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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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7화
거칠 것이 없는
색목인들의 나라, 카르베니아.
그곳은 북해빙궁처럼 새외무림에 속하지만 영향력은 강호 내 어떤 문파보다도 엄청났다.
아니, 문파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란 게 더 어울렸다.
그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개 무사가 웬만한 문파의 수장에 비벼질 정도였다.
그러니 아주 위로 가면 그야말로 괴물이 따로 없었는데, 강호의 숱한 고수들도 검 한 번 제대로 못 휘둘러 보고 당했다.
특히 소드 마스터.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분류되는 그것은 강호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강호인들 사이에서 절대무적이라 칭해지는 깨달음의 경지도 가뿐히 이겨냈다.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우에는 현경이나 생사경과도 엇비슷한 힘을 가졌다.
물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애당초 카르베니아에 소속된 전체 사람들의 수도 1만 명이 채 될까 말까였다.
무사들만 추리면 더욱 적어지겠지.
그럼에도 카르베니아의 입지가 높은 것은…….
어차피 현 시대 싸움은 머릿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힘이 중요하다.
걸출한 고수 한 명이면 수백, 수천도 한 번에 날린다.
카르베니아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직접 정마대전을 일으키셨다면서?”
레이스터 발콘이 지금 이렇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것도 다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카르베니아와 무림맹.
꿇릴 게 없었다.
무위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무림맹을 압도했다.
“자네들이 여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은. 정파와 마교가 붙었다길래 구경 삼아 내려온 게지. 왜, 있잖나. 싸움구경만큼 재미난 것도 없다고.”
“이런 일에 재미를 논하는 게 맞다 보는가?”
“그럼 재미를 논해야지. 우리 입장에선 남 일인데.”
“자네들에게도 영향이 갈 수도 있네. 정마대전의 결과에 따라.”
“호오, 우리에게도 영향이라. 그거 참 무섭군. 헌데, 곽 무사? 뭔갈 좀 착각하는 모양이야?”
“착각이라니?”
“어차피 강호든 중원이든 패권은 우리가 쥐고 있다고. 우린 당신들 같은 조무래기 집단이 아니다, 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레이스터 발콘이 히히덕거렸다. 거만하고 오만한 얼굴이었다.
‘색목인 놈들도 정상은 아니구나.’
무신은 레이스터 발콘을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회귀 전에도 대충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말하는 투만 보면 혈교나 마교도 저리 가라였다.
하지만, 저렇게 말할 만도 했다.
저들이 강호 내에 속해 있었으면 카르베니아가 1강으로, 정파와 마교가 2중으로, 사파가 1약으로 있었을 테니까.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말게.”
“아무 말? 듣자 하니 이미 마교에 몇 번이나 대패했다는데, 그게 조무래기가 아니고 뭔가?”
“그것은 마교가 마물의 마기를 이용해서 그렇…….”
“마기를 삼켜서 강해졌다?”
레이스터 발콘이 곽이천의 말을 툭 끊었다. 카르베니아에서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더 약한 것은 약한 것이잖은가? 싸움은 결과가 중요한 거지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야.”
“말은 청산유수로군.”
“청산유수라… 지금 곽 무사가 나한테 함부로 못하는 것도 무림맹이 우리 카르베니아보다 약하단 결과가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 아닌가? 내 말이 틀렸나?”
말문이 막혔는지 곽이천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래, 그것은 레이스터 발콘의 말이 맞았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국 결과였다. 강호는 이긴 자만이 남고 기억되고 이어지는 세상이었다.
‘무림맹이 카르베니아보다 약하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무신은 잠깐 그에 대해 떠올렸다.
당장 눈앞의 레이스터 발콘은 크게 문제가 안 되었다.
곽이천이 마음먹고 검을 들면 몇 합까지 갈 것도 없이 단칼에 그의 목을 자를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카르베니아의 주인이었다.
국왕이라 불리우는 자.
윌레이커 카이스.
그는 최상급이고 뭐고 소드 마스터의 단계를 뛰어넘었다.
