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7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0화
70화. 혈살이마존 (1)
일순간 모두에게 침묵이 흘렀다.
무공을 배우는 이유는 세상에서 협의를 행하기 위함이다.
협의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나쁜 자를 없애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 바로 협의다. 무림 공적인 혈살이마존은 당연히 나쁜 놈들이다.
“이틀이라는 여유가 있긴 한데…….”
구진광이 찝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침 그들에게는 비무 대회 종료와 함께 휴식으로 주어진 이틀이 있었다.
“그러잖아도 심심한데 나쁜 놈 잡으러 가자.”
그때 남궁이화가 단번에 찬성했다.
이처럼 강호에서 협행할 기회는 흔치 않다. 더구나 상대는…….
“혈살이마존은 숫자도 둘에다 엄청난 마두잖아?”
백단영이 무림사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물었다.
혈살이마존은 대단히 유명한 자들이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잔혹성으로 더 유명하다. 강호에서 최강은 아니나 강자에 항상 언급되는 대마두다. 용봉대원이 일대일로 싸울 수준보다는 훨씬 높았다.
“우리가 연합하면 가능해. 여차하면 청룡대에 도움을 받아도 되고.”
장후성이 긍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맞아. 천하의 용봉대가 혈살이마존 따위를 겁내면 쓰겠냐.”
남궁이화가 호승심을 불러일으켰다.
순식간에 그들은 개봉 일대에 숨어들었다는 혈살이마존을 추적해서 잡기로 결정 내렸다. 오늘 비무 대회를 마쳐서 피곤한 상태임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음식을 비우고 작전을 짰다.
무흔은 머쓱해졌다.
자신도 감히 끼어들겠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었다. 예속 부대원의 실력이라면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백단영의 실력이 웬만큼 올라왔다는 점이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모두를 독려하던 장후성이 그제야 무흔을 발견한 듯 깜짝 놀랐다.
백단영이 재빨리 수습했다.
“무흔아, 넌 무림맹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대주인 풍사검객이나 서옹 어르신께 알려줄래?”
즉 무흔은 빠져달라는 이야기다.
백단영과 다른 용봉대원의 판단에 이것은 무흔의 안전을 위한 필수 조치였다.
“알았어요, 아가씨. 제가 무림맹에 전할게요.”
무흔이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그가 물러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은 작전 짜기에 몰두했다.
백단영만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
객점을 빠져나온 무흔은 걸음을 옮기며 작전을 세웠다.
용봉대에서 떨어져 나오니 그도 움직이기 편해졌다. 무극서생으로 변신해서 혈살이마존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혈살이마존은 훗날 마교에 입교하여 백단영을 위협할 자들이다. 그런 위험을 그대로 방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중에 백단영에게 걸림돌이 될 녀석들은 미리 없애는 것이 유리하다.
그는 예전 소설 내용을 떠올렸다.
물론 그때도 혈살이마존을 추적하긴 했다.
허나 당시에는 백단영이 비무 대회 첫판에 지는 바람에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끼지 못했다. 장후성을 비롯한 네 명이 추적했고 결론은 실패였다. 장후성 등의 무공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혈살이마존에 대한 정보를 무림맹 청룡대로부터 들었으니 추적 자체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더구나 그는 혈살이마존을 본 적이 없으나 어떻게 생긴 녀석들인지 소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흐음, 그렇다면 이 기회에…….”
무엇보다 이 사건은 그에게 최근에 익힌 무공을 시험해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남궁이화와의 비무를 통해 패천마혼비를 시험해봤듯이 그에게는 시험해볼 무공이 정말 많았다.
강하다고 알려진 혈살이마존이라면 충분히 다양한 무공을 써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절로 기대감이 마구 솟아올랐다.
그런 이유로 무림맹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그의 눈에 개봉사걸이 보였다.
인파를 헤치며 어리숙한 나그네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니 이 자식들이 또 소매치기 영업 중인가 보다.
무흔은 재빨리 다가가서 한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컥! 누구냐?”
앞으로 철퍼덕 넘어진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살폈다. 다른 세 녀석도 눈을 부라리며 지나가는 사람을 위협하다가 무흔을 알아보고는 바로 찌그러졌다.
“헉! 혀, 형님!”
