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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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35화
135화. 천상문 (2)
천상문은 대부분의 무공을 일인전승 형태로 전수했다.
백 년 전 천상신모가 문주였던 시절, 강호는 정과 사의 대결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당시 천하최강이라 불렸던 사대고수가 있었으니 바로 마교의 파천마종, 소림의 불사신승, 천상문의 천상신모와 사문이 밝혀지지 않은 무아검객이었다.
이들 천하 사대고수는 중원 천하를 걸고 정과 사를 대표하여 서로 대립했다. 이 가운데 무아검객은 정사지간의 인물로 무림사에 사실상 관여하지 않았다.
당시 천상문은 산동 제일 문파로 융성하였으나 정마대전에서 대부분 문하생이 죽음을 맞았다. 여기에 천상신모마저 만혈대에서 실종되자 사실상 문하에 남은 자가 거의 없었다.
천상신모 이후 추대된 차기 문주는 천상신모로부터 무공을 받지 못했기에 비전절기는 모두 끊어졌다. 절기를 제외한 일반 제자를 위한 무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천상문은 그때부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동네 무관이나 마찬가지 상태로 몰락한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란 불가능이었습니다. 문하생이 없으니 재정 상황도 극도로 나빠졌고요.”
현재 문하생들이 배우는 무공인 천하제패검법도 이후에 다시 창안된 검법이었다.
변변찮은 실력자가 어설프게 검법을 만들다 보니 말 그대로 삼류 검법이 만들어졌다. 그런 검법을 과거 영화를 잊지 못해 이름만 멋지게 붙여서 익히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천상심공만 남아 있었어도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천상문주가 하소연했다.
천상문에서 가장 중요한 무공은 천상심공과 천상비연검법이다. 이 가운데 천상심공은 천상문의 모든 무공에서 기본이 된다. 물론 지금 현재 남은 절기가 없으니, 어차피 있어 봐야 쓸모없지 않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천상문이 자리한 이곳 한열계곡은 열기와 한기가 교차하는 지역입니다. 이 계곡 깊은 곳에는 열담과 한담이 있고 그곳에 몸을 담그면 내공을 얻을 수 있어요. 단 천상심공을 익힌 사람에 한해서 말입니다.”
과거에 천상심공을 익힌 천상문 제자들은 이 계곡의 연못에서 내공을 쌓았다. 이 단계를 거쳐 그들은 상당한 내공을 지닌 채 무림에 나왔다. 자연히 무공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천상심공을 잃어버린 현재는 천상문 문하생의 내공은 평범해졌다. 거기에 비전 검법마저 사라졌으니 그야말로 일개 무관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무흔과 백단영은 천상심공의 숨겨진 비밀에 깜짝 놀랐다. 과거 천상신모가 어떻게 천하 사대고수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비밀을 엿본 순간이었다.
백단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 천상문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게 될 거예요. 모든 문하생은 천상심공을 익혀 내공을 얻게 될 것이고 문주 직계는 천상비연검법을, 일반 문하생은 천하제패검법을 익히게 되겠죠. 천하제패검법이 한 차례 보완작업을 거쳐 상당한 수준의 검법으로 탈바꿈되었다는 사실을 들으셨나요?”
천상문주 역시 천상사화에게 그 내용을 듣긴 했다. 하지만 아직 직접 보지 못했기에 믿지 못하고 있었다.
천상문에 들이닥친 기적에 정신을 못 차리는 문주와 달리 장로 두 사람은 비교적 신중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귀인께서는 천상신모의 절기를 이었음을 증명해주셔야겠습니다.”
천금파파의 요구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천상문주가 백단영에게 정중하게 요구했다.
“사조께서는 저희에게 천상비연검법을 견식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보여준다고 알 수 있을까.
백단영은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다.
“천상심공은 구결을 알려준 후 그대들이 직접 한담에 몸을 담근 채 확인해보면 될 것 같네요. 천상비연검법은……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있나요?”
실전된 지 무려 백 년이 지났으니 아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곤란해하는 가운데 천금파파가 대답했다.
“소신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천상신모께서 수련하시던 모습을 기억한 차기 문주께서 이를 후대에 알려준 것입니다. 비록 구결이나 상세한 초식은 전혀 모르지만 전반적인 검법의 모양새는 소신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백단영은 천상문주 등과 함께 외부로 나갔다.
계곡 중간에 만들어진 넓은 연무장에 백단영이 꼿꼿하게 섰다. 그녀의 뒤로 천상비연검법을 구경하려는 제자들이 쭉 늘어섰다. 모두 사문의 비전절기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에 싸여 있었다.
백단영은 연검을 손에 쥐고 호흡을 골랐다.
“천하제패검법부터 먼저 시작해보지요.”
그녀는 그동안 틈틈이 익혔던 천하제패검법을 선보였다. 무흔에 의해 보완된 이 검법을 이제 백단영도 완벽하게 펼칠 수 있었다.
천상문주를 비롯한 장로 두 사람은 바뀐 천하제패검법의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래의 검법에 비해 한결 산뜻해지고 완벽해진 검법에 모두 감탄했다. 특히 새롭게 붙여진 후반부 초식의 위력에 그들은 앞으로 비상할 천상문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다음은 천상비연검법.
휙- 휙-
백단영은 내력을 실어 제대로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림 최강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위력적인 검법이 백단영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연무장 주변의 나무와 땅에 날카로운 흔적이 새겨졌다.
천상비연검법을 처음 보게 된 천상문주와 천상사화는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집중했다. 천금파파와 천은파파는 백단영이 재현한 천상비연검법에서 과거에 말로만 들었던 검법의 특징을 뚜렷하게 찾을 수 있었다.
“오오! 정말 천상비연검법입니다.”
