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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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40화
지시
카르베니아의 입지는 무림맹주 곽이천도 꼼짝 못할 만큼 절대적이었다.
그러니 굳이 윌레이커 카이스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부군주 프라이머 킬븐만 움직여도 상대가 알아서 벌벌 길 터였다.
어쩌면 프라이머 킬븐조차 과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윌레이커 카이스가 직접 나서겠다니 프라이머 킬븐이나 여타 카르베니아 대장들은 다소 얼떨떨해했다.
하지만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최무신.
마물화한 마교 교주 마운현을 죽이고 유림교란 새로운 세력을 세운 자.
즉, 생사경 이상의 힘을 가졌단 뜻이니 윌레이커 카이스가 나서는 게 적합하기는 했다.
다른 이는 최무신과 마주 서는 것만으로도 즉사할지 모르니까.
기압에 눌려서 말이다.
“가시지요, 군주님.”
물론, 동행은 했다.
막 고삐를 쥐는 윌레이커 카이스의 뒤로 카르베니아를 대표하는 기사들이 바글바글했다.
머릿수로 따지면 자그마치 오백.
적다면 적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드 마스터였다.
중원으로 치면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마 당장 어디 세력 하나쯤은 우습게 궤멸시킬 터였다.
그렇게 막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윌레이커 카이스의 얼굴이 돌연 딱딱하게 굳어졌다.
프라이머 킬븐이 급히 고삐를 풀었다.
“왜 그러십니까, 군주님?”
“느껴지지 않느냐?”
“예?”
프라이머 킬븐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윌레이커 카이스를 돌아봤다.
윌레이커 카이스의 눈이 저 멀리 남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카르베니아를 침입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프라이머 킬븐에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고 있다.”
“무엇이… 말입니까?”
윌레이커 카이스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놈 말이다, 그놈.”
그놈?
프라이머 킬븐은 그제야 눈치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이 순 간 윌레이커 카이스의 ‘그놈’이 될 자는 뻔했다.
최무신.
유림교의 교주가 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소 의문이 들었다.
기압으로도 상대를 느낄 수는 있다고는 해도 어찌 보지도 않고 확신한단 말인가.
“허억!”
그런데 잠시 후.
프라이머 킬븐은 윌레이커 카이스가 어찌 보지도 않고 확신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니, 체감했다.
말도 안 되는 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살기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으나 정말 폭풍처럼 거셌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은 이미 터질 듯 뛰고 있었다.
그러니… 저 기의 주인은 최무신임에 분명했다.
최무신이 아니고선 낼 수 없는 기압이었다.
무림맹주 곽이천?
프라이머 킬븐은 일전에 곽이천을 본 적이 있었다.
곽이천도 물론 대단했지만 저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떨어진 거리도 상당했다.
프라이머 킬븐이 이 지경이었으니 휘하 기사들의 반응은 볼 것도 없었다.
죄다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산송장이라 해도 믿을 몰골이었다.
심지어 몇몇 놈들은 게거품을 물고 그대로 쓰러졌다.
주인을 잃은 말들이 펄쩍펄쩍 날뛰었다.
혼잡스러운 상황.
하지만 누구도 일갈을 던지지 않았다.
그것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으니까.
최무신이 벌써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윌레이커 카이스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마중을 나온 셈이 돼버렸군.”
윌레이커 카이스는 잘됐단 반응이었다.
어쨌든 최무신을 만나는 게 그의 목적이었으니까.
프라이머 킬븐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 제법 실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강한 것은 인정해야지.”
지금 윌레이커 카이스의 말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는 늘 자신을 최고로 하며 어떤 상대든지 깎아내렸다.
그 점을 알고 프라이머 킬븐도 제법 실력이 있단 식으로 말을 한 것이었다.
“왜 인정하는지 궁금하느냐?”
“아… 예!”
