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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5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8화

58화. 귀의 (3)

 

 

 

무흔은 노인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

귀의(鬼醫). 물론 알고 있는 이름이다.

약 백 년 전, 무림에서 의술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의선이다. 의선은 화타나 편작에 버금가는 신비로운 의술로 추앙을 받았었다. 그런 의선에게는 세 명의 제자가 있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귀의였다.

한때 무림을 떠돌아다니면서 의술을 펼쳤던 귀의는 약 삼십 년 전에 은거한 후 종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그 귀의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들어봤나 보군. 오래되어 아는 자가 없을 줄 알았더니.”

귀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화타나 편작에 버금가는 명의시라고요.”

“허허, 화타나 편작은 솔직히 빈말이고…… 단지 다른 사람보다 재주가 조금 더 있을 뿐이라네.”

무흔이 귀의를 아는 이유는 당연히 예전 천향무후 소설 때문이다.

귀의는 지금부터 몇 달 후 무림맹으로 흘러들어오고, 무림맹 의국에 소속된다. 자주 다치는 무림인의 특성상 의원은 대단히 중요했다. 무림맹에는 십여 명의 의원이 모인 의국이 존재했고 귀의는 그중에서도 유독 특출한 명의였다.

특히 장후성을 비롯한 용봉대원들이 귀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귀의가 어떻게 무림맹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떠돌이 생활 중 우연히 무림맹에 발이 닿았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나?”

귀의가 그의 단전 어림을 가리켰다. 응어리진 영약의 기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무흔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자, 상의를 모두 벗고 가부좌를 취해 보게.”

무흔은 귀의의 지시를 따랐다.

귀의의 실력은 놀라웠다. 순식간에 무흔의 등과 가슴 등에 수많은 금침이 놓였다. 그런데 무흔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귀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명문혈과 기해혈에 금침을 꽂을 거네. 자네는 심법을 운용해서 내기를 다스려야 하네.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무흔은 천단비화신공의 구결을 상기하며 준비했다.

두 혈도로 파고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무흔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천단비화신공이 내기를 이끌면서 천천히 내부를 일주천하기 시작했다.

꿈틀.

단전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숱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했던 영약의 기운이었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기운을 다스렸다.

고오오오-

내력이 일주천하면서 점차 그 크기를 부풀렸다.

이전과 다른 강력한 힘이 몸 내부에서 진동을 일으켰다. 점차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이제야 진정한 고수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나지막한 봉우리가 이어진 산마루를 타고 펑퍼짐한 언덕을 네 사람이 넘고 있었다.

노인 하나에 청년 둘, 어린아이 하나. 바로 무흔 일행이었다.

짧은 시간 대호와 소녀는 꽤 친해졌다. 곰처럼 덩치가 큰 대호 옆에 바짝 붙은 가녀린 소녀는 마치 삼촌과 조카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연연, 몇 살?”

“나? 여덟 살!”

“연연, 그쪽은 위험해.”

소녀의 이름은 곽연연. 대호는 까르르 웃으며 저쪽으로 달려가는 소녀를 붙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객잔에서는 그렇게 조용하던 어린아이가 지금은 들판을 누비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헤헤, 대호 오빠, 나 잡아봐요!”

곽연연이 대호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내달렸다. 난감해진 대호가 소녀를 잡으러 뛰어갔다.

무흔은 빙그레 웃으며 옆에서 함께 걸음을 옮기는 귀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르신께서는 어쩌다가 혈랑회와 만나게 되셨습니까?”

이 부분을 무흔이 궁금해하는 이유가 있다.

귀의가 예전과 다른 흐름에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귀의는 예전 소설처럼 무림맹에 의탁해서 의술을 발휘할까. 어떤 점이 다르게 이끌었는지 그것이 앞으로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길다네.”

귀의가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과거사를 늘어놓았다.

