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8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8화
마중
힘 좀 있다고 우쭐대는 것은 무신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 중 하나였다.
힘은 자기를 보호하는 목적이지 남을 해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회귀 전의 영향도 컸다.
15년을 삼류무사로 살았던 그는 그러한 인간들을 수없이 마주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대응하질 못했다.
고개 팍 수그리고 찌질하게 있었다.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약했다.
너무 약했다.
그러니 싫어도 참는 것밖에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힘을 가졌다.
표면적으로만 따져도 화경.
의식적으로는 신화경.
무림맹주니 마교교주니 카르베니아의 국왕이니 다 그보다 한수 아래였다.
아니, 몇십 수는 아래였다.
그는 괴물이자…….
검신(劍神)이었다.
그는 아직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레이스터 발콘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알기로 소드 마스터 최상급.
잘만 싸우면 현경 취급도 받을 자였다.
하지만 무신의 검질 한 방에 저 꼴이 되었다.
막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아예 막을 기회조차 없었다.
레이스터 발콘은 그저 무신이 ‘검을 움직였다’하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이었다.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라 봐야겠지.
아니나 다를까 레이스터 발콘의 머리통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동태의 그것처럼 툭 튀어나온 게 재미난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몇 초만 더 숨이 붙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시퍼렇게 굳은 안색이 볼 만하지 않았을까.
레이스터 발콘의 부하들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들 식겁해서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다. 그게 얼마나 우습냐면, 제 상관의 목이 날아갔는데도 달려드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어쩌지저쩌지 검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물론 그들만의 반응은 아니었다.
정파인들의 얼굴도 경악스럽게 변해 있었다. 떡 벌어진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고자 꿈틀거렸으나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 정도로 놀랐다.
곽이천이나 제갈령까지.
“자, 자네……!”
곽이천이 간신히 혓바닥을 움직였을 즈음에는 나머지 잔챙이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팔다리와 창자가 비명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야말로 바람 앞의 갈대였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우릴 건드리고도 멀쩡할 것 같으냐!”
“…….”
“국왕께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국왕이란 카르베니아의 주인, 윌레이커 카이스를 가리켰다.
이름값 하나는 죽여주는 놈이었다.
수천, 수만 대군에 가로 막힌 길도 놈의 이름 일곱 자면 바로 양 갈래로 뚫릴 것이다.
물론 실력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신에게는 그다지 무겁게 와닿지 않았다.
“올 테면 와보라지.”
“…뭐?”
“너희들이 그렇게 믿고 따르는 카르베니아의 국왕도 사실은 별것 없다. 왜냐? 본인이 진짜 최강이면 진즉에 강호를 먹었을 테니 말이다. 헌데 어쩌고 있지? 강호 밖에서 눈치만 살살 살피다 이럴 때만 노려 뒤통수나 치고 있잖나?”
절반은 틀리고 절반은 맞다.
윌레이커 카이스가 현 시점에서 가장 강한 무위를 지닌 것은 사실이다.
마교 교주 마운현인들 본인의 승을 장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윌레이커 카이스가 쉽사리 강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무인들의 싸움이 아무렴 소수의 싸움이라고는 해도 그 혼자 수많은 문파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즉 강호에 들어왔겠지.
무신의 말처럼.
무신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들을 건드린 자는 무림맹 소속이 아니라 북해빙궁 소속이다. 복수를 하려거든 그쪽으로 오도록.”
험준한 설한의 지형부터 천해의 요새가 되는 곳이었다.
북해빙궁의 궁주 해영월이 ‘겨우’ 현경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카르베니아라 할지라도 북해빙궁을 쉽사리 건드리기는 어렵다.
색목인들은 특히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을 무시한 채 들이댔다가는 아마 도착도 전에 삼분지 일이 얼어 죽을 것이다. 나머지 삼분지 이도 도착해 봤자 이미 힘이 빠졌을 것이고.
