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44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44화
144화 언제 물어봤어? (1)
필립 황제와 함께한 저녁 식사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프레하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확실하게 심어 줄 수 있었다.
덕분에 베링 요새와 뱅크스 요새에 추가 병력을 보내기로 한 상태다.
이전처럼 한 줌의 병력으로 프레하 제국의 대군과 맞서 싸우라는 미친 명령을 거두게 되었다.
물론, 아이언 영지에 주둔 중인 병력은 언제든 두 요새가 위험에 빠지면 곧바로 병력을 보내야 한다.
중요한 건, 전방을 지키는 요새의 전력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우리 영지가 조금은 더 안전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거기에 아이언 백작령에 대한 지원도 약속받았다는 건 더 좋은 일이다.
의미 없는 승작보다 실질적인 현찰이 더 사랑스러운 거니까.
대충 머리 아픈 일들은 마무리된 것 같은데, 가장 큰 문제가 남았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황궁에서 조금 떨어진 고급 레스토랑.
레이놀드 남작과 시에트를 앞에 앉혀놓고 식은땀을 흘리는 중이다.
이상하게 그녀를 앞에 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난다.
“아이언 남작… 아니, 이제 아이언 백작 각하라고 불러야겠군요.”
“으… 놀리지 마십시오. 레이놀드 남작님.”
몸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다.
주군이었던 사람한테 존대 받는 것도 기분이 묘한데, ‘각하’라는 칭호까지 들으려니 부담스럽다.
그래서 관두라고 하는 거다.
더군다나 레이놀드 남작 옆에 앉아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에트.
지금의 상황이 황제와 식사하던 때보다 더 긴장된다.
레이놀드 남작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했지만, 전혀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았다.
무심한 듯 느껴지는 얼굴과 달리, 그녀의 눈빛은 매섭게 빛난다.
저러고 한마디 말도 없이 쳐다보고만 있으니, 뼈 마디마디가 굳어지는 기분이다.
“저기… 시에트, 할 말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마시고요.”
“제게 할 말이 있을 겁니다만? 아이언 백작 각하.”
“…….”
냉기가 흐르는 그녀의 음성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라니?
내가 그녀에게 해야 할 얘기가 있었던가?
어떤 얘기를 하라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냐 시에트!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다.
힌트라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얘기를 하라니…
“모르시겠습니까.”
시에트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진다.
“으흠! 험, 험…….”
헛기침하는 레이놀드 남작.
손수건으로 닦는척하면서 입을 가리고 뻐금거린다.
“……!”
그의 입 모양을 확인하고서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시에트,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너무하시는군요. 아이언 백작 각하.”
“네?”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분명 레이놀드 남작이 입을 뻐금거리면서 ‘결혼’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얘기한 것인데 시에트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실수한 모양이다.
“분위기도… 매너도 없으시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차가운 음성으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
“시, 시에트! 어, 어째서…….”
“저도 여자입니다. 아이언 백작 각하.”
더듬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내가 무슨 사고를 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화났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한층 더 굳어진 얼굴과 싸늘하게 식어 버린 눈빛을 보면 말이다.
“그럼…….”
고개만 까딱하고 걸음을 옮기는 시에트.
이거 확실하게 꼬였다.
그녀가 옆으로 스쳐 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레이놀드 남작에게 시선을 맞췄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결혼 얘기라면서요?”
“글쎄요… 저도 이상합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군요. 오늘 결혼 얘기를 마무리 짓고 레이놀드 영지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레이놀드 남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대체 왜 저러는 겁니까?”
머리가 더 복잡해져서 레이놀드 남작에게 물었다.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왔다면서 왜 저렇게 찬바람을 쌩쌩 날리면서 자리를 피하는 건지 모르겠다.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미혼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생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도 여자라고 말입니다. 저는 여자 앞에만 서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껏 혼자죠. 여자들은 너무 복잡해서 말입니다.”
한숨을 푹 내쉬는 레이놀드 남작.
“…….”
으윽!
모태 솔로였다는 건가?
레이놀드 남작은 단순히 독신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선 레이놀도 남작에게 받을 조언 따윈 없다는 얘기가 되겠다.
오늘 이들이 떠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나는 프레하 제국의 전쟁에 대비해야만 하는 신세니까.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시에트의 뒤를 급하게 쫓아갔다.
이제 막 레스토랑의 출입문에 손을 대는 그녀의 한쪽 어깨에 손을 댔다.
“놓으시죠. 분명히 가겠다고 말씀을…”
그녀가 몸을 돌리면서 서늘한 눈으로 바라본다.
화가 난 듯한 음성을 무시하고 나머지 손으로 시에트의 뒷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츕!
“우읍!”
억눌린 듯한 신음성.
입술을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의 가슴을 밀치려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뒷머리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가슴을 밀치던 그녀의 저항이 조금씩 약해진다.
그리고,
크게 떠졌던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휘이익!]
“부라보!”
“대담한데?”
휘파람 소리와 다른 사람의 환호성이 들려왔지만, 나와 시에트의 키스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
프레하 제국의 국경 부근 브뜨아 요새.
