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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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9화
19화. 대정문 원정 (1)
대정문이 자리 잡은 지역은 적산이란 곳이었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의 작은 마을로 그나마 장이 서는 마을 중심에는 오가는 상인들로 번화했다.
용봉대 일행은 적산의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객잔은 마을 소식을 염탐하기에 괜찮은 장소다. 대정문에 입성하기에 앞서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일행의 수는 모두 아홉. 이처럼 많은 수가 몰려다니면 남들의 시선을 끌 우려가 있다. 책임자인 장후성은 일행을 두 패로 나눴다. 보조 수행원인 무흔과 진풍을 따로 배치했다. 무흔은 백단영, 장후성, 남궁이화와 함께였고 진풍 쪽은 구진광, 현공, 제갈수, 후연이었다.
무흔은 백단영과 함께, 또 진풍과 다른 편이어서 만족했다.
그들은 각자 무리 지어 마을을 돌아다니며 대정문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오기로 했다. 무흔을 포함한 일행 넷은 북적거리는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소문을 수집했다.
개봉의 큰 시장과 달리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소규모 봇짐장수들이 많았다.
“무흔? 저건 어때?”
작은 노리개를 쭉 모아 놓은 행상 앞에서 백단영이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흔은 내심 미소를 머금으며 반응해줬다. 이럴 때 백단영은 무림인이 아닌 여염집 규수랑 다르지 않았다.
“예쁜데요? 하나 사 드려요?”
“아니,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백단영은 구경만 하고 사지 않았다. 무흔은 언젠가는 그녀에게 저런 노리개를 선물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돌아다니는 장후성은 원래 그런 물건에 관심이 없었고, 남궁이화는 선머슴처럼 여인용 물건에 전혀 눈을 주지 않았다. 임무에 투철한 이 두 사람은 물건을 구경하는 척하면서도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노리개를 구경하던 백단영이 상인에게 슬쩍 물었다.
“요즘 장사 잘 되시죠?”
“에이, 잘 될 게 뭐 있나요. 예전이랑 마찬가지죠.”
“그럼 괜찮은 거네요. 딴 곳은 힘들다고 하던데…….”
백단영이 재치있게 분위기를 물어봤다. 마을 분위기는 이런 잡상인들이 제대로 알고 있다.
노리개를 파는 상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렇지도 않아요. 파는 건 같은 데 뜯어가는 녀석이 더 뜯어가니…….”
“뜯어가는 녀석요?”
“흑사방 있잖아요.”
상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입을 닫았다.
백단영은 더 상세한 정보를 듣고 싶었다.
“흑사방이 왜요?”
상인이 백단영을 힐끔 아래위로 훑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가씨께선 외지 분이신가 보네요. 대정문이 무너지고 흑사방이 이 동네 실권을 잡은 뒤로 보호비로 두 배를 더 챙겨주고 있어요.”
“대정문이 무너져요?”
“무너졌다기보다는 문을 딱 닫아놓고 사실상 봉문 상태예요. 그러니 흑사방이 날뛰는…….”
상인이 설명하다가 황급히 입을 닫고 돌아섰다.
백단영은 갑작스러운 상인의 태도에 주위를 둘러봤다. 저쪽에서 서넛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잡배가 시비를 걸고 있었다.
“흑사방 사람이에요?”
“아뇨, 동네 양아치들이죠.”
상인의 설명에 백단영은 금방 분위기를 파악했다. 못된 놈들이 다가오니 주인이 몸을 사린 것이다.
백단영을 따라 무흔 또한 주의를 기울였다.
시정잡배처럼 보이는 장한 셋이서 옷가게 주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옷가게 주인은 마흔가량 되어 보이는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열 받은 듯 장한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난 못내. 내가 장사하는데 도와준 것 있어? 있냐고!”
고성이 높아지자 부근을 오가던 사람의 시선이 옷가게로 집중됐다. 자연스럽게 장한들의 안면이 붉어졌다. 오히려 장한들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줌마,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뭘 좋게 넘어가? 나, 돈 없어!”
장한들도 이런 경우엔 짜증이 난다. 이런 집에서 돈을 못 받는다고 해서 문제 될 일은 아니나 한곳에서 못 받으면 옆집에서도 받기 어렵다. 이런 생리를 잘 아는 장한들이 서로 눈치를 교환했다.
