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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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0화
차기 장문
놓은 지 삼 년이 넘게 지났다.
그럼에도 손바닥 안에 감기는 감촉이 익숙했다.
무신은 황홀한 눈빛으로 손에 쥐어진 것을 내려다보았다.
유림의 검.
틀림없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이내 곧 사라졌다.
말 그대로였다.
손바닥 안에 허공만 잔뜩 쥐어져 있었다.
‘잠재기를 찾으면서 순간적으로 형상만 그려졌던 건가.’
무신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형상이란 말은 취소했다.
분명 실체가 있었다.
아직 그것의 온기가 손바닥 안에 남아 있었다.
그는 괜히 미련이 남아 손을 오므렸다 폈다 반복했다.
그것이 나타나기는커녕 애꿎은 온기만 날아갔다.
그래도 그는 만족했다.
애당초 유림의 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잠재기만 찾으면 되었다.
그는 억제한 내공을 다시 개방했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덮쳤다.
놔두면 터질 것 같은 것을 밖으로 꺼내자 마른하늘에 돌연 번개가 쳤다.
잘 보니 번개가 아니라 그의 내공이었다.
그는 윗입술을 핥았다.
몹시 흥분됐다.
심장이 찌릿한 게 흥분을 넘어 광분할 지경이었다.
그는 긴 시간 자신의 옆자리를 지킨 흑라신검을 쥐었다.
그리고 찬찬히 뽑아 들었다.
간만의 외출에 녀석이 거칠게 포효했다.
달리 내공을 주입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질질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한겨울 칼바람이 부는 허공에 가볍게 흑라신검을 휘둘렀다.
초식을 읊을 것도 없었다.
그가 팔다리를 움직이면, 그게 바로 초식이었다.
22만 년쯤 수련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는 무엇에 홀린 듯 검무를 이어나갔다.
허공만을 먹잇감으로 삼다보니 잘 영근 머리통 하나가 간절했다.
그가 살육에 미쳐서가 아니었다.
무인으로서의 본능이었다.
물론, 죽여 마땅한 머리통에 한해서.
그는 일각이 넘도록 땀을 쏟다가 도로 흑라신검을 집어넣었다.
오사개 모추동을 잡을 때도 멀쩡했던 몸이 정말 땀투성이였다.
그는 그만큼 집중했다.
비로소 느낀 잠재기를 더 완벽히 통달하고 싶었다.
완벽.
하지만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하단 것을 그 스스로가 더 잘알고 있었다.
우선 유림의 검의 힘이 완전하지 못했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을 뿐더러 내공만 따져도 삼천 갑자에 훨씬 못 미쳤다.
유림의 검이 그의 잠재기가 아닐 수도 있겠지마는, 그랬다면 유림의 검의 실체가 쥐어졌을 리 없었다.
그는 그래도 웃었다.
‘비월내각신공을 운기조식하듯 계속 쓰다 보면 점점 더 늘어나겠지. 종국에는 유림의 검을 되찾을지도 모르고.’
잘되리란 확신이 있었다.
이렇게 되니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염라에게도 허락받지 못한 유림의 검이 어찌 개방의 비기 따위에 반응했을까.
따위.
개방의 비기가 못나다는 것은 아니었다.
염라의 능력에 비하면 개방의 비기는 분명 따위였다.
무신은 대강 짐작했다.
유림의 검을 이승으로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의식 속에는 늘 남아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무기창을 상대하던 중에 일시적으로 유림의 검이 개방된 적도 있었다.
/[계승 시스템 가동]
[유림의 검의 힘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개방량 0.0001퍼센트]/(이탤릭)
라면서.
무신은 눈을 빛냈다.
대강 짐작했을 뿐인데 우연치 않게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답답하던 속이 뻥 뚫렸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상은 더 이상 없었다.
그의 앞에 이내 곧 광활한 대지가 펼쳐졌다.
그곳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품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어느 빛무리라던지.
청명한 하늘 아래 폭포수가 줄줄 쏟아지는 어느 기슭이라던지.
그것들이 어찌 무공이 되겠느냐마는, 본디 깨달음이란 게 그렇다.
