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31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31화
131화 하필이면……(2)
스파앗!
코너와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거대한 강철판에서 눈 부신 빛이 튀어나왔다.
세인트가 인챈트에 필요한 마나를 모두 주입하면서 방어 마법진이 활성화된 게 틀림없다.
“쯧! 마나를 엄청나게 잡아먹는군.”
세인트가 인상을 쓰면서 거대 강철판에서 내려왔다.
물리 방어와 달리 마법 방어는 주입한 마나의 서클에 따라 방어할 수 있는 마법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코너보다는 세인트에게 마나 주입을 부탁한 것이다.
놀면 뭐해?
밥값은 해야지.
쓸데없이 놔두면 또 어디 가서 성병이나 걸려서 돌아올 게 뻔한데 말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세인트 자식은 틈만 나면 영지민 거주지로 내려간다.
참한 여자 만나서 결혼하겠다던 야욕(?)은 대체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정복보다 더 거창한 목적을 세우고 인간계에 나왔다더니…
응?
어쩌면 세계정복보다 한 여자의 마음을 정복하는 게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겠다.
세계정복이나 한 여자를 정복하는 거나 난이도는 비슷하다고나 할까?
“최고였어. 수고했다. 세인트.”
어쨌거나 일을 했으니 칭찬 한마디 정도는 해주었다.
“뭘 만들려고 이렇게 요란을 떠는 거냐? 움직이는 마차 같은 걸 만들려는 거냐?”
“아?”
녀석의 어깨를 두들겨 주던 나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겨우 강철판 한 장을 보고서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윌슨, 왜 그렇게 놀라요? 진짜 저게 자동 마차였어요?”
코너가 눈을 크게 뜬다.
“뭐, 대충 비슷해. 그런데 세인트, 어떻게 알았지?”
“자식,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녀석한테 준 크로노스를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해?”
세인트가 코웃음을 친다.
아!
이 녀석도 마법 장비를 만드는 장인이었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재회(再會) 이후, 리치였던 시절의 녀석을 떠올릴 수 없었다는 게 문제다.
틈만 나면 여자를 찾아 나돌아 다니기 바빠서, 뼈다귀 시절의 카리스마라곤 찾아볼 수 없으니…
아니!
그렇다고 해도 좀 이상하다.
녀석은 갑옷과 병기를 전문으로 만들던 녀석 아니었던가?
“세인트, 너는 갑옷과 병기만 만들던 거 아니었어?”
“이 자식이 날 띄엄띄엄 보네? 내가 천… 음음! 아무튼, 그 오랜 시간 동안 뭘 했겠냐?”
세인트는 코너를 의식해 잠시 말을 끊고는 눈을 흘긴다.
아마도 ‘천 년’ 혹은 ‘천 년 넘게’라는 말을 하려다가 생략한 듯하다.
“본 적이 없는데?”
“만들고 없애고 그랬지. 위험하잖아. 너한테 준 크로노스처럼.”
“그렇긴 하겠네.”
순순히 녀석의 말에 동조했다.
세인트가 제작한 물건은 불필요하다고 싶을 정도로 효율이 좋다.
그런 마법 물품들이 풀리면 인간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수류탄을 아무한테도 공개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보면 맞겠다.
지금 개발하는 대형 이동수단 역시 코너조차 모르게 진행하고 있을 정도니까.
세인트 덕분에 들통 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 봐야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면 끝이다.
마법진을 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품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알지 못한다면 제작하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만들어 놓고서 폐기하지 않은 물건 같은 건 없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녀석이 만들었던 것은 대부분이 전쟁과 관련된 물건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다 없앴어.”
“못 봤는데…….”
“철탑이 처음부터 철탑이었을 거 같아?”
“아…….”
녀석의 대답에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만들었던 물건을 철탑의 일부분으로 바꿨다는 의미겠다.
“자식, 아깝게.”
“아깝기는? 언젠가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다.”
“뭔 헛소리야?”
“그런 게 있다. 네 녀석의 능력이 되면 그때 알려 주지.”
세인트가 피식 웃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이 자식이 호기심만 건드려놓고 말을 끊어?
