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5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0화
50화. 대붕산 산채 (1)
고산령을 넘은 후 무흔 일행은 비룡상단과 헤어졌다.
낙양 무관의 임호군은 덕분에 고개를 쉽게 넘었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그는 백가상단의 무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낙양 무관에 전하겠다고 했으나 무흔은 사양했다. 굳이 자신이 큰일을 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는 백단영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관심이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무흔은 대호와 함께 하남백가에 도착했다.
하남백가는 낙양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남에서 이름난 상단을 운영하는 부자답게 장원은 상당히 넓고 화려했다.
마침 그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운 좋게도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무백 아저씨를 만났다. 장원의 내부 구조를 모르는 그에게 무백은 엄청난 원군이었다.
“무흔이 벌써 왔냐?”
“휴가잖아요.”
“아가씨께서 너는 늦게 올 거라던데?”
“아가씨는 벌써 왔어요?”
“며칠 전에 이미 왔단다. 친구분들이랑. 저쪽은 누구지?”
“안녕하세요, 무림맹에 같이 있는 친구, 대호입니다.”
대호와 무백의 인사가 적당히 끝나고 무흔은 무백을 졸졸 따라 들어갔다. 넓은 앞마당을 지나 장원 식솔들이 머무는 행랑채로 이동했다.
화원을 거쳐 지나가는 사이 장원 내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를 알아본 몇 사람이 아는 체했고 무흔도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대부분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환영했다.
무백을 따라간 곳은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무흔은 건물 끝 쪽의 방으로 안내됐다. 그는 이곳이 처음이었으나 놀랍게도 몸이 저절로 알아서 움직였다. 아마 GOD 작가가 소설의 개연성을 위해 배려해놓은 작은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친구분들이 저쪽 별채에 머무르고 있어. 그래서 넌 이 방을 쓰면 된다. 예전에 네가 쓰던 방은 용도가 변경되었거든.”
“대호랑 같이 써도 되죠?”
“그래.”
무슨 말인지 혼란스러웠지만 머물 방을 바로 안내받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들이 머무를 방은 무백의 옆방. 무흔이 대호와 함께 짐을 내려놓고 있자니 무백 아저씨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장원에 우환이 발생했단다.”
“네?”
무흔은 수심이 가득한 무백의 표정에 눈만 끔벅였다. 무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낮에 급하게 연락이 왔는데 막내 소가주께서 납치되셨나 보더라.”
납치? 이게 무슨 소리지? 전작에 없던 이야기다.
“지금 모두 초비상이야. 가주님을 비롯해서 아가씨랑 함께 온 용봉대 친구분까지 회의 중이야. 상황이 좋지 않나 보더라.”
뜻밖의 사태에 무흔은 당황했다.
막내 소가주? 무흔은 백단영의 가족 내력을 떠올려봤다. 전작에서 가족이 개입된 별다른 사건이 없었기에 명확하지 않았다. 아마 백단영에게 오빠와 남동생이 있었던 것 같았다.
“소가주라면…….”
무흔이 버벅거리자 무백이 바로 알려줬다.
“백석하 막내 공자님 말이다. 상행 중에 대붕산 산적 무리에게 납치되었나 보더라.”
“대붕산채요?”
“낙양에서 사천 방향으로 가는 길에 큰 산 있잖아.”
산적이란 말에 무흔은 묘한 기시감 느꼈다.
얼마 전에 마주쳤던 산적 무리가 떠올랐다.
“이번에 막내 공자님께서 처음으로 상행을 따라갔거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산적을 만난 거지.”
“평소에도 산적들이 인질을 잡았었나요?”
“대붕산채랑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어. 적당히 통행료만 주면 별문제 없었는데 녀석들이 갑자기 변심한 모양이야. 풀어주는 조건으로 은자 일천 냥을 요구한다고 하더라.”
“호위무사는 없었어요?”
