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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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83화
83화. 폭우 속에서 (3)
폭우 속에서 노파가 철장을 들고 은옥상에게 다가왔다.
은옥상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마령파파…….”
“켈켈켈,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마령파파의 입에서 쇳조각 소리처럼 듣기 거북한 소음이 나왔다.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은옥상이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켈켈, 사마극 소교주님이 웬일로 매화곡 방면으로 둘을 파견하시더군요. 전 아가씨의 신변이 염려되어 온 것뿐입니다.”
마령파파의 안면에는 비웃음이 잔뜩 떠올라 있었다.
“그럴 일 없어요.”
“그렇겠지요. 잔혼객과 혈궁마혼이 오히려 죽었으니…….”
은옥상은 노파의 말에서 그녀가 앞서 일어난 모든 사태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파의 시선이 천천히 운기조식 중인 무흔에게로 옮겨졌다.
“켈켈, 오늘 의외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군요. 그동안 죽음의 다리를 건넜던 적황쌍마를 비롯한 몇몇이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이, 이 사람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은옥상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그러자 노파가 철장으로 무흔을 가리켰다.
“켈켈, 이자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오늘 잔혼객을 죽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겠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죽일까요? 아니면 아가씨가 죽이실래요?”
은옥상이 노파의 앞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령파파! 그에게서 관심을 꺼요!”
“아가씨께서 아무리 그를 엄호하셔도 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더라도 이 사실이 사마극 소교주나 교주님께 알려지면 그는 죽음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요.”
마령파파가 철장으로 무흔을 겨누며 경고했다.
“아가씨, 비키세요. 그는 마교의 원수입니다.”
“못 비켜요!”
은옥상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꾹 쥐었다.
두 사람 사이에 쏟아지는 폭우가 극도의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식혔다.
마령파파가 무서운 눈빛으로 은옥상을 노려보았다. 비를 맞으면서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령파파의 철장에 검은 기운이 어렸다. 철장 주변을 일렁이며 빠져나온 강기가 마치 검처럼 밖으로 쭉 뻗어 나왔다.
“켈켈, 아가씨는 나를 막을 수 없어요.”
은옥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마령파파가 무흔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순간 은옥상이 날카롭게 외쳤다.
“남혼북령!”
마령파파의 뒤쪽으로 흐릿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림자는 하얀 옷을 입은 묘령의 두 소녀로 형상화됐다.
“아가씨 부르셨습니까?”
남혼과 북령이 은옥상에게 깍듯하게 인사하자 마령파파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은옥상을 노려봤다.
“감히…….”
은옥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혼과 북령에게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마령파파를 포위하라!”
스스슥-
남혼과 북령이 마령파파를 중앙에 두고 은옥상과 함께 세 방향으로 대치했다. 마령파파는 마치 정삼각형 한중간에 갇힌 형세가 됐다.
은옥상과 남혼북령이 내력을 끌어올리자 내부로 엄청난 압력이 밀려들었다.
마치 거산을 마주하는 듯한 압박감이 마령파파에게 전달됐다.
마령파파 역시 내력을 끌어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가씨! 이러실 겁니까? 이자는 위험인물이라니까요. 남혼북령마저 동원해서 저지할 겁니까?”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아요! 그는 나의 동료이지 해가 될 인물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니까요!”
“맞다니까요!”
설전이 벌어졌다. 점차 내력이 맞물리며 주변 공기에 굉음을 불러일으켰다.
우우우웅-
마령파파의 철장이 강하게 떨림을 일으켰다. 삼각형 내부 영역에 갇힌 공기가 파열할 듯 부풀어 올랐다.
푸스스스-
쏟아지는 비가 내력의 충돌로 형성된 강기의 막에 막혀 뿌연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네 사람이 선 영역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네 사람의 칼날 같은 눈빛이 충돌했다.
마침내 포기한 마령파파가 철장을 내리며 내력을 갈무리했다.
“켈켈,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저자가 또 마교인을 살해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사방을 에워싸던 기운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오늘은 이만하지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마교 소교주 간의 얽히고 얽힌 관계를 잠시 떠올리던 마령파파가 나타날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은옥상은 착잡한 표정으로 무흔을 바라봤다.
뒤에서 남혼과 북령이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은옥상은 남혼과 북령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남혼과 북령은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마교의 소교주인 은옥상을 그림자처럼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
오로지 은옥상의 명령만 받드는 호법으로 지닌 무공 역시 마교 내에서 손꼽힐 정도였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남혼과 북령이 깍듯하게 인사하고 다시 모습을 감췄다.
“아아!”
그제야 긴장이 풀린 은옥상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
무흔은 운기조식을 생각보다 오래 계속했다.
그는 거의 만 하루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은옥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은 비가 그친 상황이고, 비록 더운 여름이라 하지만 이렇게 야외에서 기다려주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소교주라는 대접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처럼 온종일 야외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은 더욱 힘들다.
“음, 아직 안 갔어?”
“내가 당신을 버려두고 어떻게 가…….”
퉁명스러운 은옥상의 말에 무흔은 그 상황을 떠올렸다.
혈우파천만겁공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킨 상태에서 비천삼검을 펼쳤다.
잔혼객을 척살하고 검을 던져 혈궁마혼을 제압했던가. 그리고 은옥상의 옆에서 쓰러졌던 듯한데…….
새삼 무흔은 혈우파천만겁공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아마 마지막 비천삼검은 평소보다 서너 배는 강한 위력이 나왔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번은 처음이라 내기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무리하면 그 후유증이 엄청나다는 것도 깨달았다.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것이었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무흔을 향해 은옥상이 빙그레 웃었다.
“너도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혈우파천만겁공을 벌써 사용하지?”
“그걸 알았어?”