그건 도저히 못 참겠다.
“사람 궁금하게 만들고 얘기를 끊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영주님! 영주니임~!>
녀석에게 따지고 드는데, 지하 벙커가 웅웅거릴 정도로 소리치는 안토니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궁금해진다. 평소의 안토니는 여유로움이 몸에 밴 사람이었으니까.
작업실의 문을 열고서 나갔다.
예전과 달리 라이트 마법등이 설치되어 벙커 내부를 밝히는 중이다.
“영주님! 크, 큰일 났… 헉, 헉!”
안토니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평소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
“헉, 허억, 헉! 화, 황제 폐하께서 승하(昇遐)하셨다 합니다!”
숨을 몰아쉬던 안토니가 힘겹게 대답했다.
“황제가 죽었다는 겁니까?”
“그러합니다. 영주님. 코너 님이 안 계시는 바람에 일방 통신으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안토니.
작업실에서 작업하느라 방해가 되어 수정구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안토니가 여기까지 뛰어 온 것이다.
수신할 마법사가 없으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만 수정구에 나타나니까.
일종의 부재중 메시지?
어쨌거나…
내내 멀쩡히 잘 있던 황제가 갑자기 왜?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다.
황제의 장례라면 며칠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
프레하 제국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판국에 하필이면 황제가 죽다니!
“세인트!”
“왜?”
“코너 녀석을 도와서 영지 좀 잘 꾸려 줘.”
“이런 꼬맹이를 도우라고?”
세인트가 떨떠름한 얼굴로 코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어차피 놀 시간은 많잖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부탁하자.”
“큭… 할 수 없군. 대신에 알지?”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하게 해줄게. 망할 자식아!”
녀석이 뭘 바라는지 알기에 꽥 소리를 질렀다.
하여튼 밝히기는 더럽게 밝힌다. 황제가 죽었다는데도 말이다. 원래는 코너까지 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게 맞다.
그러나 저 게으른 세인트가 인챈트 마법과 같은 복잡한 작업을 해줄 리가 없겠다.
코너를 남겨 둬야 하는 이유다.
“좋아! 맡겨 둬라!”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대답하는 세인트.
“그럼 믿는다.”
밉살스럽게 미소 짓는 세인트를 뒤로 하고서 지하 벙커를 빠져나갔다.
***
멀리 트럼벌 요새가 보인다.
황제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서 평소처럼 시안과 티오를 대오하고 이동 중이다.
두 녀석이 가장 충성심이 높은 것도 있지만, 솔직한 이유는 만만하기 때문이다.
다른 녀석들은 너무 아저씨 같이 생겨서 함께 다니기가 부담스럽거든.
“트럼벌 요새다.”
“영주님, 거 너무 쉬엄쉬엄 온 거 아닙니까?”
시안이 불안한 얼굴로 말한다.
“일찍 가면 뭐해? 어차피 장례식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하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캥겨서 그런 겁니다.”
“됐고, 느긋하게 가는 거다. 서두를 필요 없어.”
시안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나로서는 상관없는 일이다.
살아 있는 황제라면 몰라도 죽은 황제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
아직 황태자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선 더더욱 말이다.
망할 황제 같으니!
황태자 문제라도 처리해 놓고 죽었으면 좀 좋아?
재수 없으면 후계문제로 집안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말이 좋아 황족이지,
냉정한 눈으로 보면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다.
한국에 살 때도 역사 속의 왕족들… 아니 돈푼깨나 만진다는 인간들과 정치질 좀 한다는 인간들만 봐도 답이 나온다.
권력을 위해선 형제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제거하는 게 보통.
무려 제국의 주인을 가리는 상황이고 보면, 더 지독하고 더러운 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프레하 제국이 호시탐탐 엘튼 제국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설마 피 튀기게 집안싸움을 할까 싶지만…
황족이라는 것들에게 상식을 바라는 건 무리가 있는 일이라는 게 문제다.
