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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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4화
이미 이룬 것
뼈를 바꾸어 끼고 태를 빼내는 것.
환골탈태(換骨奪胎).
단순히 무골만을 바꿔주는 파천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 세상 모든 무인이 꿈꾸는 위대한 경지이다.
이점이야 셀 수도 없다.
강골 이상으로 무골이 좋아지며 단전의 크기, 내공의 축적, 그리고 회전까지 모든 면에서 무위가 상승한다.
환골탈태란 뜻 그대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무조건’ 현경에는 도달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이루지 못하는 자가 허다하니 항간에서는 신의 권능이라고도 불리운다.
무신이 알기로 해월영 또한 환골탈태만은 이루지 못했다고 들었다.
빙룡검을 다룰 정도로 무(武)의 이해도가 높은 자.
그럼에도 실패한 이유는 뻔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설령 삼천 갑자의 내공을 지녔어도 그 세 글자를 심장에 품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무신은 상념에서 벗어나 해월영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묻고도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왜인지는 이번에도 뻔했다.
무신은 현경이 아니었다.
환골탈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도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 현경이라 한들 북해빙궁 빙주 본인도 못한 일을 어찌 무신이 할 수 있겠는가.
딱 그짝이었다.
그러나 해월영의 추측은 모두 틀렸다.
무신은 현경이었다.
심지어 실질적으로는 거기서 세 단계도 더 높았다.
북해빙궁 빙주 본인도 못한 일을 해내기도 했다.
그는 이미 환골탈태를 거쳤다.
하지만…….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회귀 전의 일일 뿐이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환골탈태. 언젠가 꼭 하고 싶습니다.”
해영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미심쩍은 눈빛은 여전했다.
무신의 기압이 그만큼 말도 안 됐던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넋 놓고 있다가 수십 장 밖으로 튕겨나간 무사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풋내기가 아니었다.
백충일과 같이 빙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이었다.
해영월이 무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무신은 잠자코 있었다.
손톱 길이까지 가늠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영월은 그를 관찰했다.
어느 순간, 해영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알겠단 표정이었다.
“그것이었구만.”
“예?”
“백산검 목청수. 그에게서 백산자화신공을 익힌 게야.”
목청수의 위세야 강호바닥은 물론이고 그 밖에까지 널리 정평이 나 있었다.
해영월이 아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추측이 틀렸다는 것뿐.
무신의 기압의 원동력은 우사개 모추동의 비월내각신공 덕분이었다.
“백 명, 아니, 천 명이 도전하면 천 명 모두가 실패한다는 것을 익히다니… 보면 볼수록 놀라워, 자네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신은 특유의 겸손한 ‘척’으로 대답했다.
해영월이 당치도 않다는 듯 그의 말을 받았다.
“우리쯤 되면 운이 곧 실력이네. 실력 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어.”
무신도 동감했다.
초절정까지는 어찌저찌 운이 작용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 후부터는 아니었다.
깨달음.
그것은 무조건 실력, 내가 나를 이기는 그런 실력이었다.
백산자화신공도 일종의 깨달음을 요하니 해영월은 그 점을 언급한 것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아는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자네와 강제로라도 결의를 맺을 방법이 없을까, 그것을 고민하고 있네.”
“하하.”
“농담하자는 게 아닐세. 나는 진심이야.”
무신 또한 진심이었다.
그는 흑라신검을 고쳐 잡았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간단해?”
“말씀드렸듯이… 제가 지면 저는 빙궁과 결의를 맺는 겁니다.”
“아차차, 그랬었지!”
해영월이 크게 반색했다.
나라를 구한 자의 얼굴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더 볼 것 없다는 듯 말했다.
“시작해도 되겠나?”
“예.”
대련장은 보통 개방형으로 지어지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단단한 벽도 고수들 간의 싸움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빙궁의 그것도 그랬다.
사방이 탁 트여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안했다.
바닥이 내려앉거나 구경하던 이들이 혼절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불안과 걱정은 시작도 전에 싹을 틔웠다.
콰쾅!
돌연 굉음과 함께 해영월, 그리고 무신이 선 자리가 움푹 파였다.