그랜드 마스터라는 게 그의 무위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강하냐 하면, 무려 생사경에 이르는 곽이천이 본인의 승을 장담 못 했다.
강호에서 승을 장담 못 한단 것은 한 가지를 뜻했다.
사실상 자신이 없다는 것.
질 공산이 크다는 것.
미래의 일이지만, 증명이 되기도 했다.
곽이천은 윌레이커 카이스에게 당해 단전을 잃게 된다. 양쪽 팔을 잃은 것은 덤이다.
그가 그렇게 된 것에 반해 윌레이커 카이스는 멀쩡했다. 찰과상 하나 안 입었다.
‘그랜드 마스터란 것은 자연경에 비할 수 있는 건가.’
무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짐작으로는 그러한데 확실치는 않았다.
강호와 중원의 역사에서 ‘자연검(自然劍’을 쓴 자가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어쨌든 윌레이커 카이스라는 후환이 두려워 곽이천은 이렇듯 저자세로 나가고 있었다.
괜히 성질을 긁었다가 정마대전이 3세력 대립으로 번지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지도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정말 싸움 구경하자고 그 많은 무사들을 끌고 여기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어림잡아도 일백은 될 듯한 카르베니아 무사들을 가리키며 곽이천이 그렇게 물었다.
황금색 무장에 서슬 퍼런 검까지.
곽이천의 말처럼 결코 싸움 구경만 할 행색은 아니었다.
레이스터 발콘이 비릿하게 웃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럼?”
“우리 무림맹 무사님들이나 저기 저 마교 무사님들 뒤지면 간이고 쓸개고 좀 빼가려고.”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소리기는. 서로 엉망진창이 되면 기밀 빼가기가 쉬울 거 아냐? 아, 한쪽만 그리 되면 어쩌나교? 뭘 어째? 그럼 그 한쪽만 노리면 되지.”
한마디로 뒤통수를 치겠단 뜻이었다.
더 우스운 것은 꽁꽁 감춰 절대 함구해야 할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비릿한 웃음까지.
레이스터 발콘은 대놓고 무림맹 맹주을 농락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니면 그냥 여기서 죽여줄까? 어차피 당신네들 마교한테 못 당할 것 같은데.”
넘어선 안 될 선까지 넘어버렸다.
***
마교 교원 정문.
한 무리의 무사들이 그곳에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머릿수가 오십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널따란 그곳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당연했다.
지금 도열해 있는 자들은 마교 내에서 손꼽히는 고수들이었다.
당장 맨 앞 선만 봐도 서열 1위 흑상검(黑上劍) 허대균이 눈을 빛내며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지금도 이름을 날리는 원로들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어디 한자리씩은 차지하고 있을 이들이 이렇게 한데 모인 이유는 뻔했다.
저 멀리 동쪽에서 무림맹이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유격전을 펼치더니 이제는 전면전을 펼치려는 모양이었다.
무림맹 맹주 곽이천의 거대한 기가 벌써부터 다가오는 듯했다.
“간만에 몸 좀 푸시겠습니다, 원로님들.”
“후후, 자네만 하겠어?”
자신감이 나쁠 것 있겠느냐마는, 말했듯 무림맹 맹주까지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대균과 원로들의 반응은 과장 조금 보태어 어디 마실 나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들도 알았다.
까딱 잘못하면 본인들 목이 날아갈 것이란 사실을.
그럼에도 그들이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말 그대로였다.
자신이 있었다.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단전 안에서 꿈틀거리는 그것.
고약한 성질을 지녔으나 힘 하나는 끝내주는 그것.
마기.
그들도 그것을 몸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한 단계 진화했다.
허대균의 경우에는 현경의 고수와도 필적할 수준이 되었으니 그것의 덕을 아주 톡톡히 봤다.
이 정도면 부교주 마정태와도 비벼볼 만하겠다…….
“…오셨습니까!”
하는 생각은 마정태가 나타남과 동시에 쏙 들어갔다.
마정태는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같은 현경이라 할지라도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부교주란 이름값에 지레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정말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있었다.
