀린 일부터 처리해야겠다.
***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은 숲.
5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다.
시커먼 갑옷을 입은 사내들.
어둠을 틈타 달리는 그들에게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땅바닥을 밟으면서 발생한 작은 소음이 전부였다.
갑옷을 입고 달리고 있음에도 금속이 부닥치는 소리조차 생기지 않는다.
프레하 제국의 흑기사들.
국경에 위치한 쁘즈랑 마을을 초토화하고서 곧장 베링 요새를 둘러싼 험지를 우회해서 침투한 것이다.
“멈춰!”
선두에 달리던 사내가 속도를 늦추면서 손을 들었다.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멈춰 서는 검은 갑옷의 사내들.
“숲으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무기를 점검한다. 기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란다.”
[예.]
나직한 음성으로 일제히 대답하는 50명의 흑기사.
그들은 대답과 함께 은밀한 움직임으로 숲에 들어섰다.
적당한 공간을 찾은 흑기사들이 등에 짊어지고 왔던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이라기보다는 각종 무기를 소리가 나지 않도록 엮어 놓은 뭉치다.
크로스보우를 비롯해 두 자루의 롱소드와 방패, 그리고 던지기용 단검과 쿼럴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흑기사들은 병기들을 하나씩 풀어 갑옷에 장착했다.
가장 먼저 장비를 착용한 흑기사가 고개를 돌려 회백색 높은 성벽을 지닌 구조물에 시선을 던졌다.
횃불을 들고 성벽 위에서 배회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개미 새끼만큼 작아 보인다.
으드득!
‘아이언 남작! 네놈은 오늘 반드시 죽는다.’
아이언 영지의 성을 노려보면서 흑기사가 이를 갈았다.
그런 흑기사의 곁으로 무장을 마친 나머지 흑기사가 모여들었다.
“발루아 공작 각하, 무장을 완료했습니다.”
“새벽 4시를 기해 침투하기로 한다. 그때까지 잠시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흑기사들이 군례를 올리고는 다시 흩어졌다.
발루아 공작은 흩어지는 흑기사들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죽어서까지도 제국에 몸을 바쳐야 하다니… 저들이나 나나 불쌍하구나, 불쌍해.’
발루아 공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분명 자신은 죽었다.
복부가 갈리고 심장이 검에 꿰뚫려서 말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놈에게 복수하려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어이없게도 순수하게 실력에 눌려서 당했다는 게 기가 막힌다.
‘녀석과 나는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어. 그래, 인정해 주마,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를 거다. 아이언 남작.’
발루아 공작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아이언 영지의 성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자식… 머리라도 온전하게 죽였으면 저들이나 나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
아들을 생각하던 발루아 공작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지.’
“후우우…….”
길게 한숨을 내쉰 발루아 공작이 흑기사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마계의 기운을 받아서 육체가 재구성된 괴물.
쉽게 죽을 수도 없는 몸으로 개조되어 살아 있었을 당시보다 더 강해졌다.
그러나 강해졌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미각과 후각을 잃었으며 감정이 메말라 버렸다. 몇 가지 감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복수 그리고 증오!
살아 있는 자에 대한 적의(敵意).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참기 힘든 격렬한 분노가 시도 때도 없이 끓어오른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서 단련된 마음이 아니었다면 살기를 제어할 수 없었을 만큼…
저들 또한 자신의 명령이 아니라면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다.
겨우겨우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프레하 제국에 남은 작은 충성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들 녀석은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았던 거야, 그래, 맞아. 대신에 복수는 확실하게 해주마.’
발루아 공작이 주먹을 말아쥐고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난번처럼 당하지 않는다. 아이언 남작.”
***
“헉, 헉…….”
세인트가 숨을 몰아쉬면서 벌러덩 누웠다.
“오빠아~ 나아… 너무 좋았던 거 있지? 오빠는? 오빠는 어땠어요?”
땀에 범벅된 알몸의 여자가 세인트의 가슴에 난 털을 쓰다듬으면서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으흐흐흐… 나도 최고로 즐거웠어. 미사, 이 예쁜아.”
세인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미사라는 여인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또요?”
미사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세인트에게 착 감겨들었다.
“당연하지. 이제 겨우 세 번밖에 안…….”
“응? 오빠, 왜 그래요?”
생글거리면서 달라붙던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세인트가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착각했나 보다. 어디 다시 시작해볼까? 으흐흐흐…….”
잠시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세인트는 미사의 탄력 넘치는 육체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
야심한 시각.
