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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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1화
빙룡검
북해에는 관도가 따로 없었다.
그곳이 새외무림이어서는 아니었다.
만들어봤자 의미가 없었다.
매일매일 지독히도 쌓이는 눈이 길이란 것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빙궁 무사들이나 표사들, 혹은 행상인들이 오고 가며 만든 족적이 그나마 좀 걸을 만했다.
늦장 부리면 그 또한 눈에 뒤덮일 것이 뻔하기에 무신은 더 힘껏 고삐를 말아 쥐었다.
빙궁에서 고르고 고른 청마가 그에게 부름하며 세차게 굽을 내디뎠다. 다그닥다그닥 발굽 소리가 경쾌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빙월대 무사들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천군만마 부럽지 않았다.
그럴 것이 저들 한 명, 한 명이 빙궐대 대장 백충일과 맞먹었다.
지금 무신은 사실상 49명의 백충일을 이끌고 움직이는 셈이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것은 못 됐다.
정마대전.
그 치혈한 현장에 가면 빙월대 무사들도 삼류무사로 둔갑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보다도 아래였다.
무위의 상대성을 따지면.
‘그렇게 되지 않게 내가 힘을 써주면 돼.’
무신은 대장으로서의 본분을 가슴에 새기며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서쪽은 정마대전이 벌어지는, 그러니까 신강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신강이 아니었다.
적발염 구왕산.
빙룡검을 만드는 게 먼저였다.
그래서 무신의 등에는 빙룡의 뿔이 메여 있었다.
그것은 출발할 적부터 지금까지 매서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북해의 날카로운 눈보라도 그것의 기운을 이기지 못했다. 뒤따르는 빙월대 무사들조차 움찔거리게 한다는 게 조금 문제이긴 하지만.
닷새하고도 반나절.
무신은 어느 허름한 대장간 앞에 도착했다.
대장장이질은 끝내줘도 그 외로는 형편없다더니 벌써부터 알 것 같았다.
녹다 만 눈이 문 앞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벽은 돌 부스러기가 떨어질 정도로 쩍쩍 갈라져 있었다.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대장장이 일에 집중한단 뜻이겠지.’
무신은 좋게좋게 바라보았다.
집중도가 높다는 것은 그의 검도 잘 뽑혀 나올 것이란 방증이었다.
그는 빙월대를 밖에 대기시킨 후 대장간 문을 열었다.
적발염이란 별호 그대로 머리칼과 수염이 붉은 노인, 구왕산이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무신은 인사부터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구왕산이 무신을 힐끗 쳐다보았다. 용무가 뭐냔 얼굴이었다.
무신은 냉큼 답했다.
“검 제작을 좀 부탁드릴까 하는데.”
“검 제작?”
길게 말해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무신은 내공으로 힘을 잔뜩 죽여놓은 것을 등에서 풀었다.
보는 둥 마는 둥 무신을 쳐다보던 구왕산이 눈을 부릅떴다. 한 눈에 알아본 것이다.
빙룡의 뿔을.
“그, 그것은 빙룡의 뿔이 아닌가……!”
퉁명스러웠던 어조가 상당히 정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무신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눈치챈 것이다.
“알아보시는 게 신기하군요.”
“빙룡검의 재료가 되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네.”
빙룡검은 중원 전역을 통틀어 손에 꼽는 명검이었으니 구왕산의 말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빙룡의 뿔은 빙룡의 뿔일 뿐이었다.
빙룡검과 생긴 게 전혀 달랐다.
‘대장장이라 눈썰미가 좋은 건가.’
무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자신은 검만 만들어지면 되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검으로 말인가?”
“예.”
“어렵지 않을까 싶네.”
무신은 확실하단 투로 말했다.
“어르신의 실력이라면 가능할 줄 압니다.”
“내가 뭐라고 실력은 실력인가?”
“근방에서 유명하시지 않습니까?”
“이쪽에서 아무리 유명해 봐야 우물 안이야.”
“그 우물 안이 대양처럼 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해보보십시오.”
“허허…….”
“저는 어르신을 믿습니다.”
“알겠네. 불가능하더라도 일단 해보겠어.”
구왕산이 빙룡의 뿔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여인네 살결도 저렇게 성심성의껏 보듬지는 않을 것이다.
무신은 그 모습이 퍽 재밌었다.
한참 군침을 삼키던 구왕산이 문득 물었다.
“빙룡검은 만들어진 후나 전이나 기운이 드세다 들었는데, 이것은 어찌하여 아무 그게 없는가?”
“제가 죽여뒀습니다.”
“빙룡의 뿔의 기운을?”
빙룡의 뿔은 빙룡 그 자체였다.
