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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10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07화

107화. 마교의 준동 (2)

 

 

 

무흔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는 백단영의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녀의 예쁜 얼굴을 코앞에서 접하자 그는 가슴이 뛰었다.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쳐다본 것이 언제였을까.

무흔은 멍한 상태로 잠시 그녀의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뭐해?”

백단영이 눈을 감은 채 그를 재촉했다.

“아…… 네.”

무흔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기를 운용했다. 물건을 향해 격공섭물을 펼칠 때와 사람을 향해 펼칠 때는 기분이 달랐다. 특히 앞에 있는 사람이 백단영이었으니.

무흔은 조심스럽게 기를 뿜어냈다. 마치 손으로 그녀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기를 뻗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상상을 했다.

역시 그 미묘한 기분은 그의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손을 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서 환희가 폭발했다.

무흔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올렸다. 무공을 연마하느라 아래로 처졌던 머리카락 일부를 그녀의 어깨 뒤로 넘어갔다.

‘아! 나도 되는구나.’

그는 감격 속에 슬그머니 그녀의 얼굴로 기를 가져갔다. 손으로 만지는 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기를 뻗어내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을 만져봤다는 감격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꺅! 간지러워.”

그때 백단영이 가벼운 신음을 토하며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격공섭물을 사용하느라 정신을 집중하던 무흔의 운기도 흔들렸다. 부드럽게 움직이던 기의 흐름이 깨지며 격공섭물의 기운이 투박하게 그녀를 엄습했다. 마치 넘어지듯 그 기운은 그녀에게 살짝 충격을 가했다.

무흔은 뜻밖의 상황에 놀라 손을 내저었다.

밖으로 뻗어낸 기운이 엉겁결에 백단영의 가슴팍을 향하면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옷고름이 확 풀렸다. 모든 것이 외부로 방출된 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미숙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악!”

백단영이 깜짝 놀라 상의 자락을 붙잡았다. 옷고름이 풀린다 하여 바로 몸이 노출될 상황은 아니었지만 백단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흔을 노려봤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신없던 무흔은 그제야 사태를 인지하고 마구 고개를 저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 그게 아니고요.”

“야! 무흔! 너, 고의였지?”

“그게 제가 격공섭물이 서툰 데다…….”

“서툴긴 뭐가 서툴러!”

차마 변명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라 무흔은 쩔쩔맸다.

민망해진 백단영도 더는 지적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흥, 나 먼저 들어갈게. 넌 나중에 대호랑 같이 오든가.”

눈 깜짝할 새 백단영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물론 그녀는 어색함을 감추려고 서두른 것이었지만 상처받은 무흔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차라리 제대로 만져나 봤다면 억울하진 않지. 무흔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백단영의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이 아닌 우발적인 사고임을 그녀도 알 테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는 우울한 기분 속에 대호를 찾았다.

양이설과 나란히 무공을 수련하는 대호가 눈에 들어왔다. 어째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평범하지 않았다. 내심 부러워졌다.

 

***

 

예로부터 풍류객들에게 유명한 호수인 동정호는 악양을 거쳐 장강에 합류한다.

동정호만큼이나 절경으로 이름 높은 악양은 최근 다른 이유로 세상에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었다.

바로 흑도 무림의 연맹체인 사마련의 본부가 이곳 악양에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 동정호에는 화려한 불을 밝힌 유람선 몇 척이 시원한 바람을 품고 떠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호젓한 호수의 풍취를 즐기는 한량의 웃음소리와 기녀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유독 한 유람선에서는 지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로 사마련의 핵심 간부들이 이 유람선에서 회의를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련주이자 혈각의 각주인 혈각마신 표우량. 수십 년간 강호를 지배했던 그는 은은한 살기를 풍기면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사마련을 구성한 연합의 중추라 할 광혼곡과 천지문, 멸겁방의 문주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강호의 최강자이자 사파 무림을 이끌어가는 실세로 일반 무림인이라면 눈조차 마주치기를 두려워하는 인물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앞.

