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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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94화
94화. 만혈대 (1)
사천과 청해의 경계에는 대벽산이란 큰 산이 솟아 있었다.
대벽산이 유명해진 이유는 한때 마교의 중원 침범 기지가 건설되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대벽산에서 가장 험난한 산봉우리에는 만혈대라는 거대한 암반이 칼처럼 솟아 있다.
이 암반 지하에는 백 년 전 마교에서 건설한 온갖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당시 무림맹과 마교는 혈투를 벌였으며 사실상 양쪽 모두 전멸하는 비극을 남겼다. 이 암반의 이름이 만혈대인 이유도 만인(萬人)의 피가 묻혀있기 때문이다.
대벽산 중턱에 수십 명의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만혈대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일대를 장악했다. 바로 용봉대와 그 예속 부대원들이었다.
다가올 수색과 전투에 대비해 모두가 맡은 일에 열중하는 사이, 풍사검객과 서옹, 제갈수 세 사람이 모여 작전을 짰다.
“방금 전서구로 연락 온 바에 따르면 사마련에서 청성파를 쳤다고 하네.”
풍사검객이 분노의 일성을 발했다.
이처럼 구파가 직접 공격당한 것은 과거 백 년 전 정마대전이후 처음이었다.
“사마련은 마교의 사주를 받았겠지요?”
“마교인도 섞여 있었다는 것 같아.”
“청성은 어떻답니까?”
“가까스로 멸문을 면했나 봐.”
제갈수의 질문에 풍사검객이 대답했다. 우울한 소식에 모두 말을 잃었다.
제갈수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역시 그들이 청성을 친 이유는…….”
“그래, 그들은 무림맹의 시선을 청성으로 돌리려고 한 짓이야. 실제로는 이곳 만혈대를 노릴 것이고. 이미 대벽산 아래로 파견되었던 청룡대가 청성으로 기수를 돌렸으니까.”
이런 마교의 전략은 책사인 만박노사와 제갈수 두 사람이 이미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단지 어느 문파가 공격당할지 몰랐을 뿐.
“그렇다면 그들도 곧 이곳에 나타나겠군요.”
“이곳에 와서 우리가 먼저 도착한 것을 보고 허를 찔렸다고 생각하겠지.”
제갈수는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어쨌든 상대방보다 책략에서 앞서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풍사검객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한 것은 이곳에서의 위험이 더 커졌다는 사실이야.”
“그렇겠군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내부 기관진식을 해석한 장보도가 있습니다.”
“마교는 그 기관진식을 건설했던 자들이다.”
풍사검객이 제갈수의 낙관을 경고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제갈수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일재 자네가 새롭게 전략을 짜 주어야겠어. 지하미로 내부에서 마교와 부딪힌다는 것을 당연시해서 말이지.”
제갈수가 풍사검객의 명에 따라 품에서 장보도를 꺼냈다.
제갈수에게 이런 일은 어렵지 않다.
그는 곧바로 새롭게 전략을 수립했다. 애초에는 빨리 내부를 탐사하기 위해 인원을 여러 조로 나누었던 것을 일부 통합해서 전투조를 새롭게 신설했다.
풍사검객과 서옹은 제갈수의 임기응변에 만족을 표했다.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지원조인 예속 부대원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적과 싸울 능력이 없으니까요. 지원조의 위치를 만혈대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물론 경계 및 정탐 인원은 배치하고요.”
세심한 제갈수의 배려에 서옹이 동의했다.
풍사검객이 작전 개시를 선언했다.
“자, 서두르자고. 적들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내부를 더 확인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
사전작업을 마친 용봉대는 만혈대 아래 지하미로로 진입했다.
진입 구성원은 용봉대와 구파일방이었다.
용봉대 외에 선조의 유품을 찾으려는 구파일방의 인원들이 상당수 참여했다. 이들은 제갈수의 요청에 따라 반반으로 나뉘었다.
만혈대 진입로 부근에서 마교의 침입을 저지할 인원과 내부에서 수색을 담당할 인원이었다.
마교 저지조에는 장후성을 비롯하여 남궁이화, 현공 등 용봉대 최강자가 주로 포진됐다. 구파일방에서 지원 온 사람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자들이 합류했다.
백단영은 내부 수색조에 편성됐다.