그것을 억제시켰다니 미친 소리가 따로 없었으나 구왕산은 이내 수긍했다.
무신이 빙월대 대장직 문양이 새겨진 청의를 입고 있어서였다.
“그 자리에 오른 이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엄밀히 따지면, 틀렸다.
빙월대 대장이라 해도 빙룡의 뿔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고서야 그보다 수십 배도 더 강한 해영월이 빙룡 사냥에 실패할 일은 없었겠지.
무신은 그것을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가 구왕산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그저 빙룡검 제작이었다.
그는 보따리 하나를 꺼내놓으며 말했다.
“돈은 얼마든지 챙겨 드리겠습니다. 잘 신경 써주십시오.”
“돈이야 땡전 한 푼만 받아도 좋네. 대장장이로서 이만한 재료를 만져본단 자체가 내겐 큰 보상이야.”
포원경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백산왕의 가죽을 만져본단 자체가 영광이라며.
하는 일은 달라도 장인의 정신은 같은 모양이었다.
구왕산이 빙룡의 뿔을 집었다. 그리고 그대로 들고 가 석판 위에 올렸다.
화로, 풀무, 모루, 메, 망치.
구왕산의 주위로 대장일을 위한 공간과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무신은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이 꽤 걸릴 터,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는 편이 안 낫겠으나 그랬다가는 사람 한 명 죽이는 꼴이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빙룡의 뿔이 야생 들소처럼 날뛰게 돼 있었다.
그는 대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풀무질이니 망치질이니 곧 말소리도 안 들릴 만큼 시끄러워지겠지만, 괜찮을 것이다.
이곳만큼 부산스러운 객잔에서도 심법을 운용한 그였다.
그는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백산자화신공의 오의가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몸이 시원해지며 정신이 맑아졌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정확히는, 흥분됐다.
강해진다는 느낌.
첫사랑의 아련함보다도 더 감칠맛이 났다.
정신 없이 심법을 운용하던 그는 ‘이보게!’ 하는 구왕산의 부름에 퍼뜩 눈을 떴다.
굉장한 굉채를 내는 무언가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빙룡의 뿔.
아니, 빙룡검.
해영월이 들었던 그것과 똑같았다.
“내가 해냈네! 내가 해냈어!”
구왕산이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무신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믿기지가 않구만!”
나중에야 별호까지 붙는 세기의 대장장이가 되지만, 지금은 그저 변방에서 조그마한 대장간을 운영하는 늙은이였다.
구왕산 본인도 본인의 능력을 높이 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못 믿고 있는 것이고.
무신은 재차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땀에 범벅이 된 구왕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죄송스럽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구왕산이 오히려 무신의 손을 맞잡았다.
“자네 덕에 대장일에 더 자신감을 얻었네.”
“하하,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정말이었다. 무신이 한 것은 내내 가부좌 틀고 앉아 심법을 운용한 게 다였다.
구왕산이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단 용기를 주었지 않나? 안 그랬으면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을 걸세.”
‘내가 그랬었나?’
무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했을지언정 그게 도움이 돼봤자 얼마나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뭐, 어쨌든 본인이 그렇다면 된 것이겠지.
무신은 빙룡검 앞으로 다가갔다.
눈부시게 찬란한.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제 몸뚱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계속 침이 넘어갔다.
얼른 쥐고 싶었다.
구왕산도 더는 입을 열지 않고 무신을 주시했다.
무신은 작은 심호흡과 함께 빙룡검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감기는 순간, 빙룡검이 부르르 떨었다.
더 이상 빙룡의 그것이 아닌 그의 그것이 되겠노란 신호였다.
손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바로 맞닿은 손바닥은 심장처럼 쿵쾅거렸다.
그는 찬찬히 빙룡검을 들었다.
아무것도 발현하지 않았는데 빛이 났다.
빙룡검 스스로의 힘이었다.
여기에 자신의 내공을 더하면… 무신은 식겁하며 관두었다. 대장간이 통째로 날아갈지도 몰랐다.
그는 구왕산에게 금화 열댓 개를 건넸다.
망치질 한번 해준 것에 대한 보답치고는 굉장히 컸다.
하지만 재료가 빙룡의 뿔이었다.
더 줘도 모자랐다.
“됐네. 마음만 받지.”
“예?”
그런데 구왕산은 그마저도 거절했다.
“빙룡의 뿔을 만져보게 된 것으로 제작비는 이미 받은 게야.”
“허나…….”
“게다가 자네 덕에 대장일이 더 즐거워진 것도 있고 말이지.”
구왕산이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무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신은 괜히 머쓱해졌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서 직접 주지 않고 나오는 길에 몰래 돈을 찔러 넣고 나왔다. 그제야 좀 마음이 편했다.
