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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3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7화

37화. 풍사검객의 신표 (3)

 

 

 

장후성의 주위로 세 사람이 모여들었다.

바로 항상 붙어 다니는 모용예와 무공에 관한 대화를 하려던 남궁이화, 어쩌다 휘말리게 된 백단영이었다. 역시 남주답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항상 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장후성의 손에는 구묵하가 풍사검객에게 건넸던 신표가 놓여 있었다.

모용예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머, 이게 바로 신표에요? 풍사검객께서 가져오면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준다고 한 증표?”

“네, 그게 이번에 회수되었나 봐요.”

“신기하다아…….”

모용예가 신표를 냉큼 뺏어서 자세히 살폈다. 은전의 잘려나간 부분이 매끈했다.

“후아, 이렇게 깔끔하게 자르려면 공력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그녀의 한탄에 남궁이화가 신표를 뺐었다.

“나도 좀 봐.”

신표를 유심히 살피던 그녀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 그녀가 도달할 경지는 아니었다.

백단영이 질문했다.

“근데 이걸 왜 갖고 있어요?”

“현재 풍사검객께서 자리를 비우기 정말 어려운 시기거든. 고민 끝에 내가 가서 돕게 됐어.”

모용예가 인상을 찌푸렸다.

“위험하지 않아요? 나도 따라갈까요?”

“위험하면 보내지 않았겠지. 현재로 봐선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무슨 일인데요?”

“천수신장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나 봐. 보호만 해주면 돼.”

“우와! 천수신장!”

남궁이화가 갑자기 관심을 드러냈다. 그녀도 검을 쓰는 무인이다 보니 명장인 천수신장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상대는 누구죠?”

모용예의 질문에 장후성이 대답했다.

“풍운쌍마. 나도 누군지는 몰라.”

마교 인물인 풍운쌍마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 지역에서 위명을 떨치는 흑도의 인물 정도로 판단했다.

모용예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름은 무시무시한데요?”

“원래 그럴수록 허접하지 않나.”

남궁이화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때 장후성이 풍사검객에게서 받은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풍사검객과 그는 용봉대원 셋이면 충분히 제압 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파견 일 순위는 일룡인 장후성과 일승인 현공. 여기에 구진광까지. 그런데 문제는 현공이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랑 일검, 두 사람이면 충분할 거야.”

일검은 구진광이다.

“그 자식은 안 돼.”

남궁이화가 바로 반발했다.

지난 청담호 사건 때문에 구진광은 여자들에게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백단영을 위험한 곳에 내버려 두고 도망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 마땅하게 같이 갈 사람이 없는데…….”

장후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남궁이화가 주먹을 불끈 쥐며 호기롭게 말했다.

“풍운쌍마라 했지? 어디서 급조한 허접 둘인가 본데 일검 대신에 내가 갈게. 우리 둘이면 설마 해결 못 하겠냐?”

“하하, 그렇겠지?”

장후성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모용예와 백단영의 눈치를 봤다. 모용예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남궁이화와 둘이서만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이고, 백단영의 눈치를 본 것은 함께 갈 생각이 없느냐는 은근한 권유였다.

그런데 백단영은 그런 장후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백단영의 염려에 장후성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하, 뭘요. 어차피 사마외도를 제압하려고 무공을 수련하는 것 아닙니까. 이럴 때 명성을 쌓아야죠.”

장후성이 어색하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옆에서 모용예가 그의 내심을 알아채고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무흔은 운경각에서 백단영을 만났다.

운경각 이 층에서 만나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은 이제 특별하지 않았다. 무흔은 무공을 익히기 위해, 아니 엄밀하게는 읽기 위해 운경각을 들락거렸지만 백단영이 운경각을 오가는 이유는 의문이었다.

오히려 백단영 입장에서는 무흔이 운경각을 드나드는 이유가 더 궁금하려나.

오늘도 두 사람은 이 층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천수신장이라고 들어봤어?”