“네가 펼치는 순간 단번에.”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무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끙!”
어째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며칠이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서옹 어르신은 어떻게 되었어?”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네가 좋아하는 백단영이 의방으로 데려갔으니까.”
무흔은 마음을 놓았다. 결과가 더 나빠질 수 있었음에도 이정도로 끝이 났음에 감사했다.
은옥상이 그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혈우파천만겁공 전반부는 끝났나 보네?”
“보완은 끝났어. 아직 완전히 옮겨 적지 못했을 뿐. 조금만 시간을 주면 끝낼 수 있을 거야.”
무흔의 말에 은옥상의 안색이 밝아졌다.
“고마워.”
“하지만 날 보다시피…… 조심해야 한다.”
“그건 알아.”
원래 무흔은 혈우파천만겁공을 온전하게 넘길 생각은 없었다.
어마어마한 무공인 만큼, 거기에다 실제로는 그녀가 백단영의 적인만큼 일부 불완전한 내용을 넘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루를 옆에서 보살펴주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의 심성이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사악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다. 오히려 그녀와 친해지면 유리한 점이 눈에 보였다.
마교 내에 같은 편을 한 사람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것도 졸개가 아니라 무려 소교주라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은옥상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무흔은 고개를 저었다.
“할 일이 남았어.”
“응?”
생각지과 다른 대답에 은옥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할 일이 생겼는데…… 먼저 돌아가.”
무흔의 냉정한 말에 은옥상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휴, 어쩔 수 없군. 나도 같이 가 줄게. 그래서 할 일이 뭔데?”
무흔은 건너편으로 보이는 먼 산을 가리켰다.
“따라와 보면 알아.”
터벅터벅 앞장서서 걸어가는 무흔의 뒷모습을 보며 은옥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몸도 온전치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그렇다고 그를 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나. 은옥상은 금방 무흔의 옆에 따라붙었다.
무흔이 그녀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따라오면 심심하지 않을 거야.”
무흔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은옥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흔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복숭아가 몇 개 필요해.”
***
망우봉.
매화곡에서 그리 멀지 않은 높은 봉우리다.
그때 망우봉 중턱에 두 남녀가 나타났다. 바로 무흔과 은옥상이었다.
무흔은 벌써 두 시진째 일대를 누비며 동굴 하나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우거진 나뭇가지 때문에 목적한 동굴을 찾기란 요원했다.
“대체 뭘 찾는 거야?”
은옥상이 그의 뒤를 쫓으며 불평을 터트렸다.
“심심하지 않을 거라며?”
이어지는 불만. 그러면서도 계속 따라오는 것을 보면 용하긴 하다.
무흔의 눈은 봉우리 곳곳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는 소설 속의 내용을 되새겼다.
매화곡은 개봉에서 마교 본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중간쯤에 있다.
이곳 망우봉도 마찬가지. 주인공 장후성은 훗날 마교 본산으로 이동하다가 망우봉에 우연히 들어섰고 이곳에서 은거 기인을 만났다. 이 만남에서 장후성은 적잖은 도움을 받아 나중에 마교와 전쟁을 벌이면서 요긴하게 써먹었다.
지금 무흔이 찾는 곳이 바로 그 은거 기인이 숨어 있는 동굴이다.
다행히 동굴이 거의 없는 산이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우거진 숲이 문제였다. 숲에 가려 동굴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의외로 시간이 길어지고 힘든 여정이 됐다.
은옥상에게 눈치가 보이긴 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나, 따라온 그녀가 잘못이다.
“심심해? 온몸이 뻐근하고 힘들어서 심심할 여가가 없을 건데?”
“하아! 말이라도 고우면 밉지나 않지.”
은옥상이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를 따라왔다.
무흔은 내심 웃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매의 눈으로 샅샅이 뒤졌으나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은옥상이 다시 물었다.
“대체 뭘 찾는 건데?”
아무래도 혼자보다 둘이 찾으면 빠르려나? 이러다가는 날이 어두워지면 오늘도 야산에서 밤을 지내게 생겼다. 무흔은 어쩔 수 없이 동굴을 찾는다고 말해줬다.
잠시 안면을 찡그리던 은옥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동굴이 남들이 다니는 이런 길목에 있을 리 없잖아? 인적이 닿지 않는 장소에 있어야지. 어째 이런 일에는 나보다 머리가 안 돌아갈까.”
그녀의 한탄에 무흔은 번뜩 머리에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너무 쉽게 주워 먹으려 했나 보다.
“흠, 그래. 그럼 위험한 비탈로 가야 한단 말이지?”
“당연한 거 아냐?”
확실히 쉽게 발견되는 장소에 은거 기인이 머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무흔은 망우봉을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사가 가파르고 길도 끊어졌다. 또한 곳곳에 암벽과 바위가 널렸다. 울창하던 숲도 점차 사라졌고, 접근하기 어려운 고난도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으아, 경치 하나는 끝내주네.”
무흔은 망우봉 정상 부근에 있는 가파른 절벽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은옥상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저기 봐.”
그녀가 가리킨 지점에 시커먼 동굴 입구가 보였다.
깎아지른 절벽의 중턱쯤에 작은 입구가 보였다. 절벽 사이에 자라난 소나무가 울창하여 아래쪽에서는 쉽게 발견이 어려운 지점이었다.
“허어, 저기에 있었네.”
보는 순간 저곳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무흔은 그녀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절벽을 내려갔다. 무공을 익힌 몸이라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고생한 다음에야 동굴 입구에 내려섰다.
은옥상이 들어갈 거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무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웠으나 불은 켜지 않았다. 불과 십 장 정도 들어가자 내부가 넓어졌다. 무흔은 어둠에 익숙해지고자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동굴 내부의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무흔은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