바깥은 어둑어둑했다.
대장간 안에서 몇 시진이 지난 것인지, 아니면 며칠이 지난 것인지 무신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든 당장 그가 궁금한 것은 빙룡검의 위용이었다.
그는 빙월대가 대기하는 곳으로 이동하며 빙룡검을 높이 쳐들었다.
밤하늘의 별빛이 그것의 검신에 부딪쳤다.
청명하고도 영롱한.
그는 또 꿀꺽꿀꺽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 가볍게 휘둘렀다.
정말 가볍게.
아주 가볍게.
그런데 파장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허공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방대한 양의 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이무기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듯이.
그는 감탄을 쏟아내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여운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았다.
짜릿함.
아주 끝내줬다.
***
현재 정마대전은 엎치락뒤치락이었다.
먼저 광군학관을 치면서 정파 쪽으로 기우나 싶었던 게, 마정태가 움직이면서 다시 마교 쪽으로 기울었다.
곤륜파 장문 공일회가 당한 후에는 더욱 그랬다.
마교가 아예 주도권을 쥐고 정파를 각개격파했다.
그래, 전체적인 기간으로 보면 엎치락뒤치락이었으나 최근에는 마교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특히 마교 교원 근방에서는 더욱 심각했다.
정파가 아예 기를 못 폈다.
점창파의 고수 이정기를 필두로 한 특수타격대도 와르르 무너졌다.
그런데…….
“우리 쪽도 당해?”
그것은 마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목도 같이 날아갔다.
교주 마운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쪽에 탁호영을 이길 자가 있었단 말이냐?”
“아닙니다. 없었을 겁니다.”
“헌데?”
“다른 세력이 훼방을 놓은 듯싶습니다.”
“다른 세력?”
“그게…….”
수하의 말이 다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운현은 이미 알 것 같았다.
감히 겁도 없이 마교를 건드릴 족속은 중원 땅에서 딱 두 곳이었다.
색목인들.
혹은, 북해빙궁.
마운현은 개중에서도 한 곳을 꼽았다.
“빙궁이 움직인 것 같구나.”
“빙궁이요?”
“우리한테 볼 일이 더 많은 쪽은 색목인들보다는 아무래도 빙궁이니 말이다.”
“그럼,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기는. 혼쭐을 내줘야지.”
최근, 직접 교원 밖으로 나가 숱한 정파인들을 일망타진한 마운현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주제도 모르는 쥐새끼들을 족칠 생각이었다.
***
거칠 것이 없었다.
무신이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길이 열렸다.
이유는 뻔했다.
그의 손에 빙룡검이 쥐어져 있어서였다.
들짐승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근방에서 이름 좀 날린다 하는 무사들도 알아서 피해갔다.
빙룡검말고도 이유가 있기는 했다.
북해빙궁.
그곳 최강의 타격대라는 빙월대의 대장.
거기에 신성(新星)이란 수식어까지 더해지면, 무신은 가히 괴물이 따로 없었다.
그를 따르는 빙월대 대원들조차 벌벌 떨었다.
“내가 무서우냐?”
“아, 아닙니다.”
“편히 생각하거라. 나는 오히려 너희들을 품는 입장이니.”
“예……!”
빠릿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감격스럽단 감정이 끼어 있었다.
빙룡을 잡아낼 정도의 고수.
그 같은 자에게 ‘품어진다’ 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한한 영광이었다.
무신은 그들을 격려하며 계속해서 청마를 몰았다.
북해는 진즉에 벗어났다.
그리고 서쪽으로, 더 서쪽으로 가다가 어느 지점부터 밑으로 내려갔다.
북해의 서쪽에서 밑.
신강이었다.
벌써부터 정마대전의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무신은 그것이 불쾌하지 않고 상쾌했다.
피 냄새를 쫓아가면 분명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볼 시험체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시험체.
일단은 마교인들만이 대상이었다.
마교는 무조건 악(惡)이고 정파는 무조건 선(善)이어서가 아니었다.
빙궁이 마교와는 사이가 멀고 정파와는 사이가 가까웠다.
그래서였다.
무신은 빙월대 대장직을 뜻하는 문양을 어루만지며 조금 고개를 들었다.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 서산 너머에만 도달하면 왜인지 마주칠 것 같았다. 정마대전의 현장을.
그런데…….
“대장님!”
“오냐, 나도 봤다. 생각보다 일찍 마주쳤구나.”
무신이 보았던 서산 너머에서 족히 일백을 될 듯한 흑포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흑포를 입을 자들은 하나였다.
마교.
바로 그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