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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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9화
나가실 때
적발염(赤髮髥) 구왕산.
포원경이 명의 제작의 장인이라면, 그는 명검 제작의 장인이었다.
중원의 이름난 검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흑라신검도 그에게서 나왔단 소문이 있었다.
해영월의 빙룡검도 어쩌먼 그의 작품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다 나중의 얘기였다.
1552년의 구왕산은 흔하디흔한 대장장이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유명세를 덜 떨치는 거지.’
무신의 기억상에서는 그랬다.
하기야 적발염이란 별호도 나중에나 나온 것이다.
구왕산의 머리털과 수염이 뻘겋게 변하면서.
‘헌데 그 노인네 머리털이랑 수염은 왜 하얗지 않고 빨갈까?’
무신은 심도 있게 고민했다.
색목인들의 경우에서나 나오는 노화였다.
‘설마 색목인인가? 그런 말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빨갛든 희든 그저 빙룡의 뿔만 맡길 수 있으면 되었다.
“이대로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말이지.”
그가 과거를 짚는 사이, 해영월이 빙룡의 뿔을 든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출중한 대장장이를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그래?”
“예.”
“이것도 만질 수 있을 실력인가?”
“그럼요. 당연합니다.”
“호오, 누구인데?”
“구왕산이란 자입니다.”
“구왕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구나.”
역시, 이 시절의 구왕산은 별 볼 일이 없었다.
무신은 ‘저도 건너건너 들었는데 그의 망치질이면 나뭇잎도 검이 된답니다’ 하고 과장하여 둘러댔다.
해영월이 껄껄 웃었다.
“나뭇잎으로 검을 만든단 것은 과장된 것이었으나 그래도 실력이 좋으니 그런 말까지 나왔겠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알겠네. 그럼 그자에게 맡겨보게.”
“감사합니다.”
“왜 내게 감사한가.”
해영월이 당치도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것은 자네가 얻은 물건이야. 당장 길바닥에 갖다 버려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네.”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잖습니까?”
“그 기회도 오로지 자네의 힘으로 쟁취했네.”
대결에서 졌으면 빙룡정에 들어가지 못했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가 궁주님 입장이었으면 그래도 절 안 들여보냈을 것 같습니다. 죽을 게 뻔했잖습니까.”
“허허,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구먼.”
입에 발린 말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빙룡의 뿔을 얻은 것에 해영월이 일조한 것은 배웅, 그리고 빙룡정을 나온 후 쓰러진 무신을 빙궁으로 데려온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무신이 그를 치켜세우는 이유는…….
도움이 돼서였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그나저나… 이제 어찌할 참인가?”
마침, 해영월이 그에 대한 이야길 꺼냈다.
무신은 모르는 척 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결의 말일세. 나는 자네와 지금 당장에라도 그것을 맺고 싶은 심정이네.”
해영월의 입에서 다시 한번 저 말이 나오길 바라던 참이었다.
그래야지만 조금 더 ‘갑’이 되기 편하니까.
해영월을 부려먹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빙궁을 조금 더 자유롭게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무신은 이번에도 모르는 척 물었다.
“이미 맺은 것 아니었습니까?”
***
백 명, 천 명의 무사가 한 명의 무사 앞에서 하룻강아지보다 더 작아지는 것.
예나 지금이나 강호는 늘 소수의 싸움이었다.
머릿수 많아봐야 웬만큼 하는 고수의 강풍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버텨봐야 팔다리 한 쪽씩은 날아갈 것이다.
때문에 이번 정마대전에도 소위 하수라 불리는 이들은 아예 참전도 안 했다.
정확히는 삼류무사 이하까지.
민간인을 터는 역할이라도 쓸 법하지 않겠느냐마는, 그런 개싸움을 하자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서로의 세력을 걸고 다투는 참극.
굳이 진흙탕까지 빠질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분명 소수의 싸움이었는데, 한 무리의 기마대로 인해 그것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전원 초절정이었습니다!”
“뭣이?”
상황을 살피러 간 발 빠른 무사가 그렇게 보고했다.
무사의 주인이자 곤륜파의 장문, 공일회가 깜짝 놀라 물었다.
