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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7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8화

78화. 혈우파천만겁공 (1)

 

 

 

무흔은 더 듣고 싶었으나 서옹은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추억할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서옹에 대해 이만큼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놀랍게도 서옹은 무공 수위나 과거 이력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서옹의 친구인 용봉대주 풍사검객은 과거에 강호를 누빈 이력과 무공 수준이 상세히 알려져 있었다. 강호에서 풍사검객이라는 말이 나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물이다.

반면 서옹이라는 별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무림맹 내에서도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예속 부대를 맡은 것조차 이상할 정도로 무명이다.

무흔은 추가 질문을 포기하고 말고삐를 힘껏 잡았다.

히히히힝-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속도가 빨라졌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청량한 기분에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예전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바로 서옹이 그에게 신화문주와 북악신군에게 서찰을 전해주라던 그 심부름이다. 서옹이 그 서찰로 무엇을 의도했는지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무흔은 그때 신화문이 예전과 달리 변질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아냈다.

어쩌면 매화곡도 비슷한 목적이 아닐까. 뜬금없지만 무흔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은옥상의 존재로 보아 매화곡은 현재 정파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실상 마교로 돌아선 문파일 것이다. 서옹은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확인하려는 것이 아닐까.

무흔은 서옹을 곁눈질로 힐끔 보았다.

“뭘 보냐? 볼수록 내가 잘생긴 것 같지 않냐? 물론 지금 말고 예전에.”

서옹의 자화자찬하는 말투에 무흔은 절로 실소가 일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흘흘, 이제야 인정하는군.”

무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사천에 들어오고 오래지 않아 그들은 매화곡 영역에 들어섰다.

그들은 매화곡을 정식 방문하기에 앞서 부근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넓은 방 두 개를 빌려 가져온 짐을 정리했고, 마차와 말도 객잔에 맡겨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무흔 일행은 아래층 식당에 모였다. 그들은 만두와 고기볶음 요리를 시켜놓고 작전을 짰다.

“그래서 언제 돌아가실 겁니까?”

장후성의 질문에 서옹이 염소수염 몇 가닥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왜? 매화곡은 여자들만 있으니까 불편한가?”

“그렇진 않습니다.”

“흘흘, 내가 젊었다면 오래 머물겠지만 지금은 몇 가지만 확인하면 바로 떠날 거야. 때에 따라선 하루 만에 갈 수도 있고 한 달이 걸릴 수도 있어.”

서옹이 대답하다가 맞은편에 앉은 무흔에게 시선이 멎었다.

“흐음…… 저 녀석이라면 한 달도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그 말에 백단영이 킥킥 웃었다. 무흔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만 저었다.

장후성이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기 있는 우리만 오라고 지목했을까요?”

“글쎄……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겠지.”

대수롭지 않은 서옹의 대답에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각자에게 이유가 있긴 해요. 서옹 어르신은 매화곡주랑 친하다고 하셨고… 장 소협과 남궁 소저는 용봉대 최강이라 그때도 은옥상 소저가 경외심을 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날 은 소저랑 비무를 했던 인연이 있고요. 그런데 무흔은…….”

백단영이 무흔을 지목하자 무흔이 재빨리 손을 저었다.

“저도 인연이 있어요. 그때 제가 무림맹 내부를 안내했었잖아요.”

“그럼 진풍도 오라고 했어야지.”

백단영의 분석에 따르면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물론 무흔도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은옥상은 그때 무흔이 비무에 개입했다는 정도는 눈치챘다.

‘그 때문인가…….’

무흔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은옥상이 그의 정체를 알 경우와 모를 경우로 나누어 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니까.

하긴, 어느 쪽이든 은옥상이 신경이나 쓰려나?

“마부가 필요할 걸 알았나 보죠.”

무흔은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점소이가 만두를 비롯한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음식을 내려놓는 점소이에게 서옹이 조용히 물었다.

“장사는 잘되나?”

“요즈음엔 잘되는 편입니다.”

“매화곡에 손님이 자주 오가며 매상이 늘었단 뜻이겠지?”

“그렇죠.”

퉁명스럽게 대답한 점소이가 저쪽으로 사라졌다.

무흔은 방금 서옹이 질문한 이유를 눈치챘다.

매화곡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 대화로 최근에 매화곡에 들리는 외부인이 늘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었다.

 

***

 

객잔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들은 매화곡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마차를 이용했지만 여기부터는 걸어서 가야 한다.

매화곡은 산세가 가파르고 골짜기는 깊었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풍부해서 군데군데 폭포수를 형성하며 장관을 이뤘다. 그나마 구름이 많이 끼어 햇볕을 가려주는 날씨에 이동이 수월했다.

“역시 멋진 곳이네요. 화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백단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무흔도 그녀를 따라 연신 주변을 구경했다. 산세가 장관이긴 하다. 답답한 개봉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매화곡이라 적힌 큼지막한 비석이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곳부터는 매화곡 경내이니 볼일이 없는 사람은 알아서 돌아가라는 경고 표시다.

그들이 들어섰을 때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젊은 여인이 등장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무림맹에서 온 서옹이라 하네.”

서옹이 자상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여인은 이미 통보를 받은 바가 있었던 듯 꾸벅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곡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병장기를 풀어야 하나?”

문파별로 규율이 다르지만 어떤 문파에서는 반드시 해검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인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여인이 그들을 산 위로 안내했다. 무흔 일행은 여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계곡 곳곳에 세워진 수십 채의 전각을 만날 수 있었다.

무흔은 예전에 들렀던 신화곡과 매화곡을 비교했다. 전반적인 규모는 확실히 신화문보다 작았다. 여인들만 지내는 곳이란 선입관 때문인지 이곳 계곡이 훨씬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계곡을 쭉 따라 올라가면서 심어진 매화나무가 멋졌다. 지금은 계절이 지나 매화가 필 시기가 아니지만 때가 되면 계곡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이 장관일 것이다.

