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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6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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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6화

빙룡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우르르 쏟아졌다.

북해에서 흔히 부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바닥에는 눈이 허리춤까지 쌓여 있었다.

이 모두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무신에게 펼쳐진 광경이었다.

 

‘염병할 곳이로군.’

 

그는 얼굴에 뒤덮인 눈을 털며 중얼거렸다.

물론 위험하지는 않았다.

바윗덩어리야 그의 강기 앞에서 돌멩이만도 못한 신세로 전락했고, 바람은 따가운 소음에 지나지 않았으며, 눈은 검만 몇 번 휘저으면 알아서 길을 내주게 돼 있었다.

그는 미리 뽑아둔 흑라신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꽉 막힌 공간이 양쪽으로 입을 쩍 벌렸다.

한결 걸어가기가 쉬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거친 눈보라를 감수하며 고개를 든 게 무색하게, 보이는 것은 허옇고 허연 설경의 연속이었다.

 

‘설경은 개뿔이.’

 

그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야 밖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봤다.

더는 보기 싫었다.

애당초 빙룡이 머무는 곳이 설경에 속할 수도 없겠지만.

그는 유유자적 빙룡정을 헤쳐 나갔다.

주변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뜨거운 무언가가 그의 온몸에 덮쳐왔다.

빙룡의 기운이었다.

뜨거운 것을 넘어 활활 타올랐다.

활화산이 공기에 섞인 것 같았다.

숨 쉴 때마다 심장이 쓰렸다.

 

‘이래서 빙룡을 만나기도 전에 죽은 자들이 많다지.’

 

그는 잠깐 몸서리를 쳤다.

눈 쌓인 이 대지의 바닥을 까보면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백골이 널려 있으리라.

남 얘기가 아니었다.

그도 같은 신세가 될 수 있었다.

무턱대고 가다가는.

하지만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강기.

북해빙궁 궁주와 직접 대결을 하면서까지 그것을 키웠다.

빙룡이 아무렴 대단해도 이까짓 숨 몇 번 견디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장관이네, 장관이야.”

 

한 시진쯤 달려서 그는 잠깐 우뚝 섰다.

탁 트인 사방에 깔린 얼음나무들.

거기에 맺힌 눈꽃.

눈앞에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추위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물론 추위가 걷어지면 뼈만 남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을씨년스러움만 남아 있으리라.

그는 높다란 언덕 위에 있었기에 보신경을 이용해 그곳까지 펄쩍 뛰어내렸다.

사실 언덕보다 절벽이란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으나 그에겐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허공도 디딜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얼음나무와 눈꽃은 그를 감성적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것은 함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곧…….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

모래가 깔려 있었다면 제법 먼지가 날렸을 것 같이 지반이 흔들렸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얼음나무와 눈꽃이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시야가 흐려진 것이 아니었다.

저것들은 본디 생명체였다.

 

‘빙룡을 수호하는 빙령… 이었지, 아마.’

 

한순간에 그의 감성이 모두 날아갔다.

이제는 잡아 쳐 죽여야 할 적이었다.

그는 흑라신검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식물 주제에 인간을 위협하려 드는 빙령들에게 검풍을 선사했다.

그의 검풍은 여타 검풍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내공의 양이 천양지차였다.

범위도 상상을 초월했다.

셀 수도 없는 빙령들이 달려드는 상황.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이어진 이 드넓은 땅을 잠재우기에 그의 검풍은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절대무적은 아니었다.

그의 검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잔해는 남았다.

하지만 잔해쯤은 기백으로도 정리가 가능했다.

터벅터벅 난장판 속을 뚫고 지나가는 그의 옆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빙령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강호에서는 이것을 흔히 ‘아등바등’이라 칭했다.

그는 또 한참을 걸었다.

빙룡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적응이 됐는지 심장은 오히려 편안했다.

콧구멍에 후추가 뿌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은 몸에 이상을 느껴 걷기도 힘들었단 것을 감안하면, 그의 반응은 아픈 축에도 못 꼈다.

그가 다시 흑라신검을 든 것은 깊은 골짜기 앞에서였다.

