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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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화
22화. 인질 구출 (2)
무흔은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진풍이 사라지고 없었다.
장한이 그를 잡은 것은 진풍의 노림수였을까. 혼자 덮어쓴다면서 감히 동료를 팔아넘기다니. 주변을 바삐 오가는 흑사방 녀석들이 제법 됐다.
지금은 진풍을 탓하기보다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해야 했다. 다행히 방금 진풍과 장한이 다투고 있을 때 변명거리를 생각하긴 했었다.
“아아……, 전 식자재 납품상에서 왔어요.”
“거짓말 마라. 납품하던 녀석들은 아침마다 내가 봐서 눈에 익었다. 넌 처음 보는 놈이야.”
어째 쉽게 넘어가기 힘들 것 같다.
“진짜라니까요.”
무흔은 볼멘 목소리로 항의했다.
안면을 찌푸리던 장한이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보증해줄 사람이 있느냐?”
당연히 증명해줄 사람이 없다.
문득 그를 잘 봐준 책임 찬모가 생각났다.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만일 그 자리에서 발각된다 해도 무공이 고강한 남궁이화나 백단영이 곁에 있다. 주방 안이라 상대적으로 녀석을 처리하기에도 이곳보다 유리하다.
“이, 있어요.”
무흔은 주방 쪽을 가리켰다.
여전히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 장한이 재촉했다.
“앞장서라.”
무흔은 천천히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주방 부근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책임 찬모가 밖으로 나왔다.
“어? 여보게 용팔이. 자네 뭐 하나?”
찬모가 먼저 장한에게 말을 걸었다. 장한이 피식 웃으며 무흔을 가리켰다.
“첩자 한 놈을 잡았거든.”
“첩자?”
찬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는 사람인가?”
찬모의 행동에 장한이 급히 물었다.
“오늘 일을 제일 잘하던 녀석이잖아? 이 녀석 첩자 아냐. 식자재상에서 일 도우라고 보낸 총각인데 일을 진짜 잘해. 칼잡이가 식자재 일에 그렇게 능할 리 있겠어?”
찬모의 대답에 장한은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찬모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있다가 주방으로 와. 전 부친 거 맛보여 줄게. 맛이 끝내주더라.”
장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찬모가 바삐 저쪽으로 사라졌다.
찬모의 대답에 장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흔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투덜댔다.
“저도 빨리 일하러 가야 한다고요.”
무흔을 노려보던 장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너 수상해. 더 확인해봐야겠어. 앞으로 가.”
장한이 그를 한적한 창고로 데려갔다. 창고의 문을 삐걱 열고는 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일단 묶어놓고…….”
무흔을 창고 안에 밀어 넣은 다음 장한이 주변에서 밧줄을 찾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서 박도가 떨어졌다.
퍼벅-
무흔의 주먹이 번개처럼 움직이고 둔탁한 타격음이 창고 내부를 울렸다.
“커흑.”
장한이 가슴을 움켜쥐고 푹 꼬꾸라졌다.
무흔의 권법은 비록 삼류 무공 비급에서 읽은 것이지만 숙련도가 5성에 달했다. 무공 실력이 변변찮은 장한이 무방비 상황에서 급소를 맞았으니 버틸 리 만무했다.
작정하고 몇 대 더 두들기자 장한이 혼절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무공이 고강해서 마혈이나 아혈을 짚을 수 있었다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무흔은 창고 문을 닫고 장한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별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일단 장한의 겉옷을 벗겨서 걸쳤다.
“이 자식, 살이나 좀 빼지, 옷이…… 엄청 크군.”
근육이 우락부락한 녀석이라 옷이 맞지 않았으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흑사방 옷을 뺏어 입은 무흔은 장한을 밧줄로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여전히 정신을 잃은 녀석을 쓱 훑어보고는 박도를 허리에 맸다.
그는 창고 문을 닫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
대정문주와 흑사방주는 탁자를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나누어 앉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정문은 애초 흑사방에서 요구한 대로 비도를 주고 딸을 돌려받으려 했다. 인질을 구해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대정문주가 비단에 싼 비도를 보여주었을 때 흑사방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그동안 장후성은 대정문주 옆에 서서 흑사방 쪽 사람들을 가늠하고 있었다. 흑사방주 옆에 앉은 장로들은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흑사방주 또한 무공이 별로였다.
