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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3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화

3화. 후기지수들 (1)

 

 

 

무흔이 고민에 잠겨 있을 때 구진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무흔은 화들짝 놀라 구진광과 백단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백단영이 고민하는 눈빛이다.

“제, 제가 아직 술은…….”

“하하, 앞으로 영웅들과 어울리다 보면 술을 자주 하시게 될 텐데요?”

무백 아저씨를 향해 눈짓으로 허락을 구하던 백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을 불려 오고 구진광이 죽엽청을 시켰다.

죽엽청은 꽤 독한 술이라 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술이다.

무흔의 눈에 구진광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술을 처음 마시는 여자에게 독한 술을 권하는 이유. 어차피 시종이나 마찬가지인 호위무사 둘을 따돌리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밤은 기니까.

‘이 자식, 큰일 날 녀석이네…….’

무흔은 뜻밖의 고민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구진광이 작은 술잔에 죽엽청을 따른 후 백단영에게 넘겼다.

“한잔하시죠. 술맛이 좋습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백단영이 술잔을 받았다.

상대는 정파의 유력 문파인 곤륜파. 일개 상단의 딸인 그녀로서는 그와 친분을 쌓는 것이 좋으니까. 그렇게 속으로 변명했다.

조심스럽게 술맛을 보던 그녀가 쓴맛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한 잔을 넙죽 받아마셨다.

“하하, 잘 드시네요. 처음엔 쓰지만 익숙해지면 끝내줍니다.”

“아, 네.”

구진광의 웃음에 백단영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구진광이 다시 한 잔을 권했다. 백단영의 잔에 술이 채워졌다.

무흔이 저 술잔을 어떻게 저지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진풍이란 자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상단에서도 무공을 연마합니까?”

무흔은 상대방의 표정에서 그를 무시하는 태도를 엿보았다.

“아무래도 귀한 물품과 돈을 다루다 보니까요.”

그의 대답에 상대방의 무시하는 표정이 더욱 짙어졌다.

“무림세가에는 가전의 비전 무공이 있지요. 상단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고요. 저희는 주변 무관에 의뢰해서 무인을 수련시킵니다.”

“아, 그러시군요. 주로 무엇을 배웁니까?”

“삼재검법…….”

무심코 대답하던 무흔은 입을 닫았다. 진풍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하하, 그 검법은 시중 잡배도 다 할 줄 아는 무공 아닙니까?”

무흔은 진풍의 성격을 금방 파악했다.

구진광이나 진풍이나 남을 무시하고 허세가 가득한 녀석이었다.

“진풍이라 하셨던가요? 그쪽도 곤륜 소속이십니까?”

“당연하지요. 일대 제자인 진광 형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꽤 합니다.”

장문인이 가르치는 일대 제자 소속이 아니라면 곤륜 내에서 아직 그저 그런 존재란 뜻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무흔은 백단영 쪽을 힐끔거렸다. 벌써 석 잔째 술이 넘어가고 있다. 술을 처음 마시는 어린 여자가 독한 죽엽청을 저렇게 마시는 상황은 위험하다. 그것도 저 늑대 같은 구진광 앞이라면.

어떻게든 저 술을 끊게 해야 할 상황인데 감히 그가 끼어들어 말릴 위치가 되지 못하니 답답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무흔은 진풍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날렸다.

“구대 문파 소속이라고 다 잘하지는 않겠죠.”

무흔의 도발적인 한마디에 진풍이 내면의 뜻을 알아챘나 보다. 진풍이 격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비무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걸렸다.

술잔을 기울이던 백단영의 손이 멎었다. 구진광 역시 마찬가지.

비무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술자리는 여기서 끝날 것이다. 다만 이제는 비무라는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됐다.

무흔의 무공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진풍이 비무를 고집했다. 왜 산통을 깨느냐고 눈을 흘기던 구진광은 진풍과 서로 눈치가 통한 듯 정색하며 끼어들었다.

“원래 비무를 해야 빨리 무공이 느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 소저.”

백단영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했다.

“아, 아직 무흔은 무공을 수련한지 얼마 안 되었어요.”

“그럴수록 실전경험이 중요한 법입니다. 곤륜의 검법을 견식 할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두 녀석이 도저히 물러서지 못하도록 옥죄어왔다.

마지못해 백단영이 허락하자 구진광이 한 발 더 나갔다.

“그냥 하면 재미없겠죠? 백 소저. 지는 쪽이 벌주를 마시도록 합시다.”

