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26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26화
126화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1)
“빌어먹을!”
답답한 마음에 욕이 나온다.
놈들이 생각보다 아이언 영주 성에서 먼 곳에 자리를 잡은 탓이다.
다리에 보내는 내공의 양을 늘렸다.
파바밧!
어둠이 깔렸으나 눈을 내공으로 강화한 탓에 사물을 구분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녹기 시작한 엿가락처럼 죽죽 늘어진다.
점점 더 음침하고 사이한 기운이 짙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다.
대체 어떤 놈을 불러내려고 이렇게나 엄청난 기운이 필요한 거지?
흐릿하게 모여들던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와 이제는 마치 수만 다발의 안개꽃처럼 보일 지경이다.
더욱 속도를 높였다.
저 현상의 끝에 상상하기 어려운 무서운 결과가 벌어질 것 같아 두고 볼 수가 없다.
“큭!”
음습한 기운의 근원지에 거의 접근한 순간, 신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희뿌연 덩어리를 집어삼키던 무언가가 푸른빛을 내면서 떠오른다.
그것을 신호로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흑마법사로 짐작되는 놈들이 황홀한 얼굴로 푸른빛을 바라보고 있다.
망할 놈의 오를레앙 공작!
그 인간 때문에 한발 늦고야 말았다.
억지로 떼놓으려고 했다가는 뒤를 쫓아와 협공을 당할까 두려워 방심을 노려 처리하긴 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설마 마왕씩이나 소환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이 한 몫 하기도 했고 말이다.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라니…
허공에 떠오른 별모양의 푸른빛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소름 끼치는 괴랄한 기운이 사방에 퍼진다.
마침내 푸른빛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존재.
박쥐와 같은 형태의 날개를 지닌 근육질의 사내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이다.
…크다!
윽!
제길!
마족 따위한테 열등감(?)을 느끼게 될 줄이야…
저놈이 마왕이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다.
위험한 기운을 폴폴 날리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한 이후로 이렇게까지 상대가 위협적으로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상대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지금 기습의 묘(妙)를 살리고 싶지만,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아직도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무형의 벽이 나를 구속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아직 나의 존재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일단은 그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도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 이유다.
헤로드 소드의 검 자루에 손을 대고서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에 푸른빛에서 튀어나온 마족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를 반복했다.
어째서인지 흑마법사들은 당황한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흐흐흐… 인간계의 공기는 확실히 다르군. 네 놈들이 나를 불렀는가?”
마족이 음침하게 웃으면서 흑마법사들을 둘러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인큐버스 따위가 소환된 것이란 말인가!”
흑마법사의 당황한 음성.
응?
저 놈이 인큐버스라고?
인큐버스라면 하급 마족에 불과한 놈이잖아?
하지만 흑마법사의 말을 듣고서 나는 의심이 생겨났다. 하급 마족이 지닐만한 기운의 크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왕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니, 인큐버스라는 하급 마족을 본 것도 처음이라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
됐고!
어쨌든 인큐버스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괴기스러운 기운은 만만치가 않다.
이 정도 기운이면 마왕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네 놈들이 나를 불러냈느냐고 묻지 않았는가!”
핏발이 선 눈으로 흑마법사를 노려보는 인큐버스.
“그, 그렇다!”
“빌어먹을 자식들! 죄다 수컷들의 영혼으로 채우다니! 곱게 죽을 생각 따윈 포기해라!”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을 증폭시키는 인큐버스.
어째 화내는 이유가 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인큐버스의 손이 흑마법사들을 향했다.
“플레어(Flare)!”
푸화아학!
푸스스스…
“……!”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인큐버스가 장난처럼 손을 들었을 뿐인데 푸른 화염이 튀어나와 여섯 명의 흑마법사를 해치운다.
화염 마법이 분명함에도 마치 전격 마법처럼 엄청난 속도로 손바닥에서 불꽃이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흑마법사들은 플레어 마법에 직격당하는 순간, 형체도 안 남기고 사라졌다.
발목 위로는 모조리 타 버리고 신발을 신은 발만 남았다.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흑마법사들이 있었던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그제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무형의 벽이 약해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르릉!
헤로드 소드를 뽑았다.
