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1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19화
119화. 마교 서고 (3)
사마극으로 변한 무흔은 절로 숨이 턱 막혔다. 분위기로 보아 이 백발노인은 사마극과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무흔은 빙그레 웃음만 지었다.
백발노인이 정중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웬일로 두 분이 함께 오셨습니까?”
대답할 말이 막힌 그 대신에 은옥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라버니께서 서고에 들리신다기에 저도 따라왔죠.”
“그러시군요. 최근에는 두 분께서 함께 무공을 연마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만.”
“제가 배울 게 좀 있어서요.”
은옥상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무흔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큼.”
무흔은 잔기침을 하면서 은옥상을 따라갔다. 뒤쪽에서 서고 관리인의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아 다소 불편했다. 어쨌든 무사히 마교 서고에 진입했다.
마교 서고는 무림맹 운경각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의외로 넓고 책도 많았다. 다만 그 대부분이 무공 관련 서적인 것만 다를 뿐이다. 이곳은 운경각 일 층과 사실상 같은 공간. 범용적인 무공 서적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은옥상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겨 서고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서고 안쪽에는 커다란 벽이 있고, 그 벽 가운데에는 작은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문을 보는 순간 무흔은 기관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아챘다. 마교는 교주만이 볼 수 있는 핵심 비급을 기관으로 차단하여 별도로 보관하는 모양이었다.
은옥상이 그를 향해 눈짓하더니 문에 손바닥을 댔다. 놀랍게도 그녀의 손이 닿은 문의 한 부분이 파랗게 물들었다.
“교주와 그에 준하는 사람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열쇠야.”
무흔이 신기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철컥-
은옥상이 가볍게 문을 밀었다. 서고의 벽 안쪽에 다시 작은 석실이 존재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며 가볍게 손을 튕기자 내부가 확 밝아졌다.
“대단하군.”
석실 중앙에 비급이 꽂힌 책장이 열을 지어 있었다. 이곳 역시 책 권수로만 따진다면 운경각 삼 층의 두 배가량이나 되었다.
절로 무흔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무공 비급만 접하면 왜 이렇게 흥분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을 닫자 내부는 완전한 밀실이 됐다. 책과 무흔과 은옥상만이 존재하는 완벽히 폐쇄된 공간이다.
그제야 은옥상이 무흔에게 속삭였다.
“여기에 마교 무공의 핵심이 모두 모여 있어. 어때?”
“좋네.”
“여기는 다른 곳과 사실상 격리되어 있어서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모르지.”
중얼거리면서 책장을 안내하는 은옥상의 말투에 무흔은 피식 웃었다.
서고를 한차례 둘러본 무흔은 금방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단지 마교의 무공만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놀랍게도 절반이 정파의 무공이었다.
정파의 무공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백 년 전 마교가 중원을 휘어잡으면서 멸문시켰던 문파의 무공 비급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유명 문파에서 훔쳐온 것도 있고. 어쨌든 의외로 각 문파에서 실전된 유명 무공이 많아 무흔은 입맛을 다셨다.
“흥미가 돋나 보네?”
무흔은 대답 대신 미소로 응수했다.
절로 손이 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옆 책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있는 비급은 절반이 사공이었고 절반은 마공이었다. 오늘 은옥상과 살펴봐야 하는 무공은 바로 마공이다.
마공 비급의 제목을 쭉 훑어보고 있자니 은옥상이 비급 몇 권을 꺼내 옆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 쭉 늘어놓았다.
“얘네만 어떻게 처리해주면 좋겠어.”
얼핏 보니 다양한 종류의 무공이 섞여 있었다. 예전 혈우파천만겁공처럼 몇 권 중에 한두 권이 소실된 그런 무공이었다.
“이것이면 충분한가?”
“으음…….”
신음을 삼키며 머뭇거리던 은옥상이 무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한참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입을 열지 못하는 모양새다.
“해봐.”
무흔이 먼저 유도하자 한숨을 내쉬던 은옥상이 책장 한쪽을 가리켰다.
무흔의 시선이 저절로 따라갔다.
섬(閃).
재목이 한 글자인 얇은 무공 비급이 놓여 있었다. 무심코 책을 들던 그는 그 옆에 놓인 다른 책을 발견했다.
류(流).
광(光).
