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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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87화
87화. 무공의 융합 (1)
서옹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물론 무흔은 떡 배달 심부름을 계속했다.
서옹은 아프다는 핑계로 입맛이 더욱 까다로워졌으나 무흔에게 그리 타격이 되지 않았다. 그 역시 심부름을 오래 하다 보니 나름대로 대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오늘도 따끈따끈한 절편을 배달해 왔을 때 서옹은 정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있었다. 서옹이 절편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매화곡에서는 무공을 보완하는 작업을 했었다고?”
“네? 아니, 그건 어떻게?”
깜짝 놀라는 무흔을 향해 서옹이 키득대며 웃었다.
“큭큭,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 단영이가 다 알려주던데.”
백단영과 서옹이 꽤 친해진 모양이었다.
하긴 매화곡을 같이 다녀오며 생사를 함께했고, 그동안 서옹의 병수발을 백단영이 들었으니 정이 쌓이지 않아도 이상할 것이다.
“그래서 할 만하더냐?”
서옹이 어떤 사람인가, 늙은 능구렁이가 아닌가.
무흔은 대답을 고민하다가 자칫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는 골치 아플 위험이 있어 적당히 대답하기로 했다.
“못한다고 미움 받지는 않았습니다.”
“흘흘, 당연히 그래야지 누구 제자인데.”
응? 서옹의 제자였던가? 지금까지 배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무흔은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서옹을 째려봤다.
서옹이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흘흘, 네 녀석이 평소 나에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씩씩대나 본데…… 이런 것도 배움이니라.”
기가 막혀 말을 못 하는 무흔에게 서옹이 설명을 시작했다.
“크게 분류하자면 무공 보완에는 세 단계가 있어. 첫 단계는 말 그대로 무공 보완. 모든 문파에서 하는 작업으로 무공을 창시한 개파조사 이후 대대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약점을 보완하고 가다듬는 작업이지.”
예를 들자면 소림사의 십팔나한진은 소림 창시자인 달마조사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후대로 이어오면서 무수히 개선하고 변형되었다. 유명 문파의 절기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둘째 단계는 실전된 무공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선대에서 전해지는 검법이 모두 십초 식이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인 오초 식만 전해지고 나머지를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오초 식을 다시 찾아내는 작업이지.”
이번에 무흔이 매화곡에서 해낸 작업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미리 보았던 내용을 다시 써서 준 것에 불과했지만 능력이 향상되면 중간에 몇 쪽이 뜯겨나갔거나, 여러 권 중 한 권이 소실되더라도 다시 찾아낼 수 있다.
모든 문파는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전란에 휩싸이는 법이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절기가 무수히 많았다.
“셋째는 마지막 단계로 새로운 무공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문파를 새로 연 개파조사나 중간대의 무공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무흔은 서옹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뿌듯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마지막인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서옹이 하필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서옹이 묘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내가 지금 직접 시험해보고자 한다.”
“네?”
깜짝 놀라는 무흔에게 서옹이 막사를 가리켰다.
“가서 진풍을 불러와라.”
“진풍은 왜요?”
“일단 불러와.”
무흔은 잠시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이다가 마지못해 진풍을 불러왔다. 진풍 역시 무료한 듯 하품을 하고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무흔, 너는 육합권을 알고 있느냐?”
“육합권요?”
육합권은 삼재검법과 같은 수준의 기초적인 삼류 무공이었다.
시중에서 굴러다니는 무인 가운데 육합권을 안 배워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초보 입문용이고 그 위력 또한 보잘것없었다.
무흔은 자신의 주먹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옹이 두 사람에게 비무를 명했다.
“자, 둘이 지금부터 겨룬다. 무흔은 오로지 육합권만 사용한다. 진풍은 아무 무공이나 사용해도 좋고.”
“예?”
무흔과 진풍이 동시에 깜짝 놀라 다시 서옹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서 비무 시작해!”
“끙!”
무흔은 신음을 터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재검법과 마찬가지로 육합권도 무척 단순했다.
주먹을 지르고, 막고, 쳐올리고, 돌리는 등의 단순한 여섯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권법이었으니까. 이런 육합권으로 상대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무흔과 마주 선 진풍의 입이 옆으로 쭉 벌어졌다.