구진광은 애초에 저지조였으나 수색을 담당하겠다고 극구 주장해서 편성이 변경됐다. 예전에 비무대회에서 백단영과 대결했던 해남검문의 유연향도 수색조였다. 수색조는 다시 여러 개의 조로 나누어졌다.
백단영은 구진광, 유연향은 용봉대는 아니지만 청성파에서 파견된 고죽과 짝을 이루어 내부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작전 개시 직전에 사마련의 청성파 습격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성파 제자인 고죽은 침울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옆의 동료들은 상대방을 위로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자, 얼른 서두르자고.”
대장을 맡은 구진광이 자진해서 모두를 인도했다.
수색조는 제각각 맡은 구역이 각기 달랐다. 백단영 조가 맡은 영역은 지하미로의 가장 오른쪽 영역. 백단영은 어둠 속에서 눈앞에 뻗은 미로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졌다.
그들은 화섭자의 불빛에 의존하여 지하미로 아래로 내려갔다.
동굴 크기는 간신히 한 사람이 서서 들어갈 정도였는데, 천연동굴인 데다 마교에서 만든 인공적인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일반적인 동굴과는 그 모습이 달랐다.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점은 동굴 곳곳에 매설된 기관진식.
자칫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불상사가 염려됐다. 탐사대는 내부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벽에 적힌 경고문구를 발견했다.
- 마교인이 아니면 돌아가라.
경고를 본 구진광이 피식 비웃음을 터트렸다.
“어이, 돌아갈 사람 없지? 무서워서 오줌 쌀 것 같은 사람은 여기서 몸을 돌려.”
구진광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백단영과 유연향을 바라봤다. 백단영은 기분이 나빠졌으나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삼켰다.
구진광이 기고만장하여 글씨가 적힌 석벽을 탕탕 두드렸다.
“우리 구대 문파에는 이런 협박이 통하지 않지.”
그 순간 어딘가에서 작은 바늘 모양의 암기가 쏟아졌다.
슈슉-
“허억!”
기겁한 구진광이 재빨리 물러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암기를 주워 유심히 살피면서 투덜댔다.
“이 자식들이 비겁하게…….”
백단영은 이것이 경고의 시작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그녀는 기감을 열어 경계를 높이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구진광이 앞장서고 그 뒤를 조원들이 일렬로 따라갔다.
덜커덩-
그때 석벽 한쪽이 회전하며 새로운 길이 등장했다.
구진광이 내부를 쓱 훑어보고는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곳으로 갈 거죠?”
물론 대답은 필요 없다. 의례적인 질문일 뿐이니까. 구진광이 먼저 한 발을 내디뎠다. 이런 곳에서는 맨 앞에서 나가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기에 다른 사람들은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구진광은 제갈수가 나누어준 미로 지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미로 지도의 사본이 조마다 하나씩 배분됐었다.
“이 통로가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네요.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탐사를 시작할 겁니다.”
네 사람이 모두 통로에 올라서는 순간 미미한 진동이 일었다. 동시에 석벽이 밀려들며 통로가 좁아졌다.
그르릉-
“엇!”
놀란 구진광이 지도를 다시 훑었다.
뒤쪽의 세 사람은 급하게 양쪽 석벽에 팔을 뻗어 석벽의 전진을 저지했다.
끼리릭-
석벽이 긁히는 소음과 함께 크게 진동을 일으켰다. 세 사람은 내력을 쏟아부으며 석벽을 밀었다. 밀려들던 석벽이 멈추며 금이 쩍 갈라졌다.
와르르르-
다행히 석벽이 쉽게 무너져 그들은 위험에서 벗어났다.
구진광이 지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젠장, 잘못 봤어. 통로에는 한 명씩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고 되어 있네요.”
백단영은 어째 덤벙대는 구진광이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구진광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
무흔은 무극서생으로 변신한 상태로 말을 타고 대벽산으로 이동했다.
용봉대와 비교하면 거의 열흘 가까이 늦었다. 당연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말을 몰 수는 없었다. 말도 적절히 쉬어야 한다.
무흔은 관도를 이동하다가 만난 넓은 공터에 말을 메어 놓고 휴식을 취했다.
