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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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5화
55화. 육지신마 (3)
무흔은 가슴이 불에 덴 것 같은 화끈한 충격을 받고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연이어 귀곡선의 공세와 은침이 날아왔으나, 다행히 재빨리 상황을 자각한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물러날 수 있었다.
“클클, 역시 그런 실력으로 적황쌍마나 풍운쌍마를 처리했다는 것은 이상해. 그런데 검을 보면 또 아니란 말이지. 대체 네놈은 누구냐?”
노인답지 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육지신마와 몇 차례 초식을 주고받은 결과만으로도 무흔은 자신의 수준을 확실히 평가할 수 있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설펐다. 죽고 죽이는 이 살얼음판은 몸에 배지 않은 무공 몇 개를 익혔다고 주름잡을 수 있는 판이 아니다.
무흔은 대답 없이 조용히 숨을 골랐다. 역시 정면 대결로는 희망이 없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도 어렵다. 해답을 찾아야 했다.
촤르르륵-
귀곡선이 접혔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육지신마도 쉽사리 그를 공격해 들어오지 못했다. 그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하며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공력 면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더라도 이처럼 시간을 끄는 것은 옳지 않았다. 더구나 산채에 붙은 불이 점점 주위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클클, 어디 더해 보아라.”
슈슉-
다시 은침이 어둠을 뚫고 반짝였다.
무흔은 재빨리 공공십팔보를 밟으며 은침을 피한 다음 육지신마에게 접근했다. 상대의 움직임도 기민해졌다. 그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육지신마의 신형이 측면으로 따라붙었다.
무흔은 깜짝 놀라 육지신마가 접근하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육지신마의 그림자가 뒤로 돌았다. 등을 내줄 수는 없는 법. 무흔은 정면에 보이는 나무 밑동을 발로 박차며 허공으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다시 육지신마의 신형이 사라졌다.
퍼벅-
허벅지 부분이 화끈거렸다. 옷가지가 길게 찢기며 핏물이 튀었다. 가슴에 이은 두 번째의 상처였다.
무흔은 내심 욕설을 퍼부으며 간신히 거리를 유지했다.
접전이 거듭되면서 그는 자신의 단점을 뚜렷하게 파악했다. 상대의 움직임이 그보다 훨씬 빠르고 가벼웠다.
즉 결정적인 이유는 보법의 차이. 역시 삼류 무공인 공공십팔보는 12성에 이르렀다고 해도 한계가 너무나 뚜렷했다.
‘젠장, 돌아가자마자 신법이나 보법부터 다시 찾아봐야겠어.’
문제는 지금 당장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촤르르륵-
귀곡선이 다시 펼쳐지며 육지신마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무흔은 재빨리 잔백수라십이검의 오 검을 펼쳐 눈앞에 검막을 형성했다. 상대가 쉽사리 검초를 뚫고 공격하기 어려울 것이란 계산이었다.
순간, 측면에서 은침이 날아왔다.
무흔은 검로를 옆으로 틀면서 비침을 튕겨냈다. 순간 귀곡선이 그의 하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다른 쪽 허벅지가 화끈거렸다.
‘나의 발을 묶으려 하고 있어!’
무흔은 상대의 속셈을 눈치챘다.
상대 무공의 허실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육지신마는 움직임에서 절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싸움의 기본원리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법. 무흔의 움직임을 봉쇄하면 보법에서의 우위를 더욱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클클, 또 피해 보아라.”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귀곡선이 펼쳐지는 소음이 들렸다.
무흔은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공격을 막기 힘든 이유는 상대의 빠름도 있지만 공격과 동시에 날아오는 은침 때문이었다. 은침과 부채라는 양면 공격은 마치 두 사람이 공격하는 것처럼 두 개의 방향에서 날아왔다.
자연히 대처가 쉽지 않았다.
슈슉-
은침이 허공을 가르고 반사적으로 무흔의 신형이 튕겨 나갔다.
이번에는 움직임만으로 은침을 피해냈다. 순간 무릎 쪽으로 귀곡선의 날카로운 기운이 엄습했다. 당연히 무흔도 대비하고 있었다.
잔백수라십이검의 육 검이 육지신마의 그림자를 향해 펼쳐졌다.
까강-
육지신마 역시 피하지는 않았다. 검과 부채의 강력한 충돌이 일었다.
