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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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7화
57화. 귀의 (2)
호기롭게 소리치고 일어선 것은 좋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흔은 허벅지에서 확 번져오는 통증에 바로 꼬꾸라졌다.
“커흑!”
그는 고통 속에 의자에 주저앉았다.
무흔의 외침에 깜짝 놀랐던 장한들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던졌다.
“이 새끼 뭐야? 병신이냐?”
장한들이 소녀를 내팽개치고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들은 몸집이 더 크고 흉악했다.
의자에 주저앉은 무흔은 낭패한 상황에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부상 중이란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제대로 거동하기조차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야 다시 실감했다.
콰작!
마찬가지로 장한 한 놈이 탁자에 검을 콱 쑤셔 박았다. 겁을 팍팍 주려는 듯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무흔과 대호를 노려봤다.
“너희들 뭐야?”
거들먹거리던 다른 한 놈은 무흔과 대호가 탁자에 올려둔 검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어허? 꼴에 낭인무사인가 본데?”
지금 그들의 차림새가 엉망이었으니 낭인으로 오해할만했다.
핏자국이야 검은 옷이라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여기저기가 찢긴 옷은 걸인이라 해도 변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대호의 행색은 조금 나았으나 그 역시 밤새도록 산을 헤맸으니 별 차이도 없었다.
무흔은 아픔을 참느라 입을 닫았고, 대호는 무흔이 걱정되어 장한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탁자에 검을 쑤셔 박은 장한이 털 손으로 무흔의 머리통을 짓누르며 놀렸다.
“혈랑회라고 들어봤냐?”
당연히 들어봤을 리가 없었다.
무흔과 대호가 대답하지 않자 장한들은 그들이 겁에 질려 입을 열지 못한다고 오해했다.
“흐흐, 혈랑회란 말을 듣고도 제정신이 있으면 인간이 아니지.”
네 장한이 모여 낄낄대며 웃었다.
무흔이 녀석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털 손 치워라.”
그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자신의 손을 쓱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털 손은 무슨! 백옥 같은 손이구만.”
무흔은 옆에 놓아둔 검을 움켜쥐었다.
네 장한 역시 그 모습을 보며 검을 뽑았다.
“허! 이 자식이 꿈틀거리는데?”
그때 가장 빨리 손을 쓴 것은 대호였다. 대호는 몸을 용수철처럼 솟구치며 검을 뽑았다.
챙!
대호의 검이 장한의 검과 부딪쳤다.
대호의 강한 힘에 장한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장한들이 곧바로 진을 형성했다. 대호와 가볍게 부딪친 일합으로 장한들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했다.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렵지만 넷이서는 어렵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나 보다.
“흐흐, 감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네 장한이 그들의 탁자를 둘러쌌다. 재차 대호가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챙- 챙-
어지럽게 검광이 난무하며 두 장한이 대호에게 들러붙었다. 대호와 두 장한이 순식간에 옆 탁자로 옮겨가며 장내가 난장판이 됐다.
무흔은 대호가 둘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적들의 실력으로 보아 혈랑회는 별 볼 일 없는 곳이 확실했다.
객잔 입구에는 노인과 소녀가 도망가지 않고 무흔 쪽의 싸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크크, 이 자식은 일어서지도 못하는 병신 아니었던가?”
남은 두 녀석이 무흔에게 검을 겨누며 킥킥 웃었다.
그에 무흔은 두 장한을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을 세기 전에 도망가라. 그 이후부터는 책임 못 진다.”
“푸하하. 그래도 꿈틀거리네.”
장한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둘의 검날이 무흔의 목을 향했다.
“하나!”
무흔은 조용히 소리쳤다.
“크크, 이 새끼가 입만 살았어.”
“둘!”
무흔이 막 셋을 세려는 순간 그의 목에 검이 걸렸다.
“크크, 이 자식이! 셋 세어봐라! 목을 날려주마.”
검을 목에 댄 장한이 기고만장하게 소리쳤다.