장한 열댓이 달려들어 망치질 수천 번을 해야만 생길 크기와 깊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바라봤다.
이 정도 반향이야 흔한 일이었다.
몇몇 무사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에는 두 사람도 아차 싶었지만, 역시 크게 신경은 안 썼다.
두 사람이 집중할 것은 그저 서로의 공방뿐이었다.
해영월이 먼저 발을 디뎠다.
무신은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이것은 치고 박는 대련이 아니니 공격하는 쪽은 가는 게 당연하고 방어하는 쪽은 대기하는 게 당연했다.
해영월이 번쩍 빙룡검을 치켜들었다.
무신의 눈에는 마치 한 마리 거대한 용처럼 보였다.
정말 그것 같았다.
찰나의 착각이었겠으나 그만큼 대단한 힘이었다.
이가 시렸다.
흑라신검을 쥔 손에도 땀이 조금 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강기에 빙룡검이 부딪친 직후, 무신은 계산을 끝냈다.
이 싸움은 자신의 승리였다.
콰지직!
연거푸 이어진 해영월의 공격에도 무신의 강기는 끄떡없었다.
멀쩡하다 못해 번쩍번쩍 광이 날 정도였다.
“……!”
해영월도 이미 느꼈는지 얼굴에 퍽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 몰아쳤다.
신속(神速)을 가진 자답게 공격 또한 쾌(快)에 쾌(快)가 더해진 것 같이 매우 빨랐다.
어지간한 무인들에게는 잔상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백충일조차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신은 달랐다.
해영월의 공격이 다 보였다.
피한다면, 단 한 대도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강기 대결이라 어쩔 수 없이 몸을 내줄 뿐.
콰쾅!
따가운 굉음이 수십 차례 지속됐을 즈음, 빙룡검이 슬슬 입을 닫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보며 잔뜩 침을 흘리던 녀석은 더 이상 없었다.
자기보다 더 큰 맹수의 등장에 오히려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무신은 그래도 강기를 유지했다.
백 번 잘 막아도 한 번 못 막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게 무인들 간의 대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영월이 심기일전하여 마지막 일격을 꺼내 들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21C 전투기가 무림에 강림한 것인가 착각이 드는 순간, 허공에 형형한 빛이 감돌았다.
잘 보니 빛이 아니었다.
검이었다.
백어검(魄馭劍).
검이 하나의 넋을 가진다는, 도어검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한 이기어검의 한 종류였다.
무신은 흠칫 놀랐다.
해영월이 설마 저것까지 꺼내들 줄은 몰랐다.
‘날 죽일 작정인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죽일 작정으로 덤벼들어야 할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단 뜻이었다.
“배, 백어검이야! 저것까지 꺼내 들 정도란 건가!”
“대체 얼마나 강하단 소리야?”
“다들 더 물러나거라! 자칫 우리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니!”
주변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백어검의 등장에 호들갑을 떨면서도 제 살길을 찾아 다들 혼비백산 자리를 떴다.
궁후와 해연수는 진즉부터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리라.
해영월이 이토록 고전하는 것.
흔한 일이 아니니까.
그사이 허공을 채운 백어검의 수는 세 자루에 달했다.
한 자루만으로도 내공 소모가 극심하니 정말 해영월은 아주 작당을 한 셈이었다.
“너무 노여워 말게. 어차피 이것을 막지 못하면 빙룡의 영기를 견딜 수 없어.”
“예, 알고 있습니다.”
말만 그렇다 뿐이지 지금 해영월의 심정은 빙룡의 문제보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 싸움이 더 컸다.
어떻게든 이겨서 무신과 결의를 맺고 싶은 것도 있을 테고.
해영월이 번쩍 손을 들었다.
표적 없이 허공을 맴돌던 세 자루의 백어검이 일제히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녀석들이 바라보는 것은 당연 무신이었다.
무신은 바짝 팔을 당겼다. 수축된 몸이 더욱 짙은 강기를 만들어냈다.
해영월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무신을 가리켰다.
동시에, 세 자루의 백어검도 반응했다.
솨아아아아아아!