오늘 긴장을 유발하는 당사자는 비로 흑의를 걸친 젊은 청년.

유유자적한 태도로 마주하고 있는 자는 바로 마교 소교주인 사마극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마극의 뒤에는 그를 그림자처럼 호위하는 마극삼비가 시립해 있었다.

그들 사이에 내려앉은 질식할 듯한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마극이 사마련주인 혈각마신에게 물었다. 혈각마신은 예순을 넘은 노마다. 그런 그에게 새파랗게 젊은 사마극이 하대하는 모습은 매우 이상한 광경이었다.

“소교주, 우리 사마련도 무림맹을 끝장내고 싶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없소이다. 비록 지난번 청성파의 경우는 기습이었기에 대승을 거두었지만, 현재 대치 중인 점창파의 경우만 보더라도 상황이 다르잖소. 무림맹에서도 주력인 청룡대를 보내 방어하는 상황이라…….”

“혈각마신! 왈가왈부하지 말고 대답하라. 할 건가?”

“끙.”

혈각마신이 신음을 토하며 난감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문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받은 문주들이 찔끔 놀라다가 가까스로 감정을 갈무리했다.사마극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맴돌았다.

마교도 크게 구분하면 사파였지만, 사파 단체가 소속된 사마련에 마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마교는 단일 문파이면서도 강대한 힘으로 사마련과 대등한 위치를 누렸다. 백 년 전 정마대전 때는 오히려 마교가 사마련을 지배했었다.

최근 백 년간 마교가 웅크리는 동안 사마련은 독자적으로 그 세력을 유지했다.

그러다 근래 들어 마교의 세력이 커지고 적극적인 중원 개입을 시사하면서, 다시 사마련은 마교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정마대전 이후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며 무림맹에 대적해온 사마련으로서는 실로 굴욕적인 전개였다.

혈각마신이 가늠한 사마극의 무공은 감히 그들이 어찌해 볼 수준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뒷배인 마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그들이 사마극에게 벌벌 기게 된 이유였다.

“무림맹의 청룡대와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마교가 도울 것이다. 지난 청성파 멸문 때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혈각마신의 변명을 사마극이 바로 잘랐다. 청성파와의 전투에서 마교의 도움은 크지 않았으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 더 큰 도움이 꼭 필요하오.”

“알고 있다. 마교가 있는 한 그대들은 승부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사마극의 주장에 사마련 쪽 사람들은 끌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맹도 겁이 났지만 마교는 더욱 무서웠다.

“그럼 점창파를 공격하는 병력을 두 배 늘려드리면 되오?”

혈각마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 잘 이해했군. 무림맹 청룡대와 좋은 승부가 될 것이다.”

“알았소.”

혈각마신이 마지못해 승낙했다.

뜻을 관철한 사마극이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사마련의 간부들에게 비웃음을 지으며 경고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말하라. 중원에서 영원히 멸문시켜 줄 테니까. 싫으면 말을 들어. 이게 마교 좋다고 하자는 건 아니야. 무림맹이 사라져야 한다는 대의를 위한 거니까. 그렇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사마극의 협박에 사마련 간부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을 쓱 훑어본 사마극이 뒤에 있던 마극삼비에게 손을 까닥였다.

“가자.”

사마극을 선두로 마극삼비가 갑판을 박차고 호수로 몸을 날렸다.

등평도수. 물 위를 비조처럼 날아가는 절정의 경공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호수 저편으로 사마극 무리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놀라운 무위에 감탄하면서 혈각마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실로 놀라운 무위요. 앞날이 걱정되는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막막하오.”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마교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마교 좋은 일만 해주는 겁니다. 사마련과 무림맹이 양패구상을 당하면 바로 중원은 마교 천하가 될 것 아닙니까?”

광혼곡주가 불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천지문주가 거들었다.