동시에 무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녀석을 노려봤다.
“셋!”
다음 순간 무흔의 손에서 묵천신검이 번뜩였다.
상대는 이미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음에도 장한보다 무흔이 더 빨랐다.
“컥!”
장한 둘이 모두 손을 움켜쥐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손목이 잘려나갔다. 두 사람이 들고 있던 검은 손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놀란 두 장한의 눈에 불신이 감돌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이미 손목을 잃은 두 장한은 감히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무흔은 싸늘한 냉소를 띠며 몸을 일으켰다. 왼손으로 간신히 탁자를 짚고 일어난 그는 대호 쪽의 상황을 점검했다.
대호와 싸우던 두 녀석이 이쪽 상황을 알아챈 듯했다.
두 장한이 대호를 내버려 두고 급하게 무흔을 향해 달려들었다. 탁자를 발로 차고 급하게 달려드는 모습이 한 마리의 비조와 같았다.
무흔은 덤벼드는 두 녀석을 향해 몸을 회전시키며 잔백수라십이검의 일 검을 펼쳤다.
이런 녀석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삼류검법보다 빠르고 복잡한 장점만으로도 두 녀석의 검이 무력화됐다.
쿠당!
무흔의 검에 난도질당한 두 녀석이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두 녀석을 해치운 직후 무흔은 자신이 무리했음을 깨달았다. 간신히 지혈했던 허벅지가 터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통이 엄습하자 무흔은 그대로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크으으- 네, 네놈이 감히!”
장한들이 무흔을 노려보며 신음을 터트렸다. 다른 한 녀석이 입술을 질끈 씹으며 경고했다.
“이 자식이 혈랑회를 뭘로 보고…… 크억!”
중얼거리던 녀석이 입으로 피 분수를 내뿜으며 무너졌다. 그 뒤에 대호가 피 묻은 검을 들고 있었다.
남은 세 장한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대호는 쉬지 않았다. 이들이 아픈 무흔을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삭이기 어려웠다. 그의 검이 춤을 췄다.
“크억!”
세 장한이 연달아 비명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장한들이 정리되고 객잔 안은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무흔 역시 어안이 벙벙해서 죽은 장한과 대호를 연달아 쳐다봤다.
대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녀석들을 남겨두면 후환이 일거든.”
사실 강호의 생리가 그렇다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깔끔하게 해치우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정파의 자제인 대호가 날카로운 손속으로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무림이라는 세계의 이면을 접하는 기분이었다.
무흔은 밀려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다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하아.”
그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탁자에 고개를 처박았다. 들고 있던 검이 한쪽으로 떨어졌다. 놀란 대호가 다급하게 그를 살폈다.
이대로 두면 무흔이 죽을 것 같았다. 백 냥이 문제가 아니다. 빨리 무흔을 업고 방금 다녀온 의방으로 가야 할 듯했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가운데 입구에서 혈투를 지켜보던 노인과 소녀가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소녀는 여전히 겁에 질려 노인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는 상태였고 노인은 쓰러진 무흔과 이를 살피는 대호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호가 다급하게 무흔을 업으려 하자 노인이 저지했다.
“여보게, 내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는가?”
대호가 손길을 멈추고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내가 의술을 조금 할 줄 아네만.”
“아!”
지푸라기라도 잡을 판이었으니 대호는 얼근 노인에게 눈짓했다. 노인이 무흔의 눈과 맥을 짚어보고는 안색을 굳혔다.
“많이 다쳤군. 어디에서 부상을 얻었나?”
“그, 그게…….”
“빨리 치료해야 할 것 같네. 여기서는 남들 눈이 있어서 조금 그렇고…….”
노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눈이 멎었다.
대호는 금방 노인의 뜻을 이해했다.
그는 주인장을 불러 이 층에 방을 하나 얻었다. 부서진 집기 수리와 장한 시체 처리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일단 외상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객잔 주인은 거부하려 했으나 무흔의 상태를 보고는 마지못해 수락했다.