“아줌마, 내놓으슈.”
“없어.”
“그럼 이거라도 내놔!”
장한이 팔고 있는 서너 벌의 옷을 확 가로챘다. 아줌마가 옷을 뺏기지 않으려고 붙잡았다.
“야! 이 호래자식들아! 안 놔!”
아줌마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단영이 안면을 찌푸리며 옷가게를 향해 뛰쳐나가려 했다. 다급하게 그녀를 잡는 손이 있었다. 장후성이었다.
“우리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저 아주머니가…….”
그녀는 분노를 터트렸으나 장후성의 단호한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장한 셋은 막무가내였고 주인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팔던 옷을 빼앗긴 옷가게 아줌마는 엎어져서 울음을 터트렸다.
장한 셋은 다시 그 옆 가게로 가서 시비를 벌였다. 이번에는 곧바로 수금된 듯 바로 옆 가게로 옮겼다.
신기하게도 장한들은 그들이 구경하는 노리개와 장신구 가게를 그냥 지나쳤다.
“어? 저들이 여긴 왜 그냥 지나가요?”
노리개 주인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우리는 흑사방에 상납하거든요. 흑사방에 상납하는 가게는 안 건드려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동네 양아치들은 흑사방과 이미 손발을 맞춰 과거에 대정문이 돌봐주던 가게를 집중적으로 위협한다는 뜻이다.
백단영의 분한 표정을 본 남궁이화가 슬그머니 바닥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 들었다. 그녀는 백단영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강하게 돌을 던졌다.
돌멩이가 날아가서 옷을 들고 가는 흑의인의 발뒤꿈치를 가격했다.
“컥!”
철퍼덕-
녀석이 앞으로 넘어졌다.
녀석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시펄. 하필이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다니.”
꽤 강하게 타격을 입은 듯 녀석이 절뚝거리면서 일행들과 저편으로 사라졌다.
“킥킥.”
우울하던 기분이 확 풀린 백단영은 남궁이화화 함께 대소를 터트렸다.
일행은 장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정을 파악했다.
예전에 대정문에서 보호해주던 주루가 흑사방으로 넘어갔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거기에다 조만간 다른 몇몇 가게 역시 넘어가기 직전이란 소문을 입수했다.
사실상 이곳 적산에서 대정문의 영향력이 거의 지워지는 상황이었다.
***
그날 밤 일행은 수집한 정보를 종합했다.
대화의 주도권을 장후성과 제갈수가 쥐고 있어 나머지는 주로 듣기만 했다. 당연히 이런 자리에 낄 급이 안 되는 무흔과 진풍은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무흔은 자신이 알고 있는 대정문 사태와 비교했다. 안타깝게도 예전 소설에서는 백단영이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내용이 매우 부실하게 서술되었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과 전개 방향이 그도 아리송했다.
“대정문이 봉문 상태라……, 그 말은 문파 내부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인데.”
“흑사방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원래 대정문과 흑사방은 이 지역에서 서로 맞수였다더라. 수 대에 걸쳐서.”
“한 달쯤 전에 흑사방에서 대정문에게 공개적으로 혈투를 요청했고, 대정문은 회피했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흑사방이 야간에 습격했고 다음 날 바로 대정문은 봉문을 선언했다던데.”
일행들이 제각각 모아온 정보를 털어놓았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대정문이 사실상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기존에 안고 있던 각종 이권 업체는 이미 흑사방에 넘어갔거나 넘어가기 일보 직전. 거기에다 대정문은 외부에서 자파를 방문하는 손님도 모두 돌려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대정문에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지?”
“바로 돌려보낸다고 하잖아.”
“무림맹에서 왔다면…….”
“그동안 무림맹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더 타박 받을 걸?”
모두 머리를 모아 숙의를 나눈 후에 제갈수가 전략을 짰다.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어. 정보가 더 필요해. 오늘 밤에 대정문을 방문해서 확인해보자고. 어때?”
제갈수의 제안에 장후성이 찬성했다. 사실 이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럼 누가 갈까?”
일행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동시에 한 사람에게 시선이 모였다.
