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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56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0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6화

56화. 귀의 (1)

 

 

 

대호는 무흔을 업고 계곡을 내려갔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산채 내부를 돌아다니다 다쳤지. 그래도 네가 불을 지른 덕분에 잘 해결된 것 같아.”

“인질은 모두 구했어?”

“응, 용봉대원들이 열심히 구하더라.”

“다행이네.”

계곡을 내려가는 대호의 걸음은 빨랐다. 그들은 금방 화재의 위험에서 확실하게 벗어났다.

사건의 추이를 물어보던 대호의 질문이 곧바로 무흔의 상태로 넘어갔다.

“어디 다쳤지?”

“가슴이랑 다리.”

“많이 다쳤어?”

“며칠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아. 부근에 의방이 있으면 들렸으면 해.”

“크크, 알았어. 넌 겉으로만 보면 산적 열 놈쯤은 때려잡은 모습이야.”

“에게 겨우?”

“알았어. 스무 놈으로 올려줄게.”

무흔과 대호는 키득거리며 계곡을 내려갔다.

“그런데 아가씨는 만나봤어?”

“아니.”

“왜? 그래도 꽤 고생했잖아? 몸도 다쳤는데. 아가씨도 몰라 주면 슬플 것 같아.”

순간 무흔은 가슴이 뜨끔했다. 이 녀석이 뭔가 눈치를 챘나?

물론 그럴 리는 절대 없다.

“뭔 소리. 괜히 이야기했다가 핀잔만 들을 거야. 아가씨가 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여기까지 쫓아왔다가 다쳤으니 혼날지도 몰라.”

“성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지.”

투덜대는 대호의 등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기면서 울렁이는 그의 넓은 등이 편안했다. 역시 덩치가 큰 곰 같은 녀석이라 더 쓸모가 있다.

어쨌든 다친 것을 제외하고는 예상대로 흘러가서 가슴이 후련했다.

비록 남궁이화 등이 무극서생을 목격했지만, 무극서생의 실체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휴가가 끝난 후 무림맹에 다시 돌아가면 오늘 알아낸 단점을 검토해서 새로운 무공을 익힐 방법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무흔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육지신마의 마지막 일격을 받아냈던 한쪽 허벅지는 상처가 깊어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은침에 맞았던 가슴팍은 마비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새벽 내내 계곡을 내려온 대호는 길가에서 잠시 쉬는 동안 무흔의 상태를 살폈다. 안면이 새파랗게 질려 식은땀이 흥건한 것이 크게 사달이 난 게 확실했다.

“무흔아!”

“으, 으응.”

“많이 아파?”

“아니, 저, 정신이 조금…….”

대호가 보기에 무흔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그는 황급히 무흔을 업고 인근 마을로 뛰어갔다.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힘이 날 거야. 정신 잃으면 안 돼.”

무흔은 백단영을 떠올렸다. 힘이 나긴 했다. 그런데 삐진 그녀가 그려져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아프니 정신이 번쩍 들긴 하다.

산 위에 해가 뜨는 아침, 대호는 고생한 끝에 아직 문을 열기 전인 마을의 의방을 찾았다.

수차례 강제로 문을 두드린 끝에 약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 마을에서 삼십 년간 의원 생활을 했다는 한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약탕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막 잠을 깬 의원이 무흔을 눕혀놓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쯧쯧, 이게 사람이냐 고깃덩어리냐?”

무흔의 엄청난 상처를 보고 의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다.

의외로 무흔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많았다.

대부분 귀곡선의 기운에 스치듯 베인 상처다. 그 가운데 가장 상처가 깊은 곳은 오른쪽 허벅지 옆쪽. 거의 뼈까지 보일 만큼 깊은 상처가 나 있고 핏물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칼에 베였나?”

“모르겠습니다.”

의원의 말에 대호가 고개를 저었다. 대호는 혹시나 무흔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났다.

“뭘 몰라?”

“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하다 다쳤는지 몰라서…….”

“같이 있었던 건 아니고?”

“예. 위험하진 않겠죠?”

의원이 안면을 살짝 찌푸리면서 상처 부위의 옷가지를 찢고 물로 헹궈냈다.

“칼은 아닌 것 같고…… 뭔가 날카로운 것에 당했구먼.”

다른 자잘한 상처를 살핀 의원이 마침내 마지막으로 가슴팍을 관찰했다. 무흔의 가슴은 시커멓게 변색이 진행되고 있었다.