‘이 자식들이 뭘 믿고 있는 거지? 사마련에서 보낸 그 다섯 고수는 어디로 갔어?’
장후성은 흑사방의 전력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음에 안도하면서 대청 내부의 인물들을 주시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대정문주와 달리 흑사방주가 기세등등하여 소리쳤다.
“우리는 앞으로 이십 년간 대정문의 봉문을 추가로 요구하오.”
흑사방주가 욕심을 드러냈다.
“그건 너무하지 않소? 이십 년 봉문은 문을 닫으란 말과 같소.”
“흐흐, 이제 알았소? 그게 바로 우리가 요구하는 거요.”
“이런 미친!”
말이 안 되는 요구에 대정문주가 주먹을 쥐며 울분을 터트렸다.
흑사방주는 느긋한 표정으로 대정문주를 놀렸다.
“당신 딸이 우리 손에 있음을 잊었나?”
분노하던 대정문주가 가까스로 울분을 삼켰다. 무엇보다 딸부터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인질로 잡아간 내 딸부터 내놓으시오.”
“협상을 마무리하면 보여드리리다.”
“딸의 안전을 확인하고 협상을 계속하겠소.”
“어허, 딸은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니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안전하다고 흑사방의 명예를 걸고 보장해 드리리다. 허나 여기에서 협상이 깨진다면 장담할 수 없소.”
흑사방주는 자신이 인질을 쥐고 있음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상적인 협상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대정문주는 한숨을 내쉬며 장후성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시간을 좀 주시오.”
“흐흐, 당연히 쉽지 않겠지. 그렇다면 엎겠소.”
흑사방주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흑사방 문도가 갑자기 주위를 에워쌌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대정문주가 소리쳤다.
흑사방주가 껄껄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긴. 대정문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우겠다!”
동시에 흑사방주가 옆에 있던 부하가 들고 있던 검을 들었다. 흑사방주가 검을 높이 올리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검을 움켜쥐고 호응했다.
챙-
예상과 다르게 협상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직 납치된 딸을 찾았다는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상황 역시 제갈수의 예상에 들어있었다. 비상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비도를 챙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대정문주는 흑사방주를 향해 급하게 일장을 쏟아냈다.
쿠웅-
대정문주의 일장은 흑사방주가 휘두른 단칼에 흔적도 없이 소멸됐다. 대정문주가 아연실색하는 순간 장후성이 그의 팔을 끌었다.
모두 장후성의 의사를 눈치챘다.
대정문 일행은 단번에 대청 창문을 깨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와장창!
“잡아라!”
흑사방 무인들이 소리를 높이며 우르르 몰려나왔다. 동시에 장원 여기저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흑의인들이 등장했다.
장후성을 비롯한 대정문 일행은 앞마당에서 곧바로 흑사방 무인들에게 포위됐다.
“네놈들이 감히!”
대정문주가 흑사방주를 향해 분노의 일갈을 토해냈다.
흑사방주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반박하려던 장후성은 흑사방주 뒤에 소리 없이 나타난 다섯 명의 괴인을 발견했다. 무려 다섯이나 되는 괴인이 은은하게 기세를 뿜고 있었다.
‘고수다.’
장후성은 직감적으로 그 다섯이 자신과 필적할 고수란 사실을 알아챘다. 소문에 사마련에서 다섯 고수가 지원을 나왔다고 하더니 저들인 모양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섯 무인의 행색을 살폈다.
그 가운데 특이한 옷차림을 한 두 괴인이 눈에 띄었다. 붉고 노란색의 요란한 옷을 입었는데 외모가 뚱뚱하고 홀쭉해서 완전히 대조되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장후성은 마교의 인물을 떠올렸다. 적황쌍마! 중원에도 꽤 알려진 마교의 인물. 설마 흑사방을 돕는 곳이 흑도인 사마련이 아니라 마교였던가.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무흔이 흑사방의 검은 옷을 입고 경계가 허술한 별채 곳곳을 오갈 때였다.
마찬가지로 같은 옷을 입은 두 녀석과 동선이 엇갈렸다.
“너, 뭐야?”
두 녀석이 그에게 소리 질렀다. 들켰다고 생각한 무흔은 머리를 굴렸다.
두 녀석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훑어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옆 동네에서 지원 온 놈이군.”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무흔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흑사방이 만일을 대비해서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했던 모양이었다.
녀석들이 무흔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똥개도 자기네 집에서는 힘을 쓰는 법이다.