“캬캬! 무흔 너! 오늘 죽었어!”
진풍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한 손을 까닥이며 무흔에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미치겠네.”
투덜거리던 무흔은 어쩔 수 없이 진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벅-
철퍼덕-
불과 몇 수만에 무흔은 한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몸을 처박았다.
이미 육합권을 환하게 알고 있는 진풍은 무흔의 다음 수를 꿰뚫고 미리 대기한 듯 응수했다. 당연히 무흔은 피하지 못하고 얻어터져서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서옹이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명령했다.
“그래, 좋아! 바로 그거야! 다시 해봐!”
“아니, 어르신! 좋긴 뭐가 좋아요?”
무흔이 얻어맞은 곳을 문지르며 항의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늘따라 이 노인네가 왜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재차 자세를 잡자 진풍이 날카로운 기합을 넣었다.
“오오옷! 들어와라! 허접탱이!”
무흔은 육합권의 초식을 머릿속에서 다시 구성하며 덤벼들었다.
퍼버벅-
철퍼덕-
잠시 후 무흔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서옹을 향해 인상을 썼다. 욕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간신히 쑥 들어갔다.
서옹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어떠냐?”
“어떻긴요. 육합권만으로 어떻게 이겨요?”
“원래 맞으면서 크는 법이다.”
“아, 정말!”
툴툴대는 무흔에게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자, 그럼 내가 이각의 시간을 주마. 이각 동안 육합권을 보완해봐. 절대 다른 권법을 통째로 베끼지 말고 육합권의 특징을 살려서 보완만 해라.”
“예? 무슨 보완요?”
그제야 무흔은 서옹이 노리는 바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말 그대로 무공을 보완하는 그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매화곡에서 무공 보완을 했다니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무흔은 알 수 없었다.
“큭큭, 보완해봐야 육합권이 육합권이지. 삼류를 보완한다고 일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렇잖습니까?”
진풍이 빈정대며 서옹에게 동의를 구했다.
“흘흘, 그렇지. 추녀가 분 바른다고 미녀 되는 건 아니지.”
이게 그렇게 비유가 되는 건가.
무흔은 육합권을 떠올렸다.
현재 그의 육합권은 1성이다. 사실상 거의 모르는 것과 같은 수준. 육합권이 1성이 된 이유는 오래전에 삼재검법을 12성으로 만들기 위해 육합권을 희생시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얼른 손목에 나타난 쓸데없는 삼류 무공을 찾았다. 한두 개가 아니다.
무흔은 육합권을 12성으로 올렸다.
그다음 무흔은 본격적으로 사고에 잠겼다.
단지 여섯 가지 기본적인 동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육합권.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새로운 영역으로 사고가 진행됐다.
모든 무공은 하나로 귀결한다는 만류귀종을 여기서 떠올린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무흔은 여섯 기본 동작을 이용하여 그 순서를 재배치하고 이어지는 동작을 매끄럽게 함으로써 육합권의 초식을 새롭게 구성했다.
“됐습니다.”
무흔은 벌떡 일어나서 비무를 요청했다.
진풍이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도 주먹을 슬슬 쓰다듬는 것을 보니, 자신을 패는 일에 재미를 들인 것이 분명했다.
반면 지켜보던 서옹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라.”
“이얍!”
개시 선언이 나자마자 진풍이 기합을 내지르며 무흔에게 달려들었다.
퍼버벅-
철퍼덕-
“크으윽!”
진풍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는 신음을 터트렸다.
정작 무흔은 자신의 주먹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정말 육합권이었어? 육합권이 1성에서 12성으로 바뀌면서 그 완성도가 완전히 달라진 데다, 초식마저 매끄럽게 재구성하다 보니 완전히 다른 권법으로 바뀌었다.
“으으…… 이 자식이! 다시 해!”
진풍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코피를 소매로 쓱 닦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서옹은 변화한 진풍의 자세를 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흘흘, 좋아. 그건 곤륜의 운룡십팔식이구나. 이번에 제대로 붙어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풍이 기합을 지르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퍼버버벅-
철퍼덕-
“크으으! 이게 어떻게 육합권이냐!”