짧은 돌풍을 일으키며 무신에게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희뿌옇게 이뤄진 백어검의 날에 작은 불똥이 튀었다.
저 하나하나가 살갗을 찢고 창자를 베어낼 내공임을 무신이 모를 리 없었다.
무신은 아랫입술을 바짝 깨물었다.
그를 뒤덮은 그의 강기가 샛노랗게 변했다.
색이 없는 것에 색이 생길 만큼 그는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전력이었다.
백산검 목청수에 우사개 모추동을 상대로도 꺼내지 않았던 것을 꺼내든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비월내각신공을 알지 못했다.
이제서야 만들어진 전력이었다.
“허억!”
누군가 가쁜 탄성을 토했다.
목소리는 앞에서부터 날아왔다.
무신의 앞에는 해영월밖에 없었다.
백어검을 쓴 해영월을 놀라게 할 정도로 무신은 기이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의 강기에 맞닿은 백어검 세 자루가 스프링을 맞은 듯 거꾸로 튕겨 나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반면, 그의 강기는 멀쩡했다.
흠집 하나 없었으며 반동에 흔들리는 것 또한 없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해영월이 빙룡검을 쳐든 채 달려들고 있었다.
까앙!
끝이 아니란 게 무색하게 결과는 싱거웠다.
빙룡검이 힘없이 밀려났다.
무신의 강기는 또 멀쩡했다.
만약 빙룡검이 깨지기까지 했다면, 해영월은 그대로 졸도해 십 수 년을 앓아누웠을지도 모른다.
“…….”
이만한 상황에도 해영월이 넋이 나간 채 있었으니까.
떨리는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팔이 축 늘어졌다.
미간의 주름은 짜증이 아니라 혼란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의 손에서 빙룡검이 떨어졌다.
유난히도 빛났던 그것이 한순간에 반딧불이만도 못한 놈으로 전락했다.
그저 푸르기만 한 막대기였다.
‘이거 너무 힘을 썼나.’
무신은 괜히 난처해졌다.
하지만 상황적으로는 이게 맞았다.
간발의 차로 이겨봐야 나나 자네나 비슷하단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보는 눈이 없어 다행이구만.”
한참 지나서 해영월이 한 말이었다.
간신히 초점을 찾은 그의 눈이 아무도 남지 않은 대련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역시 궁주는 궁주였다.
패배보다도 그것으로서의 위선을 먼저 생각했다.
나쁘게 볼 것은 아니었다.
궁주는 빙궁의 자긍심.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것이다.
“허나 아직 남아 있네.”
해영월이 빙룡검을 주워 들며 다시 무신과 눈을 마주했다.
선방후공.
이제 공격은 무신의 차례였다.
무신은 해영월에게 맞춰줘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역으로도 이겨 버리면 해영월의 좌절감이 갑절에 갑절은 커질 것 같았다.
하지만 무인들 간 싸움에 그것은 더 못할 짓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상대 입장에서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빠.’
무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15년 동안의 삼류무사.
일부러 못하는 척 약한 척 덤벼들어 그를 농락한 자가 많았다.
그러니 그가 반대로 그것을 한다는 것은…….
‘나도 그놈들과 똑같은 놈들이 된다는 거지.’
그는 최대한의 내공을 끌어모았다.
내내 움츠리고만 있던 흑라신검이 높이 울부짖었다.
허공 위로 내공이 휘몰아쳤다.
억세고 거친, 뭐든 집어삼킬 것 같았던 방금 전 빙룡검과 똑같았다.
다른 것은 검의 이름뿐이었다.
무신은 가볍게 발을 디뎠다.
해영월이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강기를 몸에 걸치며.
무신은 정공법을 택했다.
그저 공격만 하면 되니 괜히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베기만 수억 번을 했던 그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흑라신검을 휘둘렀다.
고요했던 허공이 다시 시끌시끌 달아올랐다.
지면이 더욱 움푹 파였다.
이번에는 선 자리만이 아니었다.
뒤쪽으로도 무너지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해영월이 수십 걸음도 더 밀려나 있었다.
무너진 지면은 그의 발에 끌린 파동 탓이었다.
거기서 그쳤다면 그도 이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강기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