물론 무신이 그래서 이렇게 무턱대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처음 생각 그대로, 그는 그저 자신이 있었다. 카르베니아를 상대로든 그곳의 국왕 윌레이커 카이스를 상대로든.
게다가 또…….
“내 말하지 않았나? 어차피 니들 여기서 몰살시켜도 누가 이랬는지는 아무도 몰라. 무림맹주에게 큰 소리 뻥뻥 칠 정도로 당당하신 분들이 따로 상황 살필 놈을 미리 빼놨을 것 같지는 않고.”
“……!”
“애당초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이야?”
예상치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상상도 못 했다.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그들의 얼굴을 뒤로 하며 무신은 빙룡검을 살포시 움직였다.
정말, 살포시였다.
개미 새끼 밟아 죽이는 것에 발을 힘껏 들 필요는 없으니까.
자리는 금방 정리되었다.
이미 저승으로 넘어가 염라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무신은 문득, 그날의 회상에 젖었다.
우연히 발동된 유림의 검으로 무기창을 잡으면서 석영, 급기야 유림까지 만나게 됐던 그날의 회상에.
그는 잠깐 저승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염라를 만났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세상에 간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곳 특유의 스산한 바람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다.
‘또 유림의 검이 발동되는 날이 오려나’, 그는 빙룡검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따로 발동 조건을 모르니 답답했다.
원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욕심이었다.
애당초 유림의 검은 실체가 아니라 의식으로써 그의 손에, 아니, 그의 심장에 들어왔다.
‘의식을 잠재된 것으로 본다면… 비월내각신공로 잠재기를 키우는 게 그나마 유림의 검을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고’, 그는 그만 상념에서 벗어났다.
뒤통수가 왠지 시렸다.
돌아보니 수십 개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져 있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소란을 피웠군요.”
“…….”
정파인들은 대답이 없었다.
곽이천도 마찬가지였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짓을 하고서 겨우 ‘소란’이라 표현하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무신의 얼굴은 태연했다.
“헌데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언행을 그따위로 하는데.”
“…….”
“제가 잘못했습니까?”
아무도 그렇다고 하지 못했다.
곽이천도 물론이었다.
차후 이 상황의 파장이 어떻게 되든 간에 당장 무신의 행동에는 지적할 것이 없으니까.
오히려 잘했다.
백 번 천 번 칭찬해야 마땅했다.
레이스터 발콘이 곽이천에게 했던 언행을 생각하면.
단순히 생각만으로 그칠 게 아니었다.
무신은 카르베니아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무림맹주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었다.
그가 가만있었으면 레이스터 발콘의 손에 정말 누구 하나의 목이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잘못이라니. 아닐세.”
곽이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표정은 아직 딱딱했으나 그것은 걱정이 아니라 후회였다.
자신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그 후회.
이제야 곽이천으로서의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래, 소속 문파가 당했다고 정마대전까지 일으킨 사람인데. 당하고만 있는 건 안 어울려’, 무신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곽이천이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니 남은 이들에게는 더 이상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은 카르베니아인들의 옷가지였다.
옷이라기보다는 갑옷.
더 정확히는 골드 풀 플레이트 아머.
아주 박살이 나 있었다.
누군가 이제 막 이 광경을 본다면 이것들이 갑옷이란 생각을 추호도 못할 만큼.
무신은 그래서 조금 감칠맛이 돌았다.
죽이는 것 자체는 싱거웠으나 어쨌든 빙룡검의 위력은 증명이 된 셈이었다.
더불어 내공의 힘까지.
모르긴 몰라도 당장 이 자리에서 골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저렇게 만들 자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일격에 한한다고 하면 곽이천 빼고는 아예 전무할 것이고.
그러니 몇몇 정파인들은 무신을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고 있었다.
무신에겐 익숙한 시선이었다.
삼류무사이면서 검강을 꺼내 들었을 때.