냉큼 대답하는 프라이머 킬븐에게 윌레이커 카이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인정한 놈을 잡으면 이 중원 땅에 날 이길 자 누가 있겠느냐?”
“그런 뜻이!”
까놓고 말하면 별것도 아닌 말이었다.
하지만 프라이머 킬븐은 굉장히 뜻깊은 말을 들었다는 듯 반응했다.
그는 윌레이커 카이스의 부하이기 전에 개니까.
개는 주인의 말에 항상 꼬리를 흔드는 법이었다.
윌레이커 카이스가 ‘아, 한 놈이 더 있기는 하구나’ 하며 말했다.
“천마라고 했던가.”
“천마라면…….”
“마교의 진짜 우두머리라지.”
프라이머 킬븐이 조심스레 물었다.
“허나 이미 죽은 자가 아닙니까?”
“세간에는 그리 알려져 있다만, 모를 일이다.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을지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필요는 없었다.
윌레이커 카이스가 알아서 제 말에 대한 이유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마교가 그리 쉽게 무너지겠느냐?”
“그것도 그렇군요.”
“뭐, 이미 무너져서 그 땅에 새로운 세력까지 들어섰지만 말이다.”
“힘을 축적하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천마가 말이냐?”
“예.”
“천마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수백 년 전이라 들었다. 세상에 그리 오랫동안 힘을 축적할 리는 없겠지.”
윌레이커 카이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애당초 이계 출신이라 천마에 대해 잘 알지 못할뿐더러, 이제 거의 도착해 있었다.
유림교의 교주, 최무신이.
“헙!”
멀쩡한 윌레이커 카이스와 달리 프라이머 킬븐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최무신이 오는 방향으로는 눈도 제대로 못 돌릴 정도였다.
“너는 저 녀석들이나 잘 챙기고 있거라.”
윌레이커 카이스가 그렇게 말하며 오백의 기사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프라이머 킬븐은 제 몸 챙기기에도 바빴지만, 바로 윌레이커 카이스의 말에 따랐다.
괴물을 대면하는 것보단 부하들을 독려해 주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그리고… 이내 곧 그 괴물이 나타났다.
푸르른 검과 이무기가 그려진 무복을 입은 사내.
최무신이었다.
윌레이커 카이스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빙룡검에 망룡의인가… 강호에선 저것이 명검에 명의일지 모르겠으나 이곳에선 별 것 없지.”
그렇게 말하는 윌레이커 카이스의 손에는 골드 본 그레이트 소드가 들려 있었고, 몸에는 골드 본 풀 플레이트 아머가 입혀져 있었다.
황금색을 띠는 것은 부하들의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본(Bone)’이 들어갔단 것에 차이가 있었다.
윌레이커 카이스의 것은 골드 드래곤의 뼈가 주재료였다.
“영물인지 뭔지 하는 것이 드래곤에 비할 바가 될 것 같으냐. 후후.”
애석하게도 착각이었다.
가까이서 본 최무신의 무기와 옷은 윌레이커 카이스의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위압을 뿜어냈다.
빙룡검은 특히 더 그랬다.
정말 빙룡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허공을 쩍쩍 찢어발겼다.
최무신은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윌레이커 카이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뜰 즈음, 최무신이 말했다.
“반갑소. 카르베니아의 군주여.”
“…….”
“나는 유림교의 교주 최무신이라 하오.”
차분한 목소리였다.
무림맹주 곽이천조차 윌레이커 카이스를 상대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는데, 심지어 뒷짐까지 지고 있었다.
움츠러든 쪽은 오히려 윌레이커 카이스였다.
“마침 만나러 가던 참이었는데… 설마 알고 왔소?”
윌레이커 카이스는 본래 누구를 만나든 하대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저도 모르게 하오체를 쓰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그가 지금 최무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최무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마침 용무가 있어 온 참이었소.”
“용무?”
“의논드릴 게 좀 있어서.”