녀석들이 마치 조폭들처럼 무흔 앞에 일렬로 쭉 늘어섰다.
무흔이 녀석들의 머리통에 한 대씩 꿀밤을 먹이며 다그쳤다.
“뭐하냐?”
“여, 영업 중입니다.”
“으이그, 소매치기도 영업이냐?”
“허억, 그걸 어떻게?”
개봉사걸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눈치를 봤다. 만변귀공을 익힌 후 이 녀석들이 소매치기하는 수법이 훤히 보였다. 무흔은 한숨을 쉬며 윽박질렀다.
“내가 그런 짓 하지 말랬지?”
“그, 그게 저희도 먹고살려면…….”
“에라이!”
무흔은 녀석들을 한 대씩 더 쥐어박았다. 아프다고 펄펄 뛰던 녀석들이 이내 진지해졌다.
“그런데, 형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라기보다…….”
녀석들이 소매치기하는 것을 보고 뛰어들었으니 별일은 없었다. 말꼬리를 흐리던 무흔은 문득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흠, 너희들 말야, 혹시 사람 하나 찾아줄 수 있냐?”
“하하, 사람 찾는 거야 저희가 개방보다 잘 할 겁니다. 적어도 여기 개봉에서는 말이죠.”
그들도 나름대로 개봉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 부릴 수 있는 자도 꽤 있을 것이다. 이 녀석들을 활용하면 혈살이마존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무흔이 손짓으로 녀석들을 모았다.
“그럼, 사람 하나 찾아봐라.”
“예, 말씀만 하십시오.”
무흔은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냈다. 이제 돈이라면 차고 넘치니 녀석들을 부리기도 쉬워졌다.
은자를 본 녀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쓸데없이 소매치기하지 말고 날 도와줘. 이거면 소매치기보다 더 낫지 않나?”
“하하, 당연하지요. 형님. 대체 누굽니까?”
“꼭 찾아야 한다.”
“물론 입죠. 개봉에서 우리의 예리한 눈을 피할 존재는 없습니다.”
장담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기본은 할 듯했다.
“녀석은 무림 고수니까 무엇보다 조심해야 한다. 두 사람이고 나이는 대략 마흔 정도. 생김새는…….”
무흔은 필요한 정보를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개봉사걸은 미심쩍은 부분을 재차 확인한 다음 꾸벅 인사하고는 사라졌다.
무흔은 무림맹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얼른 풍사검객에게 장후성을 비롯한 다섯 사람이 혈살이마존을 추적하고 있다고 알려야 한다. 임무를 완수한 후에는 그 역시 무극서생으로 변해 혈살이마존을 척살하러 떠날 것이다.
***
혈살이마존은 하북 지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파의 두 고수였다.
문파에 소속되지 않는 마두로는 거의 최강이라 할 만큼 무공이 뛰어났다. 하북 지방에서는 사실상 상대가 없을 만큼 고절했기에 이들의 악행은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성질 또한 포악하고 잔인해서 심기를 거스르는 자를 거침없이 살해했기에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얼마 전 혈살이마존은 창의문이라는 문파 하나를 지워버리는 참극을 저질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주점에서 싸움이 붙었고, 이 싸움이 확대되었을 뿐이다.
혈살이마존은 다수가 버릇없이 자신들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소속된 창의문에까지 찾아갔다.
창의문은 소속 문인 서른 명가량의 작은 문파로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었다. 절정고수인 혈살이마존에게 이런 작은 문파는 전혀 거리낄 대상이 아니었다.
반나절 만에 창의문은 혈살이마존에 의해 무너졌다.
혈살이마존의 잔혹한 행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창의문 소속 문인을 몰살한 것은 물론 문주 부인과 그 딸을 겁탈하는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저질렀다.
이 소식을 들은 하북지역의 정파인은 분노하여 혈살이마존을 공적으로 지목하고는 척살령을 내렸다. 급기야 무림맹 정예가 포함된 추격대가 형성됐다.
하북에서 쫓긴 혈살이마존은 하남으로 넘어왔고 급기야 개봉까지 도망쳤다.
개봉의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금룡객잔.
