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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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03화
103화. 탈출 (4)
우우우웅-
넓은 대전에 질식할 듯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백 년 만에 기지개를 켜는 마교의 실질적인 종주, 마교 교주 혈천마종 독고황이 굳은 표정으로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주요인물이 열을 지어 시립해 있었다. 그의 시선이 가장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에게 멎었다.
마교의 소교주. 가장 아끼는 제자로서 훗날 그의 뒤를 이어 교주의 지위에 오를 자격을 갖춘 세 사람이다.
천마서생 사마극.
광세신마 혁무휘.
구유일미 은옥상.
그 중 사마극은 차기 교주 지명에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잔인하고 주도면밀하며 굽힘 없는 저돌성도 있어 현 교주와 가장 비슷한 인물이기도 했다. 무공에서 천재적인 면을 보여주었고 외모에서 귀공자 분위기를 띠어 마교도에게 인기가 많았다.
혁무휘는 공식 석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항상 무공 수련에 몰두한다는 것뿐이다. 겉보기에 듬직한 거구를 자랑하는 그는 힘을 숭상하는 마교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은옥상은 천방지축이라고 표현될 만큼 종잡기 힘든 성격을 지녔다. 활동 역시 매화곡 장문 제자란 신분으로 중원과 마교를 넘나들었다. 다른 소교주에 비해 무공이 떨어진다는 평이었으나 마교의 꽃으로 나름 확고한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서 예를 갖춘 사마극이 품에서 마화령을 꺼냈다.
“이것이 바로 만혈대에서 찾은 마화령입니다.”
사마극이 두 손으로 마화령을 교주인 혈천마종에게 전했다.
장내에 질식할 듯한 침묵이 흘렀다. 혈천마종은 마화령을 훑어보며 진위를 확인했다. 서서히 그의 안면이 환희로 물들었다.
“오오! 진짜 마화령이군.”
혈천마종의 선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백 년 전 잃어버린 마교의 신물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정말 마화령입니까?”
마령파파의 주름진 눈에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보아라.”
혈천마종이 마교 교주에게만 전해지는 비전무공을 일으키자 마화령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마화령에서 은은한 마기가 뿌려졌다. 이 마기는 밝은 적색을 띠며 대전 내부에 물 흐르듯 퍼져나갔다.
“아아! 진짜였군요.”
마령파파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를 선두로 모든 마교인이 일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세 소교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화령은 교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다.”
혈천마종이 감격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간 마화령이 없었어도 교주님의 권위는 절대무쌍이었습니다.”
마령파파의 대답에 혈천마종이 대소를 터트렸다.
“핫핫, 그렇더라도 마화령의 권위만 했겠느냐. 이제 마화령의 뜻으로 중원정벌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혈천마종이 잠시 말을 끊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잠시 후 묵직한 일성이 이어졌다.
“마화령으로 귀혼마령대법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아! 귀혼마령대법을…….”
무릎을 꿇은 모든 마교인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귀혼마령대법. 백 년 전 만혈대에 갇혀 죽어간 파천마종이 안배해두었다는 절대 무력, 마교 역사상 다시 없을 최강의 세 절대마령을 부활시키는 대법이었다.
“굳이 귀혼마령대법으로 마령을 부활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힘은 중원 무림맹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마령파파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마화령을 높이 든 혈천마종이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만사는 확실해야 하지 않느냐. 백 년 전에도 그런 판단 때문에 절대마령을 깨우지 않았다. 결과는 백 년의 굴욕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그런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귀혼마령대법을 시행하여 절대마령을 깨우겠다는 선언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장내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마화령을 가져온 첫째 소교주 사마극의 공로가 절대 작지 않다. 이에 앞으로 귀혼마령대법의 시행을 사마극이 돕게 할 것이다.”
혈천마종의 선언이 뜻하는 바를 깨달은 세 소교주의 표정이 살짝 갈렸다.
사마극의 얼굴에는 희열이, 은옥상의 안면에는 불안감이, 무덤덤한 혁무휘의 안면은 변화가 없었다.
