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4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40화
140화. 마극삼비 (1)
무흔뿐만 아니라 백단영의 안색도 어둡게 변했다.
두 사람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사마극이 두 사람이 앉은 탁자의 의자를 빼내어 한쪽 모서리에 앉았다.
그들은 정사각형 탁자에 각자 한 모서리씩 차지하고 앉은 형상이 됐다. 무흔과 백단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기에 사마극이 둘 사이에 낀 모양새다.
잠시 인사도 없이 세 사람의 시선이 엉켰다.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사마극이 백단영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서 또 보는군. 그래, 의정문은 잘 다녀왔나?”
무흔은 사마극에게서 의정문이란 말이 나오자 내심 두려움이 일었다. 의정문 사태의 배후에 사마극이 웅크리고 있음을 그날 들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백단영은 담담하게 사마극의 말을 받았다.
“의정문을 아는 것을 보니 관련이 있나 보군요.”
“적어도 그대가 그곳에서 마교인을 죽였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사마극의 싸늘한 답변에 백단영은 마음을 다잡았다.
예전에 만혈대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감히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세계의 고수였다. 얼마 전 용봉대 전투에서 그를 만났을 때 호기롭게 그에게 덤벼들었지만 마찬가지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의 저항하지 못하고 바로 깨졌다. 그와의 차이를 실감했던 날이었다.
그날 사마극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다음에 보면 그냥 놓아주지 않겠다고 했던가. 그게 하필이면 오늘이란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한편으로는 천상문에서 내력이 급증했기에 이제는 상대할 수 있겠다는 오기도 올라왔다.
게다가 지금 그녀의 옆에는 무흔마저 있지 않은가. 자신과 무흔의 합공이라면 사마극도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의정문에서 그들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더군요. 그런 식의 더러운 음모로 문파를 접수하는 것은 사악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죠.”
따끔한 훈계를 내리듯 백단영은 거침없이 쏟아냈다.
사마극이 신기한 눈빛으로 백단영의 얼굴을 훑었다. 지금까지 면전에서 이렇게 일침을 놓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같은 소교주인 혁무휘나 은옥상도 이런 식으로 질책한 적이 없다.
“호오…….”
사마극은 헛웃음을 삼키면서 백단영을 다시 평가했다.
느낌만으로도 백단영의 기운은 확실히 강해졌다. 그날 야밤에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들었던 하룻강아지와 달랐다. 심지어 야밤에 어두운 곳에서 볼 때보다 지금이 훨씬 예뻤다.
그가 백단영을 본 두 차례는 모두 어두운 장소였다. 무공이 높아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지장 없이 본다지만 그래도 대낮에 보는 것과는 다르다.
사마극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번 눈동자를 굴려 백단영을 내려봤다. 볼수록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반면 백단영은 그의 기분 나쁜 시선이 매우 거슬렸다.
한참 백단영에게서 떠나지 못하던 사마극의 시선이 무흔에게 옮겨왔다.
“이자는?”
백단영이 냉큼 대답했다. 그녀는 예전에 사마극이 무흔을 언급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다.
“무흔.”
“아하! 기둥서방!”
백단영이 사마극을 한차례 노려보고는 바로 정정했다.
“호위무사.”
“흠, 쓸만한 무공을 지녔군. 역시 은옥상이 관심을 가질 만해.”
갑자기 은옥상이 언급되자 백단영이 화들짝 놀랐다. 물론 매화곡이 마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지만.
무흔 역시 은옥상이란 이름에 긴장했다.
당연히 은옥상이 마교 소교주이니 둘이 잘 아는 사이라 하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언급해도 되는 것일까.
한편 사마극의 심정은 다소 혼란에 빠져있었다.
과거에 했던 말도 있고 아무리 호위무사라지만 백단영 옆에 붙어 있는 남자가 거슬렸다. 백단영의 무공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그녀가 다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고. 다시 만난 그녀가 반갑기도 하고, 낮에 보니 아름답기조차 했다.
무흔은 조용히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신경전을 구경했다. 여차하면 백단영을 도와야 하기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래서…… 의정문에서 벌인 마교의 행위는 나쁘다고 생각해요.”
뚜렷하게 결론을 내린 백단영이 사마극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는 사마극의 검은 눈동자가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는 사실에 그나마 마음이 안정됐다.
내친김에 더 도발해볼까. 슬그머니 머릿속으로 궁리하다가 막 입 밖으로 꺼내려는 순간 그녀는 사마극의 뒤쪽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타난 흐릿한 그림자가 점차 뚜렷해졌다.
그림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백단영은 식은땀이 흘렀다.
예전에 만혈대 지하미로에서 사마극을 호위하는 세 호법을 본 적이 있었다. 마극삼비라 했던가. 각기 풍, 우, 뇌라 불렸었다.
무흔의 눈썹 또한 꿈틀거렸다.
그는 은옥상을 그림자처럼 호위하는 남혼과 북령을 알고 있다. 당연히 사마극 옆에도 호위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지만 나타난 자의 무공은 절대 북령의 하수가 아니었다.
사마극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세 남자가 도열했다. 얼핏 평범해 보였으나 실제 그들의 능력은 절대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사마극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백단영에게 물었다.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올 것이 온 건가. 백단영은 모른 척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만나면 그냥 놓아주지 않겠다고 했었지.”
“흐음, 당신이 염라사자도 아니고 굳이 내가 그 말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마극은 그녀의 반발을 무시하고 무흔을 향했다.