윌레이커 카이스는 분명 최무신에게 약간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나려 했던 것도 최무신을 곽이천처럼 휘어잡아 이리저리 주무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왜인지 그 감정들이 싹 사라졌다.
윌레이커 카이스는 자신이 최무신에게 하오체를 쓰고 있다는 것도 그제야 자각했다.
뭐 때문일까.
이유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최무신.
그냥 최무신 때문이었다.
기압이 너무도 거셌기에 본심대로 행동하기가 힘들었다.
윌레이커 카이스는 점잖은 어투로 물었다.
“강호의 새로운 교주가 되신 분이 내게 의논할 것이 있소?”
“말하자면 좀 긴데,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소? 내 카르베니아를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그럽시다.”
본능은 지금 당장이라도 최무신에게 검을 휘두르라 말하고 있었지만, 이성은 그렇지 않았다.
최무신을 동조하고 있었다.
윌레이커 카이스는 그렇게 도로 성으로 돌아갔다.
졸지에 휘하 기사 오백을 끌고 최무신을 마중 나온 꼴이 되었으니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하지만 막상 최무신을 마주하면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갔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마교가 멸교한 것을 들었을 것이오.”
“들었다마다.”
“헌데 마교에서 마계의 마물의 힘을 끌어다 썼다 하오.”
정파에는 개방.
사파에는 하오문.
그렇듯이 카르베니아에도 그쪽 방면으로 능한 정보통이 있었다.
지금 최무신이 말하는 것 정도야 윌레이커 카이스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금술은 본디 남이 모르게 써야 하는 법이거늘… 모르는 사람이 없었구려.”
“뭐, 설령 몰랐더라도 의심해 보지 않았겠소? 상대가 마교인데.”
“그렇기야 하지. 워낙 더러운 족속들이었으니.”
최무신이 쯔쯧 혀를 차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오래전부터 그래왔는데, 최근 정마대전에서는 평서보다 더 많이 끌어온 모양이오.”
“마물들을 말이오?”
고개를 끄덕이는 최무신의 얼굴이 어딘지 착잡해 보였기에 윌레이커 카이스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마물들이 문제가 된 거요?”
“그렇소.”
“어떤 식으로 문제가 된 것인데?”
“마왕들이 노했소.”
“마왕?”
“아마 들어본 바 있을 거요. 마물들을 관리하는 자들, 우리네 세상으로 비교하면 맹주나 교주격이라고 할까.”
최무신이 ‘안 믿어지겠지만 사실이오’ 하며 말을 이어갔다.
“일전에는 그곳 서열 72위에 해당하는 마왕이 직접 강호로 내려오기도 했지.”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아마 머지않아 더 고위급의 마왕들도 내려올 게요. 그럼 강호, 아니, 중원 전역이 쑥대밭이 되겠지.”
윌레이커 카이스는 왜 쑥대밭이 되느냐는 것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오래전, 한번 이미 그렇게 된 적이 있었으니까.
글이나 말로만 접했지만 윌레이커 카이스도 그 무서움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대비를 해야 하오.”
“어찌 말이오?”
“서로 힘을 모으는 게지.”
최무신이 바로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니 이제부턴 내 지시에 따라주면 좋겠소.”
“뭐… 뭐요?”
윌레이커 카이스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서로 힘을 모으자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될 판인데, 지시에 따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말이 헛 나온 것일까.
전혀.
최무신의 입술은 그 말만을 내뱉고는 닫혀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소?”
“서로 힘을 모아야 하니 내 지시에 따라주라 했소.”
“정신 나갔소?”
윌레이커 카이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있었다.
최무신이 특유의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렇게 반응하리라 내 예상했소.”
“알면서도 물어봤다는 것은 지금 나를 능멸하…….”
윌레이커 카이스의 말은 중간에 뚝 끊어졌다.
“따르지 않겠다면,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최무신이 찬찬히 몸을 일으켰다.
빙룡검이 그의 손에 들려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