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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84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84화

84화. 독망지주 (1)

 

 

 

동굴 중앙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주름과 깡마른 체구는 세월의 무상함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이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을 과연 본 적이 있었을지 의심될 정도였다.

놀랍게도 노인의 다리는 허벅지 부근에서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살아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노인의 몸 주위에 강력한 기운이 은은하게 뿜어지고 있었다.

“고수군요.”

은옥상이 조용히 무흔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녀가 목소리를 죽인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누구냐!”

벼락같은 호통이 동굴 내부를 쩡쩡 울렸다.

노인의 눈에서 섬전 같은 눈빛이 쏘아졌다.

무흔은 노인의 기세에 적잖게 놀랐다. 물론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기세에 눌려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나가던 과객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순간 노인이 손을 뒤집자 누런 연기가 그들을 향해 폭사됐다.

연기를 본 은옥상이 대경실색해서 그를 끌어당겼다.

“독이야!”

무흔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기에 대응하지 않고 피했다. 땅에 깔린 누런 연기가 주변을 부식시키며 점차 희석됐다.

“엄청 지독한 독이군.”

은옥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흔은 재차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정말 지나가던 과객입니다.”

“그럼 얼른 물러가라!”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그 말에 은옥상이 돌아가자고 그의 소매를 붙잡았으나 무흔은 다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그냥 돌아가도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이놈이!”

그가 놀린다고 생각한 노인이 다시 손을 뒤집었다. 마찬가지로 누런 독연이 그들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무흔은 추혼천상보를 펼쳐 가볍게 독연을 피했다.

“한 수 하는 놈이었구나?”

“전 어르신을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헛소리!”

“어르신께선 평생 연구하신 독공을 후대에 남기고 싶지 않으십니까?”

무흔의 직설적인 외침에 노인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가슴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독제 어르신.”

독제란 말에 은옥상의 표정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그제야 눈앞의 노인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독제(毒帝)는 지금부터 약 오십여 년 전 강호를 휘저었던 초강 고수였다. 그가 독을 뿌리면 일대가 피바다로 변했고, 열 걸음을 옮기기 전에 사망했다고 하여 독제라 불렸다.

그의 독은 해독이 불가했기에 모두가 그를 무서워했다. 당시 그의 위명은 독을 전문으로 사용하는 문파인 사천당가를 압도할 정도였다.

우쭐해진 그는 점차 제멋대로 행동했다.

비위를 거스르는 자에게 용납하지 않고 독을 뿌렸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다 못한 무림맹에서 연합군을 구성해서 그를 척살하려 했다.

독제는 독을 이용해서 무림맹의 고수를 막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마침내 이곳 망우봉까지 쫓긴 그는 정파 고수들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결과는 사실상 양패구상.

독제는 자신을 추격해 온 고수들을 모두 독으로 쓸어버렸으나 그 역시 엄청난 피해를 봤다. 그들의 최후 반격에 두 다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다리를 상실한 독제는 도리 없이 이곳 망우봉에 눌러앉았다. 그러기를 무려 오십 년. 지금 나이가 든 독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감히…… 내가 누군지도 알고 있다니! 그럼 내 뜻을 거스른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겠지?”

노인이 그를 향해 노기를 드러냈다. 그러자 노인의 주위로 독기가 뭉클 치솟았다.

은옥상이 무흔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위험인물이란 뜻이다. 사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독제의 주위에 접근하면 바로 독에 중독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 생각해보십시오. 과거 강호를 누빌 때도 독공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셨겠지만 이곳에서 추가로 연구하고 닦은 독공으로 더욱 엄청난 경지에 오르시지 않았습니까? 그 모든 결과물이 사라지길 원하십니까?”

무흔의 피 토하는 듯한 언변에 독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실 이 문제는 독제의 가장 큰 숙제였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한 이후 독제는 자신의 무공이 여기서 묻혀 사라지기를 원치 않았다. 훗날 모든 무림인이 독제가 독공에서 최고였음을 기억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곳 망우봉 동굴에 갇혀 있어서야 방법이 없지 않은가.

독제의 노기가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서 네놈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거냐? 제자라도 되겠다는 뜻이냐?”

그에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고 느낀 무흔이 더욱 열심히 설득했다.

“제 자질이 미천하여 제자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독공을 비급으로 남겨드릴 수는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에 독제가 한바탕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독공을 이을 제자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남다른 체질부터 시작해서 독을 이해하고 쓸 수 있는 총명함까지 갖춘 제자는 전 중원을 다 뒤져도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급은 다르지 않은가.

“그런 허술한 속임수에 내가 속을 줄 아느냐?”

“잘 생각해보십시오. 절대 어르신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어르신이 남긴 비급은 훗날 분명히 우수한 자질을 지닌 사람에게 전해져서 독제의 위명을 다시 꽃피울 겁니다.”

독제가 눈을 감았다.

아마 그의 제안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서 사람을 만난 것이 실로 몇 년 만인가. 과연 다른 이가 찾을 때까지 살아 있을까.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독제는 하루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네놈이 다른 계략이 없다고 내가 어떻게 믿느냐?”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독제가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그의 분노가 많이 사그라들었음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정말입니다. 남기신 비급은 어르신께서 원하는 대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무림맹 서고를 원하시면 그쪽으로, 사마련 서고를 원하시면 그곳에, 심지어 마교 서고를 원하셔도 어떻게든 보관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적합한 제자를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유수 문파의 집합소라 할 서고에 보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실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독제는 자신이 평생 연구한 독공이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 정말 아까웠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네놈은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독제는 오랜 세월 강호를 누빈 만큼 이유 없는 친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흔은 협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당연히 저에게도 이익이 있습니다.”

“뭐냐?”