허대균은 그것을 넘을 수 없었다.
“교주께서 나오신다!”
물론 대마교의 지주이자 주인, 마운현이 등장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오금이 저렸다.
팔이 떨렸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가 않았다.
마정태가 괴물이라면 마운현은 신이었다.
마신(魔神)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그렇게 부를 자는 따로 있었다.
그는 마운현보다도 더 위대한… 허대균의 상념은 거기서 그쳤다.
마운현이 입을 열고 있었다.
“전면전에 전술 지시가 무슨 필요겠느냐? 이대로 달려가다 정파 놈들을 보면…….”
그의 손에는 이미 검이 뽑혀 있었다.
“그대로 죽이면 되는 게다.”
***
오만방자함도 정도껏이었다.
거듭 말하건데, 카르베니아가 거물로 취급받는 것은 그랜드 마스터 윌레이커 카이스의 영향이 크다.
레이스터 발콘은 거기에 곁들이는 감초 정도였다. 감초가 깨달음의 경지라는 게 조금 문제였지만.
어쨌든 면전에서, 그것도 무림맹 맹주의 면전에서 지금 죽여 버릴까? 하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곽이천의 인내의 끈도 더 이상 버티질 못했다.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겐가!”
“죽이겠단 말에 굳이 해석이 필요한가?”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봤겠나! 감히 그따위 망발을 누구 앞에서 지껄이냐 이 말일세!”
곽이천의 호통에 근방이 크게 들썩였다.
정파인들이 움찔했다.
제갈가의 가주 제갈령도 얄짤없었다.
그들에게 곽이천은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벌벌 떨 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레이스터 발콘은 미동도 없었다. 표정 하나 흔들리질 않았다.
지껄여?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딱 그짝이었다.
우습게도 곽이천 역시 더는 나가지 못했다.
호통이 전부였다.
자칫 잘못 행동했다가 윌레이커 카이스를 불러들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당하고는 못 산다는 성격의 곽이천도 ‘무조건 지는 싸움’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때, 무신이 나섰다.
“너희들도 정마대전의 여파에 휘둘려 죽을 공산이 크니 지금 죽인들 아무 문제도 없겠구나.”
“…뭐야?”
줄곧 곽이천만을 향해 있던 레이스터 발콘의 눈이 무신에게로 돌아갔다.
무신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네가 방금 그랬지 않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이 자리에서 죽여도 되겠다고.”
“어이, 곽 무사! 이 새끼 누구야?”
누구라고 물을 것도 없었다.
레이스터 발콘은 바로 무신의 정체를 알아챘다.
청의에 빙월대 대장의 문양까지.
북해빙궁 소속이었다.
“오호라, 북해빙궁 나으리들께서 그새 무림맹과 손을 잡으셨어? 헌데 뭐라고? 우릴 죽여? 이놈들이 설한에 갇혀 살아 정신 줄이 나가…….”
“그리고 생각해 보니 말이다.”
무신은 레이스터 발콘의 말을 끊으며 등 뒤에서 빙룡검을 꺼냈다.
여태 그의 기압에 눌려 있었기에 그것은 이제야 자기가 존재했음을 드러냈다.
빙룡의 영기를 터뜨리며.
동시에, 레이스터 발콘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계인이라고도 해도 중원 땅에 머무른 게 수십, 수백 년.
빙룡검임을 바로 알아본 것이다.
무신은 놀란 레이스터 발콘을 뒤로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니들 죽인들 알 게 뭐야? 우리한테 당했는지 마교한테 당했는지 어찌 알아?”
“네, 네놈이 지금 무슨…….”
레이스터 발콘이 곽이천과 똑같은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빙룡검이 움직였다.
매우 빠르게.
눈으로도 감각으로도 모두 쫓을 수 없을 만큼.
빙룡검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에는 목 없는 몸뚱이가 차디찬 바닥 위로 쓰러지고 있었다.
무신은 옷가지에 묻은 피를 털었다.
곽이천과 달리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윌레이커 카이스인들 똑같이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