사마극이 돕게 되면 이 대법으로 부활되는 세 마령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사실상 마교 최강의 절대 무력을 통제하게 되므로 이것은 차기 교주로 내정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가는 가운데 귀혼마령대법을 위한 마령파파의 추가적인 보고가 시작되자 장내는 본래의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
무흔과 백단영은 무림맹이 있는 개봉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무림의 소식에 귀를 열어놓았던 그들은 용봉대가 만혈대에서 철수 후 개봉으로 돌아갔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무흔은 용봉대가 주요 임무를 완수했지만, 그 피해가 적지 않았기에 이런 행보를 취했다고 추정했다.
무림맹과 사마련의 전투는 청성파 멸문 이후로 소강상태를 보였다.
무림맹의 청룡대가 사마련의 다음 목적지인 점창파로 집결하고 마교 역시 본래의 목적인 만혈대 수색이 끝난 터라 굳이 추가로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개봉으로 이동하면서 만났던 무림의 민심은 사마련과 마교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백 년 전의 정마대전을 떠올리는 자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백단영은 빨리 용봉대에 합류하는 것을 스스로 거부했다.
“용봉대 합류 전에 완벽해지고 싶어.”
백단영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중얼거렸다.
“지금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어요.”
불과 몇 달 전, 그녀는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못한 미진한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사실상 무림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무공 수준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무흔의 도움으로 무애잡아함경과 백변연환검을 익히면서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천상신모와 불사신승의 절학을 이으면서 이제는 용봉대 내에서도 적수가 없을 수준에 오른 것이다.
“이왕 늦었잖아. 내공도 완벽해진 후 용봉대에 합류하고 싶어.”
불사신승이 남긴 내력을 얻으면 화룡점정이 되어 그녀는 최강의 무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백단영 역시 이 사실을 알기에 무림맹 입성을 미루는 것이다.
“그럼 연연의방에 가시게요?”
“응, 그곳에서 완성된 나를 느껴보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무흔이 고수로 거듭나는 것도 보고 싶어.”
자신은 이미 고수라고 대답하려다가 무흔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 데다, 자신 역시 이제는 무공에 비해 내력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년적화초와 심령망혼사의 기연을 얻었음에도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많은 내공이 필요했다. 적어도 혈우파천만겁공을 사용해서 잠력을 폭발시키지 않아도 충분할 그런 내공 말이다.
기분이 좋아진 무흔이 그녀를 연연의방으로 안내했다.
연연의방에는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이곳에 자리 잡고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명의라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양이설이 먼저 귀의를 만나도 된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거절하고 귀의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두 사람은 어린 소녀 곽연연과 놀았다.
“곰 아저씨도 자주 오니?”
무흔은 연연에게 대호의 안부를 물었다.
“엊그제도 당과 사 오셨어.”
연연이 무흔에게 매달리며 대답했다. 무흔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심했다. 적어도 대호가 무탈하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연연이 입술을 삐죽이며 의방 안쪽을 손가락질했다.
“왜?”
“요즘 대호 아찌는 나랑 잘 안 놀아줘. 나보다 언니랑 더 많이 놀아.”
“아하!”
무흔은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했다.
대호가 양이설에게 관심이 생겼나 보다. 무흔은 웃음을 터트리며 연연을 달랬다.
그때 무흔의 품에 안긴 연연이 옆에 앉은 백단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언니는 누구야? 지난번에도 같이 왔었는데…….”
연연이 옆에 앉은 백단영을 한참 살폈다.
“나? 백단영.”
백단영이 연연의 작은 손을 마주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연연이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하! 무흔 아찌 이거구나?”
연연이 새끼손가락을 펴 보였다.
무흔이 급히 연연의 손가락을 접으며 정정했다.
“아냐, 주인집 아가씨야.”
“그게 그거 아냐?”
어린 연연이 주인집 아가씨를 이해하려면 아직 어려우려나. 미안한 표정을 짓는 무흔과 달리 백단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근데 나 당과 먹고 싶어.”
연연이 백단영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연히 사 오라는 뜻이다.
무흔이 연연을 내려놓으며 자신이 가겠다고 하는 순간 백단영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가서 사 올게. 무흔도 먹을 거니?”