승부를 가르는 건 스피드.
인큐버스는 근육질 몸과 다르게 마법을 사용하는 놈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겠다.
비룡보법을 극성으로 사용해 놈의 시선을 분산시켜 혼란을 유도할 생각이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이 바로 승부를 걸 타이밍이 될 터다.
“쥐새끼가 한 마리 숨어 있었군.”
“쳇!”
가볍게 혀를 찼다.
무형의 벽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았는데, 벌써 발각당한 것이다.
“블링크(Blink)!”
인큐버스가 시동어를 외쳤다.
녀석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나의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헤로드 소드에 내공을 불어넣으면서 비룡보법을 활성화시켰다.
“윌슨?”
“……?”
하마터면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난생처음 보는 인큐버스가 내 이름을 알아?
이게 말이 돼?
마족이라면 괴상한 마법을 사용해서 나의 이름도 알 수 있었을 터!
곧바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몸을 날렸다.
파앙!
“윌슨! 나야, 나! 세인트!”
고속기동을 준비하는 나의 귀에 파고든 음성.
“……!”
막 도움닫기를 하려다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세인트?”
“그래, 나다, 윌슨!”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는 인큐버스.
“‘죽음의 대지’에 있던 해골 리치 세인트?”
“그렇지! 기억났나?”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의심이 생겨난다.
진짜 그 자식일까?
“기억 안 나? 마계에 가면 인큐버스가 될 거라고 했잖아.”
“…그랬지.”
의심을 단박에 털어 내는 얘기다.
‘죽음의 대지’의 철탑에서 녀석과 나누던 대화였으니까.
“진짜 세인트 맞아?”
하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거 섭섭한데? 내가 최고로 아끼던 크로노스 갑옷까지 선물해줬는데 말이야.”
“진짜였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녀석은 ‘죽음의 대지’에서 만났던 ‘세인트’라는 이름의 리치가 맞다.
“하하하! 그동안 잘 지냈나, 친구!”
“반가워!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녀석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마족이 아니라 인간의 방식에 따라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에 마음이 놓인다.
녀석의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포옹을 해주고 싶지만, 덜렁거리는 흉기(?) 때문에 상당히 찜찜하다.
“나도 인간 세상에 나오자마자 친구를 만날 줄은 몰랐다.”
“어떻게 된 거야? 마왕이 된 거냐?”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세인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뼈다귀일 때의 모습과 달리 너무나 표정이 풍부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마왕이라는 게 어쩌다 보면 되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나저나 옷 좀 입지?”
부담스러운 흉기(?)를 덜렁거리는 게 영 걸쩍지근하다.
“아! 미안! 미안!”
세인트가 빙그레 웃더니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박쥐를 닮았던 날개가 말려 들어가고 그의 몸에 옷이 입혀졌다.
이제야 조금 부담감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당연하지 마계까지 가서도 뼈다귀로 살 줄 알았나? 그것보다 윌슨, 예전에 봤을 때와 확 달라졌는데? 그래 봐야 인간 세상에서는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텐데 말이야.”
세인트가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했다.
녀석과 헤어진 시간이 일 년도 되지 않았던가?
생각보다 빠르게 강해지긴 한 모양이다.
아니,
뼈다귀였던 녀석이 육체를 지닌 채 다시 인간 세계로 온 것보단 덜 충격적인 일이다.
“네가 준 크로노스의 갑옷 덕분이지. 좀 괴롭긴 했지만.”
“아, 아! 드래곤 하트의 도움을 받았던 건가?”
“도움이라고 하기엔 무지하게 고통스럽긴 했다. 그것보다 어떻게 된 거야? 너 마왕이냐?”
궁금해서 못 참겠다.
분명 엄청난 기운을 흡수하고서 녀석이 인간세계에 나타났다.
어영부영한 마족을 부르는데 그토록 막대한 기운이 필요했을 리가 없을 거다. 실제로 녀석이 보여 주었던 마법은 ‘죽음의 대지’에서 보았던 함정보다 몇 배나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전의 뼈다귀 몸일 때와 달리, 녀석에게선 강한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아까 흑마법사들 봤나?”
“상당한 실력자들이더군.”