이 객잔의 이 층 주루에 턱수염을 가득 기른 두 중년인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밤이 이슥한 시간이라 주변의 다른 탁자에는 손님이 없고, 오직 이 둘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크! 술맛 죽이는구나.”
“얼마 만에 이렇게 편하게 술을 마셔보는 건지.”
이 두 사람은 상인으로 분장한 혈살이마존이었다.
혈마존의 이름은 송상군, 살마존의 이름은 반도석이었다. 물론 강호에서 이들의 별호는 악명을 떨쳤지만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역시 산속보다 도심이 좋은 거여. 발각될 위험도 없고. 우리가 무림맹 코앞에 숨어 있는 줄 누가 알겠어.”
“하하, 그러게.”
주변에 다른 손님들이 없었기에 이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설사 있더라도 그들의 무공으로 언제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한참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송상군은 소변이 마려워지자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난간을 넘어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는 아래층에 모여 술을 마시는 수상한 일행을 발견했다.
모두 다섯. 남자 둘에 여자가 셋이었다. 이들이 그의 눈에 띈 것은 세 여인의 황당한 미모 때문이었다. 모두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절세 미모였다.
“어이.”
송상군은 반도석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래쪽을 봐. 끝내주는 년이 셋이나 있어!”
“어? 저게 사람이냐 여신이냐?”
어지간히 색을 밝히던 그들인지라 반도석도 관심을 보였다. 조심해서 아래층을 쳐다본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탁자 위에 올려둔 검이 보이지 않나?”
“무림인인가 보지. 어차피 상관없잖아?”
고강한 무공 탓에 무림 여걸이든 양갓집 규수든 가리지 않던 혈살이마존이었다.
반도석이 더욱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저 녀석들 수상해.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잖아. 거기에다 저 검을 봐. 보통 물건이 아니야. 고수들만 쓰는 대단한 검이 무려 셋이야.”
“흠, 그렇긴 한데…….”
반도석이 눈을 힐끔거리며 아래층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입을 쩍 벌렸다.
“헉! 알았어! 저들이 누군지.”
“누군데?”
“무림에 저 정도 미모를 지닌 고수가 누가 있겠나? 일화 모용예, 일봉 남궁이화, 나머지 한 년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응? 그 유명한 일화와 일봉이?”
송상군이 다시 눈길을 아래로 돌렸다.
반도석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야, 조심해라. 보아하니 저 자식들 우리 잡으러 온 거야.”
“일화가 떴으면 일룡도 떴겠네?”
“그렇지. 화산의 장후성 그놈도 저기 있을 거야.”
“으……. 빨리 도망가야겠다.”
송상군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거론된 인물들이 무림맹에 있는 어떤 부대 소속이란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저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곳이 무림맹이 있는 개봉이어서 거나 아니면 그들을 추적해서인데 어느 쪽이든 문제였다.
그렇게 도망치려고 아래층을 힐끔거리다 보니 더욱 음심이 일어났다.
무림 최고의 미인이라는 일화를 처음 봤다. 여자라면 죽고 못 사는 혈살이마존이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일화든 일봉이든 그게 어디냐? 아니, 그 옆의 다른 여자라도 충분해. 우리가 한 번도 못 건드려본 수준급 여자잖아?”
송상군이 입맛을 쩍쩍 다셨다.
무려 무림 최고의 미인이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대상이 지금 바로 아래층에 있다.
아래층에 포진한 후기지수들이 두렵진 않았다. 하북에서 날아다녔던 그들인지라 후기지수 한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저들 다섯이 모두 덤비면 다소 골치 아플 뿐. 아니, 엄밀하게 따지면 후기지수 다섯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저들의 뒤, 그들을 이곳 하남까지 쫓아온 무림맹 청룡대가 더 큰 문제였다. 청룡대만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어떡하지?”
포기하기 싫은 송상군이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보던 반도석이 사실상 동조했다.
“놓치기는 너무 아까운 대어잖아?”
“그, 그렇지!”
“목숨을 걸어볼 가치가 있지.”
둘은 작전을 짰다. 생애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객관적인 무력도 이미 절정에 이른 그들의 우위가 분명했다. 저들이 후기지수 중 최강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래 봐야 햇병아리일 뿐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무림을 종횡 무진한 그들에 비할 수 있을까.
오늘 밤 상대들은 분명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