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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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5화
75화. 월성문 (2)
무흔이 대호와 양이설에게 임시방편으로 적당한 무공을 하나씩 던져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화곡 방문이 공식적으로 결정됐다.
매화곡은 사천 지방에 있어 개봉에서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덕분에 말 두 마리가 끄는 사륜마차를 준비했다. 허름하고 낡은 마차였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무흔 역시 마차 여행은 처음이라 기대했다.
함께 떠나는 사람은 서옹을 비롯하여 장후성, 남궁이화, 백단영, 무흔이다.
어쩔 수 없이 무흔이 마부 자리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마차 내에서 편하게 앉아 가게 됐다. 아무래도 무흔이 제일 말단이다 보니 마부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아가씨랑 마차 안에서 마주 보며 옹기종기 가면 좋은데…….”
무흔은 아쉬움을 담은 눈으로 뒤를 바라봤다.
물론 마차 내부는 앞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마차 내부 분위기가 무척 좋을 것 같았다. 장후성이나 백단영은 청춘남녀이니…… 라고 생각하던 무흔은 이어서 서옹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서옹 어르신과 같이 앉아 있느니 차라리 마부석이 나아.”
그는 서옹이 졸고 있을 마차 내부 장면을 떠올리며 고삐를 당겼다.
한순간에 복잡한 개봉을 벗어났다.
마차는 금방 넓은 관도로 접어들었다. 이제야 멀리 떠나는 기분이다.
가끔 오가는 마차를 만나기도 했다.
다른 마차의 마부들은 낡은 마차를 끌고 있는 그를 이상한 눈으로 봤다. 특히 고관대작이 탔을 것으로 보이는 화려한 마차의 마부들은 더 심했다.
“아! 마부의 세계도 주인의 계급이 마부의 벼슬이구나.”
속으로는 이 마차에는 무림 고수가 탔다고 항변해보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정작 그를 괴롭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두 마차가 교차할 때 오른쪽 왼쪽이 없다는 점이었다. 무흔은 당연히 현대에서의 습관 때문에 우측통행으로 마차를 몰았다. 하지만 이 시대의 마부들은 우측통행이 뭔지 모른다.
“안 비켜?”
어떤 마부가 눈알을 부라리며 그를 위협했다.
엄청 화려한 마차인 것을 보니 꽤나 어깨에 힘을 준 녀석이 타고 있나 보다.
“너 오른쪽도 모르냐?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야.”
“뭔 소리야?”
“오른쪽 깜박이 켜야 하는데…….”
곧 덤빌 것 같은 마부의 표정에 무흔은 찍소리도 못하고 비켜줬다.
“황제는 교통 법령도 안 정하고 뭐 하나…….”
점차 이런 일에 익숙해지면서 무흔은 마차를 몰면서도 상념에 잠기는 수준이 됐다.
매화곡 제자들이 왔을 때 진풍과 그에게 안내를 부탁했던 사람이 서옹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서옹과 매화곡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 보였다. 그가 아는 매화곡의 정체는 마교 집단. 마교 소교주인 은옥상이 그곳에 있으니 이 부분은 확실했다.
하지만 정작 서옹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다면 이렇게 위험한 방문을 추진하지 않았을 테니까.
정작 무흔을 답답하게 만든 점은 따로 있었다.
예전 소설 내용을 아무리 되새겨보아도 그때는 매화곡이 등장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화곡에 은옥상까지. 조짐이 심상치 않다.
“무조건 아가씨를 보호해야 하고…….”
이 부분은 당연하다. 그가 이 세상에 접속하는 이유니까.
“사천지역에 은거 기인이 있었지. 독공의 달인이었던가…….”
이 여행에서 무흔은 별도로 다른 사람들 모르게 은거 기인을 만나볼 생각이었다. 이 만남을 통해 독공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그는 무공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
“은옥상은 무조건 피해야지. 절대 꼬투리 잡히지 않게 조심하고…….”
그가 판단하기에 마교 소교주인 은옥상과의 부딪침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서옹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의문이지만, 아직 그나 장후성 등이 은옥상과 대적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충 그렇게 계획을 잡고 나니 이 여정의 목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물론 백단영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뒤쪽에서 서옹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다가 적당한 객잔 있으면 세우거라. 밥은 먹어야지.”