귀의는 의선에게 의술을 배웠으나 무림에 뜻이 없었다. 그는 짧은 기간 강호를 유랑하며 의술을 베풀다가 배우자를 만나 젊은 시절 은거했다. 하남의 조용한 시골에서 그는 아들딸을 낳고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의술은 조그만 동네에만 국한되었고 무림에서는 금방 잊혀졌다.

그렇게 평화롭던 은거 생활은 최근 들어 깨졌다.

우연히 마을에 들어온 무인을 치료해주었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귀의는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어 치료해주었는데 이를 그 사람과 적대시하던 사파에서 문제 삼았다. 그 사파가 바로 혈랑회였다. 혈랑회는 정식 문파라기보다 지역 사파인의 연합모임이었다.

혈랑회에서는 귀의의 뛰어난 의술에 감탄하여 귀의가 혈랑회 소속 무인을 치료하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그런 관계가 지속됐다.

하지만 곧 귀의는 혈랑회의 악행을 알고 치료를 거부하게 됐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혈랑회는 귀의의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 귀의의 자식들이 모두 죽고 남은 것은 어린 소녀 하나뿐이었다.

귀의는 어린 소녀를 데리고 도망쳤다. 그 와중에 객잔에서 밥을 먹었고 무흔과 만난 것이다.

“고생 많으셨네요.”

“나야 고생이랄 것도 없지만 연연이가 걱정이야. 어린애가 고아가 되어서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귀의가 앞서 뛰어가는 곽연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흔은 참담한 가족사에 할 말을 잃었다. 반면 귀의는 이제 익숙해진 듯 감정적 변화가 크지 않았다.

한동안 감정을 누그러트린 무흔은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도 모르겠네. 연연이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론 무흔은 답을 안다. 어떤 경로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귀의는 무림맹에 몸을 의탁한다. 지금 이동하는 방향도 낙양을 지나 개봉으로 향하는 길이니 무림맹 방향이다.

무흔은 귀의의 무림맹 생활을 되새겼다.

생각해보니 어디에도 곽연연이란 어린아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 말은 설마…… 무림맹으로 이동하다가 중간에 곽연연이 죽었었단 말인가. 아니면 객잔에서 무흔이 개입하면서 그녀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건가.

무림맹 내부에서 어린아이가 생활하긴 쉽지 않다. 일반 마을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귀의가 현재 무림맹에 몸을 의탁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길게 본다면 용봉대가 귀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물 건너갔다는 흐름이다.

무흔은 자신이 만든 흐름에 입을 쩍 벌렸다.

그의 눈에 저 앞에서 대호에게 매달려 걸어가는 곽연연이 들어왔다. 저 아이가 죽어야만 과거의 흐름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나?”

무엇인가 눈치챈 듯 귀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무흔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제가 고수가 된 사실이 기뻐서 말이죠. 이게 모두 어르신 덕분입니다.”

“아, 그거야 자네 몸이 좋아서 그러네. 이미 엄청난 내력을 품고 있었고. 내가 내력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잖나.”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귀의는 내공 흡수를 적어도 몇 년 앞당겨주었다. 무흔이 고수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준 셈이다.

무흔은 내심 결심을 굳혔다.

곽연연을 죽여서는 안 된다. 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죽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물론 이미 곽연연은 그의 개입으로 죽음을 벗어나 흐름에서 이탈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훗날 장후성이나 백단영이 귀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그 흐름의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르신, 혹시 개봉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개봉? 지금 현재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네. 먹고 살려면 어디든 가긴 가야지. 적당한 곳에서 의방을 열까 생각 중이네.”

“그럼 개봉으로 가세요. 제가 개봉에 있거든요.”

“개봉에 정착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

귀의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집안이 망해서 도망치는 중이니 돈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의방을 차리려고 해도 돈이 문제다. 더구나 개봉처럼 번화가에 의방을 열려면 시골이랑 비교해서 한두 푼 차이가 아닐 것이다.

무흔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사실 그도 돈이라고는 없다.