“제안을 하나 하지. 그대 호위가 내 호위를 이긴다면 군말 없이 보내주겠다.”
“그것은 불공정하군요. 내 호위는 한 명, 당신 호위는 세 명. 설마 셋을 이기란 뜻은 아니겠죠?”
“주군을 지키는 일에 상대가 몇이든 무슨 상관인가. 몇이든 이겨서 지켜야 하는 거지.”
냉담한 사마극의 말에 백단영은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얼핏 봐도 그 능력이 가늠되지 않는 세 마두다. 능력이 가늠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 그녀보다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무흔 혼자서 저 셋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백단영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본 사마극이 말을 이었다.
“그게 싫으면 그대가 나랑 상대하면 된다.”
사마극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백단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의 결정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비록 최근에 급격한 향상을 경험했다지만 과연 사마극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까. 그 승산이 너무 낮았다. 그렇다고 무흔을 마극삼비와 겨루게 할 수도 없었다.
“싫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어차피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니까.”
사마극에게서 강자의 여유가 묻어났다.
백단영은 사마극이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왜 그렇게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거죠?”
“글쎄…… 관심이 생겼다고 할까.”
저런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기가 막힌 백단영은 바로 거부했다.
“난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요.”
“같이 지내보면 관심이 생길지 모르지.”
능글맞게 대답하는 사마극의 말에서 그녀는 의도를 일부 파악했다.
저 사람은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좋은 일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자, 어떤 것을 선택하려나?”
사마극이 결정을 재촉했다.
백단영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자신 때문에 무흔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없다. 분위기로 보아 그녀는 사마극에게 설사 지더라도 죽일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나는…….”
백단영이 답변하려는 순간 무흔이 끼어들었다.
“사마극? 그냥 개떼처럼 다 같이 붙어보지? 왜? 겁나냐?”
무흔은 눈을 크게 부라리며 나름대로 위협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당연히 사마극이 겁먹을 리 없었다. 내심 껄껄 웃는 듯 잠시 두 사람을 쳐다보던 사마극이 벌떡 일어섰다.
“나쁘지 않군. 밖으로 나와라.”
사마극이 먼저 객잔을 나섰다. 그림자처럼 따르는 마극삼비 역시 존재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안색이 창백해진 백단영이 질책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마교 소교주와 싸우게 됐나……. 무흔? 어떻게 할 거야? 정말 우리가 저들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해?”
“우리는 마극삼비랑만 싸우면 돼요. 사마극이랑 싸울 일은 없을 겁니다.”
무흔의 장담에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꺼번에 싸우자고 했잖아?”
“사마극은 마극삼비랑 같은 취급을 받기 싫어해요.”
무흔이 장담했다.
물론 이런 장담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예전 소설에서 사마극이 꽤 거만하게 깔끔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부하들과 손을 합쳐야 할 일이 있을 때 사마극은 합세하지 않았다.
홀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마극삼비에게 맡겨두거나. 이번에도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제점은 있다.
설사 두 사람이 마극삼비를 이기더라도 내공이 소진된다면 사마극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무흔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해 두어야 했다.
무흔은 다시 수저를 들고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안 나가?”
“기다리라고 하죠. 급하게 굴면 지는 겁니다. 먹고 죽어야 때깔도 곱다잖아요.”
무흔이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무흔을 바라보던 백단영도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뭐.”
일부러 시간을 끌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객잔을 나선 것은 거의 일각이나 지나서였다.
객잔 밖은 넓은 평원이었고 하늘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객잔을 나서던 무흔은 내리는 눈 한가운데 서 있는 네 사람을 발견했다.
눈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내리는 눈이 그들의 머리에서 한 치가량 떨어진 곳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내공이었다.
무흔은 내심 조금 놀랐으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도 저런 정도는 할 줄 아니까. 그는 과거의 무흔이 아니었다.
“이제 다 먹었나?”
사마극의 말투에는 짜증이 어려 있었다.
눈 속에 세워둔 보람이 있었다고 내심 낄낄거리면서 무흔은 다시 조건을 물었다.
“우리가 이기면 보내줄 건가?”
“물론이지.”
사마극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얼른 나오라는 이야기다.
무흔과 백단영은 그들의 앞에 섰다. 눈이 내리면서 그들의 어깨와 머리에 내려앉았다. 굳이 눈을 피하려고 내공을 소모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싸우다 보면 눈을 피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눈에 익숙해지는 것이 더 낫다.
“무기는?”
무흔이 묵천신검을 꺼내고 검집을 한쪽에 내던지며 물었다.
“우리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
사마극이 대답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고수가 되면 무기의 영향을 적게 받지만 그렇더라도 맨손보다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백단영도 조용히 연검을 꺼내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사마극이 피식 웃더니 한쪽으로 물러섰다. 역시 예상대로 사마극은 전투에 끼어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극삼비가 흩어지며 두 사람을 세 방향에서 포위했다.
내리는 폭설에 시야가 가려 서로의 신형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 속에서 대결을 펼치는 것은 무흔과 백단영으로선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얼핏 내리는 눈은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달랐다. 고수 간의 싸움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무흔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극삼비 일인과 백단영의 무공은 사실상 비슷했다. 결론은 한 명 부족. 부족한 인원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내력을 끌어올리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마극이 한쪽에 물러나서 지켜보는 가운데 무흔이 먼저 선공을 택했다.
탓!
묵천신검에서 검기가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 마극삼비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