“없긴. 낙양 무관 소속만 열 명이었고, 우리 측도 다섯이나 있었어. 어떡하다 모조리 잡혔는지 모르겠다만…….”
무백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무흔은 방을 나섰다.
“지금 어디서 회의 중이래요?”
“내원 쪽에 안채 있잖냐? 거기에 모여 있나 보더라.”
“금방 다녀올게요.”
무흔은 단숨에 내원으로 내달렸다.
***
안채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열고 있었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인 가운데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일천 냥을 넘겨줍시다. 무엇보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돈을 준다고 해도 살아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산적과 타협은 안 됩니다. 앞으로 상행을 해나가기 어렵게 될 겁니다.”
여러 의견이 난무했다.
가신들의 의견을 듣고 있는 백가상단의 상단주이자 백단영의 아버지인 백선필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으나 해결책은 아니었다.
백선필의 옆에 앉은 부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여보, 석하는 반드시 살려야 해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나도 알고 있소.”
백선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 그의 앞에는 가신을 비롯하여 총관, 대행수, 상행수 등 상단 내 주요인물이 총출동한 상태였다.
적어도 십 년 이상 이곳 백가상단에 뼈를 묻은 자들이다.
현재 타지에서 상행 중인 맏아들을 제외하고 웬만한 사람은 다 모였다. 그들의 충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의견은 모두 달랐다.
회의실 한쪽 구석에는 백단영을 비롯하여 함께 온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장후성, 모용예, 구진광, 남궁이화다. 백단영 동생의 납치 소속에 그들 모두는 분개한 상태였다.
중구난방 쏟아지는 의견을 참다못한 백단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저들의 목적이에요. 단지 돈 일천 냥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그녀의 말은 타당했다. 일천 냥이 절대 적은 돈이 아니지만 상단과 산적의 공생 관계를 깨트리는 금액치고는 절대 많지 않다.
“특히 이번 상행은 백석하 공자님의 첫 상행이었습니다. 하필 그들이 소가주님을 노렸다는 것은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습니다.”
상행수 한 사람이 백단영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붕산채와 백가상단 사이에는 아무런 은원이 없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이 의문을 표시했다. 가주 백선필이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으며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때 뒤쪽 문이 조용히 열리고 무흔이 들어왔다.
무흔은 이 회의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금방 알아봤다.
가주로 보이는, 중앙에 앉은 두 남녀를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사실 가주인 백선필과 그 부인을 무흔은 처음 봤다.
그는 조심스럽게 백단영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원래 무흔은 이런 중요 회의에 참여할 만큼 급이 높지 않다. 그렇다 해도 그를 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전부터 항상 무흔은 백단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기에 그 누구도 그가 그녀 옆으로 옮겨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한참 고민하던 백선필이 입을 열었다.
“나도 그들의 목적이 단순히 돈에 있지 않다고 느낀다. 인질값은 일종의 구색 맞추기이고 실상 납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으리란 생각이야.”
백선필이 의견을 제시하자 이에 반하는 목소리는 확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상 백가상단의 이인자인 대행수 마종학이 결정을 요구했다.
백선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백단영과 그 뒤에 앉은 후기지수 쪽으로 돌아갔다.
상단과 산적은 공생 관계라 하지만 그 주도권은 항상 산적 쪽에 있었다. 상행을 방해해서 통과가 늦춰질 경우 산적 쪽은 전혀 피해가 없지만 상단 쪽은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상단 측이 관가를 동원해서 산적 토벌에 나서기도 하지만 이들을 뿌리 뽑기란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결국 이래저래 울며 겨자 먹기로 산적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관계가 수십 년을 이어 내려오다 보니 상단의 불만이 계속 누적됐다.
이참에 크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문제는 인질이었다. 그것도 무려 상단주의 아들이다.
“그렇다고 산적에게 굴복할 수는 없어요. 한번 굴복하면 앞으로도 계속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해요. 이참에 저들을 뿌리 뽑고 싶어요.”
