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0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00화
100화. 탈출 (1)
하루하루 성장하는 백단영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이곳 지하미로를 탈출하는 것이다.
무흔은 이곳에 들어온 날 보았던 비도를 떠올렸다.
일부는 찢겨 나가고 일부는 물에 젖은 불완전한 비도였으나, 그 비도를 떠올리니 이곳의 구조가 일부분 이해됐다.
“전체를 봤었다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에 중얼거리고 있자니 그의 눈앞으로 사과가 넘어왔다. 당연히 사과를 전하는 사람은 백단영이다. 어느새 수련을 끝내고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어? 사과도 있었어요?”
“당연히 사과도 있지.”
백단영의 행낭에서 어떻게 저렇게 먹을거리가 많이 나오는지는 그도 의문이었다. 그가 가져왔던 육포는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그가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다시 고민에 잠기자 그녀가 물었다.
“전체를 보다니?”
“아…… 비도요. 그게 있다면 출구 찾기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이거?”
백단영이 이번에는 사과가 아닌 양피지 조각을 쑥 내밀었다.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상황 발생에 무흔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째 아가씨께선 뭐든지 필요하면 다 갖고 있네요?”
“내가 누구냐? 히히.”
그녀가 겸연쩍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비도는 원래 구진광이 갖고 있었으나, 그날 백단영이 잠시 살펴보느라 그녀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어쨌든 비도가 있으니 탈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이건 왜?”
“제가 운경각에서 기관진식 책도 봤잖아요.”
정확하게는 만변귀공 뒤쪽에 적힌 기초 부분만 읽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다 밝힐 필요는 없었다.
“흠, 그럼 지도를 보면 알겠네?”
“조금은요. 여기 제갈 소협이 부연 설명을 붙여두었지만 숨은 내용이 더 있거든요.”
무흔은 양피지를 펴고 열심히 미로 지도를 살폈다. 그녀가 옆에서 화섭자를 들어 불을 밝혀줬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상황이니 저절로 협조가 잘된다.
지도에서 전반적인 동굴 구조를 확인한 그는 해당 지역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깊이가 다른 동굴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었다.
마침내 그는 이 막다른 동굴 바로 위로 다른 동굴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느 지역인지 정확히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현대 지도는 그 위치가 정확한데 이건 대충 눈대중으로 그린 거라 너무 부정확해.’
엄밀하게는 이 동굴과 교차하는 위쪽 동굴은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백단영이 뛰어내렸다는 그 동굴. 기관에 의해 천장으로 뚫린 그곳은 동굴이 무너질 때 사마극이 거대한 바위로 막아버렸으니 절대 뚫을 수 없다.
다른 동굴 하나가 지금 그들이 앉은 장소 위로 통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또,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기 어려웠다.
“찾았어?”
백단영의 질문에 무흔이 긍정을 나타냈다.
“여기 위쪽으로 가까운 곳에 동굴이 지나가고 있어요.”
암벽이 드리워진 천장을 바라보니 막막함 그 자체였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백단영이 말했다.
“쉽지 않겠네.”
“정확한 위치만 알면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이제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했다. 암벽을 투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찾을 방법이 없…… 다고 생각하던 무흔이 입을 쩍 벌렸다.
“그래, 투시야. 투시.”
“응? 뭐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단영을 내버려 두고 무흔은 천장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그가 떠올린 생각은 바로 현대의 초음파 기기였다. 투시는 불가능하지만 초음파 기기처럼 그 내부를 볼 방법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력을 일부 짜내어 내기를 동굴 벽에 불어넣으면 그 이면의 정보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벽을 통해 흘러가는 내기가 벽의 구성 성분에 따라 반사되어 돌아온다.
무림인이라면 그 여파를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까 잘만 이용하면 초음파 기기처럼 활용할 수 있으리란 것이 무흔의 생각이었다.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무흔은 먼저 동굴 벽에 손바닥을 대고 실험해보기로 했다.
천단비화신공을 운용하면서 천천히 내공을 손바닥에 모았다. 아주 조금씩 기운을 벽을 통해 흘려 넣었다. 꽤 깊은 곳까지 넣었지만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쪽 벽은 깊은 곳까지 같은 재질의 암석이나 흙으로 꽉 막혀있다는 것이다.