앞을 제외하고는 답답할 정도로 사위가 꽉 막혀 있었다.

그는 슬슬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다 왔다.

금방이었다.

골짜기를 지나거든 놈을 만나게 된다는 게 분명 해영월의 설명이었다.

물론 몇 가지 관문이 더 남았기는 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골짜기가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거나.

솨아아아아아아아아!

수백 년 묵은 나무도 송두리째 뽑혀 나갈 강풍이 분다거나.

그는 어렵지 않게 이겨냈다.

아니, 귀찮다는 듯 쳐내기만 할 뿐이었다.

진정으로 그를 상대하려거든 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곳의 주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함정을 뒤로하며 매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어린애들 재롱 봐주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얼른 제대로 된 극(劇)을 보고 싶었다.

한참 암향표를 쓰던 그에게 돌연 커다란 벽 하나가 나타났다.

동시에 엄청난 폭풍이 몰아쳤다.

눈보라나 칼바람 따위가 아니었다.

저것은…….

놈이었다.

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벽으로 보였던 것은 놈의 몸통이었다.

형형한 비닐에 윤기가 흘렀다.

네 개의 큰 발과 거기에 달린 날카로운 발톱은 짚이는 게 무엇이 됐든 다 찢어발길 것 같았다.

상대를 압도하는 매서운 눈알과 아가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빙룡(氷龍).

언뜻 보면 아주아주 커다란 뱀으로도 비춰졌다.

그러나 뱀을 들이미는 것은 놈에게 수치였다.

뱀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저렇듯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기란 불가능했다.

무신은 고개를 좀 더 높이 들었다.

아니, 그럴 것도 없었다.

마치 검처럼 쭉 뻗은 기다란 뿔.

척 봐도 보일 만큼 컸다.

그가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은연중에 몸이 굳어 있었다.

발이 떼어지질 않았다.

 

‘발바닥에 거머리가 붙었나.’

 

그는 피식 웃었다.

그가 빙룡의 기백에 눌린 것은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생물에 대해 잠깐 놀랐을 뿐이었다.

단순 기백으로만 따지면 유림의 그것이 그에게는 더 괴물이었다.

그는 흑라신검을 찬찬히 들어 올렸다.

빙룡도 이미 그를 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눈알에 벌레를 보는 듯한 멸시가 어려 있었다.

그럴 만했다.

영물 중에서도 상위에 달하는 녀석에게 인간은 하등한 족속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무신의 눈에도 빙룡은 도롱뇽에 불과했다.

몸집 좀 크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도롱뇽.

무신은 힘껏 당겨놓은 시위를 비로소 놓았다.

흑라신검이 이제껏 단 한 번도 담지 않은 엄청난 기압을 토해냈다.

해영월과 겨룰 때의 그것보다도 더 단단하고 짙었다.

무신은 그대로 빙룡에게 쇄도했다.

빙룡이 수염을 펄럭이며 아가릴 벌렸다.

저 깊은 구렁텅이에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를 무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냉기.

색목인들이 브레스라 부르는 힘이었다.

무신은 몸을 젖혀 그것을 피했다.

잘못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정도가 아니라 곧장 사망이었다.

그것의 파괴력은 그만큼 강했다.

과연 냉기가 지나간 자리가 균열이라도 난 듯 뒤틀렸다.

피했음에도 무신의 강기 역시 충격을 받았다.

서른의 초절정 무사들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

역시 충격을 줄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내가 쓸 물건의 재료는 내가 구해야 맞지.’

 

무신은 빙룡의 아가리를 피해 높이 뛰어올랐다.

몇 장에 달하는 벽도 단숨에 넘는 그였으나 빙룡은 꼬리만도 몇 장이 넘었다.

그가 노리는 뿔은 아직도 한참 더 위에 있었다.

하지만 뿔이야 나중에 빼내도 될 것이다.

어디든 찌르고 갈라서 놈을 지치게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무신의 검이 막 사냥감을 물으려는 순간, 빙룡이 아가릴 쳐들며 울부짖었다.