의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당황한 대호가 다시 물었다.

“이, 이건 왜 이렇습니까?”

“독이야.”

“네? 그, 그럼?”

“쯧쯧, 지금 이 녀석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독 때문인 것 같네.”

대호는 무흔의 얼굴을 다시 관찰했다.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해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무흔이 안면을 찡그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대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르신, 어떻습니까?”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떻긴? 염라대왕 면전이야. 면전. 가슴을 살펴보니 독침을 맞은 것 같군. 그런데 독이 특이해. 목숨을 빼앗는 사독은 아니네만 몸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탁월한 마비산이야. 신강 쪽에서 서식하는 환몽초에 이런 효능이 있다고 알고 있네.”

환몽초란 말을 처음 듣는 무흔과 대호는 눈만 깜박거렸다.

“시간이 흐르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요?”

“일반적인 마비라면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이 녀석은 좀 달라. 이대로 방치하면 가슴에서 시작해서 점차 온몸이 굳을 걸세. 물론 그전에 염라전에 불려가겠지만.”

“컥! 오, 온 몸이요?”

무흔은 깜짝 놀라 잔기침을 마구 쏟아냈다.

그제야 무흔은 육지신마가 은침을 사용하는 이유를 간파했다. 상대를 살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마비시켜 행동을 제약하겠다는 술책이었다. 은침에 맞은 자는 근육의 마비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설사 목숨을 구하더라도 상당 기간 장애를 얻게 된다.

무흔과 대호는 사색이 됐다.

“어, 얼른 고쳐주십시오.”

그러자 의원이 냉정한 눈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어디 보자, 자네 돈은 있나?”

“얼마나요?”

“이미 죽기 일보 직전이야. 약 값이 많이 들어. 적어도 은자 백 냥은 있어야 할 거네.”

대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무흔을 곁눈질해보니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너,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일단 고쳐놓고…….”

“쯧쯧, 자네, 내가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그것도 싸게 해준 거야. 싫으면 다른 곳에 알아봐. 참고로 이 일대 이십 리 안에 의방은 여기 말고 없다네.”

의원의 입가에 미소가 맺혀있었다.

이 몸으로는 절대 멀리 못 갈 테니 부르는 게 값이란 의도가 엿보였다.

의원의 말을 듣고 나니 대호는 눈물이 핑 돌았다.

 

***

 

무흔은 다시 대호의 등에 업혀 관도를 지났다.

간신히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약 한 첩을 달여먹고 대호의 등에 의지해 백가 상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대호의 등은 넓고 편안했다.

역시 곰처럼 펑퍼짐한 녀석이라 쓸모가 많다.

“그래도 약 한 첩 먹으니 좀 괜찮아. 명의인가 봐.”

“명의는 무슨 얼어 죽을. 그 약 한 첩에 가진 돈 다 털렸다. 이제 밥 먹을 돈밖에 없어.”

대호가 의원을 욕했다.

그들이 떠날 때 곧 다시 돌아오게 될 거라던 의원의 말을 떠올리며 오기를 불태웠다.

무흔이 대호를 달랬다.

“괜찮아. 난 죽지 않을 테니까.”

“그래, 네 녀석이 어디 죽을 녀석이냐?”

두 사람은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우울했던 기분이 다소 풀어졌다.

무흔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일 육지신마가 은침에 사망할 독을 발랐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었다고. 그나마 이렇게 끝난 것이 다행이라고.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게 약을 준 그 의원에게 고마워하자고.

“백가상단까지 이대로 가는 것은 무리야. 정말 의방이 없으려나?”

대호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의방이 있어 봐야 이제는 돈이 없다.

무흔도 이렇게 다친 상태로 백단영 앞에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대호에게 업혀 그 먼 길을 가는 것은 더욱 못 할 짓이었다. 정작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의 일처럼 들리는데 대호는 그렇지 않나 보다.

등에 업혀 주변을 둘러보던 무흔의 눈에 작은 객잔 하나가 들어왔다. 관도에서 다소 떨어져 있고 이 층에 여곽까지 갖춘 모습이 배를 채우기 적합해 보였다.

무흔이 팔을 쭉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의사를 알아챈 대호가 바로 방향을 바꾸었다. 객잔을 보니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현실이 생각났다.

무릉객잔.