“네? 그게 무슨…….”

“백 소저 호위무사가 지면 백 소저가 벌주를 마시고 진풍이 지면 제가 마시도록 하지요.”

난데없는 제안에 무흔이 얼어붙었다.

일이 왜 이렇게 흘러가냐! 사고 쳤다! 백단영이 술을 못 마시게 하려다가 더 먹이게 생겼다.

녹록히 물러설 백단영이 아니었다. 그녀의 수락에 일행 모두가 객잔 앞마당에 나섰다.

“검을 들어라! 원래 하수는 맞으면서 크는 거다.”

진풍이 기고만장해서 외쳤다.

무흔은 마음을 잡고 검을 들긴 했다.

상대에게서 발해지는 기세가 산적과 사뭇 달라 절로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저 녀석의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삼재검법만 익힌 그보다 월등히 높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이, 진풍. 너나 나나 둘 다 엑스트라거든. 엑스트라끼리 뭘 싸우냐.’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첫날부터 일진이 사납구나. 백기사는 안 나타날까. 절로 그의 눈이 무백에게 돌아갔다.

그의 마음을 알았을까. 갑자기 무백이 끼어들었다.

“제가 해보지요. 평소 곤륜의 수준 높은 무공을 흠모하던 차였습니다.”

“하하, 무백 아저씨! 비무라면 아저씨죠.”

무흔은 흔쾌히 양보했다. 무백 아저씨 만세다.

구진광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간섭하려는 순간 백단영이 단언했다.

“누가 비무한다고 정한 적이 없으니까 상관없겠죠?”

예상과 달라진 상황에 진풍이 안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곤륜의 제자라고 자랑하던 차에 거절은 체면을 상하게 한다. 저 털북숭이가 고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진풍이 어쩔 수 없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 좋습니다. 일 초 만에 박살 내 드리죠.”

무백과 진풍이 앞마당에서 서로 검을 겨누며 대치했다.

기합을 외치면서 진풍이 먼저 무백에게 덤벼들었다. 진풍의 검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무백의 전면에 검막을 형성했다.

“하압!”

기세는 대단했으나 날카로움은 없었다. 더구나 검초를 제외한 진풍의 몸놀림은 평범 그 자체. 무백을 상단 출신이라고 얕본 것이 분명했다.

진풍의 검이 화려한 움직임 속에 옆구리를 공격해왔다. 무백은 들어오는 검의 경로를 가로막아 옆으로 흘려내고는 바로 약점을 찔러 갔다.

챙!

검의 끝이 곧장 진풍의 목을 향했다.

“헉!”

진풍은 튕겨 나간 검으로 눈앞을 찔러오는 상대의 검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의 몸이 얼어붙었다. 무백의 검은 목에서 한 치가량 앞에서 멈추었다.

진풍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이……, 이 자식이!”

진풍은 상대를 얕잡아보고 대충 공격하다 첫 초식에 바로 깨진 상황. 무백은 상대의 실수를 완벽하게 응징했다.

무백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정말 일 초군요.”

“씨펄! 삼재검법이라더니 제대로 익힌 놈이었어!”

진풍이 분한 표정으로 무백을 노려봤다. 하지만 눈앞에 검이 겨누어진 상태에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

“하수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라며?”

무흔이 피식 웃으며 진풍에게 받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진풍의 안면이 와락 일그러졌다. 체면을 구긴 것은 진풍 만이 아니었다. 구진광 역시 똥 씹은 얼굴이었다.

만회하려는 속셈일까. 구진광이 백단영에게 제안했다.

“백가상단의 무공이 대단하군요. 어떻습니까? 백 소저. 저랑 비무를 한번 해보는 것이.”

“제가요?”

백단영이 놀라서 눈을 깜박이자 구진광이 재차 권했다. 진풍의 굴욕을 갚고 술도 먹이려는 구진광의 속셈이 빤히 보였다.

이른바 진퇴양난.

그렇더라도 되는 집안은 된다.

백단영이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을 때 수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멋들어졌으며 무공으로 다져진 몸이 발군이었다. 군중의 시선을 집중시킬만한 선남선녀였다.

“일검! 여기서 또 보는군.”

무리 가운데 한 남자가 구진광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일룡!”

자연스럽게 비무 제의가 사라지고 갑자기 만남의 장이 펼쳐졌다.

무흔이 이들의 정체를 모를 리 없다.