검법을 알아본 두 노파가 감격에 겨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작 검법을 펼치는 백단영은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연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 듯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천상문인가.
무흔은 그녀의 검무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지금 이 장면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그는 무림에 온 보람이 충분했다.
번쩍! 번쩍!
이것이 바로 천상비연검법이자 천상문 최고 절기였다.
절정에 이른 천상비연검법이 펼쳐지자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듯 주변이 번쩍였다. 연무장 내를 휘몰아치던 공기가 잠잠해지면서 마침내 연검이 정지했다.
순간, 천상문주를 비롯한 천상문인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아아! 사조시여!”
그들은 백단영의 명이 있을 때까지 머리를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백단영은 백 년 만에 나타난 천상신모의 현신이었다.
백단영은 자신을 향해 머리를 숙인 사람들과 그들 뒤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흔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것으로 천상문 후예 증명이 끝난 셈이다.
***
백단영은 천상문의 사조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사조란 말이 부담스러웠던 그녀는 사저란 호칭을 더 좋아했다. 덕분에 특이하게도 천상사화에게도 사저라 불렸고 천상문주에게도 사저라 불렸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기에 백단영은 빨리 무공을 전수했다. 그녀는 천상문주에게 천상심공을 비롯하여 천하제패검법과 천상비연검법을 직접 전수했다.
이곳에서 무흔은 백단영의 호위무사로 알려졌다.
천상문은 여인들만의 문파였기에 엄밀히 따지면 그는 천상문 소속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천상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흔은 천상사화의 천하제패검법의 숙련을 도와주고, 기타 잡다한 무공을 더 알려주었다. 강호에서 활약하려면 검법 하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각종 다양한 무공을 전수했다.
천상사화 역시 그를 마치 진짜 사형처럼 성심껏 따랐다.
이곳에 온 지 대략 열흘가량 지났을 때, 마침내 두 사람은 천상문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한담과 열담을 방문하기로 했다.
“따라오시지요.”
천상문주가 두 사람을 데리고 계곡을 올라갔다.
눈 덮인 계곡 중앙에는 추운 겨울임에도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만 그 양이 많지는 않았다.
주변의 그림 같은 풍경을 둘러보며 무흔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을 멋진 풍경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숲이 더욱 빽빽해져 겨울임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바로 이곳입니다.”
정상에 조금 못 미친 곳에 계곡물이 시작되는 작은 두 연못이 숨겨져 있었다. 두 연못은 주위가 암반으로 둘러싸여 있고 양쪽 거리는 대략 십 장가량 떨어져 있어 상당히 가까웠다. 이 두 연못에서 흘러나온 물이 서로 만나 계곡물을 형성하고 있었다.
단지 두 연못이 동시에 자리한 환경만이라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특별하게 눈을 끄는 부분은 연못에 담긴 물의 색상과 상태였다. 한쪽 연못에는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색상의 물에 살얼음이 얼어있고 다른 쪽 연못에는 핏빛의 시뻘건 색상의 물이 수증기가 일어날 만큼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쪽이 뜨거운 열담이고 이쪽은 차가운 한담입니다. 열담은 사시사철 뜨겁게 끓고 있고요. 한담은 얼음이 얼어있어요. 지금 한담은 표면만 살짝 얼어있는 상태지만 한여름에도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는 말이었다.
천상문주는 두 사람을 한담 쪽으로 데리고 갔다.
“천상심공은 여기 한담과 관련이 있습니다. 천상심공을 운기하면서 이곳 한담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내공이 쉽게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향상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몸을 담글 때마다 계속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설명은 그것이 전부였다. 천상문주 역시 천상심공을 익히지 못해 경험한 적이 없으니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럼 문주께선 여기에 몸을 담그지 않았나요?”
“천상심공이 아니어도 몸에는 좋기에 자주 이곳에서 목욕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내공 증가 효능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무흔이 물었다.
“열담은 어떻습니까?”
“열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보다시피 열담은 사람이 몸을 담그기에 지나치게 뜨겁습니다.”
몸을 담그는 순간 화상을 입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담에 내공을 증가시키는 효능이 있다면 열담에도 어떤 효능이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열담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백단영과 함께 한담에 위험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한담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백단영이 천상문주에게 명령했다.
“고마워요. 이제 내려가 보셔도 되겠네요.”
천상문주가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그녀가 보기에 무흔이 호위무사라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불분명한 탓이다. 단순한 호위무사라 하기에 두 사람은 매우 가까워 보였으니까. 더구나 이곳은 목욕재계하게 될 은밀한 곳이다.
무흔을 백단영 옆에 그대로 두어도 될지 염려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결정을 내린 천상문주가 백단영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 무흔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몸을 돌려 내려갔다. 그녀의 태도에는 무흔에게 당신도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무흔 역시 그녀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지 짐작되었기에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가씨, 목욕하실 거죠? 저도 이만 내려가 볼게요. 지형으로 보아 누가 엿보거나 침입자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조심하시고요. 천상심공을 운용하면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신신당부한 후 그가 내려가려는 찰나였다.
백단영이 급하게 그를 불렀다.
“무흔?”
“예?”
“아무래도 네가 호법을 서주는 게 안심이 될 것 같아.”
순간 무흔의 마음이 한차례 울렁거렸다.
무흔은 당황한 채 그녀의 말을 받았다.
“에이, 저도 남자랍니다. 위험인물이라고요.”
“풉!”
무엇이 재미있는지 백단영이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곳에 남으라고 하니 떠날 수도 없게 된 무흔이 그녀의 눈치를 봤다.
백단영이 살짝 홍조를 띤 채 다시 말했다.
“넌 뒤로 돌아서 열담을 향하고 있으면 되잖아. 그럼 아무 문제가 없지.”
“나도 남자인데…….”
설마 백단영은 정말 그가 돌아보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