“뭐하니?”
보다 못한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력을 일부 흘려보고 있어요.”
“어? 무흔이 너 고수였어?”
예상치 못하게 백단영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덩달아 무흔도 화들짝 놀랐다.
아차! 이런 부작용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그녀는 무흔이 운경각 비급을 많이 읽었지만 실제로 익힌 무공은 변변찮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뭐라도 변명을 하긴 해야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무흔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번에 이곳에 오기 전에 제가 신화곡에 들렀잖아요? 거기에서 전대 문주인 북악신군을 만났거든요? 동굴에서 감금 상태였던 그분을 구해드렸더니 심령망혼사 내단을 주시더라고요.”
대충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내단을 먹었어?”
“네, 덕분에 내공이 왕창 늘어서…….”
백단영은 긴가민가 못 믿는 눈치였으나 지금 그 진위를 따질 때가 아니라 생각한 듯 그를 축하해줬다.
무흔은 일어나서 이번에는 천장을 향해 손바닥을 댔다. 조심스럽게 내력을 천장 속으로 흘리고 반사되어 오는 기운을 감지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다시 옆으로 옮겨가서 손바닥을 댔다. 어차피 할 일은 없고 기댈 다른 방법도 없기에 꾸준하게 실험을 계속했다.
그렇게 하루 뒤.
무흔은 특이한 현상을 감지했다.
그가 손바닥을 댄 천장에서 약 반 장쯤 되는 위에 흙이나 암석이 아닌 다른 물질이 존재했다. 부근 몇 군데를 더 확인한 다음 그는 그곳이 비어있는 공간임을 확신했다. 역시 짐작대로 천장 그 지점 위로 다른 동굴이 교차 되고 있었다.
“여기예요.”
그가 정확한 위치를 찍었으나 백단영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당연한 반응인가.
“무공을 참 희한하게 응용하네.”
“하하, 다 하기 나름이죠.”
무흔은 추정한 동굴 형태를 토대로 열심히 바닥에 그림을 그려줬다.
기대하던 백단영이 금방 풀이 죽었다.
“너무 거리가 멀어. 우리가 검을 연장 삼아 천장을 후벼 파서 뚫으려면 보름은 걸릴 것 같아.”
그녀의 지적은 정확했다. 설사 모든 내력을 실어서 천장을 향해 검법이든 장법이든 후려친다고 해도 구멍을 뚫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무흔은 아니다.
백단영을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곳 세상에 넘어온 그였으니까.
“제가 누굽니까?”
“응? 너 무흔이잖아?”
“아가씨를 구하려는 제 마음을 격하하지 마세요.”
“어휴, 장난하지 말고.”
그래도 그의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한 듯 격려해주는 그녀에게 무흔은 매화곡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제가 매화곡에서 무공을 복원하는 일을 했다고 했었죠?”
“그랬지. 거기에서 아름다운 은옥상에게 홀려서…….”
백단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흔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비무에서 와장창 깨졌으니 그녀가 은옥상에게 가진 반감을 알 법하다.
“그때 제가 복원한 무공이 혈우파천만겁공이란 마교의 무공인데요…….”
무흔은 혈우파천만겁공의 특별한 효능을 설명했다. 몸에 내재한 잠력을 폭발시켜 일순간 그 위력을 수배로 폭증하는 마공이 아니던가.
혈우파천만겁공으로 잠력을 극대화 시킨 후 비천삼검을 펼쳤을 때 그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는 마교 서열 십구 위라던 잔혼객을 상대하면서 그 위력을 이미 확인한 바가 있었다.
그 무공을 똑같이 이곳 지하미로에서 펼친다면? 아마 동굴 천정을 거의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무흔은 계획을 점검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을 노려봤다.
불안해진 백단영이 그를 말렸다.
“그거 위험하지 않아?”
“현재로는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설마 한 달 동안 먹을 게 있을 리도 없고…….”
사실상 최후의 방법이기에 백단영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생각난 김에 해보죠.”