서옹이 함께 하다 보니 아무래도 쉬엄쉬엄 놀면서 여행을 다니게 될 것 같다.
***
다행히 긴 여정은 그리 심심하지 않았다.
혼자서 말을 몰며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백단영이 가끔 마부석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었다. 때로는 장후성이 말을 몰면서 무흔이 마차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마차 안이 더 힘들었다.
앉은 자리가 편안한 것도 잠시, 서옹과 마주 앉아 있으려니 좌불안석이 됐다. 그보다 밖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는 게 백번 나았다.
그렇게 길을 가던 일행은 보름가량 지나자 사천성 초입에 들어가게 됐다.
관도에서 조금 벗어난 숲속에 그들은 마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하우, 덥다 더워.”
서옹이 그늘에 누워 배를 벅벅 긁으며 연신 투덜댔다.
무흔은 약간 떨어진 그늘에 홀로 앉아 빙그레 웃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길을 재촉하면 오히려 마차 내부가 더 덥다. 아침부터 침통 더위 속에서 강행군했으니 모두가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서옹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백단영을 비롯한 일행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젊은 그들도 어지간히 지친 모습이었다.
무흔은 그늘에 앉아 가볍게 운기조식을 행하며 기운을 북돋웠다.
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부근에서 관도를 지나던 일행 두 사람이 숲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타고 온 말을 나뭇가지에 메어 놓고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말 안장에 검을 붙들어 맨 것으로 보아 무림인이 분명했다.
“늦진 않겠죠?”
“물론이다. 사제 혼례에 늦을 수는 없지.”
무흔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들이 동문 사제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려고 서두르고 있음을 짐작했다.
대충 차림새를 보니 두 사람의 나이는 삼십 대 초반에 건장한 체격과 얼굴도 준수한 남자였다.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로 보와 무공 역시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추측됐다.
“무흔아.”
서옹이 무흔을 조용히 불렀다.
뭔가 시킬 일이 있으면 항상 서옹은 이런 식으로 그를 불렀다. 무흔은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옹에게 다가갔다. 간지러운 등을 긁으라는 명령만 아니라면 뭐든 못하랴.
“저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어 보거라.”
“네?”
갑작스러운 서옹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무흔은 서옹의 뜻을 재차 확인했다.
서옹이 고갯짓으로 나그네 둘에게 가보라고 재촉했다. 무흔은 어쩔 수 없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문의할 수밖에 없었다.
“대협께선 어디로 가십니까?”
두 사람이 그를 쓱 훑어보더니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는 태호방 사람입니다. 저는 장문 제자인 하대남이고 이쪽은 제 사제인 송성국입니다. 마침 막내 사제가 월성문주의 딸과 결혼하게 되어 축하연에 참석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들의 대답에서 어렵지 않게 그들의 목적지를 알았다. 물론 무흔의 강호 경험은 일천하여 월성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 경사가 있으시군요. 혼례 축하연은 언제입니까?”
“그게 내일입니다. 급하게 되었어요. 빨리 가면 늦지 않을 것 같긴 한데…….”
하대남이 그들이 타고 온 말을 가리켰다. 혀를 내밀고 숨 쉬는 말이 적잖게 지쳐 보였다. 아마 이 상태라면 말이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쉬다가 가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무흔이 말을 보며 걱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하대남이 반대로 물어왔다.
“소협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십니까?”
“아, 저는 무흔이라 합니다. 하남의 백가상단 소속이지요.”
“다른 분들도 모두 상단에서 오셨습니까?”
하대남의 눈길이 장후성 등이 쉬고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아, 그건 아니고요. 저쪽에 계신 남자분은 화산의 장후성 소협이시고요, 그 옆에는 남궁세가의 소저이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무흔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대남과 송성국이 벌떡 일어났다.
처음 상단이란 말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이 화산과 남궁세가라는 말에 놀라서 인사하러 일어난 것이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역시 이 동네는 배경이 좋아야 한다.