무흔은 손을 통해 거대한 충격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쇠 부채라지만 검격을 무력화시키는 육지신마의 내력은 실로 놀라웠다. 그것도 단순히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틈타 공격으로 전환하는 초식 운용은 실로 대처하기 힘들었다.
무흔의 공격이 일곱 번째 검으로 이어졌다.
휘리릭-
육지신마의 그림자가 그의 검로를 읽은 듯 물 흐르듯이 빠져나갔다. 동시에 귀곡선의 환영이 측면으로 돌아갔다. 재차 그의 허벅지 뒤쪽으로 귀곡선의 공세가 밀려왔다.
조금 전과 같은 수법! 선택의 순간이 왔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면 무흔이 견딜 수 없음이 분명했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순간 먹잇감이 될 것이 확실했다.
묵천신검의 날카로움을 믿은 그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그는 상대에게 허벅지를 내어주고 다른 것을 얻을 작전을 세웠다.
그는 이전처럼 몸을 움츠려 피하지 않고 허벅지를 그대로 두었다. 대신에 묵천신검으로 잔백수라십이검의 구 검을 펼쳤다.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그의 허벅지는 미끼였다.
서걱-
허벅지 뒤쪽으로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대신 그 순간 묵천신검이 육지신마의 신형을 따라잡았다. 상대는 무흔을 공격하느라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서 바로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까가강-
묵천신검과 귀곡선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검을 쥔 손으로 밀려든 거대한 충격이 고통스러웠다. 역시 육지신마의 내력은 그를 압도했다.
검과 부채가 만나면서 육지신마의 신형을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버릴 무흔이 아니었다. 무려 그는 한쪽 허벅지를 내주기까지 했으니 그 대가를 받아야 했다.
검에 가해진 충격은 자연스럽게 그의 신형을 허공에 띄웠다.
이어지는 그의 검초는 비천삼검의 제 이식 쾌!
빠른 육지신마의 움직임을 잡기 위해 선택한 최적의 검초였다.
번쩍!
지금까지와 확연히 달라진 일검이 그어졌다.
검영이 허공에서 사라지고 묵검의 기운이 천하를 휩쓸었다.
“컥!”
예상치 못한 쾌검에 육지신마는 대응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무흔의 허벅지를 제대로 베었다는 자만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대의 검은 정수리를 향해 내리찍고 있었다. 귀곡선은 상대의 허벅지를 베고 아직 회수되지 않아 다음 초식으로 들어가지 못한 상황. 머리 위로 내리찍는 검격은 그의 혼백을 잠식했다.
그래도 백전노장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육지신마는 억지로 몸을 비틀었다.
서걱-
육지신마의 왼쪽 어깨가 묵천신검의 날카로운 검날에 떨어져 나갔다.
목숨과 팔을 바꾼 상황. 허나 그대로 물러설 육지신마가 아니었다. 어차피 왼팔은 공격과 상관없다. 무엇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무림의 생리를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푸슈슉-
수십 개의 은침이 단번에 쏘아졌다.
뒤를 이어 육지신마의 귀곡선이 접혀 허공을 갈랐다. 귀곡선은 곧바로 무흔의 머리를 향해 날았다.
무흔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은침을 피하기도 어려웠고 귀곡선을 막기도 쉽지 않았다. 그의 묵천신검은 내력을 품은 채 상대의 가슴을 바로 찔렀다.
한줄기 묵빛 검흔이 질주하며 어둠을 가르고 길었던 혈투가 막을 내렸다.
콰작!
무흔의 죽립이 귀곡선에 쪼개졌다. 동시에 묵천신검이 육지신마의 가슴을 뚫었다.
푸욱!
얼핏 보면 이른바 동귀어진 수법. 하지만 그 대가는 달랐다.
죽립은 귀곡선의 위력을 적절히 상쇄했다. 죽립이 박살이 나며 귀곡선의 움직임을 제어한 것은 물론 충격마저 완화했다. 동시에 가슴을 찔린 육지신마는 최후의 내력을 귀곡선에 싣지 못했다.
반면 묵천신검은 달랐다. 검은 상대의 심장을 뚫고 등 뒤로 빠져나왔다. 완벽하게 죽음을 가져다준 한 수였다.
“크으윽- 이, 이런!”
자신의 일초가 무흔에게 전혀 타격을 가하지 못한 사실을 깨달은 육지신마는 불신의 눈빛으로 가슴에 박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에서 피 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전신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육지신마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나뒹굴었다.
이미 죽음의 기운이 온몸을 뒤덮었다.
쿵!
