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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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06화
106화. 마교의 준동 (1)
중원의 서쪽, 신강으로 넘어가면 거대한 산이 연달아 등장한다. 첩첩산중이란 표현이 실감 나는 이곳에서도 가장 험준한 산이 있으니 바로 마교가 자리한 천마산이다.
천마산에서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동혈. 이런 동혈의 높이와 너비는 간신히 한 사람이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동시에 무공을 모른다면 걸어 내려가기 불가능할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타고 마교인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선두에 선 자는 현재의 마교를 지배하는 교주 혈천마종 독고황이었고, 그 뒤로 나이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늙은 두 남녀, 마령파파와 마심노야가 뒤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소교주, 사마극, 혁무휘, 은옥상 세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마교의 중추이자 핵심인물이 모두 자리했다. 이들이 은연중에 뿜어내는 기운만으로도 동혈 내부에는 숨 막힐 듯한 압력이 짓눌렀다.
독고황의 손에는 마화령이 잡혀 있었다. 금빛의 판에 박힌 비취빛 보석이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었다.
뒤를 따르던 마령파파가 앞으로 끝없이 뻗은 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켈켈, 이제 다 왔습니다. 이곳이 바로 백 년 전, 전대 교주 파천마종께서 준비해두었던 안배가 묻힌 곳이지요.”
그녀의 목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상기됐다.
점차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그들은 마침내 평평한 곳에 도착했다.
동굴의 벽면은 다른 곳과 달랐다.
벽면 곳곳에 하얀 서리가 끼어 한겨울을 방불케 했다. 심지어 바닥에는 얇은 얼음이 깔렸다. 겨울이 아님에도 살을 에는 기온은 이곳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음, 기온이 많이 차군.”
독고황이 주변을 둘러보며 첫 소감을 밝혔다.
“세 절대마령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중원 십팔만 리 내에서 유일하게 마령이 잠들 수 있는 환경이지요.”
마령파파가 조심스럽게 일행을 안내했다.
그들은 곧 비교적 넓은 연못에 도착했다.
동굴 내부에 형성된 작은 연못이라 그 넓이는 불과 십 장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특이하게도 연못 표면은 얼어 있었고, 놀랄만한 한기가 주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한빙소입니다.”
한빙소(寒氷沼). 지하 깊은 동굴 내에서 차가운 기운이 모여 생성된 작은 연못이었다.
차가운 성질을 가졌기에 연못의 물이 얼어붙은 상태이고 생물이라고는 전혀 살 수 없었다. 신비로운 기운이 감싼 이곳은 마교 영역 내의 은밀한 지역에 있었다.
역대 교주들은 한빙소의 출입을 엄격히 금해왔었다.
“오오, 역시!”
독고황 역시 이곳은 처음이었다.
마화령이 없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빙소에 도착한 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한빙소의 두꺼운 얼음 내부. 연못 중앙에 세 사람이 잠들어 있었다.
이남일녀로 얼핏 보기에 이십 대 중반 정도의 인물로 보였다. 오랜 세월 얼음 속에 잠들어 있기에 피부가 투명하리만치 시퍼렇게 변해있었다.
마치 시신처럼 섬뜩한 한기를 내뿜는 그 모습에 마령파파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두려움이 일었다.
마령파파의 감격한 목소리가 동굴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파천마종께서는 절대 무력인 세 마령을 이곳에 안배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깨지 못할 최강의 전력이지요. 바로 광천마령, 뇌천마령, 음천마령입니다. 이들은 귀혼마령대법에 의해 잠들어 있고 마화령 만이 귀혼마령대법의 금제를 풀고 이들의 혼백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령파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함께 온 사람들이 세 마령을 살피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들은 죽은 자인가?”
설명을 들은 독고황의 의문에 마령파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들이지요. 그렇기에 더 강한 겁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금제를 푼 사람에게만 충성하니까요. 쉽게는 반강시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온전하지는 않으나 약간의 의지도 갖추고 있습니다.”
어차피 그런 부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 무력이라는 마령의 강함에 주목했다.