무흔이 보고 있자니 두 사람이 장후성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서로 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 태호방이나 월성문도 정파 쪽임이 분명했다.
한동안 인사를 나누던 태호방 사람들은 일정이 바쁜 탓에 금방 아쉬움을 달래며 물러났다.
길이 바쁜 하대남과 송성국이 먼저 떠나가고 무흔도 다시 떠날 차비를 했다.
“무흔아, 월성문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당연히 무흔이 알 리가 없다.
서옹이 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명령했다.
“흘흘, 내일은 우리도 포식 좀 해보자. 요 며칠 제대로 못 먹었더니 몸에 힘이 없구나.”
그제야 무흔은 서옹의 생각을 꿰뚫었다.
서옹은 잔칫집에 들러 얻어먹을 생각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에게 저들의 행선지를 물어본 것이다.
기가 막힌 무흔이 말고삐를 잡고 마부석에 올랐다.
서옹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 마차에 타고 막 출발하려는 순간 남궁이화가 마부석 옆에 앉았다.
“내가 월성문이 어디인지 알아. 길을 알려줄게.”
“아, 네. 감사합니다.”
월성문을 찾을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하던 차에 다행이었다.
그런데 뒤이은 남궁이화의 주문이 그를 좌절하게 했다.
“어르신께서 편히 주무신다고 마차를 천천히 몰란다.”
가끔 서옹은 이런 황당한 주문을 해올 때가 있다. 마차가 퉁퉁거리는 게 길이 나빠서이지 절대 그가 마차를 잘못 몰아서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관도를 벗어나 월성문 쪽으로 난 길은 폭이 좁았다. 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준이다.
이때부터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서옹이 숙면을 하도록 천천히 가다 보니 뒤에서 다른 말과 마차가 빨리 가라고 난리가 났다.
“어이, 거기! 빨리 좀 갑시다!”
뒤에서 빨리 가라고 채근했다.
심지어 은근히 협박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게 월성문의 잔치 때문이다.
원래 월성문 쪽 길은 통행이 드물어 길이 좁아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차에 잔치를 맞아 인근에서 오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거기에다 오늘은 잔치 바로 전날. 자연스럽게 모두가 급해졌다.
잔치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어 빨리 갈 이유가 없는 무흔 일행만 천천히 가고 있었다.
천천히 마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기는 수준으로 가고 있으려니 다시 협박이 날아왔다.
“빨리 못가?”
옆에 앉은 남궁이화가 쌍심지를 키며 중얼거렸다.
“저 자식 저거 사파 놈 같은데 그냥 썰어버릴까?”
어째 이 여자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긴 천하의 남궁이화가 겁내는 게 있을까.
“참으세요.”
무흔은 마침 길이 조금 넓어진 곳에서 마차를 길가로 빼주었다.
뒤에서 기어오던 다른 마차가 급하게 그들을 추월했다. 심지어 마부는 그들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렸다.
“저것들이!”
본능적으로 남궁이화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남궁이화의 손을 콱 잡았다.
“참으세요.”
“난 ‘참을 인’자 몰라.”
남궁이화가 씩씩대더니 손을 잡은 무흔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넌 왜 아녀자 손을 잡냐?”
“허억!”
무흔은 황급히 손을 뗐다.
“단영이한테 일러버린다?”
남궁이화의 장난스러운 협박에 무흔은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도리질했다.
검을 단련했는데도 남궁이화의 손이 고왔다. 그 느낌이 오래도록 손에 머물러 무흔은 자신의 손을 쓱 훑어봤다.
어쨌든 이런 상태로는 계속 뒤에서 오는 마차들의 협박에 제대로 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니,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남궁이화의 성격이 폭발해서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그녀를 위해서도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다.
고민하던 무흔은 커다란 천 하나를 꺼냈다.
“너 뭐하냐?”
남궁이화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보고 계세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무흔은 천 위에다가 잘 보이도록 무언가를 커다랗게 썼다. 그리고 천을 마차 뒤에 떨어지지 않도록 동여맸다.
“자, 갑시다.”
신기하게도 그다음부터는 특별하게 채근하는 마차가 없었다.
마차 뒤에 붙은 천에 적힌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