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8화
28화. 뱃놀이 (4)
무흔은 백단영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호숫가로 몸을 날렸다. 아무리 공공십팔보가 삼류라 해도 그가 전력으로 펼친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그가 이동하는 사이 구진광이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치며 도망쳤고, 적마는 백단영이 있는 배로 갈아탔다.
그 광경을 목격한 무흔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의 평생에 이렇게 놀라서 뛰어본 적이 또 있었을까.
가장 가까운 호숫가에 이른 무흔은 뛰는 속도 그대로 몸을 날렸다. 한 마리의 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갔다. 그의 몸이 점차 호수 면에 다시 떨어져 내렸을 때 그의 발 앞에는 어떤 연인이 놀고 있는 나룻배가 있었다.
“하압!”
그는 기합과 동시에 발끝으로 나룻배를 박차고 다시 날아올랐다. 놀라운 몸놀림이었다. 나룻배의 연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출렁이는 나룻배를 꽉 잡았다.
휘이익-
다시 한번 무흔의 신형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호수 중앙으로 날아갔다.
무흔은 이번에 착지할 수면을 바라봤다. 마침 그 자리에 연꽃이 만개해 있었다.
“연꽃을 밟고 다시 뛰면…….”
그는 멋진 장면을 상상하며 발을 내밀었다.
첨벙!
젠장. 등평도수나 일위도강 같은 초강 고수가 신법을 펼치는 장면을 연상했건만 현실은 그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아, 씨펄!”
물에 빠진 그는 자신의 무공 수준을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정신없이 팔을 저으며 백단영에게로 헤엄쳤다.
그의 눈에 물로 뛰어내리는 백단영이 보였다. 자신 있게 물로 뛰어드는 것을 보니 그녀는 수영에 자신이 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공 비급이라도 읽어볼걸. 그는 한탄하며 팔과 다리를 놀렸다. 적어도 그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백단영이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의 눈에 물에 뛰어든 백단영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으응?’
그는 잠시나마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양팔을 앞으로 쭉쭉 뻗는 그녀의 자세가 어째 자유형을 닮았다. 이 시대에도 자유형이 있었나? 어차피 소설 속이니 설정하기 나름인가.
어쨌든 지금은 그런 소소한 문제에 얽매일 때가 아니었다.
허공을 날다시피 한 적마가 금방 백단영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두 사람이 물속에 잠기며 난투극이 벌어졌다.
정신없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린 끝에 무흔은 백단영 근처에 도달했다.
“이 자식이!”
무흔은 적마를 공격하려고 허리춤으로 손을 훔쳤다. 검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은 나들이하는 날이라 검을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것은 백단영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백단영과 적마가 얽힌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적마가 그녀의 머리를 붙잡고 물에 푹 담갔다가 숨이 막혀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면 다시 물 위로 머리만 꺼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과 달리 무흔의 머릿속은 점점 침착해졌다. 적마를 어떻게 공격해야 할까. 검이 없는 데다 권이나 장은 물속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공격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적마는 초강 고수가 아닌가.
그가 공격할 수 있는 무공이라면 천단비화신공이나 비천삼검, 잔백수라십이검 정도일 뿐이다. 이 가운데 검이 필요한 무공을 모두 제쳐버리면…….
그의 머릿속에서 천단비화신공이 떠올랐다. 천단비화신공의 전반부는 심법이었다. 후반부는 축적된 기운을 장법, 지법, 검법에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지법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지금 이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무공은 천단비화신공을 이용한 지법뿐이었다.
적마가 다시 백단영의 머리채를 붙잡고 물밑으로 잠수했다. 호흡이 괴로워진 백단영이 물속에서 발버둥 치며 적마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려는 백단영과 이를 저지하는 적마 사이에 비등한 몸부림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백단영이 일방적으로 물을 먹고 있었다.
무흔은 물살을 가르며 적마에게 접근했다.
그의 접근을 눈치챈 것일까. 적마가 순간 뒤를 돌아봤다.
그를 발견한 적마의 눈이 크게 떠지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무흔의 정체를 눈치챈 것이다. 마교 물건의 행방을 아는 자! 백단영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적마는 어떻게든 백단영을 위협해서 황마를 죽인 자나 무흔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다. 그런데 이 순간 무흔이 나타났으니 굳이 백단영을 살려둘 이유가 없어졌다.
무흔을 향해 한차례 비릿한 미소를 뿜어낸 적마가 백단영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끄윽!”
강력한 충격을 배에 얻어맞은 백단영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며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적마의 손바닥에서 붉은 기운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숨을 끝장내려는 공격이었다.
무흔은 심각한 상황에 정신이 없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그는 적마의 뒤를 따라붙으며 천단비화신공을 손가락으로 내뿜었다.
푸슉-
강력한 일지가 물을 가르며 적마의 등에 적중했다.
“끄악-”
과연 천단비화신공의 위력은 물속이라 하여 약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등을 활처럼 휜 적마가 백단영의 머리채를 놓고 뒤로 돌았다.
무흔은 적마의 무시무시한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재차 신공을 운용했다. 다시 그의 손가락 끝에 천단비화신공의 붉은 기운이 맺혔다.
과연 적마였다. 무흔의 일격은 적마에게 치명상을 안기지 못했다. 적마가 가소롭다는 표정과 함께 한쪽 손을 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구체가 물속에서 섬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저건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위험! 하지만 물속이라 도무지 피할 재간이 없었다.
마치 공을 던지는 것처럼 천천히 적마가 한 손을 그를 향해 겨누었다.
고오오-
적마의 손바닥 주위가 강력한 열기로 인해 끓어올랐다.