“절대마령은 단 두 사람만을 주군으로 인식합니다. 그 두 주군은 예정대로 교주님과 첫째 소교주님이 되실 건지요?”
마령파파의 음산한 눈동자가 독고황과 사마극에게 멎었다.
“그렇다.”
“클클, 그럼 지금부터 귀혼마령대법의 금제를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화령에 내력을 넣어보세요. 귀혼마령마화령령”
마령파파의 주문이 이어졌다.
고오오오-
마화령에서 일어나는 음산한 기운이 주위에 내려앉았다. 이 기운은 절대마령이 잠자고 있는 한빙소에 쌓이면서 점차 그 무게를 늘리기 시작했다.
쩌적-
얼음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려한 푸른빛이 절대마령에게서 피어올랐다.
“아아!”
독고황은 탄성을 흘리며 마화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마화령이 격렬한 진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령파파의 주문이 더욱 고조됐다.
마교의 절대 무력인 세 절대마령, 광천마령, 뇌천마령, 음천마령의 부활이 시작됐다.
중원의 무림맹에서는 당연히 이런 사실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만혈대에서 돌아온 후 무흔과 백단영이 연연의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갑작스럽게 무공이 늘어난 백단영은 용봉대 연무장에서 평소처럼 무공을 수련하기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구진광과의 한바탕으로 그녀의 무공이 늘었다는 사실이 일부 알려지긴 했으나, 그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연의방이 떠올랐고 무흔과 동행하게 됐다.
무흔 역시 무공 수련이 필요했고, 백단영의 수련 상대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기에 거부하지 않았다.
백단영은 무흔의 무공 실력을 정확히 모르지만, 그의 내공이 범상치 않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반겼다.
연연의방의 뒤쪽에 붙어 있는 넓은 뜰에 네 사람이 모였다.
바로 무흔과 백단영, 대호, 양이설이다.
“여기서 이렇게…….”
그동안 무흔은 대호에게 복마십팔검법을 일일이 설명해줬다.
당연히 양이설 역시 함께 배웠다. 두 사람의 자질은 상당히 뛰어나 오늘부로 검식의 기초를 완전히 익혔다. 물론 아직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검법은 정말 유용할 것 같아.”
대호가 마지막 십팔 식을 따라서 연습하며 느낌을 말했다. 사문의 무공보다 훨씬 실전에 적합하게 개발된 무공이란 의미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양이설 역시 구슬땀을 흘리며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무흔의 시범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초식을 수련했다.
무흔은 한쪽에 떨어져서 두 사람의 수련 모습을 지켜봤다. 둘의 수준이 비슷하여 착착 맞는 느낌이다. 그가 없는 동안 대호가 자주 찾아와서 같이 수련했다더니 둘 사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백단영이었다.
“우리도 할까?”
그녀가 요구하는 무공은 천강십이수. 바로 불사신승의 무학이다.
무흔도 그 구결을 보았고 천강십이수를 익혔다는 사실을 백단영도 알고 있었다. 즉, 그녀는 같은 천강십이수로 비무를 하면서 무공을 더 익숙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무흔도 당연히 찬성이었다.
백단영이 자세를 잡고 그를 향해 공격해왔다.
천강십이수는 손을 사용해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무공이기에 권법과 유사하다. 다만 내력이 제대로 주입되면 그 위력이 훨씬 막강해진다.
“아, 그 부분에서는 그게 아니고요.”
서로 합을 맞추어보며 무흔이 미흡한 부분을 지적했다.
무흔의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리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백단영은 그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다시 두 사람이 합을 맞추고 그다음에는 내공까지 일부 일으킨 상태에서 다시 합을 맞췄다.
“이 무공 괜찮네.”
그동안 검법만 집중적으로 수련했던 백단영이 수련을 끝내고 감탄을 터트렸다.
검법과는 완전히 다른 수격의 위력에 매료된 것이다. 항상 검을 소지할 수는 없으므로 권법이든 장법이든 익혀두는 것이 유리한 상황에서 천강십이수는 그녀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무흔은 워낙 다양한 무공을 접하고 있어 딱히 천강십이수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지만.