이 무공을 펼치는 순간 백단영이 그의 무공 수위를 눈치채겠지만, 어차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백단영도 천상비연검법을 익힌 이상 절대 무흔의 하수가 아니니까.
무흔은 묵천신검을 꺼냈다. 주변이 어두워서 백단영이 검을 확인하더라도 좋은 검인지 알 방법이 없었고 어차피 보더라도 특별히 좋게 보일 검은 아니었다.
양손으로 검을 잡고 그는 내력을 운기했다. 혈우파천만겁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몸속의 내기가 폭증하며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솟구치던 기운이 점차 묵천신검으로 옮겨갔다.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검신에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현상은 검기를 끌어내는 수준을 넘어선 검강의 초기 단계였지만 무흔이나 백단영은 그 사실을 몰랐다.
고오오오-
무흔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그는 비천삼검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삼 식을 펼쳤다. 묵천신검이 동굴 천장을 가르면서 마치 벼락이 치듯 가공할 번쩍임이 폭발하듯 터졌다.
콰아아앙-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광휘에 백단영은 눈을 감았다.
거대한 충격을 받은 동굴의 벽이 진동을 일으켰다.
쿠르르르-
급기야 천정이 무너지면서 흙과 암석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내력을 완전히 소모해버린 무흔은 그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무흔!”
뾰족한 비명과 함께 백단영이 흙더미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구했다.
탈진한 상태가 된 무흔은 몸을 그녀에게 맡겼다.
***
한참 동안 운기조식에 빠져있던 무흔이 다시 눈을 뜬 것은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무흔이 내기를 안정시키는 동안 백단영은 안절부절못하고 옆을 서성거리며 걱정했다. 무흔이 보여준 폭발적인 위력은 그녀의 입을 쩍 벌어지게 했지만, 무흔이 혼절하면서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였다.
“어떻게 되었어요?”
무흔은 눈을 뜨자마자 동굴 천장의 상황을 물었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어떻게 되긴. 완전히 무너져 내렸지. 깔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야.”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흙더미가 쏟아져 내려 동굴의 절반가량이 막혀있고, 그 위로 컴컴한 구멍이 하나 뻥 뚫려 있었다. 모든 것이 무흔의 생각대로였다.
“그러면 통로가 열린 건가요?”
“응, 다행히 그 지점에 다른 동굴이 교차하고 있었어.”
생각이 맞아떨어졌다는 점 때문에 무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정작 그 모습을 본 백단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동굴에서 나가게 되어 좋은가 봐?”
어째 그녀의 표정이 썩 달가운 것 같지 않았다. 무흔은 그녀의 내심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굴에서 나가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래, 좋은 거 맞지. 맛난 것도 먹고.”
행낭을 비롯한 짐을 챙기며 그녀가 대답했다.
백단영이 먼저 뚫린 구멍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갔다. 당연히 무흔이 아래에서 그녀를 받쳤다.
머물던 곳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면서 무흔은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단영과 둘이서 굶어 죽었을 텐데…… 그녀와 둘이서라면 그런 결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에이, 무슨 생각을. 나의 임무는 천향무후를 구하는 것인데…….”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있자니 백단영이 위에서 손을 내밀었다.
“얼른 올라와.”
무흔은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그곳도 기관진식이 설치된 지하 미로였다. 곳곳에 하얀 백골이 널려 있었고, 최근에 죽은 듯한 시신마저 발견됐다.
예상보다 참혹한 모습에 백단영이 안면을 찌푸렸다.
“싸움은 결국 어떻게 끝난 걸까?”
사방이 조용한 것으로 보아 전투가 끝난 지 오래였다. 과연 무림맹이 이겼을까 아니면 마교 측이 이겼을까. 그리고 이곳에 온 용봉대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무흔은 대략적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예전 소설에서 보면 마교는 신물인 마화령을 발견한 후 바로 철수했었으니까. 덕분에 용봉대원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단영이 비도를 꺼내어 현재의 위치와 나갈 방향을 찾았다.
미로의 출구 방향을 상의하던 그는 예전 소설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렸다. 뭔가 엄청난 것을 빼먹은 느낌이 왔다. 그게 뭐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