다시 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진풍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에 무흔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양손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거 육합권 맞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신 육합권이라 해야 하나?”
“아! 씨펄!”
진풍이 한바탕 욕을 해대고는 죽죽 흘러내리는 코피를 소매로 막으며 막사로 뛰어갔다.
서옹이 그에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보완했느냐?”
“아, 그게요…….”
무흔은 천천히 신육합권을 펼쳐 보였다.
“여기서 이 자세를 집어넣고요, 여기서는 이걸 빼니까 기의 순환이 원활해지고, 여기 이걸 넣으면 위력이 강해지니까…….”
무흔이 설명하는 모든 초식은 육합권의 기본인 여섯 자세를 재구성했을 뿐이었다. 즉, 육합권의 기본 틀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서옹이 한바탕 광소를 터트렸다.
“핫핫! 그렇구나. 삼류 무공인 육합권으로 곤륜의 절기인 운룡십팔식을 깼단 말이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절대 믿지 못할 것이다.
사실 무흔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육합권의 숨겨진 무리(武理)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혼란스러웠다.
멍한 표정으로 방금 있던 과정을 다시 고민하는 무흔에게 서옹이 품에서 꺼낸 책을 툭 던졌다.
“이것 한번 보거라.”
퍽-
던진 책이 무흔의 이마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아이씨, 책은 왜 던져요?”
“그럼 내가 갖다 바치랴?”
“어휴,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무흔은 투덜거리며 날아온 책을 살폈다.
복마십팔검법.
무흔이 처음 보는 비급이었다.
“이게 뭡니까?”
서옹이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건 복마문에서 전해지던 비전 절기다. 복마문은 오래전 멸문 당했어. 현재 남은 유품은 오직 그것뿐이다. 복마십팔검법은 모두 십팔 식의 검로로 구성되어 있고, 비급은 원래 세 권이었다. 하지만 멸문되면서 중간의 두 번째 권이 사라졌지. 그것을 복원해라.”
“예?”
갑작스러운 임무에 무흔이 입을 쩍 벌렸다.
복마문은 대략 일백 년 전에 사라진 유명한 문파였다.
한때 멸사제마를 실천하며 정파의 중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사파에 원한을 사고 결국은 사파의 연합공격으로 멸문됐다. 안타까운 정파 무림의 역사였다.
“이 임무를 왜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정파의 무공이 실전되면 아깝잖아? 게다가 그 무공은 불완전하지만 현재 임자가 없다. 네가 복원하면 네가 주인이다. 싫으냐?”
복원하면 주인이라고?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무흔은 흥미가 동했다.
서옹이 코를 후비적거리며 정자에 몸을 눕혔다.
“흘흘, 네놈 능력도 확인해 볼 겸. 어떠냐?”
“근데 이거 완성하면 운경각에 비치해야 합니까?”
“복원하면 네놈 것인데 왜 비치해? 하고 싶으면 무흔검법이라 표지 써서 비치해. 어차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복마문 문도는 아무도 없어.”
오! 무흔검법? 무흔은 내심 미소를 지으며 두 권의 비급을 쓰다듬었다.
무려 마교 최강 무공도 복원해본 판에 검법을 못할 이유는 없다.
무흔에게는 사실 하루 치 일거리밖에 안 되었다.
사실 그에게는 이 무공을 꼭 사용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대호와 양이설의 검법을 보완해주고 싶었다.
서옹의 말로 추정하자면 복마문은 꽤 막강했던 문파였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문파의 비전 절기가 평범할 리는 없었다.
갑자기 서옹이 의심스러웠다. 그는 왜 이 비급을 그에게 준 것일까.
그의 능력을 확인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외에는 실전된 명문의 절기를 복원해보겠다는 사명감이 전부일까.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무흔은 비급을 챙기면서 꾸벅 인사했다.
“그럼 잘 쓰겠습니다.”
“그래, 나도 그 절기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마. 끙!”
서옹이 신음을 내며 몸을 돌렸다.
아직 잔혼객에게 찔렸던 등이 온전치 않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