우울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브뜨아 요새의 사령탑에서 풍기는 음울한 감정.
하나의 검은색 관이 브뜨아 요새에 전달된 뒤부터 사령탑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발루아 공작의 죽음.
오를레앙 대공과 최고의 검사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던 위대한 소드 마스터가 사라졌다.
“이럴 수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하필이면!”
발루아 공작의 파리한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오를레앙 공작이 쓰라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야 할 시기에 발생한 발루아 공작의 죽음은 치명적이다.
타오르기 직전의 불씨에 찬물을 부은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소드 마스터 전력이 사라졌다는 건 현실을 더욱 참담하게 만든다.
“오를레앙 공작 각하. 이 사실을 황제 폐하께 알려야 합니다.”
함께 검은색 관을 내려다보던 브뜨아 요새의 사령관이 침중한 어조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 또한 발루아 공작의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목이 잠겨 있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에브욤 백작.”
“알겠습니다.”
괴로운 얼굴을 한 채로 손바닥을 내젓는 오를레앙 공작에게 에브욤 백작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발루아 공작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게 괴로웠기 때문이다.
‘발루아 공작의 죽음이 알려진다면, 제국군의 사기가 떨어지겠지.’
오를레앙 공작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전쟁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요한 시기에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좋지 않다.
아니,
단순히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건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한 표현이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오를레앙 공작은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한 장의 서신이 놓여 있었다. 바로 발루아 공작의 죽음에 대해서, 엘튼 제국이 사고 경위를 정리한 서신이다.
‘욕심이 지나치셨어. 차라리 그냥 돌아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오를레앙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서신을 집어 들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수식어로 붙여 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엘튼 제국의 반란에 뛰어들어 이황자의 편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이야기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서신을 바라보던 그는 이를 꽉 물고는 와락 구겼다.
바스락!
그러고는 촛불에 구겨진 서신을 가져다 대었다.
“에브욤 백작.”
“말씀하십시오. 오를레앙 공작 각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달은 에브욤 백작은 자세를 바로 하고서 명령을 기다렸다.
“백작께선 오랫동안 아버님과 함께해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요?”
“…물론입니다.”
에브욤 백작은 갑작스러운 얘기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아버님께서 에브욤 백작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 말입니다.”
“영광입니다.”
뜻 모를 소리임에도 에브욤 백작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실세인 오를레앙 공작이 자신을 신뢰한다고 말해 주니,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기분만큼은 좋아졌다.
“신뢰를 담보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중요한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오를레앙 가문과는 오랜 벗이지 않습니까.”
에브욤 백작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를레앙 대공이 사망한 이후 자신의 가문이 조금 소외된 느낌을 받긴 했었다.
그런데 아들인 오를레옹 공작 또한 자신을 믿고 의지한다고 생각하니, 그간의 서운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발루아 공작께선 돌아가시지 않은 것입니다.”
“…네?”
하지만 오를레앙 공작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분명 자국의 언어인 것은 맞으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우리 프레하 제국은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혼란은 원치 않습니다. 발루아 공작께선 과로 때문에 잠시 요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슨 얘긴 줄 아시리라 믿습니다.”
“으음… 이해했습니다. 오를레앙 공작 각하!”
미간을 좁히면서 에브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껏 오를레앙 공작과 발루아 공작이 나눈 얘기들을 같이 들었으니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발루아 공작의 죽음은 제국에 커다란 파장을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침묵하는 게 제국을 위해서 더 현명한 선택일 터였다. 그래서 오를레앙 공작의 얘기에 동조한 것이다.
“호위하던 두 명의 기사는 발루아 공작 각하를 호위하러 같이 떠난 겁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에브욤 자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발루아 공작을 모셨던 두 명의 호위기사를 처리하라는 얘기가 분명했다.
제국의 기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찜찜했지만, 소문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입막음은 해두는 편이 좋다.
하지만,
“오를레앙 공작 각하.”
“말씀하십시오. 에브욤 백작.”
“발루아 공작 각하의 죽음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혹여 이 일로 인하여 오를레앙 공작 각하께서 곤란을 겪으신다면…….”
에브욤 백작이 말끝을 흐리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린 것이다.
그러자 오를레앙 공작은 서글프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발루아 공작 각하께선 돌아오실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반드시 돌아오실 테니,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발루아 공작 각하의 호위 기사들부터 배웅해주시고, 나가시는 길에 통신 마법사 ‘라뜨만’을 불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라뜨만’보다는 더 실력 있는 ‘앙셍’이 낫지 않겠습니까?”
“‘앙셍’은 능력 있는 마법사입니다.”
“…알겠습니다.”
오를레앙 공작의 모호한 얘기에 에브욤 백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도로 실력이 떨어지는 ‘라뜨만’을 부른 것인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부탁합니다. 에브욤 백작.”
“확실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에브욤 백작이 가볍게 군례를 올리고서 문을 열고 나갔다.
홀로 작전 지휘실에 홀로 남은 오를레앙 공작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검은색 관에 시선을 던졌다.
“발루아 공작 각하, 다시 돌아오셔야겠습니다. 프레하 제국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