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9화
9화. 비무 (1)
나흘이 지나 무흔은 다시 박무훈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며칠 정상적인 일상이 이어졌다. 그가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바로 천상무후의 조회수. 마치 본인이 작가인 것처럼 조회수를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예상대로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새롭게 등장한 무흔이라는 존재가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이었다.
박무훈은 무림이라는 세계를 경험하는 시간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특히 백단영을 만나는 것은 현실과 무림 세계의 고달픔을 힐링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제는 무림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릴 정도가 됐다.
박무훈이 다시 무림 세계로 들어간 것은 예정대로 나흘 후였다. 하루 한 편 연재되는 시스템상 그가 나흘간 다녀오면 나흘은 들어가지 않아도 될 분량이 채워졌다.
무흔의 하루는 거의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식재료를 검사하고 계산을 마치고 난 뒤 절편을 사러 뛰어다녔다. 이후에는 사실상 자유 시간. 그는 운경각을 찾았고 그곳에서 읽은 삼류 무공을 실제로 익혔다.
남는 휴식 시간에는 수업 중인 용봉대를 바라보곤 했다. 당연히 그 시선의 중심에는 백단영이 있었다.
오늘도 멀리서 수련 중인 생도를 보고 있을 때였다. 뚱뚱한 거구의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무흔이라 했지?”
무흔은 다가온 남자를 경계했다.
같은 예속 부대 소속이란 것은 알겠다. 물론 용봉대처럼 통일된 복장이 아니지만 자주 계속 맞부딪히고 숙소를 같이 쓰니까.
그런데 사실 무흔은 이 부대에서 왕따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늦게 들어왔고 맡은 일도 다른 사람과 전혀 달랐으니까. 같은 부대원들과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다. 물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친해질 생각도 없었다. 그 바람에 안면을 튼 사람은 오직 한 명, 바로 진풍뿐이었다.
갑자기 다가온 남자에게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반대로 물었다.
“저를 아세요?”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편하게 지내자고.”
녀석이 그의 옆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특별히 나쁜 의도를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무흔은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말을 놓았다.
“난 무흔이 맞는데 그쪽은?”
“난 대호라고 부르면 돼. 큰 호랑이.”
무흔은 그의 이름을 다시 되뇌어 보며 그의 체구를 훑었다. 역시 크긴 크다. 하지만 대호란 이름은 소설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엑스트라 운명이다.
“무슨 일이야?”
“친구가 전혀 없는 듯해서.”
별일 아닌 당연한 말에 무흔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용봉대 쪽으로 돌렸다.
“용봉대에 아는 사람이 있나 보지?”
“그건 왜?”
“이 예속 부대에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 건 용봉대와 연결되어 있거든.”
대호의 음성은 차분했다. 어떻게 들으면 약간 울분이 맺힌 것 같기도 했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화제를 틀었다.
“당신도 용봉대랑 무슨 일 있어?”
“하아…….”
대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흔은 대호의 한탄을 들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호는 장강 이남 절강성의 유명 무림세가 출신이었다.
물론 이름이 났다는 것은 그 동네에서만 유명하다는 뜻이다. 그곳에서는 손에 꼽히는 무림세가였으나 중원에서 본다면 그곳은 시골 중의 시골일 뿐이다. 무림맹에 감히 이름을 낼 정도는 아니었다.
절강성에서 나름대로 기재라고 소문이 났던 그는 더 높은 무공을 배우기를 원했다. 가문의 무공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무림맹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용봉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달려왔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용봉대 입대가 좌절되고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니 만감이 교차하더라고. 고향에는 아들의 입신양명을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이 있고. 부모님 앞에서 난 떨어졌다고 어떻게 고할 수 있겠어.”
무흔은 그의 고뇌가 이해됐다.
자신도 대기업에 입사 원서를 내고 떨어진 후 차마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두려웠던 적이 있지 않던가. 그래서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홀로 남아 대기업 재수를 하겠다며 집에 일방적으로 통고했었다. 그 결과는 지금 심부름센터 알바생이었지만. 이곳이나 현실이나 비슷한 고민이라는 생각에 절로 연민이 느껴졌다.