책을 읽던 백단영이 심심한 듯 말을 걸어왔다.

“천수신장요? 모르는데요.”

무흔은 모르는 척했다.

사실 묵천신검을 제작해서 장후성에게 주었다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긴 했다.

“중원에서 검을 제일 잘 만드는 장인이야. 신의 솜씨를 가졌다는 평이 자자해.”

“유명한 사람이군요.”

“그 사람이 위험한가 봐.”

구묵하의 신표 이야기라고 간파한 무흔은 귀를 기울였다.

“설마 따라가시는 것은 아니죠?”

지난번 대정문 때처럼 백단영이 끼어들면 곤란했다. 그때 예기치 않게 백단영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끄러미 보는 무흔을 의식한 백단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그런 사건에 참여할 수준이 안 돼.”

한숨 돌린 무흔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묵천신검을 차지하려면 매우 중요한 정보다.

“그럼 누가 가는데요?”

“장후성과 남궁이화. 두 사람이 갈 거야.”

“네?”

무흔은 깜짝 놀랐다. 뭔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장후성, 현공, 구진광, 남궁이화가 참여했다. 신진 가운데 최고의 무력을 지닌 이 네 사람이 참여했기에 풍운쌍마를 무찌르고 묵천신검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둘로 바뀌었다. 이 변화가 왜 발생했는지 그는 생각에 잠겼다.

“역시…… 현공의 부상이 문제였나…….”

“응?”

“아, 아녀요.”

“아! 원래는 현공이 가려 했는데 문제가 있나 보더라고.”

역시 대정문에서 발생한 현공의 부상이 이런 비틀림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연 둘만으로 버틸 수 있으려나? 상대는 마교의 간부급 둘이다.

“상대가 누군지는 안데요?”

설마 하는 생각에 무흔이 다시 물었다.

“풍운쌍마래.”

“그런데요?”

“그냥 그 지역 흑도 무리인가 봐.”

이런! 저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마교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둘만 보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아는 사람이야?”

당황하는 무흔의 표정을 발견한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녀요.”

무흔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

 

어두운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엄밀하게는 보름달이 아니다. 보름을 하루 앞둔 덜 부푼 달이다.

구가장에도 달빛이 구석구석 내려앉았다. 야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구가장 주변에는 인가라고는 전혀 없었다. 낮 밤으로 시도 때도 없이 달구어진 쇠를 두드리는 천수신장의 작업 소음 때문에 일반 마을에서는 전혀 자리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탕! 탕!

오늘 밤에도 구가장에는 천수신장이 내려치는 담금질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 산속의 부엉이 소리가 화음을 맞췄다.

천수신장의 아들 구묵하는 긴장감 속에 앞마당을 배회했다.

그들이 예고했던 날은 내일이었지만 오늘이라고 편안할 리 없었다.

“그래도 절세고수께서 와주셨으니까…….”

그의 시선이 마찬가지로 앞마당을 배회하는 두 남녀에게 멎었다.

일룡 장후성과 일봉 남궁이화.

풍사검객이 직접 오지 않아 의기소침해진 것도 잠시, 두 젊은 영웅을 만난 구묵하는 그들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개를 봤다. 비록 지금 당장은 저들의 무력이 풍사검객에게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신예로서의 패기와 저돌적인 과감성은 그의 불안을 잠재웠다. 거기에다 화산과 남궁세가라는 배경도 마음에 들었다.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신형에서 느껴지는 고수의 기운에 구묵하는 적잖게 안심했다.

“풍운쌍마라 했던가…… 설마 진짜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구묵하는 검을 만들라고 위협하고 사라졌던 두 흑도인을 떠올렸다. 그들의 기세도 보통이 넘었지만 저 두 남녀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고수를 파악할 능력이 그에게는 전혀 없기에 단지 그의 바람을 반영한 것일 뿐이지만.