“어르신께서 키우시는 독망지주(毒網之蛛)의 독단을 주십시오.”

“뭐라?”

독제가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무흔은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러 마리 가운데 한두 마리 주신다고 하여 문제 될 것 없잖습니까?”

예전 소설에서 장후성이 얻어낸 이익이 바로 독망지주의 독단이었다.

이 독단을 삼킨 장후성은 대부분 독에 만독불침을 이루어 마교의 독공을 무력화시켰다. 무흔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네놈이 원하는 것이 바로 독단이었구나.”

“어르신이 손해 보실 일은 전혀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독제의 눈이 무흔의 안면을 쭉 훑었다. 이어서 그의 표정과 눈동자를 살피던 독제의 시선이 이번에는 은옥상에게로 넘어갔다.

한참 후 독제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만만찮은 고수로군.”

“어르신에 비하면 전혀 아닙니다.”

무흔 답지 않게 겸손한 목소리를 냈다. 독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받아들이겠다. 네놈은 내가 불러주는 각종 독의 제조법과 독공 구결을 그대로 옮겨 적어라. 모든 게 끝나면 독단을 주마.”

“감사합니다.”

무흔은 미리 준비해온 종이와 붓을 꺼냈다.

독제가 적을 내용을 읊기 전에 무흔은 은옥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은옥상이 품에서 미리 준비한 복숭아를 꺼냈다.

“어르신, 이것 좀 드시고 시작하십시오.”

독제가 복숭아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예전 소설에서 배운 것이다. 당연하지만 독제는 이곳에 갇힌 수십 년간 복숭아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향긋한 복숭아향이 동굴 내에 가득 퍼졌다.

“아아!”

복숭아를 받아든 독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복숭아를 한 움큼 베어 문 독제가 그 단맛에 눈을 감았다. 그 기분이 어떨지 무흔은 충분히 이해했다. 역시 사람은 늙으면 어린아이와 같아진다. 어린아이는 먹을 것으로 꾀는 방법이 최고다.

복숭아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독제가 독약 제조법을 말하기 시작했다. 무흔은 부지런히 받아 적었다.

무흔이 그녀를 향해 눈치를 줬다. 영문을 모른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복숭아가 모자란다잖아.”

“그, 그거 살려면 멀리 갔다 와야 하는데…….”

“얼른 다녀와라. 그럼 지금 네가 가야지. 내가 가리?”

“내,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무흔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찔끔 물러섰다.

“알았어.”

“후딱 다녀와라.”

은옥상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동굴 밖으로 벗어났다.

무흔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복숭아 사 오면 곧바로 포도 사 오라고 시켜야지.”

 

***

 

이틀 동안 꼬박 작업한 끝에 독제의 독공 비급이 만들어졌다.

독제가 새롭게 개발한 독과 독공은 무척 많았으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만 비급에 옮겼다. 그 결과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비급이 탄생했다.

완성된 비급에 독제는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소협, 덕분에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게 됐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 비급을 어디에 남길까요?”

“소협이 원하는 곳에 보관하게나. 가능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지.”

이틀 만에 독제는 무흔과 뜻이 죽죽 맞았다.

얼핏 보면 조손지간처럼 보이는 광경에 은옥상은 내심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보기에 무흔의 장점은 인간관계 처신에 있었다. 타인에게 믿음을 주는 외모와 행동이 큰 장점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녀도 무흔과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흔은 만들어진 비급을 품에 넣었다.

이제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

독제가 손을 휘젓자 동굴 내부에서 시커먼 거미가 두 마리 기어 나왔다. 거미 한 마리의 크기는 손바닥보다도 컸다. 실로 흉측한 모습이었다.

“으악!”

은옥상이 독망지주를 보고 기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허허, 얘네들이 알고 보면 무척 귀여운 놈들이야.”

귀엽다니? 그래서 독제인가. 독제는 이곳 동굴에서 수십 년간 독망지주를 키웠다. 동굴 내에는 수많은 독극물이 살고 있었고, 그는 이런 독극물을 먹거나 키우면서 세월을 보냈다.

독망지주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장난을 치던 독제가 무흔에게 물었다.

“독망지주의 독단을 먹으면 만독불침의 몸으로 변해. 웬만한 독에는 내성이 생긴다는 말이지. 다만 자네의 몸은 현재 독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어서 이 독단을 바로 먹으면 독망지주의 독에 중독되어 사망할 거야. 그 부분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네. 어떤가?”

무흔은 그의 말을 이해했다.

독제가 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독망지주 한 마리를 잡아 몸을 찢었다.

꾸엑-

비명과 함께 독망지주 내부에서 체액이 흘러나왔다.

이를 본 무흔과 은옥상은 절로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시선을 돌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원래는 하나만 주려고 했으나 이틀간 옆에 있는 낭자도 애를 많이 썼으니 내가 인심을 쓰지.”

“아……!”

사실 은옥상이 한 일이라고는 무흔이 구결을 받아 적는 동안 동네에 내려가서 복숭아랑 포도를 사 온 일이 전부였다.

물론 무흔이 작정하고 괴롭히는 바람에 그 심부름이 한두 번이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았었지만. 어쨌든 은옥상은 무흔의 옆에 있다가 뜻밖의 기연을 얻게 됐다.

독제가 죽은 독망지주의 몸 내부에서 콩알 크기의 독단을 꺼냈다.

“자, 누구부터 먹어볼 거냐?”

작아 보이지만 수백 마리의 소를 몰살시킬 수 있는 엄청난 극독이 담긴 독단이다. 절로 긴장감이 솟았다.

무흔이 은옥상의 옆구리를 툭 쳤다.

“응? 나부터?”

당연히 위험한 일은 남에게 미루는 것이 무흔의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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