백단영이 힘주어 의견을 말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경우 인질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인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직계인 백선필과 백단영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백단영의 뒤에 앉은 장후성이 주먹을 꾹 쥐며 호기롭게 외쳤다.
“소가주는 저희가 구하겠습니다.”
좌중에 참석한 모두의 시선이 장후성을 향했다.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
옆에 앉은 남궁이화가 덧붙였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무려 화산파와 남궁세가의 미래라고 불리는 기재들이다. 저 두 사람의 무력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압도적이란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감히 산적 나부랭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설사 그 산적이 녹림십팔채에 소속된 대형 산채 인물이라 해도.
두 사람의 단호한 대응에 적잖게 안심이 된 백선필이 흡족한 미소를 띠며 반응했다.
“두 분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설사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대들은 우리 백가상단의 은인이요.”
“몇 달 전 저희는 대정문과 흑사방의 대립에서 대정문주의 따님을 무사히 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절대 실패하지 않고 소가주님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즈음에야 백단영은 대정문 사태를 떠올렸다. 그때의 경험이 적잖게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당시 대정문주 딸을 구했던 사람이 누구였지? 그녀는 무흔을 떠올렸다.
갑자기 무흔이 보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가 마침 그녀를 바라보는 무흔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황급히 다시 시선을 원위치 시켰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무흔에게 너무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흔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아버지, 석하는 제가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여건만 마련해주시면 됩니다.”
백선필은 딸의 주장에서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읽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백가상단의 무력은 절대 작지 않다. 저들 용봉대 후기지수가 가세함으로써 평소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무력이 증가했다. 지금 산적과 승부를 보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여건이라면?”
“협상단을 꾸려 대붕산채를 방문하게 해주세요. 저와 제 친구들은 뒤쪽에서 산채를 습격하여 석하를 구해낼 거예요. 산속에 자리한 산채는 구조상 은밀하게 숨어들기 유리합니다. 작전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누가 봐도 흑사방 때보다 훨씬 쉬울 것이 분명하다.
장후성을 비롯한 일행도 찬성했다. 산적 무리에게서 인질 한 명을 구출하는 일 정도야. 사실 그들 다섯이면 대붕산채 전체와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백선필 역시 백단영의 의견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협상단이라…….”
“겉으로는 일천 냥을 주고 타협하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아마 저들은 추가 조건을 내걸 거예요. 적어도 협상하는 동안에는 석하가 안전할 테니까요.”
고심하던 백선필이 수긍했다.
“그렇다면 우리 쪽 최고 고수 열 명에 낙양 무관에서 도움을 받은 열 명을 합쳐 이십 명의 호위무사를 구성해서 협상단을 꾸려보도록 하지. 앞으로 협상을 벌이는 동안 뒤로는 네가 용봉대원과 함께 석하를 구해주렴.”
기본적인 전략이 구상됐다.
소가주인 백석하의 신변은 백단영을 비롯한 용봉대원의 실력에 맡겼다. 화산, 곤륜, 남궁세가, 모용세가는 백가상단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그런 문파다.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어서 세부적인 작전 계획이 수립됐다. 점차 희망을 본 그들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
무흔은 회의를 경청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역시나 그의 뇌리에는 의문점이 맴돌았다.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던 대붕산채와 백가상단 사이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한 이유가 뭘까.
문득 그는 고산령 산채를 떠올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때 상처를 입혔던 흑백이귀란 놈들이 생각났다. 어차피 녹림은 한 통 속. 만일 그들이 복수를 계획했다면? 그 대상은 낙양 무관이나 무관과 인연을 맺은 상단이 될 것이다.
마침 억류될 뻔 했던 상행을 낙양 무관이 호위를 섰다고 하지 않았던가. 단지 우연일까.
그는 예전 소설에서 이런 사건이 없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역시 그가 고산령 산채에서 흑백이귀를 해친 일이 문제였을까.
무흔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