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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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49화
마왕전
폭풍전야(暴風前夜)
솔직히 말해서 무신은 회귀한 이후, 그 말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상대는 늘 그보다 약했으니까.
폭풍전야라는 긴장감을 느끼려야 느낄 새가 없었다.
마교 교주.
카르베니아 군주.
심지어 과거 강호를 호령했던 천마까지 모두 무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과장 보태지 아니하고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그가 강해진 까닭도 있었다.
막 회귀했을 당시라면, 마교 교주든 카르베니아 군주든 천마든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달랐다.
처음으로 폭풍전야란 말의 참뜻을 실감했다.
온몸의 근육이 은연중에 잔뜩 수축되어 있었다.
물을 한껏 마시고 왔는데도 목에선 갈증이 났다.
한가을에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무신이 그러하니 다른 이들의 반응은 볼 것도 없었다.
천마조차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몸은 망부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전면의 마기(魔氣)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아니, 어불성설이란 말에는 어울렸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남궁천이 벌써부터 검을 빼 들며 무신에게 물었다.
“장난이 아니구려.”
“덩어리라 그럴 뿐입니다.”
“덩어리?”
“한데 뭉쳐 있으면 저만큼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안심시키려 하는 말이 아니었다.
힘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지는 법.
그 대상이 마계의 마수들, 그리고 마왕들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신은 제 뒤의 무인들을 아우르며 말했다.
“우리들도 저들에게 똑같이 비춰질 겁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놀랐을 수도 있어요. 왜 이리 거대한가 하고.”
“정말 그럴까?”
“그럼요. 본디 내가 느끼는 것은 남도 느끼는 법입니다.”
그 말은, 참말이었다.
***
같은 시각, 천룡무관 밖에서 멀지 않은 지점.
워프 게이트가 열리며 마계의 마물들이 비로소 강호 땅을 밟았다.
그들은 시작부터 잔뜩 흥분해 있었다.
보이는 인간은 죄다 찢어 죽이겠다는 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놈도 있었다.
바알이 ‘자중하라’ 지시하지 않았다면 누구 하나는 곧장 튀어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강호에 발을 딛고 몇 번 숨을 고르는 순간, 무언가 거대한 것이 그들을 엄습했다.
아니, 거대한 수준도 넘어섰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굉기(宏氣)였다.
심지어 몇몇 마수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그대로 즉사했다.
말 그대로였다.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최하급이나 하급 마수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놀랄 일임에는 분명했다.
아무리 기압이 크다고는 해도 거리가 멀다.
상대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데 목이 날아간 것이다.
마룡(魔龍)을 타고 등장한 바알이 크게 노했다.
“이것 하나 견디지 못해서야 대마계의 제군이라 할 수 있겠느냐!”
“죄송합니다!”
사죄는 이하 마왕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바알도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하위 마물들은 죽는 게 당연하단 것을.
‘역시 이곳 인간들은 보통이 아니구나. 하등한 인간들이 어찌 이런 힘을 얻은 거지?’
의문은 거기서 그쳤다.
잡아서 족치면, 알아서 그 답을 토해낼 것이다.
바알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 구름처럼 일렁이는 거대한 덩어리 하나를 가리켰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
일전에도 말했듯 고수들 간의 싸움은 굳이 붙어보지 않아도 승패를 알 수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
곽이천이나 윌레이커 카이스의 생각도 아니었다.
무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재미있군. 예상이 안 된다는 게.’
무조건 이기기만 하던 싸움에 지쳐 있던 그였다.
그는 그래서 늘 바랐다.
조금은 ‘흥미진진’한 싸움이 되기를.
그것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으니 그로선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강호의 사활이 걸린 싸움에 사사로운 감정을 집어넣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
장난스럽게 대할 게 아니었다.
그러나 장난스럽게는 아니더라도 즐기는 것은 좋았다.
긴장이 풀리니까.
실수를 줄일 수 있으니까.
무신도 검신이기 전에 사람이었다.
마음가짐이 편해야 온전한 힘을 낼 수 있었다.
무신은 번쩍 빙룡검을 치켜들었다.
“서역평야(西域平野)는 넓다! 그간 피땀 흘린 것을 저기에 모두 쏟아부어라!”
“예!”
그의 외침과 동시에, 천룡무관 관생들과 이하 고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어떤 세력도 지금 이 세력에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짐승인 말들조차 기이한 기를 뿜어냈다.
땅은 요동쳤고, 하늘에는 번개가 쳤다.
무신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 장대 같은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빙룡검에서가 아니었다.
정말 그의 몸에서였다.
그는 그만큼 내공을 바짝 끌어 쓰고 있었다.
어쩌면 최후의 전쟁.
힘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
행군은 길지 않았다.
멀리 서역평야가 시작되는 곳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멀리.
이 정도 수준에서 그 말은 우스웠다.
도착까지 눈 깜짝할 새면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곧 그들의 앞에 마물들이 나타났다.