그가 그늘에 쉬고 있자니 마찬가지로 관도를 이동하던 두 장한이 옆의 그늘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옷을 풀고 연신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부치면서 잡담을 나눴다.
“자네, 청성파가 망가졌다는 소문 들었지?”
“사마련 쪽에서 쳤나 보더라고. 사실상 멸문 분위기야.”
무흔도 이곳으로 오는 동안 청성파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청성파가 의외로 쉽게 무너져 놀라기도 했지만, 마교 측의 치밀한 기습이었다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그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부귀영화도 한순간이네. 청성이 안 됐군. 그런데 사마련의 다음 목표지는 어딜까?”
무흔은 귀를 쫑긋 세웠다. 누구나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글쎄…… 그들의 이동 방향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서……, 현재로는 점창파라는 소문이 있어.”
점창파는 청성파에서 그리 멀지 않다.
“무림맹에서도 청룡대를 점창파로 파견한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사마련은 갑자기 왜 공격했데?”
“몰라. 소문만 분분하지.”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물론 무흔은 과거에 읽었던 소설과 이번에 서옹을 통해 들었던 사실을 종합하여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마교는 청성파를 공격하여 무림맹 정예부대를 끌어들이고 대신에 소수정예가 이쪽 대벽산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사실상 청성파 공격은 무림인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목적이었으니까.
무림맹이 반격을 위해 청룡대를 보냈다는 소식은 쓸모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부터 사마련을 앞세운 마교와 무림맹의 대립은 점점 격화될 것이다.
무흔은 더 들을 내용이 없자 일어나서 떠나려 했다.
마침 그때 새로운 일행이 그늘을 찾아 공터로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소규모 상단으로 보였다. 전체 십여 명의 인원 가운데 호위를 맡은 대여섯 명이 무기를 들고 있었다. 천막으로 덮은 커다란 수레 둘과 마차 하나.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상단이 분명했다.
문득 무흔은 일전에 혈살이마존이 상인으로 분장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 가장 눈을 속이기 편한 방법이 바로 상단이다.
상단 일행이 그늘에 자리를 잡자 화려한 검은 옷을 입은 귀공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대략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상대를 보는 순간 무흔은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설마? 마교인인가?’
마차에서 내린 청년은 자연스럽게 그늘로 향하면서 무흔 쪽을 힐끗 보았다. 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던 죽립을 더욱 눌러 썼다.
죽립의 틈 사이로 무흔은 청년을 관찰했다.
상단 인원들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늘에 쭉 열을 지어 앉았다.
다소 어색한 기운이 번지자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두 장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흔이 말을 타고 천천히 공터를 벗어나고 있을 때, 두 장한이 물건이 실린 수레를 힐끔거리며 옆을 지났다.
그러다 장한 중 하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물건 팔러 다니십니까?”
상단 호위무사는 대답 없이 상대를 노려봤다.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는 상단 사람들의 행동에 두 장한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다만 순순히 물러나기엔 배알이 뒤틀린 듯 그는 수레를 덮은 천막을 슬쩍 열어봤다.
그러자 순간 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상단의 호위무사가 두 장한을 향해 검을 그었다.
“크억!”
두 장한의 목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무흔은 호위무사가 장한을 응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호위무사가 휘두른 검 끝에서 검기가 폭사 되면서 순식간에 두 장한의 목을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무위가 연출됐다.
저런 무공 수준이라면 최소 절정 이상.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에 무흔은 입을 쩍 벌렸다.
더 놀라운 것은 검기를 날리는 호위무사가 있는 상단 일행 가운데 주요인물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말을 출발시키는 무흔을 향해 호위무사가 소리쳤다.
“멈춰라!”
무흔을 일행으로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무흔이 판단하기에 지금 저곳에 있는 십여 명의 인물은 모두가 절정을 넘나드는 고수로 보였다. 아니, 그 이상의 인물이 있을 수도 있었다. 가장 말단으로 보이는 자가 검기를 날렸으니.
멈추면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무흔은 말고삐를 더욱 세게 잡아당겼다.
히이잉-
말이 급하게 관도를 질주했다. 순간 뒤쪽에서 가공할 검기가 날아왔다.
‘이건!’
순간적으로 압박해오는 검기를 본 무흔의 판단은 빨랐다. 이것은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다. 무흔은 말 위에서 몸을 날렸다.
서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