“머릿수가 얼추 일천도 넘었다면서?”
“예!”
“그런데 전원 초절정이었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하거라!”
“확실합니다! 하나같이 다 검강을 빼고 있었습니다!”
무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확실하단 어조였다.
공일회는 그럼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단기간에 그 많은 초절정을 모았다고?”
말은 바로 해야 했다.
모은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다.
공일회 본인도 그 점을 자각했다.
“우라질, 마공, 마공해도 고수 만들기에 그만한 게 없나 보구나. 초절정이 일천 명이라니.”
“…….”
“알겠으니 가서 대기해.”
“예!”
일천 명이든 이천 명이든 어차피 초절정이었다.
공일회의 힘이면 그까짓 놈들 묵사발 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초절정이 일천 명인데 그 윗대가리는 얼마나 강하겠느냐가 문제였다.
‘따로 대장은 안 보였다고는 하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 분명 뒤따라오고 있어.’
공일회는 대강 상황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마교 교원 동쪽 방향의 어느 기슭.
이곳에서 정파의 본대로 향하는 마교 무리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가자!”
그의 외침에 추리고 추린 곤륜파의 무사들, 그리고 정파 각지의 고수들이 일제히 발을 뗐다.
수는 마교의 일천기마대에 모자랐으나 무위는 자신 있었다.
마공?
어차피 목숨이나 단전을 담보로 한, ‘당겨쓰는 힘’이었다.
전혀 두렵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다 그들의 힘이 빠졌을 때 달려들면 될 것이다.
“저것들 눈깔이 왜 저래?”
“아주 뻘건데?”
“간밤에 쥐새끼를 잡아먹었나.”
“하여간 생긴 것부터 마교스럽게 생겼구만.”
길목은 그들이 주둔한 기슭 하나뿐이었기에 그들은 금세 마교의 일천기마대와 마주했다.
섬뜩할 정도로 시뻘건 눈알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공일회가 검을 뽑아들며 앞장섰다.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한다! 쳐라!”
“예!”
시작은 좋았다.
일각도 안 되어 눈알이 시뻘건 머리통 수십 개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끊어진 팔다리도 대부분 마교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괜한 걱정이었을까.
공일회는 비로소 안심했다.
물론 그의 손에 죽어나간 놈들은 벌써 열댓도 넘었다.
깨달음의 경지에 달한 그에게 초절정은 말했듯 손쉬운 상대였다.
눈알에 얼굴까지 시뻘건 자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혈추귀 적라성?’
공일회는 순간 저도 모르게 혈교의 교주를 떠올렸다.
하지만 저자가 적라성일 확률은 전무했다.
정파와 마교가 서로 앙숙이듯 혈교와 마교도 서로 앙숙이었다.
그때, 그자가 입을 벌렸다.
“전원정지.”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교도들은 불호령이라도 떨어진 듯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싸우던 놈들은 즉각 뒤로 물러났다.
혼잡했던 자리가 순식간에 짙은 침묵에 빠졌다.
공일회도 일단 제 무사들을 멈추도록 지시했다.
“저놈부터 잡고 다시 시작한다.”
그자가 교도들을 헤치며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시선이 공일회를 향하고 있었다.
공일회는 저놈이란 지칭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잠깐 당황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상대의 무위가 너무 형편없었다.
‘저 정도면 감춘 것을 드러내도 나보다 낮을 것이다.’
공일회는 같잖단 미소와 함께 마주 걸어 나갔다.
“너희도 아예 물러나 있거라.”
똑같은 지시를 내리면서.
“그대는 누구인가?”
그리고 물었다.
곤륜파 장문을 상대하려 나온 멋모르는 자의 정체를.
“본인을 죽인 자의 이름을 알아봤자 저승에서 원망과 분노만 사무칠 뿐이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
“시답잖은 소리를 뭐 있는 듯이 말하는구나.”
공일회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벌써부터 이겼단 듯이 말하는 꼴도 참 우습고 말이지.”
“아직 모르겠는가?”
“무엇을?”
“네가 곧 죽을 목숨임을.”
