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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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5화
마지막 승자
“감정을 싣지 말게.”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으나 주가영은 따로 질책을 받지는 않았다.
상대가 허벅다리만 잘렸을 뿐 다른 곳은 멀쩡해서였다.
물론 더 위험한 곳이 잘렸으면 질책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련을 못 하게 됐을 것이다.
관주가 한심하단 투로 말했다.
“그 정도 심신도 다스리지 못해서야 어찌 무인이라 할 수 있겠나?”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반성하니 내 더는 말 안 하겠네만, 실전이었으면 다음은 없음을 명심하게.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어.”
“네.”
얼굴을 푹 숙인 것이 주가영도 정말 죄송스럽기는 죄송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무신을 쳐다보는 눈빛만큼은 방금 전과 똑같았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연을 쌓기 싫다고만 해서 다행이지, 성격이 지랄 맞아서 그렇단 이유까지 달았다면…….
무신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주가영이 대련이고 뭐고 당장 달려들었을지도 몰랐다.
이후의 대련들도 빠르게 지나갔다.
길게는 백합, 짧게는 오십합 안에도 끝났다.
무신은 차치하더라도 주가영이나 고경림도 십합밖에 안 걸린 판에 오십합이 무어 짧겠느냐마는, 애당초 그들이 비정상적으로 짧았던 것이다.
당장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후… 졌소.”
고경림이 이번에도 십합 정도에 상대를 제압했다.
대련이 아니라 거의 일방적인 난타였다.
상대는 고경림을 건드리기는커녕 제대로 막지도 못하다가 백기를 던졌다.
고경림이 검을 집어넣으며 이마를 훔쳤다.
손등에 묻어 나오는 땀이 입안의 침보다도 적었다.
사치스러운 행동이었다.
관주가 이성구와 무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들만 끝나면 내 상대가 될 수 있는 이가 넷으로 줄겠구만.”
“그 넷에 제가 포함될 겁니다.”
이성구가 어깨를 돌리며 자신감을 뽐냈다. 아까 무신의 대련을 보고 내공을 썼다느니 어쩌니 하며 광분하던 것을 그새 잊은 모양이었다.
마침 관주가 그에 대한 이야길했다.
“저자가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텐데? 자네도 아까 봤지 않은가.”
“봤지요. 물론 봤지요. 저도 처음에는 뭐 저런 괴물이 있나 싶었습니다. 헌데 생각해 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
“전혀 아니라니?”
“그냥 저자의 상대가 약했을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강해 보였다, 뭐 이런 말인가?”
“그렇습니다.”
“호오, 그래. 어디 한번 봐보자고.”
관주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무신을 쳐다보았다.
이성구와 달리 관주는 더 이상 무신을 얕잡아보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보시오, 대협.”
“응?”
마주 보고 서서 대련을 시작하려는데, 이성구가 창을 어깨에 걸친 채로 말했다.
“아까 내가 호들갑을 떨었던 것은 대협의 상대가 워낙 약해서 그렇게 느껴…….”
“들었소. 방금 관주께 말하는 거.”
“그렇소?”
이성구가 창을 고쳐 잡으며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나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겠소.”
“얼마든지.”
“방심하지 말라, 이 말이요.”
그와 동시에 이성구가 놀라운 속도로 무신의 앞까지 쇄도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공을 쓴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실제로 어떤 무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공 없이 저 속도를 낸다고?”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관주는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성구가 내공을 쓰지 않았단 방증이었다.
무신은 크게 휘둘러지는 이성구의 창을 흑라신검과 사선으로 교차시키며 조금 감탄을 토했다.
거두창(居頭槍) 이성구.
입 터는 게 조금 심하기는 해도 확실히 실력은 있는 놈이었다.
속도도 속도거니와 힘이 아주 놀라웠다.
강골의 무신도 버티기 어려… 울 것까지는 없었다.
무신은 가볍게 이성구를 쳐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드러난 이성구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까앙!
이성구가 급히 반응해 그것을 막았다.
날고 날이 부딪치며 요란한 소음을 냈다.