대호는 무흔을 이 층 객실에 내려놓았다. 정신을 잃은 무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노인이 무흔의 옆에 앉은 후 품에서 수십 개의 금침이 든 옥갑을 꺼냈다. 대호는 노인의 행동에서 그가 범상치 않은 의원임을 확인했다. 물론 설령 돌팔이라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대호는 소녀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방문을 닫고 소녀와 함께 문 앞에 주저앉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소녀가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응?”
“우리 할아버지 잘 고쳐요. 저 아저씨도 금방 일어날 거야.”
“아…… 그래.”
소녀의 말이 뭐라고……. 대호는 커다란 위안을 느꼈다.
***
무흔은 운기조식을 마친 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피가 줄줄 새어 나오던 허벅지의 상처도 완전하지 않지만 말끔해졌고, 가슴을 마비시키던 감각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실로 놀라운 변화였다.
“어떤가?”
노인의 조용한 물음에 무흔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주 좋습니다. 몸 상태가 평소와 거의 차이가 없어요.”
정신을 잃었다가 깬 무흔은 자신의 몸이 대부분 회복된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소녀와 함께 있던 노인 덕분이란 사실에 그는 아연실색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노인이 천하의 명의였다.
“감사합니다.”
무흔은 연신 고개를 주억이며 감사를 표했다.
“자네가 나를 구해준 게 더 고맙네. 난 그저 약 바르고 침놓고 한 것뿐이야.”
“아닙니다. 저야말로 그냥 칼 몇 번 휘두른 것뿐인데요.”
“허허, 자네 상처야 심각하긴 했지만 내버려 두었어도 죽진 않았을 거야.”
“아닙니다. 가슴의 마비산은…….”
“물론 환몽초의 마비산이 대단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
무흔은 얼마 전에 만났던 그 의원을 떠올리며 내심 욕을 했다. 이렇게 나을 것을 무려 백 냥이나 부르다니. 이걸 그냥 당장…….
“그보다 말일세…….”
노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흔 역시 심상치 않은 기색에 긴장했다.
“자네가 의식을 잃었을 때 혈맥을 잠시 살펴봤는데 말일세.”
노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네의 단전 부근에 응어리진 기운이 몰려있더군. 영약을 먹은 적이 있나?”
무흔은 노인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영약이 완전히 흡수되지 않고 몸 내부에 뭉쳐 있는 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게 천년적화초와 심령망혼사의 기운입니다.”
노인은 그 말만으로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한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노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 두 기운은 약간 상극인 성질을 띠고 있어. 천년적화초는 뜨거운 양의 기운이고 심령망혼사는 차가운 음의 기운일세. 두 기운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기운이 아니라네. 물론 지금까지 자네의 무공 수준 때문에 기운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응어리진 상태였고, 점차 흡수하겠네만 하지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걸세.”
무흔은 노인의 설명에서 충격을 받았다.
내공을 증진하는 영약은 먹으면 무조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의외의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 얼마나 걸립니까?”
“운 좋으면 수년이고 운 나쁘면 평생이지. 자네가 익힌 심법이 탁월하여 적절하게 두 기운을 조율하겠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걸세. 지금부터는 응어리진 기운을 모두 흡수하더라도 추가 내공 증가가 매우 적을 거야.”
무흔은 그의 말에 점차 응어리진 두 기운의 흡수가 대폭 느려지고 있음을 떠올렸다. 막연히 심법을 계속 운용하다 보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해결해줌세. 응어리진 기운을 풀어 내력으로 바꾸고 그 성질이 융화되도록 조절할 수 있다네. 어떤가?”
무흔은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생각지도 않은 기연이 도래했다.
“저, 저에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자네는 나와 손녀를 구해주지 않았나? 내가 혈랑회에 끌려갔다면 나도 손녀도 절대 무사할 수 없었을 걸세.”
무흔은 문득 짐작되는 노인의 정체가 있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노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의선의 제자인 귀의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