운사가 모추동을 상대로 공격을 모두 성공시켰을 때.
단신으로 빙룡을 잡았을 때.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세 가지였다.
엉덩이 깔고 앉아 세면 수십, 수백 가지도 더 될 것이다.
아닌 말이 아니라 무신은 숨 쉬는 것부터 달랐다.
그의 숨은 검신의 의식이었다.
아주 깊은 잠에 빠져 간간히 드러날 뿐.
쿠치하 모로긴이 동영무사 2,552명을 끌고 강호 동부의 땅을 밟을 때에도 정마대전은 여전히 한창이었다.
그에게는 호재였다.
정마대전이 길어질수록 정파의 방비는 허술해질 것이고, 설혹 끝난다 한들 전세가 많이 약해질 것이다.
그가 노리고자 하는 정파의 빈틈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도 정파를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내전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심복만 남겨둔 채 실력 있는 무사들을 모조리 끌고 왔다.
카라하라 마스케를 포함한 동영구도 전원을 포함해서.
개중 아홉 번째 놈은 일전에 해동여인들을 팔아넘기다 죽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무위적으로는 동영 전체에서 백 손가락 안에도 못 들던 놈이었다.
거래능력이 좋아 어찌저찌 한자리를 차지한 것이지.
[강서]
쿠치하 모로긴은 짐짝 내리느라 정신이 없는 부하들을 뒤로 하며 간판 하나를 바라보았다.
위로는 산동악가의 산동, 아래로는 남궁세가의 안휘를 낀 곳이었다.
설명할 것은 그것뿐이었다.
강서는 달리 유명한 것이 없었다.
길쭉한 강을 끼고 몇몇 문파가 자리하고 있으며 해산물이 잘 나는 등 굳이 꼽자면 특색이 있겠지만, 쿠치하 모로긴의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그는 빈집털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
무언가 싸울 거리가 아니라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웬 놈들이냐!”
물론 반 시진 전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침입에 이름 모를 무사들이 몰려들기는 했다.
머릿수도 제법 됐다.
강호라는 지역의 명성답게 개개인 무위도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머릿수든 개개인 무위든 제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주 많거나 아주 특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말했듯 현재 강서를 찾은 동영무사들의 머릿수는 자그마치 2,552명이었다.
게다가 가장 말단의 무위가 이름 모를 무사들의 수준을 앞질렀다.
그러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들은 몰려옴과 동시에 몰아서 죽임을 당했다.
“강서를 기점으로 산동, 안휘, 하남을 차례로 정리한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후, 쿠치하 모로긴은 지체할 것 없다는 듯 무사들을 끌고 움직였다.
번쩍거리는 도를 쥔 도객들이 일제히 달려가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아름다움 뒤에서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수많은 강호인들의 시체가 뒹굴었다.
애와 노약자들도 얄짤 없었다.
모조리 죽어나갔다.
정마대전에 정신이 없었기에 그 소식은 한참이 지나서야 인근 성에 전해졌다.
그러나 전해져 봤자였다.
달리 해결책이 없었다.
대형문파의 가주나 장문이 모두 빠져 있었고, 실력 좀 있다 하는 자들도 어김없이 함께였다.
남은 것은 장로들이나 원로들뿐이었다.
그간의 세월.
경험.
연륜.
그것들을 무시할 순 없겠으나 진짜 강했다면 원로가 아니라 가주나 장문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일선에서 빠지지 않고.
그러니 이번에도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이거, 이거 너무 쉽구만.”
쿠치하 모로긴은 불과 보름도 안 되어 강호, 그리고 산동을 집어 삼켰다.
서쪽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붉었다.
평소 같으면 더 아름답다 느꼈을 것이 왜인지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무신은 금방 이유를 알아챘다.
노을을 따라 거대한 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마교교원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거대한 기를 가질 것은 하나뿐이었다.
마운현.
놈이 직접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