“그래서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 방법을 찾았지. 비록 내 실력이나 재능이 용봉대에 뽑힐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되거든. 예속 부대에는 문제없이 뽑혔어. 어쨌든 용봉대 부근에서 머물면서 그들의 교육을 엿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대호는 용봉대원은 아니었으나 그 예속 부대에 소속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문제점이 금방 드러났다. 예속 부대는 전투부대가 아니어서 구체적인 수련 공부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자율에 맡겨질 만큼 허술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감당할 수 있었다. 더한 문제가 곧 드러났다.
이 예속 부대는 용봉대와 연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용봉대는 그야말로 인맥의 끝판왕이 모인 곳이다. 하나같이 유명하고 힘 있는 문파의 사람들이었다. 예속 부대도 마찬가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대호는 금방 무시됐다. 그는 친구를 사귀는 것마저 힘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당신 소식을 들었지. 진풍이랑 대련한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사실 진풍 그 녀석도 웃긴 녀석이야. 곤륜 출신이라고 엄청 건방을 떨거든. 구대 문파 출신을 모아서 파벌을 조성할 정도니까.”
“그래서?”
“자네가 염려됐어. 아니군. 솔직히 말하면 나랑 같은 신세라서 관심이 생겼다고 할까.”
무흔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도 같은 신세다. 하남백가는 무림세가가 아니어서 군소방파 축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고맙군. 관심을 가져줘서.”
무흔은 미소로 화답했다.
대호 역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요 며칠 자네가 수련하는 모습을 눈여겨봤는데 말이지.”
그가 삼재검법과 공공십팔보를 연습하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걸로는 진풍을 이길 수 없어. 누구나 다 아는 삼재검법으로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어? 진풍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무려 곤륜파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무흔은 고개를 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공 하나 알려줄까?”
귀가 솔깃한 제안이 왔다. 대호가 멀뚱거리는 그에게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우리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검법이 하나 있거든. 물론 곤륜파의 검법에 비할 수 없지만 삼재검법보다는 나을 거다.”
가문의 비전 무공은 함부로 가르쳐 주면 안 된다. 이를 대호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확실히 그를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말만이라도 고마웠다. 무흔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났다.
“괜찮아. 나는 내식대로 해서 이길 자신이 있어.”
“그래.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라. 진풍 그 자식을 반드시 이겨야 해. 구대 문파라고 거들먹거리는 거 보고 싶지 않으니까.”
어지간히 출신 때문에 시달린 모양이었다.
무흔은 그에게 손 인사를 하고는 운경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혹시라도 아래층에 있을지 모를, 제대로 된 무공 비급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
진풍과 약속된 비무 대결은 금방 다가왔다.
그동안 무흔은 현실과 무림 세계를 몇 차례 오가며 온 힘을 쏟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전경험. 그에게 실전이라고는 첫날 산길에서 만났던 산적뿐이었다. 그마저 단칼에 어깨를 찔러 상대방을 상처 입힌 게 전부였다.
의외로 실전 경험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바로 대호가 그의 곁에서 상대가 되어 준 것이다. 진풍만큼은 아니었어도 대호는 꽤 고수였기에 무흔에게 훌륭한 상대였다.
물론 연습 경기 동안 무흔은 단 한 번도 대호를 이기지 못했다. 갓 배운 삼재검법과 공공십팔보로는 무림 세가 출신의 대호를 이기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준비한 보람이 있어서 무흔은 꽤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그의 팔목에는 삼재검법이 8성, 공공십팔보도 8성으로 표시됐다. 이밖에 최근에 운경각에서 읽은 무허심법 5성, 육합권법 5성, 무적신창법 5성, 풍뢰장 5성 등이 새겨졌다.
물론 모두가 다 시중에 떠도는 삼류 무공이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큭큭, 녀석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진풍이 그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서른 명이나 되는 예속 부대 인원이 연무장 한쪽 구석에 구경나왔다. 바로 그 앞에서 무흔과 진풍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부대원들이 응원하는 바로 옆에는 서옹이 코를 후비적거리며 지켜보았다.
무흔은 진풍의 도발에도 묵묵히 자세를 잡았다.
그의 손에는 목검이 잡혀 있었다. 진검은 살상을 부를 수 있기에 목검으로 비무가 치러졌으나 그렇다고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진풍 역시 목검을 들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흐흐, 오늘 이곳에서 걸어 나가기 힘들 것이다. 몇 군데 부러지는지 세어보자고.”