초현실적인 게 더 명확한 답이 되게 마련이었다.
망령의 숲에서의 그의 경험으로는.
그는 그곳에 사흘을 더 머무르다가 눈을 떴다.
눈이 왠지 시원하고 개운했다.
이제 보니 사방에 뒤덮여 있었던 눈이 모두 녹아 있었다.
하지만 날은 여전히 추웠다.
망룡의 안으로 파고드는 한기도 여전히 칼바람이었다.
그럼에도 눈만 감쪽같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그 까닭을 찾았다.
무색의 형형한 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마치 검강 같았다.
어지간한 무인은 이중 하나만 잘못 맞아도 골로 갈 것이다.
망상이 아니었다.
휘어나간 어느 빛줄기에 무언가가 목이 관통당해 죽었다.
강시가 된 혈교의 이름 모를 무사였다.
별일이라고 생각하며 무신은 몸을 일으켰다.
빛이 차츰 줄어들더니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그날, 유림의 검이 사라졌듯이.
무신은 아직은 쥘 수 없는 것을 뒤로 하며 이때까지 찾은 잠재기를 가늠해 보았다.
이 정도면……
그가 아무리 22만 년을 수련했더라도 버튼 띡띡 누르면 수치화 되는 계산기는 못 되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었다.
‘회귀 후에 축적한 내공보다 많아.’
굉장한 소득이었다.
아직 겨울도 안 지난 것으로 보아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서너 달이 전부일 텐데, 단번에 몇 년을 번 것이다.
불로소득은 아니었다.
저승에서 번 돈을 이승에서 쓸 뿐이었다.
그는 흑라신검을 차며 대련장을 나섰다.
원하던 바를 이뤘으니 다시 여정을 이어갈 차례였다.
***
그 무렵 신강의 밤은 유독 길었다.
저 멀리 백야평야의 이상기후가 찾아와서는 아니었다.
새벽닭이 우는 순간에도 칼을 놓지 않은 두 부류의 무인들 탓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본인들만 죽는 상황이었다.
정마대전.
그것은 그만큼 치열하고 숨 가빴다.
“지루하군.”
그런데 그것을 보며 하품을 하는 자가 있었다.
“정파가 어느 정도인지 대강 파악됐으니 슬슬 끝내야겠어.”
심지어 진즉 끝낼 수 있었는데 일부러 놔뒀다는 듯한 말투까지.
누가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으나 이자의 정체를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교주 경화신(璟火神) 마운현.
마교의 교주였다.
그는 대강 채비를 갖추며 일어섰다.
정말 대강이었다.
입고 있던 옷에 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옷은 검강도 우습게 막아내는 명의요, 검은 북해빙궁의 빙룡검과도 비견되는 명검이었다.
그는 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최무신이란 놈… 혈교까지 쳐부쉈다 했나.”
***
“이러다 마교한테 지배당하는 거 아니오?”
“설마 그럴 리 있겠소?”
“팽영권이 당했소. 그 저명한 하북팽가의 가주가 말이오.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오.”
“상대가 마교의 부교주였다 들었소.”
“팽영권도 정파에서 알아주는 고수요. 그 정도는 잡아줬어야지.”
“교주 바로 다음인 자를 어찌 그 정도란 말로 표현하오?”
“그렇기는 한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정파가 밀리고 있단 거요.”
“너무 비관적으로 볼 거 없소. 피해를 준 것만 따지면 오히려 정파가 더 많이 주기도 했고. 무언보다 우리에겐 곽이천이 있잖소? 역대 맹주 중 최강이라는 그가 이 땅을 지켜줄 거요.”
“후우.”
“믿어봅시다.”
“그러고 싶은데 역시 안심이 안 되는구려.”
어수선했다.
이역만리 서쪽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흑룡강 시장 좌판에까지 소식이 나고 있었다.
북문을 향하던 무신은 팽영권이란 이름에 주목했다.
모용선화 일로 직접 안채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리고 말까지 섞었던 자였다.
그런 자가 정마대전의 희생양이 되었다니 얼떨떨했다.