위압.
압도.
그런 식으로 표현될 단어들이 마물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 기괴한 생김새의 마물들이 무인들을 다시 잔뜩 긴장시켰다.
대형 영물 수십, 수백 마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격이랄까.
그것은 ‘그놈’이 나타나며 무인들을 더욱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마룡(魔龍).
그 위에 올라탄 서열 1위 마왕, 바알.
무신만이 그놈의 정체를 알아보았지만, 무인들도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정체를 떠나 그냥 강하다는 것을.
그냥, 괴물이란 것을.
무신은 목청을 높였다.
“겁먹을 것 없다! 너희들에게 부여된 임무만 충실히 따르면 된다!”
말보단 행동이었다.
무신은 가장 먼저 바알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자 곽이천과 웰레이커 카이스, 그리고 천마까지 연이어 고삐를 당겼다.
아니, 이제 말은 더 이상 무의미했다.
오히려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그들은 단신으로 적진을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그래, 끝을 보자고!”
“가자!”
“죽여 버리자!”
“와아아아아아아!”
무인들이 무신의 말대로 각자의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군중심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겨우 그깟 감정에 움직일 것이었다면, 애당초 마왕전에 참여하겠단 결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그들의 의지였다.
무신은 사기충천한 무인들을 뒤로 하며 바알과 마주했다.
괴기하기 짝이 없었다.
온갖 짐승과 괴물들을 한데 모아다 합쳐놓은 것 같았다.
마운현이 보여주었던 마물화의 모습은 바알의 모습에 비해 동네 애들 수준이었다.
토악질이 쏠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무신은 곧 아무렇지 않게 놈을 주시했다.
마왕전에 패해 무너질 강호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까짓 짐승 같은 모습이야 얼마든지 쳐다봐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놈을 주시해야 할 것은, 저 겉모습이 아니라 놈의 힘이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놈이 타고 있는 마룡이 크게 울부짖었다.
하늘을 찢어발길 기세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바알은 무의미하다는 듯 그대로 마룡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마룡은 네놈이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죽겠구나.”
“…….”
그사이, 개미떼처럼 모여든 마물들과 바알 이하의 마왕들도 일제히 전면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바알도 물론 무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자신의 상대가 무신임을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바알은 무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감탄을 토했다.
“아니구나. 저 마룡을 죽이는 데에 손가락 하나를 쓰는 것은 오히려 네놈에게 수치겠어.”
“…….”
“과연, 이곳은 참으로 놀라워. 어찌 그런 힘을 가진 인간이 있을 수 있는지.”
잠자코 있던 무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하의 바알 마왕님께서 일전을 앞두고 왜 그리 사담을 늘어놓는지 모르겠구나. 긴장이라도 되시나?”
“긴장이라… 사담을 나누면 좀 어떻느냐?”
바알이 껄껄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이미 혈전(血戰)이 벌어지고 있는 서역평야 전체를 아울렀다.
“주위에서 이미 이렇게 싸워주는데.”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구경이 싸움 구경이라지만, 여기서도 그러면 쓰나.”
무신의 대꾸는 거기서 끝났다.
그는 짧은 호흡과 함께 빙룡검을 높이 쳐들고 바알에게 뛰어 들어갔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격만이 아니었다.
사방팔방에서 자연경의 힘을 이어 받은 무형검(無形劍)이 허공을 수놓고 있었다.
그것은 벼락처럼 내리 꽂혀 바알에게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반발력이 너무 세 주위에 있던 하위 마왕들 몇 놈의 목이 날아갔다.
가공할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바알은 멀쩡했다.
“이 정도로 날 상대하려 들었느냐! 크하하하하하!”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개의 무형검이 그의 손짓 한 번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천마도 막지 못했던 것.
그는 너무나 손쉽게 정리했다.
하지만 무신 역시 덤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신의 진짜 공격은 무형검이 아니라 빙룡검에 있었다.
정확히는, 신화경(神化境)의 힘에.
콰콰콰콰콰쾃!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았던 빙룡검의 기운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거친 파도처럼 일렁이는 그것은 바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바알은 당황하고 있었다.
“네, 네놈이!”
쓸데없이 입을 턴다는 것은, 분명 당황했음을 의미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그의 손동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여주마!”
바알의 손에 검인지 창인지 모를 거대하고 기다란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사실 무기가 아니었다.
마왕의 권능(權能).
소유한 마기를 밖으로 꺼내어 무기처럼 쓰는 것이었다.
그게 무기가 아니겠느냐마는, 달랐다.
바알이 허공에 그것을 휘두르자 놀랍게도 파장이 무신에게 닿았다.
분명 둘 사이에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닿지 않는 것을 벤다는 것.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긴장했던 무신에게 이번에는 당황이란 감정까지 찾아왔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바알의 저것 앞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사각(死角)이었다.
무신은 바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다간 필패였다.
근처에 다가가려다 그대로 목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내상을 입었는지 극심한 고통도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도원경.