귀가 간지러웠다.
무신은 피식 웃으며 공격을 이어나갔다.
말 그대로 공격만 할 뿐, 그가 방어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성구는 막기에만 급급했다. 피식 웃기까지 하는 무신과 달리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그렇게 십합.
검과 창이 열 번이나 부딪쳤으나 흐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이성구가 시작점보다 열 보는 더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에 작은 검상이 있었다.
내공 없이 저런 상처를 안았다는 것은 이미 승부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무신은 검을 아래로 내리며 물었다.
“더 해볼 테요?”
배려라면 배려였으나 듣는 입장에서는 굴욕스러울 수도 있었다.
자존심 센 이성구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그가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더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소.”
“호오, 그 정도요?”
포기한 것도 모자라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까지 하니 무신으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이성구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그런데…….
“백산검법을 익힌 자를 내 무슨 수로 당하겠소? 앞전에 입을 나불댄 게 부끄러워지는구려.”
“백산검법을 아시오?”
“일전에 백산검법을 익힌 자와 이처럼 대련한 적이 있소.”
이성구가 ‘그리고 또 이처럼 호되게 당했었지’ 하고 씁쓸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반응한 이는 오히려 무신보다 나머지 무인들이었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고경림까지 동요했다.
“정말 백산검법을 익혔소?”
“그렇소.”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시작도 할 수 없다던데… 대체 어떻게 익힌 거요?”
“대협이 이미 답을 말한 것 같소만.”
“하하, 그렇구려. 재능이 좋았으니 익혔겠구려.”
웃고 있었으나 고경림의 얼굴은 왜인지 어두웠다.
“나는 일찍이 하산했소.”
“대협도 백산에 올라갔었소?”
“한 2년쯤 되었지.”
“아쉽게 됐소.”
“아쉽기는. 다 내 자질이 부족한 탓 아니겠소.”
말뿐이었다.
고경림의 얼굴은 여전히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주가영이 ‘아니, 백산검법이 뭔데 그러세요들?’ 하며 불쑥 끼어들었다.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법, 아니면 남궁가의 창궁무애검법쯤 돼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소.”
이성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주가영이 코웃음을 쳤다.
“어떤 의미가 뭔데요?”
“백산검법을 익히면 백산자화신공이란 심법을 익힐 수 있는데, 그것의 가치까지 생각하면 말이오.”
“백산자화신공?”
주가영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말일세.”
이번에는 다른 이가 그녀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관주였다.
“단전이 아닌 온몸으로 내공을 쌓고 회전시키는 대단한 심법이지.”
“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 되네. 그게 백산자화신공의 힘이야.”
“그럼…….”
주가영이 설마 하는 눈으로 무신을 쳐다보았다.
“…아니죠?”
대답은 이번에도 관주의 입에서 나왔다.
“백산검법과 백산자화신공의 창시자 목청수. 내 그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 백산검법은 몰라도 백산자화신공을 전수받은 이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네.”
“휴, 다행이다.”
“왜 다행인가?”
주가영이 눈빛을 불태우며 답했다.
“관주님까지 경의를 표하는 무공을 익힌 자를 제가 무슨 수로 이기겠어요?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는다 해도.”
“흠, 그건 그렇네만…….”
관주가 무신의 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백산검법은 감당할 수 있겠나?”
“그럼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주가영의 대답에 이성구가 딴지를 걸었다.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내 꼴 나기 싫으면.”
“바로 위층에 계시던 관주님의 기압도 못 알아챈 하수와는 달라요, 저는.”
“뭐라고?!”
이성구가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달아 올리며 주가영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옆구리 상처 탓에 서너 걸음도 못 가 꺽꺽거렸다.
주가영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어머, 겨우 그 정도 상처에 쩔쩔매요?”
“입 닥쳐!”
“창객들은 다 그런가.”
이죽거리는 말에도 이성구는 꼼짝을 못했다.
정말 쩔쩔매는 것은 아니었다.
창객이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철교 교주의 산물.
흑라신검.
내공 없이도 내상을 입히는 그것의 특성 때문이었다.