기껏 서옹의 심부름을 하면서 일부 받은 것 정도. 사실 지금까지 무림맹에 속해 있다 보니 특별히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그는 현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자신을 떠올리며 이곳이나 그곳이나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돈을 구할 방법으로 머리가 돌아갔다. 물론 그가 돈을 버는 방법은 특이하다. 그는 이 세상의 흐름을 이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던가.

“어르신, 제가 돈을 빌려드릴까요?”

“그, 그건…….”

귀의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빌려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돈거래란 것이 항상 말썽을 유발하는 데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무흔에게 그런 것까지 부탁하기엔 염치가 없어서다.

하지만 무흔의 생각은 달랐다.

귀의는 이미 그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고 앞으로도 매우 유용할 사람이다. 게다가 이곳 무림에서의 돈은 그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차하면 백단영에게 빌려도 된다. 백단영은 자금력이라면 절대 밀리지 않는 백가상단의 딸이 아닌가.

물론 현재로선 그녀에게 빌릴 생각은 전혀 없다.

“의방을 열고 난 후 조금씩 갚으시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그, 그래도 되겠는가?”

귀의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연히 되고 말고요. 연연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장소에 자리 잡으셔야죠.”

“좋은 자리는 필요 없다네. 난 그런 것보다 자네가 부근에 있다면 무엇보다 든든할 것 같아.”

혈랑회의 위협에 시달리다 보니 의지할 무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무흔은 귀의와 연연을 보호할 수 있다면 흔쾌히 힘을 써줄 생각이었다.

그때 앞서가던 곽연연이 산길 걷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대호가 연연을 업었다.

무흔은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듬직한 대호의 등이 어째 한 마리의 곰이 새끼 곰을 업고 가는 것 같다. 옆에 엄마 곰만 있으면 딱인데. 곰 세 마리 동요가 생각났다.

 

***

 

무흔 일행은 곧바로 개봉으로 왔다.

백가상단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백단영도 없는 백가상단에 굳이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대붕산채 사건 이후 백단영은 용봉대원과 함께 화산파로 이동했다.

제대로 된 문파를 방문하는 경험은 백단영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봉에 도착한 그들은 적당한 여곽부터 잡았다. 의방을 차릴 장소를 알아보는 동안 귀의와 곽연연이 머물 장소였다. 무흔과 대호는 무림맹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귀의와 함께 여곽에 짐을 풀었다.

밤에 무흔은 대호와 같은 방에서 나란히 누웠다.

“대호야.”

“응?”

더운 날씨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던 대호가 대답했다.

“돈 좀 가진 것 있냐?”

“돈?”

돈 이야기가 나온 것이 처음이었기에 대호가 눈을 비비며 그를 쳐다봤다. 무흔의 표정에서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확인한 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은 왜?”

“있으면 나 좀 빌려주라.”

무흔이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대호는 무가 출신이라 집안이 가난하지 않다. 집을 떠나온 지 오래되어 이제 풍족하지 않지만 그래도 없진 않다. 무흔의 미소는 이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얼마나?”

“귀의 어르신 머물 집 계약금 정도?”

“그걸 왜 네가 고민해?”

“딴말 말고 열흘만 빌려주라. 열흘 뒤에는 싹 다 갚을 게. 물론 열흘 이내로 적당한 집을 구할 때 한정되는 이야기지만.”

대충 대호도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래 알았다. 열흘 아니라 일 년이라도 빌려줄게. 나야 무림맹 내에서 먹고 자면 큰돈 들지 않으니까.”

“아냐, 딱 열흘이면 돼.”

“열흘? 돈을 어디에서 구하게?”

“나, 상단에 다녀올게. 열흘 동안.”

“알았다.”

“그동안 귀의 어르신 잘 부탁한다.”

“네 말 아니어도 연연 때문에 내가 붙어야 할 것 같아.”

대호가 킥킥대며 웃었다. 유독 그를 따르는 연연을 떠올리나 보다.

“그만 자라.”

무흔은 눈을 감았다.

앞으로 열흘 동안 돈을 구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을 했지만 실제로 백가상단에서 빌리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만이 아는 방법을 이용해서 돈을 구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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