“열심히 해라. 빈둥거리지 말고.”
경고를 받고 멈칫하던 무흔은 떠오른 작전을 폈다.
“헉! 깜빡할 뻔했다!”
그의 외침에 두 녀석이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맡은 일이 있었는데 큰일 날 뻔했네.”
“무슨 일인데?”
“그…… 털북숭이 있잖아?”
무흔은 대정문 협상단을 맞이하던 흑사방 부방주의 외모를 설명했다.
“아, 부방주님은 왜?”
“부방주께서 아가씨를 모셔 오라던데?”
“아가씨?”
“지금 협상하고 있잖냐? 현장에서 위협해야 한다고…….”
무흔은 슬그머니 대정문주 딸 이야기를 꺼냈다. 부방주의 명이라고 설명했던지라 두 녀석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야! 그럼 빨리 이야기해야지. 부방주님 성미가 얼마나 급한데.”
통했다. 무흔은 속으로 희희낙락했다.
정원을 가로질러 구석진 곳에 있는 별채에 도착했다. 별채 앞에는 무사 둘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지키고 있던 무사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여기에는 왜 왔냐?”
“여자를 데리고 오라는 명을 받았다.”
지키던 무사가 의심하지 않고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섰다.
이곳이 바로 대정문 딸이 감금된 곳인가 보다. 역시 무턱대고 찾는 것보다 머리를 써야 한다.
그는 함께 온 두 녀석을 따라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거실에 젊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핏 보기에 나이는 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전반적으로 얼굴에 살이 빠져 수척한 모습이었다. 그는 분위기만으로도 이 여인이 대정문주의 딸이라고 확신했다.
“일어나라!”
한 녀석이 그녀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여인이 겁에 질려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행동에서 무흔은 그녀가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추측했다.
소리친 녀석이 그와 다른 녀석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 녀석이 여인의 옆에 가서 팔을 붙잡았다. 무흔 역시 곧바로 다른 쪽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여인은 반항하지 않고 그들을 노려보기만 했다.
“자, 가자.”
여인을 양쪽에서 붙잡은 두 사람을 쓱 훑어보고는 명령을 내린 녀석이 몸을 돌렸다.
무흔은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이 두 녀석을 해치울 것인가. 아니면 밖에서 해치울 것인가. 사실 결정은 이미 나 있었다. 안에서는 둘이고 밖에서는 넷이다. 게다가 기습은 언제나 옳다.
다행히 그는 여인의 팔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반면 옆에 있는 녀석은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당연히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으니 그가 훨씬 유리한 위치다. 게다가 앞에 선 놈은 지금 그에게 등을 보인 상황. 사실상 완벽한 조건이다.
무흔은 슬그머니 오른손을 박도로 가져갔다. 창고에 가둔 그 녀석이 쓰던 무기다.
그는 순간적으로 여인을 녀석에게로 확 밀었다. 동시에 도를 이용해서 삼재검법을 펼쳤다.
베기!
박도가 앞서가던 흑의인의 어깨를 내리쳤다.
서걱-
“으악!”
흑의인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무흔은 그 광경을 볼 틈이 없었다. 어느새 그의 몸이 빙글 회전하면서 여인과 함께 한쪽으로 쏠려있는 흑의인에게 세로 베기가 들어갔다.
순식간에 공격받은 흑의인은 전혀 방어하지 못했다.
푸욱-
도가 그의 가슴을 갈랐다.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흑의인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여인이 깜짝 놀라 눈동자를 크게 떴다.
무흔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문 쪽으로 붙었다.
“무슨 일이야!”
별채 앞을 지키던 두 녀석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서걱-
박도가 한 녀석의 옆구리를 갈랐다.
다른 한 녀석이 놀라 검을 빼기도 전에 그의 박도가 이번에는 배를 파고들었다.
두 녀석이 거의 동시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실로 번개 같은 동작이었다.
무흔은 손에 쥔 박도를 버리고 녀석들이 버린 검을 잡았다.
그는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대정문주 따님?”
여인이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얼른 가시죠.”
여인이 주저 없이 그를 따라왔다.
무흔은 실내에 쓰러진 네 녀석을 쓱 점검하고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상 처음으로 해보는 살상이다.
게임과 다름없는 가상의 세계라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다급한 현재 상황 때문일까. 무흔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빨리 이 여인을 구해서 탈출해야 한다는 일념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