그곳에서 이 순간을 위해 갈고닦은 것.
그래봤자 내공심법밖에 더 했느냐마는, 그거면 충분했다.
무신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빙룡검을 대지에 내던졌다.
바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하는 짓이지? 무기 버리고 투항하면 살려줄 거라 생각하는 겐가?”
그러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그래, 살려는 주마. 대신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될… 응?”
하지만 웃음은 끝을 맺지 못했다.
빈손이 됐던 무신에게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었다.
희뿌옇게 빛나는 그것은 무형검도, 자연검도 모두 아니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압력을 가지고 있었다.
압력.
그 말 그대로였다.
멀쩡히 서 있던 바알이 돌연 가슴을 쥐며 퀙 하고 무언갈 뱉어냈다.
피였다.
가만히 있었는데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 탓에 무신을 억누르던 바알의 권능이 일순 힘을 잃게 되었다.
눈을 뜰 수조차 없는 거대한 섬광(閃光)이 번쩍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신의 손에 괴이한 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신검(神劍).
신화경에 다다른 자만이 구사할 수 있다던 검의 끝, 검신(劍神)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것에는 정확한 이름이 있었다.
아니, 무신에게 한해서만 정확한 이름이 있었다.
유림의 검.
그를 신화경의 경지까지 올려준 존재의 보구였다.
그는 찬찬히 숨을 고르며 바알을 쳐다보았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내공 소모가 심해 쓰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쓰지 않으면 질 상황이었다.
애당초 이 싸움은 한계까지 다다르는 한이 있더라도 끝장을 봐야 하기도 했고.
‘진짜 유림의 검을 뽑을 줄이야.’
경악스럽게 굳은 바알을 보며 무신은 홀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마왕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그는 신화경의 검술만을 다룰 생각이었다.
먹히질 않았으니까.
아무리 해도 유림의 검이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위기의 순간에서 그것이 그의 부름을 받았다.
아니, 상황 탓이 아니었다.
그저 순전히 그의 실력이었다.
상황 탓이었다면, 무기창과 싸웠던 그날처럼 ‘유림의 검의 힘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하는 알림이 떴을 테니까.
무신은 마음 같아선 양팔 크게 벌려 감격의 기쁨을 느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가장 먼저 잡아야 할 서열 1위 마왕 바알이.
그는 기쁨은 잠시 뒤로 미루며 찬찬히 유림의 검을 흔들었다.
정말 찬찬히, 그리고 흔들기만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커헉!”
바알이 시꺼먼 액체를 토하며 상체를 굽혔다.
권능을 이용해 무신을 다시 공격하고자 했으나, 어쩐 일인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유림의 검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다.
왕(王)이 신(神)에게 굴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망령의 숲에서 염라의 검이 유림의 검보다 한 단계 낮게 측정됐던 것처럼 말이다.
점점 작아지는 바알의 몸뚱이를 보며 무신은 생각했다.
상대를 한 번에 제압하는 것.
결국 이번에도 어쩔 수 없게 됐다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성취감이 컸다.
이로써, 강호를 지킬 수 있게 됐으니까.
물론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장 바알의 숨도 여전히 붙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문제였다.
무신은 유림의 검을 들고 직접 바알의 앞까지 쇄도했다.
쿠웅!
인간의 발디딤 하나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무신은 이미 인간을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끝을 내주지.”
무신은 가볍게, 아주 가볍게 유림의 검을 바알의 목에 가져갔다.
힘을 쓸 것도 없었다.
예리한 칼날에 종잇장이 꿈쩍도 하지 못하듯 바알의 목은 그렇게 떨어졌다.
장대한 시작이었으나, 끝은 다소 싱거웠다.
하지만 무신만의 상황이었다.
주위는 난장판이었다.
“바, 바알께서……!”
그러나 주위 역시 곧 무신과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바알이 죽은 이상, 이하 마물은 오합지졸일 뿐이었다.
마물들?
그것들은 유림의 검 앞에서 이미 숨을 거둔 지 오래였다.
신(神)적인 힘을 감히 하등한 마물 따위가 무슨 수로 견디겠는가.
심지어 바알도 어쩌지 못한 것을.
물론 무인들에게도 출혈은 있었다.
인간의 머리가 서역평야 곳곳을 굴러다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니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신이 홀로 나섰다면 없었을 출혈이 아니겠느냐.
전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무신도 제 힘을 낼 수 있었다.
유림의 검은 오로지 바알에게만 집중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하, 끝났군요.”
무신은 유림의 검을 손에 쥔 채,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번에도 쉽게 이겼다며 아쉬움을 삼키던 그였지만, 사실 그는 지쳐 있었다.
몹시.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몹시.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이 쓰러지면 사기가 꺾일 것을 알기에.
전쟁의 승패가 바뀔 수도 있음을 알기에.
그래서 꾹꾹 참다가 비로소 모든 것을 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전쟁은, 강호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