패(覇).
심(心).
기이하게도 단 한 글자로 이름이 붙여진 무공이었다. 그 비급을 보는 순간 무흔은 으스스한 기분을 느꼈다.
“이 무공은?”
“그 무공은 역대 마교 교주에게 전해지는 진정한 마공이야. 그 마공을 익혀야 만이 교주로서 자격이 있지. 사실상 마교 무공의 정화라 할 그런 무공이야.”
그녀의 무시무시한 말에 손을 뻗던 무흔은 흠칫 행동을 멈추었다.
그렇다면 현 마교 교주인 혈천마종도 바로 이 무공을 익혔다는 말이 아닌가. 만일 그가 이 마공을 익히거나 연구해서 약점을 알아낸다면 혈천마종을 능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의 내심을 읽은 듯 은옥상이 고개를 저었다.
“보면 알겠지만 그 무공들은 너무 난해해서 아무나 익히지 못해. 또 익히기 전에 사전 단계로 잡다한 다른 마공을 먼저 익혀야 하고. 그래서 그 비급을 쉽게 손대지 못하지.”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진정한 마교 교주가 아닌 범인들은 줘도 익힐 수 없는 그런 무공이란 뜻이다.
“너는?”
“나도 익혀보려 했지만…… 한계에 부딪혔어. 물론 일부 익힌 것도 있긴 하지만…… 다른 소교주도 마찬가지일 거야.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완전히 익히게 되겠지만…….”
어째 그녀의 대답에서 다소의 회의가 느껴졌다.
“사마극도 일부만 익혔어. 패라고 적힌 비급을 말이지.”
얼떨결에 사마극의 가장 중요한 무공을 파악했다.
무흔은 내심 호승심이 일었으나 지금은 꾹꾹 눌러놓았다.
“자, 먼저 저 무공부터 복원해줘. 우리가 이곳에 머물 시간은 오래지 않으니까 서둘러야 해.”
은옥상이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비켜섰다.
무흔은 은옥상이 처음 요구했던 그 비급 가운데 하나를 뽑아 들었다.
혈세파천검법.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했다. 이 무공은 모두 두 권의 비급에 적혀 있었으나 한 권이 사라지고 후반부만 남았다. 이런 무공을 복원하는 일은 이제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무흔을 바라보던 은옥상은 놀고 있을 수 없었던 듯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녀는 다른 무공 비급을 빼 들고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무흔을 간섭하지 않겠다는 배려였다.
무흔은 비급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탁자에 앉을 여유도 없었다.
그는 두 번째 무공부터는 책장 옆에 붙어서 책을 읽었다. 지금은 다른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한차례 읽어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기반을 만들어야 했다. 혈세파천검법을 쭉 읽은 그는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른 무공 비급을 꺼내 또 읽었다.
점차 그의 손을 탄 비급의 권수가 늘어났다.
그렇게 무려 십여 권을 읽은 무흔은 이번에는 교주의 무공이라던 한 글자짜리의 얇고 난해한 비급을 꺼냈다. 슬쩍 은옥상의 눈치를 본 그는 서고 앞에 선 채 비급을 단숨에 독파했다.
정말 난해하긴 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한번 읽어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상관하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섬을 읽고 류를 읽고…….
한참 집중해서 읽고 있을 때 은옥상이 탁자에서 일어나더니 그에게 말했다.
“난 나가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올게.”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은옥상이 문을 열고 나가자 작은 석실 내부에는 무흔만 남았다. 무흔은 비급 읽기를 계속했다.
다행히 비급의 두께가 얇아서 시간이 매우 절약됐다. 언제 다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읽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읽어둘 생각이었다.
한 글자의 제목을 가진 책은 모두 열 권. 무흔은 여섯 권째를 독파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힘든 비급을 자꾸 읽다 보니 다소 지겨워졌다.
무흔은 자리를 옮겨 정파의 무공이 쌓여 있는 곳으로 갔다.
“흠, 소림의 달마보리선공?”
무심코 손에 쥔 비급은 무림의 태두라 일컬어지는 소림의 것이었다. 무흔은 그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무당의 태극혜검진본이라 적힌 책이었다.