왕족이나 황족들의 집안싸움에서 별의별 미친 짓이 벌어지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지만, 이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트럼벌 요새가 점점 크게 확대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시체 파묻는 작업을 했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허연 눈으로 뒤덮여 얼음의 성을 마주한 느낌이다.
“멈추십시오!”
트럼벌 요새의 성벽 위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이언 영지의 주인 윌슨 아이언 남작이오. 문을 열어 주시오!”
굳이 목적을 얘기할 필요도 없는 일.
황제가 죽은 소식이 아이언 영지에까지 전해진 상황. 트럼벌 요새에서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가슴팍에 아이언 영지의 문장까지 그려져 있으니, 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을 터.
“확인 감사합니다. 아이언 남작님!”
끼이이익!
트럼벌 요새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제대로 신분을 확인시켜 준 것도 없는 데 고맙단다.
우리가 기껏해야 세 명이라 딱히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아서인 듯하다.
뭐가 되었건 귀찮음을 줄일 수 있다면 나로서도 좋은 일.
“어서 오십시오. 아이언 남작님.”
문을 열어 준 병사가 약식으로 군례를 올린다.
“고맙다. 수고해.”
가볍게 손을 들어 주고는 칼립을 몰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아이언 남작님!”
“응? 뭔가?”
“사령관 각하께서 집무실로 오시라고 하십니다.”
“존슨 자작께서?”
“네, 그렇습니다.”
의아한 얼굴로 묻자, 병사가 자세를 바로 하고서 대답한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존슨 자작을 만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제국 전쟁에서 그와 호흡이 잘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제도로 가지 않았다는 것은 일부러 나를 기다렸다는 의미다.
칼립의 등에서 내려 한 차례 눈을 맞췄다.
“푸륵! 푸르륵!”
“적당히 하자, 응?”
녀석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종속의 인’을 받은 탓에 도망을 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밝힘증은 약해지지 않았다.
어째 내 주위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밝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건 말이건 마왕이건…
“시안, 대기하고 있어. 존슨 자작님을 뵈러 가야겠다.”
“알겠습니다.”
제법 믿음직스럽게 대답하는 시안을 뒤로하고 트럼벌 요새의 사령탑을 향해서 계단에 발을 올렸다.
마지막 방어를 책임지는 요새답게 상당히 높은 건물이다.
성벽에 올라서고 두 개의 층을 더 올라가서야 존슨 자작이 있는 집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충!”
경계를 서는 병사의 인사를 받고서 걸음을 멈췄다.
똑, 똑, 똑!
<들어오라고 해!>
안에서 들려오는 존슨 자작의 음성.
“들어가십시오.”
끼이익!
경비병이 문을 열어 주고는 고개를 숙인다.
“어서 오게! 아이언 남작!”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존슨 자작님.”
반갑게 맞이하는 그에게 빙그레 웃어 주었다.
지난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는 했으나, 뚜렷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에이원트 후작과 함께 싸운 공로가 인정되어 트럼벌 요새의 사령관으로 발령 난 것이다.
물론 전시 상황이 되면 입지가 달라질 테지만 말이다.
현재 사령관의 위치에 있으나, 내가 트럼벌 요새의 병력이 아니었기에 ‘각하’라는 호칭은 생략했다.
“이리 와서 앉게.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어.”
존슨 자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부른다.
“감사합니다.”
무슨 얘기를 할지 대충 예상이 되지만, 모르는 척하고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병사 하나가 들어와서는 차와 약간의 간식을 내려놓고 조용히 나간다.
“일부러 자네를 기다린 이유는 짐작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짐작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존슨 자작이 심각한 어조로 말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존슨 자작의 커다란 머리를 오랜만에 대하고 보니, 적응력(?)에 살짝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어깨너비와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머리.
다른 사람의 외모를 놓고 웃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려 한다.
이제껏 살면서 가장 슬펐던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황녀를 떠올리기 무섭게 급속도로 기분이 가라앉았으니까.
“말을 돌리지 않겠네. 자네는 누가 황태자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
잔뜩 굳은 얼굴로 답을 기다리는 존슨 자작에게 함부로 대꾸할 수 없었다.
진짜, 이 아저씨 봐라?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