영주관의 3층 집무실에선 앓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으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무려 한 달을 넘게 영지를 비워둔 탓에 결제해 줘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다.
어지간하면 쉬었다가 내일부터 하려고 했지만, 게으름 부렸다가는 안토니의 은근한 잔소리에 시달릴 게 걱정되었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서류들을 처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처음엔 쉬웠다.
겨울철 공사 일정이라든지, 영지민 복지와 관련된 사안들을 결정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쌓아둔 서류의 절반을 후다닥 해치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지난 한 달 동안 안토니가 사용한 자금 내역을 확인하면서 머리가 아파졌다.
쓸데없이 꼼꼼한 안토니였기에 하페(한국의 100원) 단위까지 자금 내역이 빡빡하게 기록되었다.
서류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계산이 맞는지 확인하느라 머리에 쥐가 내릴 지경이다.
온통 숫자로 가득 채워진 서류를 검토하는 게 이렇게나 괴로운 노동이 될 줄이야!
마치 한국에서 살던 시절에, 방학 숙제를 몰아서 해치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젠장!
그건 베껴 쓸 거라도 있었지.
오직 덧셈과 뺄셈의 지루한 반복 작업을 검토한다는 건 진짜 사람 할 짓이 못 된다.
숫자만 봐도 멀미가 올라올 것 같은 느낌.
도저히 머리가 아파서 안 되겠다.
“후아!”
창문을 열고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답답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긴 하다. 창문을 연 김에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제대로 보는 밤하늘인지 모르겠다.
한결같은 풍경이지만, 그간 얼마나 여유 없이 살아왔는지 깨닫게 된다.
밤이 되면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흔하기 짝이 없는 별들을 구경한 기억도 없이 지내 왔다니…
정말 팍팍하게 살아온 듯싶다.
에휴!
머리가 조금 맑아졌으니, 다시 밀린 서류를 검토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 남은 서류들은 그나마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시온 상단과 아르곤 상단에서 보내온 자금 관련 문서다.
마차 판매 대금과 레이놀드 남작이 보내온 타이어 관련 서류들이라, 머리가 아파도 기분은 좋아진다.
서서히 영지의 경제가 자생력을 갖춰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게 해주니까 말이다.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서류를 검토하러 가려는 그때,
“……!”
나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뭔가 지저분한 기척이 느껴진다.
몬스터의 것은 아니다.
예전에 ‘죽음의 대지’에서 만났던 오크나 오우거 같은 몬스터는 거칠고 음습한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영주 성으로 접근하는 기운은 음습함만 느껴진다.
마치…
세인트 녀석이 소환될 때 반대편 공간에서 느껴졌던 마계라는 곳의 기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결코, 좋은 뜻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다는 건 바보라도 알겠다.
멀쩡한 성문을 놔두고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놈들은 성벽을 타고 넘을 생각인 듯하다. 겨울이라 해자의 물이 얼어 있으니 빠질 걱정은 하지도 않을 테고.
일부러 기운을 숨기려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암살하려고 접근하는 게 분명하다.
당연히 아이언 영지에서 암살해야 할 정도의 인물이라고는 나밖에 없겠다.
대체 누구지?
내게 원한을 가진 인물이 있던가?
음…
어쩌면 이번에 반란에 실패한 귀족들이 자금을 모아서 내게 암살단을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놈이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배후를 밝혀서 똑같이 갚아줘야겠다.
천천히 창문을 닫고서 출입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비병!”
덜컥!
“충!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오!
이 시간까지 졸지도 않고 근무를 잘 서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르기가 무섭게 재까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비상이다! 병사들을 제외하고 즉시 기사들만 깨워서 전투 준비를 하라고 알려라. 단! 최대한 조용히 움직인다! 절대로 불을 밝히지 말라는 말도 전하라.”
“영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실 겁니다.”
경비병이 군례를 올리고는 문을 닫고 나간다.
곧이어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집무실 밖에서 흐릿하게 들린다.
경비병들이 기사들에게 알리러 나가는 것일 터.
그러는 동안에도 다가오는 기척에 집중했다.
놈들은 발각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느릿하게 접근하는 중이다. 저런 속도라면 아이언 기사단과 블루드래곤 기사단이 모두 무장을 갖추고 나올 수 있을 듯하다.
“착용!”
촤르륵! 터더덕!
아공간에서 갑옷을 불러와 장착했다.
그러고는 서류를 검토하던 테이블 위에 놓인 헤로드 소드를 허리춤에 걸었다.
어떤 놈들이 나를 노리는지 알아보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