다시 도발하는 진풍을 무시하고 무흔은 목검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확실히 진풍은 준비 자세부터 위협적이었다. 곤륜은 검법으로 꽤 이름난 문파여서 그곳에서 수련한 사람이 평범할 수 없었다.
“흘흘, 둘 모두 기합이 바짝 들었군. 기개가 좋아. 내가 멈추라고 하면 승부가 난 것으로 알고 멈춘다. 알겠지?”
서옹이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진풍은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오직 무흔을 혼내줄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작 무흔도 서옹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익힌 무공을 떠올리면서 냉정하게 이길 방법을 구상하는 상태였다.
개시 신호가 울리기 전에 무흔은 비무를 구경하는 대원을 돌아봤다. 대부분 진풍을 응원하는 모양새였다. 당연히 구대 문파 출신인 진풍이 이기리라 예상하고 진풍이 출신이 보잘것없는 그를 혼내주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직 한 사람, 예외로 보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대호였다. 대호는 그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파묻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신호가 울리고 비무가 시작됐다.
“무흔!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라!”
팟!
진풍의 신형이 전광석화처럼 무흔을 향해 따라붙었다.
미처 준비도 제대로 하기 전에 무시무시한 공격을 맞이한 무흔은 가까스로 목검을 튕겨냈다. 연이어서 진풍의 공격이 훅 들어왔다.
얼핏 보면 마치 장난치듯 중구난방 공격하는 듯 보였으나, 아는 사람은 그 이면에 숨겨진 초식을 볼 수 있었다. 진풍이 휘두르는 검의 내면에서 곤륜의 무쌍 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흔으로선 처음 접하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그는 감히 마주치지 못하고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크크, 바로 꼬리 내리는구나.”
이미 예상했다는 듯 진풍이 바로 거리를 좁히며 공세를 재개했다.
퍼퍽!
목검이 서로 부딪치며 둔탁한 소음이 울렸다.
무흔은 검이 부딪히는 순간 손으로 전해지는 엄청난 힘을 느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풍이 그를 얕잡아 보느라 내공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무흔은 내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몸이었다.
그의 방어막을 뚫고 진풍의 목검이 옆으로 회전하며 지금까지와 다른 현란한 변화를 일으켰다.
“오! 곤륜의 건곤십이식이다!”
구경하던 대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진풍의 현란한 검술에 금방 무흔의 단조로운 검초가 어지러워졌다.
달리 구대 문파의 절기가 아니었다.
무흔은 간신히 방어하며 연신 뒷걸음질 쳤다.
“크크, 꼼짝 못 하는구나! 이미 결판났다!”
진풍은 더욱 신바람을 날렸다.
다급한 순간에 무흔은 삼재검법만이 아니라 공공십팔보도 구사했다. 두 삼류 무공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가까스로 상대의 거친 공세를 피해냈다.
파박!
두 개의 목검이 부딪칠 때마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날카롭게 휘몰아쳤다.
몇 차례 무흔을 몰아넣던 진풍은 예상대로 무흔의 실력이 별것 아님을 확신했다. 이제는 처음의 경계심은 완전히 사라졌고 깔보는 마음만 남은 상황이 됐다.
그는 이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얼마나 멋들어지게, 또 무흔에게 망신을 주며 이길지를 고민했다.
그로부터 불과 수 초의 초식이 교환되었을 때였다.
“크하하! 이제 마지막이다!”
진풍은 건곤십이식 가운데 가장 화려한 육식을 펼쳤다.
그를 돋보이게 할 최후의 초식! 검 끝의 기운이 세 갈래로 갈라지며 무흔을 향해 뻗었나갔다. 상대의 정수리와 어깨 및 상단전을 한꺼번에 노리는 고차원적인 술수였다.
동시에 들어오는 세 방향의 공격을 무흔이 단번에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삼재검법을 극성으로 익히면 가능할까? 육합권을 익힐 시간에 삼재검법을 더 익혔었어야 했어!’
그는 곤륜의 건곤십이식과 삼재검법의 차이를 실감하며 내심 한탄했다.
그때 갑자기 변화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