문 위에 걸린 현판은 이곳이 나그네들이 묶는 작은 객잔임을 알렸다.

아침이라 객잔 내부에는 손님이 드물었다. 밤에 묵었던 손님은 이미 떠났고 나그네가 돌아다니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하루 중에 가장 손님이 적은 시기가 아닐까.

대호는 무흔을 탁자의 한쪽 의자에 내려놓았다.

“뭐 먹을래?”

“국밥!”

무흔은 예전에 현실에서 먹던 해장국을 떠올리며 국밥을 주문했다.

다치고 나니 얼른 현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대호 몰래 슬쩍 손목을 훑어보니 아직 하루가량이나 남았다. 아마 이번에는 이렇게 관도를 여행하는 상태에서 현실로 돌아갈 모양이다. 어차피 상관없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흔은 객잔 내부를 살폈다.

그들을 제외하고 손님은 단둘. 서너 탁자 옆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조손 관계로 보였다. 육십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열 살 조금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깨끗한 삼베옷을 입고 있어 인상이 좋았다.

그들 앞에 놓인 음식 역시 국밥이다.

마침 그들을 힐끔거리며 보는 무흔과 여자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장난기가 동한 무흔은 여자아이를 향해 험악한 인상을 지어 보였다.

움찔. 깜짝 놀라며 여자아이가 고개를 확 숙였다. 잠시 후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무흔을 향해 곁눈질했다. 어째 불안이 가득한 표정이다.

이번에 무흔은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자아이가 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귀여운 아이다.

그렇게 여자아이를 놀리며 장난치고 있을 때 국밥이 나왔다.

무흔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먹고 봐야 한다. 잘 먹은 귀신이 때깔도 고운 법이니까.

대략 반쯤 먹었을까.

벌컥-

객잔 문이 급하게 열리며 한 무리의 무인이 들어왔다.

검은 장포를 입은 네 장한. 온몸 여기저기 칼자국이 상당한 데다 인상마저 흉악했다. 모두 턱수염을 터부룩하게 기르고 팔다리가 근육으로 울퉁불퉁했다. 어젯밤에 본 산적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장한들이 내부를 쓱 둘러보다 노인과 소녀를 발견하고는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흐흐, 저기 있군.”

“제까짓 게 튀어봐야 벼룩이지.”

장한들이 밥을 먹는 노인과 어린 소녀를 둘러쌌다. 노인의 안색이 사색이 됐고 어린 소녀는 금방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장한 하나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노인이 밥을 먹는 탁자에 콱 꼽았다.

“으흑!”

어린 소녀가 기겁해서 울먹였다.

노인이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며 애원했다.

“나, 나리들…….”

장한이 의자에 발을 턱 올려놓고선 노인을 겁박했다.

“네놈이 감히 도망을 쳐? 죽어봐야 정신 차릴래?”

“손녀 생각하면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냐?”

장한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뱉어냈다.

노인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벌벌 몸을 떨었다. 그러던 가운데 장한 하나가 소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으흑!”

소녀가 울먹이면서 질질 끌려 일어났다.

“대, 대협! 손녀만은 제발…….”

“네 녀석이 그렇게 도망치니 애라도 인질로 잡아야 할 것 아니냐?”

노인이 사색이 되어 손녀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할아버지!”

소녀가 울음을 터트리며 노인에게 매달렸다. 장한은 소녀의 팔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발버둥 치던 아이가 장한에게 끌려갔다. 다른 장한이 탁자에 박힌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얼른 나와라!”

노인은 밥도 다 먹지 못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끌려가는 손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인의 안면에 괴로운 표정이 가득했다.

소녀가 발버둥 치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장한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손녀를 인질로 잡은 장한 무리가 객잔을 벗어나려고 입구로 걸어갔다.

발버둥 치던 손녀가 다시 할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할아버지!”

노인이 허겁지겁 일어나 장한을 따라나섰다.

울먹이던 소녀가 무흔과 눈이 맞았다. 소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흑흑! 아저씨! 도와주세요!”

방금 소녀와 눈 장난을 쳤던 무흔은 장한들의 인질이란 말에 적잖게 기분이 상한 터였다. 어젯밤에도 대붕산채에서 잡은 인질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피우지 않았던가.

소녀의 눈물 젖은 눈망울을 접한 무흔은 벌떡 일어났다.

“야! 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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