그가 추정한 그녀의 숙련도는 벌써 5성가량으로 그와 비슷했다. 앞으로 실전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심법은 어때요?”
“반야금강선공?”
“네.”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어. 이제는 무애잡아함경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두 심법 모두 불가의 것이라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잘 화합하는 모양이었다.
무흔이 추정하기에 그녀의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 불사신승의 환단을 흡수한 이후로 그녀의 내력은 사실상 정상급에 올라섰으니까.
문득 무흔은 내력을 운용하여 외부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이른바 격공섭물. 과연 그와 백단영도 할 수 있을까.
“흠, 아가씨, 격공섭물 할 줄 알아요?”
“격공섭물? 그건 진정한 고수만 할 수 있는 거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젓던 그녀는 자신 역시 내력에서 그런 고수에 밑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제는 예전처럼 본인을 약하다고 간주하면 잘못된 생각이다.
고개를 흔들던 그녀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직 해본 적 없어. 넌?”
“저도 아직요. 하지만 될 것 같지 않아요?”
무흔은 예전에 격공섭물을 써본 적이 있다. 바로 비무대회 대진표가 발표되었을 때 유연향에게 물벼락을 내린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투박하게 단지 멀리 떨어진 사물을 움직였을 뿐이다. 섬세하게 사물을 움직이는 고난도 격공섭물은 그의 능력 밖이었다.
무흔은 예전에 서옹이 펼치는 격공섭물을 떠올렸다. 검을 허공에서 이동시켜 매끈하게 자리를 옮기던 수법에 감탄하지 않았던가.
“해볼까?”
두 사람은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았다. 각자의 앞에는 작은 술잔이 하나씩 놓였다. 잔 내부에는 물을 채워놓고 두 사람은 잔을 노려봤다.
내공을 끌어올리고 그 내공을 외부로 뽑아내어 술잔을 건드렸다.
내공이 작지 않기에 당연히 변화가 일었다. 술잔에 차 있는 물이 출렁이더니 술잔이 팍 넘어졌다.
“헉!”
무흔이 낭패라고 생각하는 찰나 백단영의 술잔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녀 역시 내력을 외부로 뿜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내력을 섬세하게 다루기는 어려웠다.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술잔의 반응에 고무된 백단영이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애초에 그녀의 내공이라면 이런 수준을 손쉽게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 요령이 부족한 탓이었다.
무흔은 다시 잔에 물을 채우고 정신을 집중했다.
마치 손을 뻗는 것처럼 기를 앞으로 내뻗고 마치 기가 손인 것처럼 기를 조종했다. 술잔의 물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무흔은 전력을 기울여 간신히 물을 쏟지 않고 술잔을 살짝 옮겼다. 이런 실험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더욱 어렵기에 무흔은 나름 만족했다.
“후아!”
간신히 성공한 무흔은 백단영의 술잔을 관찰했다. 그녀의 술잔 역시 미세하게 떨림을 일으키며 이동했다. 술잔을 노려보는 그녀의 집중력이 엄청나 보였다.
“아가씨도 되네요.”
“응, 조금 더 연습하면 자유롭게 될 것 같아.”
백단영이 신이 나서 연습을 계속했다. 그녀의 격공섭물이 점점 매끄러워졌다. 자신감을 얻은 백단영이 이번에는 무흔을 향했다.
“가만있어 봐. 사람에게도 되나 해보게.”
무흔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가운데 백단영이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기를 끌어올렸다.
무흔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가 그를 슬그머니 건드리는 기분이랄까. 부드럽게 어루만져지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의 머리카락이 마치 빗질하듯 스르륵 넘어갔다. 전혀 충격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쓰다듬는 그녀의 능력을 체감하면서 무흔은 그녀가 격공섭물을 거의 완성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백단영이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토해냈다.
“정말 되네. 더 연습하면 검법에서 이기어검술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수강이나 검강 같은 것도 될지도 모르고.”
엄청난 이야기가 그녀에게서 쏟아졌다. 모두 무림인이라면 꿈에 바라는 경지다.
“자, 이제 너도 해 봐.”
백단영이 그의 맞은편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방금 그녀가 실험해본 것처럼 사람을 상대로 해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