이미 근처 분타에서 듣고 온 소식임에도 말이다.
‘오대세가의 가주임을 떠나 팽영권이란 자가 애당초 그리 쉽게 당할 위인은 아닌데. 상대가 부교주였다니 어쩔 수 없었나.’
무신은 기억 속의 마교 부교주를 떠올렸다.
흑관마 마정태.
별호만 봐도 알 수 있듯 오로지 속도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놈이었다.
남궁가의 천리호정도 놈의 발걸음을 쫓지 못한다 들었다.
단순히 빨리 걷는 것에만 특출 난 놈은 아니었다.
극강의 쾌(快)로 번개같이 상대를 밀어붙었다.
한눈이라도 판다 치면 목이 날아가는 것이다.
물론 힘도 받쳐줬다.
축적한 내공이 한 갑자가 넘는다고도 들었다.
한 갑자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자그마치 60년.
대개의 경우에서 한 갑자 이상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교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마공.
혈교의 강시술과 같은 금기가 놈에게 절대무적을 선사했다.
무신은 시끌시끌한 거리를 뒤로하며 흑룡강 북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간단히 이동하는 것조차 불편해질 만큼 그는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저분이 그분 맞지?”
“어어.”
“어쩜 생기신 것부터 심성 고운 게 느껴지네.”
거리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몇몇 행인들은 아예 그의 앞에 절을 올렸다.
그것이 군중심리로 작용하기까지 일다경도 걸리지 않았다.
줄지어 행례가 이어졌다.
황제가 행차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무신은 난처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굉장히 높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러자고 한 일은 아니니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행인들을 만류했다.
“우리에게 손짓을 해주셨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감사합니다, 검객님!”
하지만 군중심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바람에 그의 몸짓은 ‘흑룡강 주민들을 위하는’ 게 돼버렸다.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에라 모르겠다며 그 사이를 걸어갔다.
어차피 다 저들이 원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그가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경문세가에서 나왔습니다. 혹, 괜찮으시면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최 대협을 저희 경문세가에 모시고 싶습니다.”
걷다 보니 포섭 제안이 들어왔다.
경문세가라면 그래도 강호 서부에서 꽤나 알아주는 명문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정중히 거절했다.
모용세가에도 발을 디디지 않은 그에게 경문세가는 결코 명문이 될 수 없었다.
정녕 그를 포섭하려거든 저 멀리 북해의 빙궁 정도는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그곳의 포섭 때문에 여정을 떠나는 참이었다.
배가 부른 것은 아니었다.
힘을 가진 자의 선택.
정당한 권리를 누릴 뿐이었다.
그밖에도 여럿 문파가 그를 찾아왔다.
어찌 알았는지 흑룡강 북문에도 진을 치고 있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번에도 정중히 거절한 무신의 앞에 또 다른 무인들이 나타났다.
곤륜(崑崙).
왼쪽 팔뚝에 그 문양이 굵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덕분에 하나같이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무신은 어렵지 않게 그들의 정체를 유추했다.
구파일방의 한 축, 곤륜파였다.
아까 그 경문세가와는 비교도 안 될 진짜 명문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와 함께 강호를 제패해 보는 것이 어떻소?”
대부분 손을 잡자는 식으로 말하는 여타 문파들과는 과연 시작부터 달랐다.
포섭이 아니라 강호제패였다.
무신도 조금 흔들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곤륜파 또한 그의 눈에는 그저 그런 문파 중 하나로만 보였다.
북해빙궁이 가지는 입지는 그만큼 컸다.
그런데 곤륜파 무인들이 뜻밖의 제안을 내놨다.
“최 대협을 차기 장문으로 내정하겠단 의견도 있었소.”
“……?”
“신뢰할 만한 의견이오. 원로들 입에서 나온 것이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가 이제 스물일곱이오. 내정이라지만 장문이 웬 말이랍니까.”
무신은 허허허 황당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곤륜파 무인들은 진심이라는 듯 말을 받았다.
“최 대협 정도 고수라면, 스물일곱이 아니라 열일곱이어도 가능하다 생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