“그 녀석들이 부르려던 게 마계서열 69위의 ‘데카라비아’라는 마왕이었지. 내가 계약했던 마왕이기도 하고.”
“하지만 네가 나왔잖아.”
녀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69위 마왕이라니… 숫자가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세인트가 우람(?)한 모습이 된 것인지도…
“막상 마계에 가보니, 별거 없었어. 나와 계약했던 ‘데카라비아’라는 마왕도 형편없는 실력이었지. 그런 주제에 감히 나한테 ‘복종의 맹세’를 요구하더란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헬파이어(Hell Fire)로 구워 버렸지.”
“…가능한 얘기냐?”
“천 년을 넘게 버틴 리치가 존재할 거로 생각하나? 나만이 유일하게 천 년을 넘게 리치로 살았어. 놈은 내 상대가 될 수 없었단 말씀이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턱을 치켜드는 세인트.
“계약에 묶인 몸 아니었어?”
“‘데카라비아’와 계약한 것은 내 영혼을 마계에 귀속한다는 거였을 뿐이지. 놈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계약은 아니었거든.”
세인트가 나와 시선을 맞추면서 비열하게 웃었다.
“어쨌거나, 인간계에 나오자마자 널 만나서 다행이다. 그럼 이곳은 레이놀드 영지 근처인 건가?”
“아니? 여기는 아이언 영지야.”
“아이언 영지? 그런 곳은 처음 들어 보는데?”
“예전에는 네르바 영지라고 불렀던 곳이다.”
“뭐야? 국경 근처란 얘기잖아? 네가 어째서 이런 곳에 와 있는 건데?”
세인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리치였던 세인트와 헤어지고서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호오… 재미있게 살았구나, 윌슨.”
“재미는 개뿔. 네가 아니었으면 난 오늘 마왕을 만나서 치열하게 싸웠을 거야. 이게 어딜 봐서 재미있다는 거야?”
“별일 없었으면 됐잖아. 천 년을 넘게 철탑에 콕 박혀서 살아 봐. 자극 없는 삶만큼 지겨운 것도 없거든.”
“…….”
녀석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데카라비아’에게 영원의 삶을 약속받은 대신에 철탑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제약을 받았던 세인트다.
오죽했으면 던전을 돌파하면 라이프 베슬이 깨지도록 해두었을까.
“아무튼, 축하한다. 세인트.”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인간계에 나오면 널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렇게나 쉽게 만날 줄은 몰랐어.”
세인트가 호탕하게 웃는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다.
녀석의 정체는 마왕.
영화에서고 소설에서고 마왕이 하려던 짓은 대부분이 비슷비슷하다.
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학살하고 신과 대적하려는 모습을 그리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이 녀석도 예전에 내가 알던 리치가 아닐 수 있다.
마계에 가서 마음의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고 말이다.
“한 가지 묻자.”
“뭐든지!”
“네가 인간계로 나온 이유는 뭐지?”
“…….”
나의 질문에 세인트가 웃음기를 지우고는 입을 꾹 다문다.
녀석이 대답을 못 하는 게 수상하다.
“혹시 너도 전쟁을 일으키거나 인간을 학살하기 위해서 나온 거냐?”
“그건 마계의 개성 없는 한심한 마왕 놈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나를 그런 개성 없는 녀석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건가, 윌슨?”
세인트가 눈에 힘을 주고서 노려본다.
불안하다!
놈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인간을 학살하려는 다른 마왕을 개성 없는 한심한 놈이라고 대답했던 세인트다.
그렇다면 더 대단한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일 터다.
어쩌면 이 자식은 전 인류의 말살을 노리고 인간계에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네가 인간계에 나온 이유는 뭐지?”
“아름다운 인간 여자와 결혼하려고 나왔다.”
“……뭐?”
이건 또 무슨 상큼한 개소리?
내 귀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하는 대답이다.
“아직… 총각이다.”
세인트가 뒷머리를 긁적인다.
커다란 덩치를 한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도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다.
“어째서?”
“마계의 여자들… 드럽게 못생겼다. 도저히, 도저히… 크흑!”
“…이해했다. 세인트.”
나는 고개를 푹 숙이는 녀석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불쌍한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