어쨌든 지금 무흔이 비벼볼 수 있는 것은 천단비화신공을 운용한 지법. 그 역시 상대를 향해 전력을 다해 지법을 쏟아냈다.
퓨악-
일격필살!
적마의 손에서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 등 뒤에서 강력한 일지가 적마의 몸을 강타했다. 지법으로 공격하는 무흔을 본 백단영도 지법을 활용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적마가 멈칫하는 사이 무흔의 일지가 비대한 머리를 가격했다. 전력을 다한 그의 일지는 마찬가지로 적마의 머리를 관통했다.
적마는 미처 공격을 완성하지 못하고 머리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서서히 적마의 신체가 물속으로 잠겼다.
주위가 시뻘겋게 물드는 가운데 무흔은 백단영에게 헤엄쳐갔다.
일격필살의 공격을 완수한 백단영의 몸이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무흔은 급히 그녀의 몸을 붙잡고 물 위로 올라갔다.
“하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들이켰다. 그는 품 안에 붙들고 있는 백단영의 몸을 흔들었다. 다행히 그녀는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푸아!”
백단영 역시 가까스로 숨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무흔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흔은 그녀의 몸을 당기면서 나룻배 위로 이끌었다.
무흔은 적마를 죽음으로 인도한 공격을 되새겼다. 땅이었다면 적마는 절대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들을 얕잡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적절한 백단영의 반격과 전력을 다한 그의 지법이 적마를 끝장낸 것이다. 역시 천단비화신공은 무시무시했다.
다시 나룻배에 올라탄 두 사람은 물을 뱉으며 안정을 취했다.
“괜찮아요?”
무흔의 질문에 백단영은 콜록거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적마 덕분에 엄청 물을 먹은 후유증이었다.
백단영은 적마를 해치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호수에 번지는 붉은 핏물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한참 숨을 고른 백단영이 그에게 물었다.
“지법을 쓸 줄 알았어?”
“무백 아저씨에게 배웠어요.”
무흔은 적당히 응답해줬다.
그는 노를 저으며 천천히 나룻배를 호숫가로 돌렸다.
그들의 나룻배 주위로 일행이 탄 두 나룻배가 접근했다.
“백 소저! 괜찮아요?”
가장 먼저 물어온 것은 장후성이었다.
백단영은 콜록거리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백단영의 맞은편에 무흔이 탄 것을 알아본 남궁이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진광 이 자식은 어디 갔냐?”
제갈수가 호숫가를 가리켰다.
“벌써 저기에 있군.”
일행들이 모두 홀로 도망친 구진광을 비난했다.
다시 장후성이 백단영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공격했지?”
백단영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사실 그녀도 제대로 몰랐다.
흑사방에서 보았던 적마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초강 고수가 그녀와 무흔의 합작에 죽을 리가 없지 않은가.
모두가 붉게 물든 호수를 내려다보며 안면을 찌푸렸다.
“자, 돌아가자고.”
장후성이 모두에게 돌아갈 것을 권했다.
무흔은 천천히 노를 저으며 맞은편에 앉은 백단영을 바라보았다. 백단영은 먼 곳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무사히 그녀를 지켜냈다.
어째 이상하긴 하다. 과거에는 이런 장면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녀가 이 소설의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흔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만 해도 그가 수공을 익혔었거나 적마를 능가하는 고수였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천단비화신공에 대한 믿음이 더욱 짙어졌다.
‘내가 먼저 고수가 되어야 해.’
그는 결심을 굳혔다. 그가 초강 고수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녀를 지킬 수 있으니까.
***
무흔에게 운경각에서 머무는 일은 일상이 됐다.
제갈수가 전폭적으로 밀어줬기에, 그는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오랜 시간을 운경각에서 무공 비급을 읽으며 보낼 수 있었다.
이 층 서고의 비급들은 아래층에 비하면 대부분 두껍고 내용도 어려웠다. 무흔이라 할지라도 한방에 독파하기란 쉽지 않았다. 중간에 제갈수가 시킨 일도 해야 했던지라 비급을 읽는 속도는 더뎠다.
“무슨 책 읽으세요?”
무흔은 옆에 주저앉아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백단영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 이거? 무림사.”
그녀는 그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무림 역사를 서술한 두꺼운 책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도 무림사를 읽어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하지만 무림사를 읽는다고 해서 무공이 습득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내버려 두고 다른 책을 서고에서 뺐다. 가끔 그녀를 힐끔거리면서 그는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그가 이 층 서고로 올라오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가끔 백단영이 찾아와 같이 보내는 시간은 그를 흡족하게 했다. 그녀는 무공을 연마하다가 시간이 나는 틈틈이 이 층 서고를 방문했다. 그녀와 자주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무흔은 삶의 활기를 얻었다.
서고를 쭉 훑어나가던 그의 눈에 특이한 제목의 비급이 들어왔다.
만변귀공.
이름으로만 판단하면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귀신같은 신공이란 뜻이다. 도무지 어떤 무공을 의미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호기심을 느낄 여유는 없다. 바로 책을 폈다.
- 노부는 만변노사라 한다. 평생 강호를 전전했으나 변변찮은 별호도 얻지 못해 말년에 노부 스스로 만변노사라 칭했다.
“에이, 이게 대체 뭐야?”
그는 웃을 수밖에 없는 내용에 실소를 머금었다.
이어진 내용을 보면 만변노사는 평생을 도둑과 사기꾼으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황궁이나 관사를 터는 대도가 아니라 이웃집이나 마을의 서민을 터는 좀도둑이었다. 그러니 별호를 얻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이런 사람의 책이 왜 여기에 있지?”
그런 삼류가 쓴 책이라는 이곳에 책이 보관될 이유가 없다. 분명히 뭔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짜증과 함께 묘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는 책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