빙그레 미소를 띠던 그는 문득 무림맹에서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신표를 잊어버리지 않게 도와주었던 남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 한 사람에게 부탁해보겠다고. 그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장후성이나 남궁이화보다 더 뛰어난 자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으니 논외의 전력으로 봐야 한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청으로 들어갔다.

하루 전이었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경계를 펴고 있었다. 장원이 넓지 않았기에 둘이면 충분했다. 본채와 수 명의 하인들이 머무는 별채, 여기에 천수신장의 작업장까지.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달려갈 수 있는 규모였다.

남궁이화는 한 손에 검을 쥐고 서성거리다 무료함을 느꼈다. 본래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 제일 지겹고 긴장된 시간이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별일 없죠? 난 작업장 구경 가볼래.”

그녀는 장후성에게 은근히 함께 갈 것을 권했다.

“다녀와라. 여기는 내가 보고 있을 테니.”

장후성이 빙그레 웃으며 함께 가기를 거부했다.

남궁이화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내심 투덜댔다.

오늘 여기에 도착했을 때 천수신장과 인사는 했었다. 천수신장은 한 부문에 일가를 이룬 장인이다. 그런 사람은 범인과 다른 점이 있다. 그녀는 천수신장에게서 그런 범상찮음을 느꼈고 이는 그녀를 위축되게 했다.

검을 사용하는 만큼 당연히 그녀는 검에 관심이 많았다. 장인이 검을 만드는 장면을 구경하고 싶었다. 혹시 그에게 부탁하면 그녀의 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 않을까. 가망 없는 기대감을 꿈꾸면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 천수신장을 만나는 것은 무서웠다.

그녀는 자신이 쥐고 있는 애검에 쓱 눈길을 줬다.

“역시 조강지처를 버리지 못하지.”

그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말을 던지고는 장원 뒤쪽으로 향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장후성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강지처가 말하는 건 검인가, 모용예인가.

몇 걸음 걷지 않아 남궁이화는 작업장에 도착했다.

탕! 탕!

맑은 타격음이 고요한 적막을 가르고 있었다.

그녀는 묵직한 쇠망치를 들고 담금질에 열중하는 노인을 볼 수 있었다. 낮에 보았을 때와 달리 작업에 열중하는 천수신장의 모습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압감을 풍겼다.

남궁이화는 말을 걸지 못하고 부근에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구경했다.

천수신장 역시 그녀에게 잠시 눈길을 돌렸을 뿐 아무런 반응 없이 담금질을 계속했다.

그녀의 시선이 모습을 드러낸 검에 닿았다.

불에 달구어졌다가 망치질이 이루어지고 다시 차가운 물에 잠기는 검신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유달리 검은빛의 검신이 무게감을 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빛깔이다.

치이익-

찬물에 검신을 식힌 천수신장이 한참 검을 점검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천수신장이 이제는 숫돌 위에서 검날을 갈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남궁이화는 정신없이 검을 만드는 작업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 천수신장의 작업에 몰두해 있던 그녀는 뭔가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천수신장의 기운과 그녀의 기운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어느새 침범해 있었다. 그 기운은 묘하게 그녀를 압박했다. 고수가 된 후 그녀에게 이런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누구냐?”

남궁이화는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일 장쯤 뒤에 서 있는 낯선 사내의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렇게 다가올 때까지 몰랐어. 아무리 천수신장에게 정신이 팔려있다고 하지만…….’

남궁이화는 자신의 부주의를 깨닫고 나타난 사내를 노려봤다.

먼저 거칠고 투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내는 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마치 낭인처럼 검은 옷을 입었다. 머리에는 죽립을 깊게 눌러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죽립 밑으로 꽉 다문 입술이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평범한 장검을 하나 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죽립 틈새로 얼핏 내비치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비수처럼 그녀를 압박했다.

“누구냐?”

남궁이화는 재차 날카로운 음성으로 외쳤다. 풍운쌍마가 벌써 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강하게 옥죄었다.

그런데 죽립인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무극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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