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7화
27화. 뱃놀이 (3)
구진광은 노를 저으며 백단영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단아한 외모가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후기지수 가운데 최고의 미녀는 모용세가의 모용예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일화라 불렸고 최근에는 천상의 꽃이라 하여 천중화라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미모에 관해서는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용예는 이미 일룡 장후성과 약혼한 사이였다. 대부분 후기지수는 닭 쫓던 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구진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곤륜파라는 좋은 배경과 잘생긴 외모, 고강한 무공 실력을 바탕으로 천하절색의 미녀와 사귀고 싶었다. 하지만 모용예는 불가였기에 차선을 찾았는데, 무림인들이 언급하는 다른 미녀는 일봉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남궁이화였다.
남궁이화도 예쁘긴 했다. 여성스러운 모용예에 비해 오히려 남궁이화의 외모는 시원시원하고 서글서글했다. 남궁이화라면 그도 대만족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남궁이화의 경우 남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무공. 게다가 남궁이화의 무공은 그를 압도했다.
그보다 더 최악은 그녀의 성격이다. 여성스러움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연스럽게 남궁이화의 앞에서 구진광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백단영이 나타났다.
놀라웠다. 그녀의 외모는 일화인 모용예와 견줄 만했다. 게다가 그녀는 무공이 그저 그랬다. 그가 다루기 딱 좋은 수준인 것이다. 비록 그녀의 배경이 이름난 무림세가가 아닌 것이 흠이었지만 그녀는 부유한 상단의 딸이었다.
재력이 넘치는 집안. 나쁘지 않았다.
그때부터 구진광은 백단영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백단영에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거리를 두었다. 아니, 엄밀하게는 모든 남자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기회를 만들어 보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녀와 둘만의 자리를 가져 보려고 노력했으나 도무지 기회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백단영과 단둘이서 뱃놀이를 하게 됐다.
‘으흐흐흐.’
그렇게 만들어 보려던 기회가 이렇게 찾아오다니! 둘이서 호젓한 호수에서 배를 젓는 이 시간은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
그는 머리를 굴리며 앞을 바라봤다.
눈부셨다.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신처럼 빛나는 그 모든 모습이 머리에 각인됐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구진광은 오늘은 기필코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잔기침을 몇 차례 하며 목을 가다듬은 다음 목소리를 가라앉혀 입을 열었다.
“무공수련이 힘드시죠?”
“아뇨, 재밌어요.”
백단영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힘들다고 하면 도와주겠다며 술수를 써볼 생각이었는데 처음부터 막혔다. 구진광은 다시 용기를 내어 물었다.
“가끔 집이 그립지 않습니까?”
“아직은 괜찮아요.”
그립다면 달래주며 그 외로운 감정을 이용해 보려 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 꽉 막혔다.
구진광은 땀이 삐질삐질 났다. 어째 이 여자가 생각보다 상대하기 만만찮다.
“혹시 찝쩍대는 사람은 없습니까? 제가 도와드리지요.”
백단영이 그를 묘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구진광은 그녀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읽었다. 찝쩍대는 사람은 바로 너란 표정이다.
“흠흠.”
그는 헛기침하며 생각을 재정비했다.
그는 노를 저으며 호수 중앙으로 배를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일행의 배와 거리가 멀어졌다. 그녀에게 고백하든 아니면 위협하든 뭔가를 하려면 떨어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백단영이 조용히 물었다.
“너무 멀리 나가는 것 아녀요?”
“하하, 괜찮습니다. 이왕 나왔다면 호수를 제대로 구경해야죠.”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싶어 구진광은 더욱 먼 곳으로 배를 몰았다.
이제는 그들이 술을 마셨던 누각은 저 멀리 작은 점처럼 보였다. 호숫가에 떠도는 일행의 배와는 꽤 멀어져서, 남녀가 쌍쌍이 어울리는 배들만이 간간이 주변에 눈에 띄었다.
“흠, 다른 배들 보세요. 남녀 둘이서 딱 붙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구진광은 이 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기대하며 넌지시 언급했다.
백단영의 안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면서 구진광은 본격적으로 행동에 들어갔다. 이곳은 호수 한중간. 그가 백단영을 찝쩍대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호수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그녀도 크게 반항하지 못할 테니까. 일단 손부터 잡아보고…….
그는 머릿속에 짜릿한 장면을 그려본 다음 노를 한쪽에 두었다.
백단영이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구진광은 슬그머니 그녀에게 가까이 앉으며 말했다.
“백 소저. 부대 내에서 혼자시라 힘들지 않으십니까? 제가 있잖습니까?”
“네?”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대로 물어왔다.
“용봉대에는 구대 문파를 비롯한 쟁쟁한 문파의 자제들이 모여 있지요. 상가 출신으로 그 속에서 버티려니 얼마나 힘드실까요?”
구진광의 장황한 설명에 백단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구진광은 좌절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뒤에서 받쳐드릴 수 있거든요. 비록 곤륜이 소림이나 무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둘만 제외한 다른 곳보다는 입김이 제법 셉니다. 백 소저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백 소저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구진광이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백단영은 자연스럽게 손을 물렸다.
손잡기를 실패한 구진광의 눈빛이 한차례 출렁였으나 금방 회복했다.
“우리는 청춘 남녀이잖습니까. 서로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
구진광이 실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녀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다.
백단영이 당황해서 뒤로 물러앉았다. 하지만 작은 나룻배에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미 구진광이 충분히 계산한 결과였다.
설사 그가 그녀를 껴안더라도 무공이 약한 그녀는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호수 한가운데. 물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그녀는 도망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주변에 그녀가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사실상 그녀는 독 안에 든 쥐다.