“여차하면 마교를 확 쳐버리는 건데…….”

깜짝 놀란 혈각마신이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씀을…… 방금도 보지 않았소? 소문주인 사마극마저 당할 자가 없거늘. 교주인 혈천마종을 무슨 재주로 감당한단 말이오.”

“끙!”

모두가 풀이 죽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혈각마신이 이빨을 악물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따라주어야 할 것 같소. 하지만 우리도 마교에 대항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요.”

“복안이 있으신지요?”

“생각하는 바가 있소.”

혈각마신의 눈빛이 깊어졌다.

 

***

 

스윽- 스윽-

운경각 지하 서고에서 무흔은 생각난 무공 구결을 적고 있었다. 이제는 붓을 쥐고 종이에 반듯하게 글자를 적어 나가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요즘 본격적으로 무공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금 적는 무공은 패천마혼비를 응용한 무공이었다.

강기를 조각내어서 뿌리는 이 공격법은 장법이나 권법에 적절하게 섞어 사용할 수 있기에 그 유용성이 대단히 넓었다. 무흔은 이런 파편의 수를 늘려 보다 많은 파편을 단번에 뿌리는 위력적인 공격 방법을 떠올렸고, 이 무공은 그만큼 파괴력이 강화됐다.

강기를 완벽하게 암기로 사용할 수 있는 이 방법은 상대방의 허를 찌른다는 점에서 효과가 크다.

무흔은 이 무공의 이름을 천강무흔비라 붙였다.

불사신승의 무공인 천강십이수와 짝을 이루면 그 위력이 배가되는, 자신의 이름을 붙일 만한 가치를 지닌 무공이었다. 물론 그의 이름 때문에 무흔이라 붙인 것은 아니고 무흔(無痕)이기 때문에 무흔비다.

무아지경에 빠져 종이에 구결을 옮기다 보니 시간이 유수처럼 흘렀다.

지하서고를 밝히던 관솔불이 꺼지고 내부가 어두워졌으나, 무흔은 신경 쓰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내공이 높아진 이후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대낮과 그리 차이 없이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기에 굳이 불을 켤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어둠 속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그의 윤곽만이 흐릿하게 보여 실내에는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아, 다 썼나…….”

한 장의 종이를 모두 쓴 무흔은 다음 장에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마무리한 종이는 자연스럽게 위로 부상했다. 바로 무흔이 열심히 연습하던 격공섭물이다. 격공섭물이 익숙해지면서 그는 아주 정밀하게 물건을 다룰 수 있게 됐다.

지금 그의 주변에는 이미 완성된 종이가 차례로 허공에 떠올라 순서대로 쌓였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내력이 받쳐주더라도 쉽게 선보일 수 없는 초절정의 경지다.

연일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 무흔에게 최근 들어 아쉬움이 증가했다.

이곳 운경각에는 실로 많은 무공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정파의 무공이다. 정사지간 문파의 무공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사파 쪽은 그렇지 않다. 그나마 사파의 무공은 일부 있긴 하다. 그러나 마교의 무공은 그가 이미 익힌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은옥상을 다시 만나야 할 텐데…….”

마교 소교주인 은옥상은 분명히 두려운 존재이고 엮이면 안 될 존재이긴 하지만, 마교의 무공 서적을 빌려줄 수 있다던 그녀의 제안이 욕심이 났다.

만일 정파의 무공에 마교의 무공이 융합되면 어떻게 될까. 무흔은 행복한 상상을 떠올리며 무공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가 집중해서 구결을 적고 있을 때였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는 미세한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서고 관리인이나 백단영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절정의 무공을 가진 다른 사람이었다.

순간, 허공에 떠 있던 종이가 탁자 위에 떨어져 쌓였다.

무흔이 손가락을 튀기자 석벽에 붙은 관솔불이 일제히 켜지며 실내가 밝아졌다. 삼매진화의 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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