소설 속에서 일룡이라 불리는 인물은 단 한 사람이다. 바로 히어로이자 소설을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 그는 구대 문파의 한 축인 화산파의 장문 제자로 후기지수 가운데 최고의 기재다.

현재는 일룡(一龍)으로 불리지만 훗날 불사신룡(不死新龍)이라 알려지는 장후성이다.

짙푸른 남의를 입은 장후성은 주인공답게 겉모습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했다.

“이분은?”

일룡 장후성이 백단영의 존재를 발견하고 관심을 보였다.

상대가 만만찮은 배경의 인물임을 눈치챈 백단영이 냉큼 인사했다.

“저는 백단영이라 합니다. 출신은 하남백가, 즉 백가상단이고요.”

“용봉대 때문에 이곳에 오신 겁니까?”

“예, 그곳에 입대를 초청받았습니다.”

“아, 저희랑 같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화산파의 장후성입니다.”

장후성이 예의 바르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그의 옆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이 끼어들었다.

“반가워요. 모용세가의 모용예입니다. 앞으로 자주 보겠네요.”

오대세가의 하나인 모용세가의 천금. 무림의 꽃, 일화(一花)로 불리는, 장후성의 약혼녀다. 이미 그 미모 하나로 강호를 울리는 여인이다.

두 여인이 서로 마주 보며 인사하자 주변이 확 밝아졌다.

백단영의 미모 역시 만만치 않았다. 현 무림 최고의 미녀라는 일화의 옆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이 소설의 세계관을 잘 아는 무흔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공인 일룡이 모용예보다 백단영에게 끌린 이유를 알 것 같군.’

역시 소설이 연재되는 내내 독자들의 지지를 받은 캐릭터, 백단영은 달랐다.

“자, 모두 들어가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지요.”

구진광이 일행을 객잔 안으로 이끌었다.

주요인물이 모두 사라지고 앞마당에는 무흔과 무백만이 남았다.

겉모습만큼이나 무백은 편안한 아저씨였다. 무흔은 그제야 감사를 표했다.

“무백 아저씨, 비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는 백가상단의 명예 때문에 나선 거란다.”

“저도 앞으로 노력해야겠어요.”

“너야 지금까지 아가씨 뒷바라지만 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괜찮다.”

그의 말에 무흔은 자신이 지금까지 백가상단 내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백단영의 하인이다. 이번에 무림맹 행차에 따라나선 것도 호위무사라기보다 백단영의 불편을 해결해줄 머슴으로 따라온 것이다.

무백이 안으로 들어간 후 무흔은 앞마당 구석에 자리한 우물로 걸어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우물을 내려다보았다. 우물에 비친 근사한 얼굴이 보였다.

“아!”

들어올 때 선택했던 아바타와 같은 모습일까 걱정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물에는 대략 나이가 스물 가량 되어 보이는 멋들어진 청년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째 본래의 얼굴이 젊어진 모습과 느낌이 비슷했다. 적어도 이때만은 그는 GOD 작가에게 무한의 감사를 보냈다.

“예상보다 잘 생겼네.”

무흔은 자신의 외모에 만족했다.

엑스트라라고 외모마저 엑스트라면 곤란하다. 현대든 무림이든 못생긴 것보다 잘 생겨야 그래도 대접받으니까. 그러잖아도 이류고수에 불과한데 얼굴마저 이류이면 정이 떨어질 것 같다.

‘이 정도 얼굴이면 그래도 백단영이 싫어하진 않겠네.’

그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객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객잔으로 다가왔다.

무흔은 그들 무리를 보는 순간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실히 소설의 흐름을 알고 있다 보니 눈치 하나는 빨라진다.

나타난 인물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세 인물이 있었다.

이남 일녀. 그 가운데 한 명은 스님이었다. 머리를 박박 밀고 허름한 가사를 걸쳤다.

스님이 발걸음을 서두르며 옆의 두 남녀에게 말했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

“벌써 와 있을걸?”

겉모습으로는 영웅적 풍모를 보이는 남자가 대답한 후 옆의 여인을 재촉했다.

“이화야, 얼른 들어가자.”

무흔은 단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도 그들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저 스님은 일승(一僧)이라 불리는 천하기재 현공(玄空). 벌써 차기 소림사 방장 재목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다. 그렇다면 그 옆의 두 남녀는 남궁세가의 장남과 막내딸일 것이다. 용봉대에 둘을 보낸 곳은 남궁세가가 유일했다.

남궁세가의 막내딸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무흔은 눈을 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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