“하아, 하아!”
무흔은 가쁜 숨을 내쉬며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십여 개의 비침이 가슴 곳곳에 박혀있었다. 은침을 보는 순간 가슴팍에 마비 증상이 느껴졌다. 강하진 않지만 은침 끝에 약한 마비독이 발라져 있었나 보다. 만일 제대로 된 독이었다면 이미 염라전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공격을 위해 내어준 가슴과 허벅지는 처참했다.
피가 흘러내며 옷가지가 붉게 물들었다. 그나마 한쪽 다리만 심각해서 다행이었다.
그는 윗옷을 벗어 은침을 뽑아내면서 시선을 돌렸다.
대붕산채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만하면 당분간 대붕산채는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
대붕산채 입구에서 벌어진 협상은 이미 흐지부지된 지 오래였다.
화재가 발생하면서 협상장에 있던 산적들이 모두 불을 끄러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단영은 마음이 급해졌다. 불이 번져가는 저곳에 그녀의 동생이 잡혀 있다. 그녀가 막 안쪽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불길을 뚫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 맨 앞에서 이끄는 자의 외모가 눈에 익숙했다. 모용예와 구진광이었다.
두 사람이 등장했다는 것은 작전의 성공을 의미했다.
백단영은 절로 입가에 드리워지는 미소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구진광의 뒤로 백가상단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인질로 잡혀 있던 자들이었다. 그녀는 중간쯤에서 동생 백석하를 확인했다.
“석하야!”
백단영의 울음 맺힌 목소리에 백석하가 반응했다.
“누, 누나!”
백단영은 팔을 활짝 열고 백석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범벅되어 쏟아졌다.
“다치지 않았어?”
“아니, 괜찮아.”
다행히 백석하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백단영은 동생을 다시 힘껏 안았다. 두 사람은 시간이 멈춘 듯 감격스러운 해후를 만끽했다.
잠시 감격스러운 상봉을 만끽하던 그녀에게 남궁이화가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 이곳은 위험해. 불 번지는 것 안 보이냐? 얼른 산에서 내려가야 해.”
다시 정신이 번쩍 든 백단영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마가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불을 끄려고 우왕좌왕하는 산적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 보였다.
장후성이 산채를 향해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얼른 몸을 피해야 합니다. 불길이 너무 세요!”
그의 외침에 산적들 일부가 포기하고 쏟아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은 적이고 아군이고 없었다. 모두가 한꺼번에 화마를 피해 대피했다.
백단영은 동생과 상단 사람들을 앞세우고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도 장후성과 남궁이화에게 감사를 잊지 않았다.
“고마워요. 난 모두가 성공하리라고 믿었어요.”
남궁이화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화도 너무 고마워.”
“그런데……”
“응?”
남궁이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속삭였다.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럼?”
백단영의 시선이 남궁이화에게서 장후성으로 옮겨졌다.
“장 소협도 아니고…… 무극서생이란 자가 도와줬어.”
“무극서생?”
“오래전에 검 한 자루로 강호를 누볐던 고수가 있잖냐.”
이어서 남궁이화가 침을 튀기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극서생에 대한 경외심이 가득 담겼다.
***
무흔은 다친 다리를 질질 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양쪽 허벅지를 모두 다친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한쪽 다리는 그나마 버틸 만했다. 다친 다리는 사실상 움직이기 어려웠다. 하의는 피투성이였고, 가슴팍은 마비 증상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중상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경상으로 치부하기엔 상처가 컸다.
만변귀공은 이미 풀려 외관은 평소의 무흔으로 돌아와 있었다. 죽립 역시 박살이 난 지 오래다.
불이 난 산을 뒤로하고 간신히 계곡을 건넜다. 생각만큼 걸음이 쉽지 않았다.
“하아!”
무흔은 답답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불이 번져서 탈출이 힘들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직 안전지대에 들어선 것도 아니었다. 다친 부위가 점차 장애가 됐다. 무림으로 들어온 후 이처럼 심각하게 다친 것도 처음이었다.
다시 어둠 속을 살피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였다.
“무흔이니?”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곡 길 한쪽에 앉아 손을 흔드는 그림자.
보자마자 가슴 벅찬 기쁨이 밀려왔다. 바로 대호였다. 산채에 불을 지르는 임무를 완수하고 사전에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흔은 대호를 확인하자 그 자리에 바로 꼬꾸라졌다.
놀란 대호가 허겁지겁 뛰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