‘흑라신검이 이 정도인데 빙룡검은… 몇 배는 더 대단하겠지.’
무신은 빙궁으로 갈 날을 그리며 자리에 가 앉았다.
백산자화신공을 익힌 이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단 관주의 말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굳이 사실을 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어차피 여기서 내공을 쓸 일은 없으니까.
“봤죠? 백산검법인지 흑산검법인지 하는 것도 내가 이렇게 요절을 내줄 거예요.”
최종 대련자는 금세 정해졌다.
주가영이 압도적인 무위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허.
단순히 빈틈 따위가 아니었다.
상대의 목덜미였다.
“허억!”
실제로 찌르진 않았으니 상대의 몸은 깨끗했다.
피 한 방울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시뻘건 것보다도 주가영의 섬뜩한 눈빛을 더 두려워했다.
“보, 봉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겠소.”
봉(鳳).
뛰어난 무위를 지닌 여인에게 붙여지는 호칭이었다.
‘봉의 주인은 따로 있지.’
무신은 백산에서 만났던 이나희를 떠올렸다.
그날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는데, 그녀는 과연 백산자화신공을 익혔을까.
아니면 끝끝내 실패하고 하산했을까.
그녀라면 왠지 성공했을 것 같았다.
그의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봉의 호칭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따죠.”
무신은 남몰래 웃었다.
주가영이 뭘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봉의 호칭을 얻으려면 최소 화경은 되어야 했다.
주가영이 화경일 수도 있겠지마는, 무신이 알기로 그녀는 초절정 언저리였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한 수 배우겠소.”
“나도 한 수 배우겠소.”
기가 잔뜩 오른 주가영을 뒤로 하고, 고경림과 무신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쥐었다.
그런데 시작도 전에 이미 승부가 나 있었다.
“백산검법을 익힌 분이 내게 배울 것이 뭐 있겠소? 나는 정말 무언갈 배운단 생각이오. 이번 대련에서.”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뭐라 말씀을…….”
“괜찮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청발검(靑髮劍) 고경림.
과묵하다고만 들었지 이렇게 사내다운 면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해서 무신은 조금 힘을 빼기로 했다.
한 수 배우겠단 자에게 정말 한 수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까앙!
이성구와의 대련 때처럼 둔탁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무신에겐 고경림의 틈이 보였다.
찌르든 베든 팔을 휘젓기만 하면 그대로 꽂힐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피해갔다. 그리고 역으로 틈을 내주었다.
고경림이 그 틈에 제 검을 꽂아 넣었다.
무신은 유연하게 그것을 막아냈다.
흑라신검에 맞닿는 힘이 이성구 못지않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거 아시오?”
대련은 칠십합이 넘어서야 매듭이 지어졌다.
패자는 당연히 고경림이었다.
“나는 내내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소. 헌데도 대협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더구려.”
“아니오. 내 위기가 얼마나 많았는데.”
고경림이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일부러 틈을 내주는 것도 위기라 하오?”
“크흠.”
“모를 수가 있나. 같은 무인끼리.”
고경림이 ‘아직 배울 것이 많음을 깨닫게 해준 승부였소. 고맙소’ 하고 살짝 고개까지 숙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무신은 조금 기분이 묘했다.
회귀 전의 인생.
그것이 아직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인지 저런 말은 그에게 낯설기만 했다.
“이번 대련의 승자가 나와 대결하는 걸세.”
그리고…….
망룡의를 건 마지막 승부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 대련을 보니, 그래, 백산검법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겠어요. 하지만 주씨세가의 검술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 무서움을 보여드릴게요. 덧붙여 절 거부한 것에 대한 복수도 좀 해드리구요.”
거부한 것이라.
이제 보니 주가영은 자신이 여자로서 내쳐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무신은 괜히 미안했다.
잠시 후면 주가영을 여자로서뿐 아니라 무인으로서도 내치게 될 테니까.
아니, 잠시 후까지 갈 것도 없었다.
“……!”
대련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신의 검이 주가영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주가영이 아까 자신의 상대에게 그랬던 것처럼.