“내년 봄에 기회가 되면 와보고 싶어.”

백단영이 무흔의 마음을 읽은 듯 넌지시 말했다. 무흔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설마 다음에 또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무흔 일행이 안내된 곳은 매화곡주가 기거하는 작은 전각이었다.

그들을 안내해 준 젊은 여인은 전각 입구를 가리킨 후 금세 사라졌다.

전각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무흔은 절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담하게 꾸며진 내부가 의외로 멋들어졌다. 산속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각종 소품을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백단영과 남궁이화 역시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다만 서옹은 이런 부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안쪽에 두 여인이 보였다.

의자에 앉은 중년 여인과 서 있는 젊은 여인.

중년 여인은 당연히 매화곡주다. 옆의 젊은 여인은 무흔도 익히 본 적이 있었다.

지난번에 무림맹을 방문한 매화곡 제자 가운데 은옥상 다음으로 실권을 쥐고 있던 여인, 산산이었다.

중년을 갓 지난 매화곡주는 얼핏 보기에도 그 미모가 남달랐다.

젊었을 때는 꽤 아름다웠을 미모였다. 서옹이 저런 미모의 여인과 어울렸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매화곡주를 본 서옹이 가까이 다가가서 포권을 취했다.

“기 곡주, 오랜만이외다.”

매화곡주도 같이 예를 취해 인사를 받았다. 그 다음 일행 쪽을 향해 스스로를 소개했다.

“현 매화곡주인 기소진입니다. 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어서 돌아가며 각자 인사를 했다. 무흔이 마지막이었다. 인사를 하다 보니 흡사 자신도 용봉대원이 된 것 같아 우쭐해졌다.

“오신 김에 편히 쉬면서 돌아보시고 매화곡에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가셨으면 합니다.”

매화곡주는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가고 난 후 무흔 일행은 산산에게 숙소를 안내받았다. 빈방이 많았던 듯 일행 모두에게 하나씩 따로 배정됐다.

당연히 무흔의 순서는 제일 마지막이었다.

무흔에게 구석방을 안내해준 산산이 둘만 남게 되자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물론입니다.”

“오늘 저녁 식사 후 장문 제자께서 잠시 보자고 하십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은옥상이 왜 그를 보자고 하는 걸까. 무흔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

 

밤이 되었을 때 무흔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무흔이 문을 열자 은옥상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연분홍빛의 화사한 궁장을 입어 아름다운 외모가 더욱 돋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흔은 손님으로서 예를 갖추었다.

은옥상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대응했다.

“여전하시군요. 요즘도 백단영 소저와 함께 움직이시나요?”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선 용봉대 대원이시고 저는 예속 부대원이니까요. 가끔 만나 뵐뿐이죠.”

“그렇게 보기엔 같이 있을 때가 많더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무흔은 재빨리 본론으로 화제를 옮겼다.

은옥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은옥상의 정체를 알지만 상대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까. 괜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은옥상이 말 없이 방 안을 오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째 그녀의 눈빛이 그를 속속들이 해부하는 기분이었다.

“무흔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만.”

“지난번에 산산이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요?”

잊고 있었던 무흔은 부탁을 되새기느라 고생했다. 산산은 그때 묵천신검의 행방을 물었었다. 이럴 때는 반대로 물어보는 것이 유리하다.

“거무튀튀한 검을 쓰는 자는 없습니다만 왜 물으십니까?”

“그날 이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군요?”

“바쁘다 보니…….”

무흔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실제로 바쁘기도 했었다.

“내가 왜 그 신검을 찾는지 궁금한가 보죠?”

어째 은옥상이 핵심을 물어오는 느낌이다. 무흔은 대답 대신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은옥상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천수신장이라고 들어봤나요?”

찔끔한 무흔이 대답하기 전에 그녀가 계속 말했다.

“그 신검은 천수신장이 만든 검이죠. 그날 천수신장의 구가장에서 새롭게 만든 신검이 사라졌죠. 당시 그곳에서는 구가장 사람 외에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조사해보니 장후성 소협과 남궁이화 소저가 있었더군요.”

“그런데 그걸 왜 저에게 물으십니까?”

“당시 그곳에서 제가 아는 두 사람이 죽었거든요. 구가장에 알아보니 죽립을 쓴 놀라운 무공의 소유자가 그들을 죽이고, 그 신검을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무흔은 내심 놀라면서도 표정을 갈무리했다.

마교에서 구가장에 진상을 확인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무흔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죽립을 쓴 자를 찾으십니까?”

“그렇죠. 죽립을 쓴 자를 그동안 수배해 왔었는데…… 대충 찾은 것 같기도 하네요.”

말을 마치고 유심히 그를 노려보는 모습이 어째 그가 바로 그 죽립인임을 거의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복수를 위해서?”

은옥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흔은 고개를 저으며 실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저랑은 별 상관없는 사건입니다.”

그 말에 은옥상이 한차례 웃음을 머금었다.

“예전에 무림맹에서 마지막 날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요?”

“제가 머리가 나빠서…… 무엇입니까?”

“그때 당신에게 누구냐고 정체를 물었더니 백단영의 서동이라고 했었죠?”

“네. 서동 맞으니까요.”

“그때 다음에 만날 때는 서동 외에 다른 변명도 생각해 두라고 했을 텐데요?”

무흔은 은옥상의 눈동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녀의 의심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제 정체를 알고 싶어서 매화곡까지 불렀나요?”

“그렇다고 해두죠. 나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라서 말이죠.”

“전 서동이기도 하고 호위무사이기도 하고…….”

“호호, 그래서 당신의 정체는 대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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