결론은 제갈수였다. 이 사건의 전략 부문을 담당한 데다 무공이 뛰어나기도 했고 말도 조리 있게 잘 했기 때문이었다.
무흔은 기억을 더듬어 대정문은 만혈대의 지하미로 지도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대벽산 만혈대(萬血臺)는 과거 백 년 전 무림맹과 마교가 정마대전을 벌였던 장소다.
만혈대는 당시 마교의 중원진출 본거지였고, 그 내부는 천연동굴과 각종 기관진식이 융합된 천혜의 미로였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안고 싸운 마교는 무림맹과 비등한 전투를 벌였었다.
정사의 수많은 고수가 사망한 장소. 그 장소가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사부를 비롯한 사형제의 시신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지만 그곳에 남았을 엄청난 보물급 무기와 혹시나 있을 각종 무림 비급이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바로 그 미로를 해석한 비도가 대정문에 있었다.
예전 소설에 따르면 이 비도는 장후성에 의해 무림맹으로 전달되고 훗날 무림맹은 대대적으로 만혈대를 수색하게 된다.
이런 관계를 떠올린 무흔은 이번 대정문 사건에 백단영이 끼어들지 않기를 원했다. 원래의 소설에서 그녀는 이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었으니까.
지금 어쩌다 이곳에 백단영과 함께 와 있으나 존재감 없이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최선이다. 대정문의 비도가 무사히 장후성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무흔은 주요인물이 아니기에 회의가 끝나기 전에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객잔의 구석진 방으로 갔다. 이미 한 녀석이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바로 진풍이다.
무흔도 조용히 한쪽 구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어쩐지 심심했다.
“아, 심심해. 이 동네는 밤 문화가 없나?”
창밖을 바라보니 유흥가 불빛은커녕 깜깜했다.
원래 출장 가면 밤에 술과 가무를 즐기는 것이 기본 아닌가? 어째 이 동네 정파인들은 고지식한 면이 있다. 무흔은 현대의 유흥문화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상 용봉대원은 이곳에 출장 온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술과 가무를 곁들여야 사기도 올라갈 것을. 해가 떨어지면 주막에도 불이 꺼지기 바쁘니 이래서야 밤 문화가 생성될 턱이 없다.
파견 나와서 백단영과 둘이서 술을 마신다면? 생각지도 못할 므흣한 상상을 떠올렸다.
그녀와 함께라면 소주도 양주가 되고……. 하지만 함께 온 남궁이화를 떠올리니 선머슴 같은 그녀의 무력이 먼저 떠올랐다.
“아, 그녀는 좀 아니고…….”
따지고 보면 이 밤에 술을 마시더라도 말단인 그가 제대로 놀 수 있을 리가 없다. 놀 상대도 없을뿐더러 백단영을 옆에서 호위해야 하는 그이기에.
생각해보니 아직 무림에 와서 기루라곤 발을 들여본 적이 없었다. 현대의 유흥주점과 이곳 기루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쨌든 좋은 문화는 한시가 급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에혀, 정신 차리자. 내 주제에 밤 문화는 무슨.”
옆에서 잘 자는 진풍을 쓱 째려보고는 무흔은 눈을 감았다.
어째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거리면서 고생하던 그는 마침내 이유를 발견했다.
바로 고약한 냄새!
참다 참다 화가 난 그는 진풍의 머리를 한 대 후려갈겼다.
“야, 진풍!”
“으응? 왜 깨워?”
“발 씻었냐?”
“귀찮게 그걸 왜 씻어.”
“흐아, 더러운 놈.”
“귀찮아. 싫으면 딴 방 가라.”
진풍이 돌아누우며 다시 눈을 감았다. 대책이 서지 않는 녀석이다.
“흐아!”
무흔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문밖 마룻바닥에서 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는 조용히 베개를 들고 문을 나섰다.
마침 회의를 끝내고 들어오는 구진광과 마주쳤다.
“무흔! 너 어디 가냐?”
“밖에서 잘래요. 안이 갑갑해서요.”
무흔이 베개를 한쪽에 펴고 드러눕는 것을 보던 구진광이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미친놈.”
그러면서 방 안으로 들어간 후 대략 반각의 시간이 흘렀을까.
구진광은 이불을 들고 밖으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