겉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은 무흔이었지만 어째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백단영이 당과를 사러 밖으로 사라졌다.
무흔은 매화곡에서 복숭아를 사러 갔던 은옥상을 떠올렸다.
어째 그의 옆에 있는 여자들은 심부름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매일 떡 심부름하는 그도 마찬가지 신세이긴 했지만.
***
귀의가 보는 가운데 무흔과 백단영은 옥합을 열었다. 불사신승의 내력이 담긴 소림대환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귀의는 대환단을 보는 순간 이 환단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금방 알아챘다. 조심스럽게 살피던 귀의가 감탄을 발했다.
“아! 이게 소림대환단이라고? 내가 말로만 듣던 대환단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밝은 곳에서 다시 본 소림대환단은 담녹색의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무림인이 아니어도 소림대환단의 명성을 모를 리 없다.
“이 환단에는 고승의 내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물건에 내력을 담을 수 있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귀의가 반신반의했다.
“그게 가능한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불사신승의 말씀이니 믿어야 할 겁니다.”
무흔은 간략하게 이 환단을 입수한 과정을 설명했다.
사뭇 진지해진 귀의에게 무흔은 이곳에 온 이유를 꺼냈다.
“예전에 제 단전에 응어리졌던 영약의 약효를 내력으로 전환해 주셨잖습니까? 대환단도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네.”
귀의가 흔쾌히 수락했다.
무흔과 백단영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한 사람이 이 둘을 전부 삼킨다면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 하나씩 먹을 겁니다.”
무흔이 바로 정리했다.
의도를 확인한 귀의가 설명을 시작했다.
“환단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자네의 말이 옳다면 엄청난 내력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고통이 수반되는 것만은 어쩔 수 없네. 나는 그 고통을 최대한으로 덜어주고 흡수 효율을 올려 줄 수 있을 뿐이라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무흔과 백단영의 결심에 귀의가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하겠나?”
“제가 먼저 하지요.”
만일에 닥칠 위험을 대비해서 무흔이 먼저 나섰다.
귀의가 금침이 담긴 함을 꺼내면서 모두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나가 있게나.”
무흔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 대환단의 약효를 그대로 흡수한다면 자신의 내력은 얼마나 될까.
얼핏 계산되지 않았으나 예측되는 사실은 있었다. 오늘 이후부터는 누구에게도 내공 면에서 밀리지 않으리란 사실이다.
아마 그의 내공은 불사신승에 필적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현 무림맹주인 의천진인이나 마교 교주인 혈천마종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문득 무흔은 백단영을 떠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이에 필적한 내공을 갖게 됐다. 이제 전대 기인의 무공에다 이에 걸맞은 내공마저 뒷받침되었으니, 그녀 또한 무림 최강의 고수로 올라설 것이다.
예전 소설에서 보았던 천향무후의 현신이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백단영이 등장했다.
무흔은 천향무후의 신위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
무흔은 연연약방 뒤에 붙어 있는 넓은 뜰로 나왔다.
뒤를 이어 백단영이 대환단의 내력을 흡수하는 동안 그는 뜰을 거닐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내공을 지내게 된 그는 절로 우쭐해졌다. 팔과 다리에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빨리 시험해보고 싶단 말이지…….”
하지만 이곳에서 내력을 가늠해보기는 쉽지 않다.
그는 머릿속에서 내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상태로 펼치는 비천삼검을 떠올렸다. 어마어마한 위력이 그려지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문득 조금이나마 위력을 펼쳐보고 싶었다.
그는 발을 구르는 진각을 생각해냈다.
내력을 일으킨 그는 뜰을 바라보며 힘껏 발을 굴렀다.
쿠웅-
“허억!”
마치 산사태가 난 듯 지면이 흔들리며 땅거죽에 마치 유리판처럼 금이 쭉쭉 그어졌다.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간 것처럼 땅이 파헤쳐져 난장판이 됐다. 그나마 집이 무너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위력에 혼비백산한 무흔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입만 벌리고 있자니 안에서 양이설이 튀어나왔다.
“무,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진이 났나 봐요.”
무흔은 재빨리 둘러대며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