지반뿐 아니라 온 공간이 진동했다.

마치 사자후(獅子吼)처럼.

아뿔싸, 무신의 검이 놈의 비늘을 뚫지 못하고 힘없이 미끄러졌다.

공격에 실패했으니 돌아오는 것은 놈의 반격이렷다.

놈이 몸을 크게 흔들었다.

기다란 바늘이 솟아난 꼬리가 무신의 온몸을 덮쳤다.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꼬리의 면적이 너무 넓었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서서 강기를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 있었다.

무려 빙룡검을 든 현경의 고수의 일격도 막아냈던 강기였으니 이까짓 꼬리 따위는 간지러울 것이다.

콰쾅!

그의 생각대로였다.

놈의 꼬리가 아무런 피도 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살짝 움츠려든 게 보였다. 강기의 반발로 인해 고통을 느낀 것이리라.

무신은 이제 차선책을 준비했다.

도약해서 공격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 꼬리부터 잘라 나가야지.’

 

그의 신형이 바삐 바닥을 디뎠다.

빙룡이 그의 움직임을 잡기란 매우 어려웠다.

놈에 비해 그는 너무 작았다.

그리고, 너무 빨랐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놈도 재차 아가릴 찢으며 나름대로 대응했으나 같은 방식에 두 번 당할 무신이 아니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빙룡에게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콰앙!

놈이 거대한 발톱을 찍어 눌렀다.

그는 여유롭게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놈의 비늘에 흑라신검을 쑤셔 박았다.

정확히 어느 부위인지는 그도 몰랐다.

살피기에는 놈의 몸뚱이가 너무 컸다.

어쨌든 타격을 줬다는 게 중요했다.

 

‘고약하군.’

 

그는 얼굴에 튄 놈의 핏방울을 흔들어 털며 중얼거렸다.

아름답게 비치는 때깔과는 다르게 냄새가 고약했다.

문득, 놈의 냉기에 비린내를 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이쪽이다!”

 

무신은 일부러 소리를 지르며 빙룡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그 본인은 반대편으로 뛰어 들어가 잔뜩 분개한 흑라신검을 찔러 넣었다.

보통 같았으면 이미 끝났을 싸움이었다.

세상에 그의 공격을 두 번이나 견딜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빙룡은 달랐다.

얼음조각 같은 것이 몇 개 튀었을 뿐, 오히려 더 광분해서 무신을 옥죄였다.

놈이 그를 옥죄일 것은 뻔했다.

냉기.

그리고 영기.

공방이 지속될수록 후자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강기가 점차 수축되기 시작했다.

백산자화신공에 비월내각신공으로 다져진 것이 도륙이 나고 있는 것이다.

무신은 당황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기뻤다.

매번 쉽게 쉽게 이기기만 해서 좀 시시한 참이었다.

가끔은 이런 식의 급박한 상황도 좋았다.

너무 급박해지면 역으로 그의 목이 날아가겠지만.

그는 강기를 더 단단히 두르며 펄쩍펄쩍 날뛰는 놈의 오른발을 밟았다.

몸집 차가 수십 배에 이르다 보니 정확히는 그가 놈의 오른발에 올라탄 형국이 되었다.

나쁘게 말하면 매달렸다고도 볼 수 있었다.

 

‘크다고 좋은 게 아니야.’

 

그는 두 다리를 단단히 지탱하며 놈의 발톱 사이에 검을 내리꽂았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작은 바늘 하나가 따끔한 통증이 되게 마련이렷다.

놈이 몸부림치는 찰나, 무신은 놈의 발을 밟고 그대로 뛰어올라 갔다.

번쩍거리는 몸통이 발바닥에 밟혔다.

느낌이 묘했다.

줄줄이 보석을 깔아 놓고 그 위를 거니는… 잡생각할 새가 아니었다.

그는 더 속도를 높였다.

그의 신형이 벼락처럼 놈을 더듬었다.

지겨운 살덩이를 지나 눈알과 수염이 박힌 머리통에 다다르기까지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는 잠시 내렸던 팔을 다시 들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뿔.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이 이제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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