무당파에 태극혜검이라는 무공이 있음은 알고 있지만, 이 책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옆의 비급은 화산의 난파매화특검. 처음 들어보는 무공 이름이었다. 구대 문파를 비롯한 유명 문파의 무공이 다수 발견됐다.
이곳에 보름만 머물러도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겠다는 욕심이 절로 솟구쳤으나, 지금은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는 장후성을 떠올리며 화산의 무공 비급을 꺼냈다.
얼마나 읽었을까. 다시 석문이 스르르 열렸다.
당연히 은옥상이 돌아왔으리란 생각을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무흔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보다 한 뼘이나 키가 크고 덩치 역시 그만큼 큰 청년이 서 있었다. 무흔은 처음 보는 인물이다. 몸에서는 절로 사람을 압박하는 위압감이 풍겨 나왔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뭘 놀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무흔을 쓱 훑어보는 남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 무흔은 머리를 굴렸다.
현재 무흔이 변장한 인물은 소교주 사마극. 게다가 이곳은 교주나 소교주가 아니면 출입이 불가한 곳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인물은 오직 한 사람으로 좁혀졌다.
둘째 소교주인 혁무휘!
무흔은 예전 소설에서 보았던 혁무휘의 성격을 떠올렸다. 투박한 성격의 혁무위는 무공에 미친 자였고 마교 교주를 향한 후계 다툼에 휘말렸어도 술수를 부리지 않은 자였다. 그는 노력형으로 끊임없이 무공을 수련했다. 무공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적당하게 무공을 익히는 사마극과 달리 노력 하나로 무의 정점을 추구한 인물이다.
무흔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그의 옆으로 쓱 다가온 혁무휘가 손에 든 비급을 보며 피식 웃었다.
“화산? 갑자기 정파 무공은 왜?”
무흔은 대답하기 어려웠다. 자칫하면 정체를 들킬 우려가 있었다.
무흔이 대답 없이 슬그머니 책을 접고 원위치에 꽂는 것을 본 혁무휘의 표정에 의문이 감돌았다.
“평소 비급을 거의 안 보더니…….”
혁무휘가 그를 노려보며 주위를 빙글 맴돌았다.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무흔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특히나 최근에 절대마령을 품에 넣은 후부터는 중원에 나갈 기회만 엿본다고 하던데…….”
혁무휘의 중얼거림에 무흔은 가슴이 뜨끔했다. 어째 정체가 발각된 느낌이다.
녀석의 중얼거림이 계속됐다.
“절대마령을 손에 넣었다고 교주 자리까지 차지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무엇보다 마교인은 무를 숭상하고 강함을 동경하니까. 본인의 무력이 절대적이지 못하다면 그 권력은 모래성에 불과한 것. 난 말이지…… 요즘 광(光)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데…….”
무흔은 불안한 기분 속에 상대의 얼굴을 쫓았다. 녀석의 눈동자에 의심이 어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외모는 사마극으로 변신했지만 외부로 풍기는 기질까지 바꿀 수는 없다. 상대가 의심하는 주된 이유로 짐작됐다.
혁무휘에게서 도발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광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지 않아?”
무흔은 말없이 상대를 노려보았다.
피식 미소를 머금던 혁무휘가 갑자기 오른손을 들더니 그를 공격해왔다.
“넌 누구냐!”
순식간의 일이었으나 무흔은 대비하고 있었다. 이 순간 상대를 차단할 수 있는 무공. 그것은 무조건 사마극의 무공이어야 했다.
은옥상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사마극은 패를 익히고 있다고 했던가.
그는 패가 적힌 비급을 이미 읽었다. 그리고 그 무공은 5성에 해당하는 숙련도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 한 번도 펼쳐본 적은 없다.
자신의 가슴으로 날아오는 상대의 손바닥을 향해 무흔 역시 오른손으로 맞받아쳤다.
쾅-
두 사람의 손이 맞부딪히며 밀착됐다.
내부에서 내력이 끓어오르며 상대의 공세를 파훼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놀랍게도 혁무휘의 손바닥에서 황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오-
두 사람의 밀착된 손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퍼져나갔다. 마교의 극강 무공인 패와 광이 서로 맞부딪히며 석실 내부의 공기가 요동쳤다.
무흔과 혁무휘는 서로를 노려보며 내력을 더했다.
상대를 짓누르는 죽음의 무위 대결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