“크하하하하하하! 마교 놈들 아가리 터는 것은 언제 들어도 우습…….”
공일회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허공 위로 열댓 개의 검이 솟구쳤다.
그것이 일제히 공일회를 향해 쏘아졌다.
빨랐다.
몹시 빨랐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가뿐히 넘었다.
공일회의, 곤륜파의 장문 공일회의 감각으로도 쫓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른 아련한 머리통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여지껏 죽었던 시체들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자, 장문!”
곤륜파 무사들과 정파 고수들이 놀라 소리칠 때, 그자가 번쩍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공일회의 머리통을 잘랐던 열댓 개의 검이 또 다른 목표물들을 향해 움직였다.
싸움은 다시 시작이었다.
마교의 승리란 결말을 미리 안고서.
***
“저랑 연을 끊으시겠다구요?”
혼례란 애초부터 없는 얘기였음을 진중하게 말하기 무섭게, 해연수가 무신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눈빛이 흡사 독사의 그것 같았다.
무신은 ‘하하, 연을 끊다니요, 해 소저’ 하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벗으로든 동료로든 얼마든지 이어질 구멍은 많습니다.”
“저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으시겠다?”
“예? 구멍이 왜 구렁텅이로 해석됩니까?”
“그런 의도 같은데요, 뭐.”
해연수가 뾰로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신은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강경하게 나갔다.
“자꾸 이러시면 진짜 연 끊습… 응?”
해연수가 끅끅 울기 시작했다.
천의가 벌써 흠뻑 젖었다. 닭똥보다 굵은 그녀의 눈물을 견디기에 그것은 너무 얇았다.
들러붙은 옷자락에 훤히 비치는 그녀의 가슴살을 보며 무신은 그녀를 안… 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저것은 마귀의 사악한 술수렷다.
그는 대충 달래며 분명한 뜻을 밝혔다.
“절 잘 모르시나 본데, 소용없습니다. 우셔도.”
“알겠어요.”
해연수가 갑자기 눈물을 뚝 그쳤다.
붉은 눈시울만이 그녀가 울었음을 유일하게 드러냈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라니까.’
무신은 기가 찼다.
“대신.”
“대신?”
“나갈 때 같이 나가요.”
“어딜 말입니까?”
“구왕산이란 대장장이분도 만나 뵈셔야 하고. 무사님 개인적 용무도 있으실 테고. 어쨌든 나가실 거잖아요, 이제 곧. 그때 같이 나가잔 얘기예요.”
“정중히 거절하고 싶습니다만.”
“저한테 물 뱉은 거 다 퍼뜨릴 거예요.”
그 정도야 이미 해결해 두었다.
“이미 제 입으로 직접 궁주님께 보고 올렸습니다.”
“너무해.”
“해 소저가 더.”
유치한 말싸움은 무신이 본연적인 의문을 던지면서 간신히 가라앉았다.
“헌데 절 얼마나 아신다고 이러십니까? 한 달도 채 안 됐습니다, 해 소저.”
“맞아요. 저 무사님 잘 몰라요.”
해연수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근데 이게 무사님을 처음 본 날부터 뛰더라구요. 그게 뭐겠어요? 아시잖아요, 다.”
“모르겠는데요.”
“아이 참.”
해연수가 뺨을 붉히며 무신의 어깨를 툭 쳤다.
무신은 애써 외면했다.
“어쨌든 없던 얘기로 합시다, 하신 말씀은.”
“그냥 동행만 하는 거예요.”
해연수는 진심을 표했다.
장난으로 받아쳤지만, 무신은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녀가 마귀란 걸 떠나서.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그도 더 진심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정마대전에 끼어들 겁니다.”
“네?”
“이대로 신강으로 간다, 이 말입니다.”
정마대전.
숱한 고수들이 득실대는 그곳에 가는 것은 그냥 미리 목숨을 내놓겠단 뜻이었다.
그까짓 사랑이 아무렴 짙어봐야 제 목숨만큼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신은 이만하면 해연수가 포기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녀가 웃고 있었다.
“와! 갈래요! 무조건 갈래요!”
무신의 생각보다, 그녀는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