구진광은 곧 맞이할 흐뭇한 장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막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으려 할 때 백단영이 그의 뒤를 가리켰다. 그녀는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응?”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구진광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나룻배 하나가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룻배 위에는 적의를 입은 뚱뚱한 괴인이 타고 있었다. 단지 그것만이라면 그가 놀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적의인의 행동에 그도 입을 쩍 벌렸다.
나룻배를 탄 괴인은 노를 젓지 않았다. 대신에 호수를 향해 장력을 쏟아냈다.
푸악-
장력이 강타하자 호숫물이 격렬하게 출렁이면서 배에 추진력을 제공했다. 괴인이 탄 나룻배가 가공할 속도로 그들에게 접근했다.
“이, 이런 미친!”
구진광은 괴인의 놀라운 무공에 혀를 내둘렀다. 그도 비슷하게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저런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대는 최소한 그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였다.
놀란 그의 눈이 상대의 옷차림에 멎었다. 그의 머리에 슬그머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흑사방에서 목격했던 괴인. 사마련에서 파견 나왔다고 했던가. 그 괴인 가운데 적의를 입은 뚱뚱한 녀석과 황의를 입은 홀쭉한 녀석이 있었다. 이 둘의 무공은 상상불가였던 것으로 기억났다.
“설마?”
눈앞에 나타난 나룻배의 괴인은 적의에 뚱뚱했던 그자와 닮아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를 위협했던 홀쭉했던 황의 괴인의 가공할 무위가 떠올랐다.
“으으으…….”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두려움에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상대를 확인한 백단영이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나룻배가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다음 순간.
적의 괴인이 발을 박차고 허공을 날았다.
순식간에 이쪽으로 건너오는 괴인의 신형에 구진광은 겁에 질렸다.
쾅!
적의 괴인의 발이 그들이 탄 나룻배를 강하게 찍었다. 한차례 나룻배의 한쪽이 물속으로 푹 잠기며 요동쳤다.
일어섰던 백단영이 급히 몸을 낮추며 배를 잡았고, 구진광 역시 다급하게 나룻배를 잡았다.
괴인 적마가 가볍게 배에 올라서서 둘을 노려봤다.
구진광과 백단영이 상황을 수습하기도 전에 적마의 시선이 먼저 구진광을 향했다.
구진광이 이글이글 불타는 괴인의 눈빛에 질려 몸을 움츠리는 순간 적마의 손바닥에서 일어난 붉은 기운이 작은 구체가 되어 빛을 뿜었다.
“허억!”
풍덩!
구진광은 깜짝 놀라 호수로 뛰어들었다.
백단영이고 뭐고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바빴다. 적마의 무공을 보는 순간 자신이 감당 불가능한 고수란 사실을 깨달았기에 무조건 도망쳤다.
적마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물에 빠진 구진광을 향했다.
푸악-
적마의 가공할 일장이 구진광에게 퍼부어졌다.
“으악!”
구진광은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비록 물이 위력을 완화 시켰으나 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정신없이 그저 멀리 떨어지려고 헤엄쳤다.
그런 그의 뒤쪽으로 다시 일장이 충격을 가했다.
“으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그는 오직 호숫가를 향해 팔과 다리를 놀렸다.
백단영은 가까스로 나룻배를 붙잡고 눈앞의 적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생각지도 않은 적의 등장에 그녀의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됐다.
적마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위협하며 물었다.
“어디 있느냐?”
백단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저었다.
“그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적마가 다시 위협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백단영은 적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사방이 물이라 도망갈 방법도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헤엄치며 도망가는 구진광이 보였다. 그녀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더니. 어차피 저런 놈일 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황마를 죽인 것이 네년이었더냐?”
적마의 목소리가 더욱 싸늘해졌다.
백단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녀 또한 황마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인내심을 상실한 적마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손놀림이 실로 놀라웠다.
백단영은 순식간에 눈앞으로 날아오는 적마의 손가락을 발견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물로 뛰어들었다. 적어도 나룻배 위에서는 절정고수인 적마를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첨벙!
다행히 백단영은 수영에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물밑을 잠수해서 황마가 타고 온 나룻배로 이동했다. 그녀는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자신이 있던 나룻배를 살폈다.
적마가 그녀를 향해 가소롭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흐흐, 도망갈 수 있을 성싶으냐?”
적마 역시 물로 뛰어들었다.
***
나룻배가 떠난 호숫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무흔은 이상한 기시감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호수를 떠다니는 여러 나룻배를 눈으로 훑으며 백단영을 찾았다.
장후성과 모용예가 탄 배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발했고, 제갈수와 남궁이화가 탄 배에서는 반대로 화기애매하게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을 열심히 살펴봐도 백단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재차 떠다니는 나룻배를 훑었다.
갑자기 그의 눈에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나룻배가 발견됐다. 먼 곳에서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나룻배 하나가 보였다. 그 나룻배에 올라탄 인물은 적의를 걸친 뚱뚱한 괴인이었다.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괴물이 있었다. 바로 적황쌍마. 저자는 적마가 분명했다.
무흔의 시선이 적마가 탄 배가 향하는 쪽으로 옮겨졌다.
“헉!”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로 구진광과 백단영이 탄 나룻배가 여유롭게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들 주변에서 다른 나룻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두 사람은 홀로 멀리 호수 중앙으로 이동해 있었다.
탓-
무흔은 정신없이 호숫가를 따라 뛰었다. 무려 12성에 달하는 공공십팔보가 전력으로 펼쳐졌다. 땅바닥을 달리는 속도와 물속을 헤엄치는 속도 차를 계산해서 목표지점에 이르는 최적의 경로 선정과 매질 면에서의 각도……. 이건 물리 시간에 배운 스넬의 법칙인데 지금 이게 왜 생각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